소설리스트

은거중인 용사는 마왕과 함께 산다-14화 (14/149)

〈 14화 〉 쌍둥이와 던전(10)

* * *

"설마 그때 봤던 게 그 녀석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니."

"아침마다 쌍둥이 자매의 모습을 보는 게 삶의 낙이였는데…."

"난 핀 씨가 없어진 것도 안타까워. 모험가 활동으로 벌어들인 돈의 일부를 고아원에 늘 기부하던,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고."

어비스의 통로를 지키고 있던 모험가들은 틈만 나면 즐기던 포커도 하지 않고, 어비스에서 사라져 버린 동료들에 관한 이야기만 나누고 있었다.

"어비스에서 24시간이 지나가도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는 그 안에서 죽어버리거나, 보스가 있는 계층에 진입했을 때뿐이라 했던가? 그러면 보스하고 한참 싸우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아?"

"핀 씨의 파티가 돌아와야 하는 시간에서 벌써 5시간이나 지나갔어. 그 정도 시간이면 어느 쪽이든 결판이 났겠지. 그런데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모험가는 거기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그 뒤에 이어질 말이 무엇일지 모르는 이는 없었기에 다들 어비스의 통로를 바라보며 메림 일행과 다른 모험가 일행을 조용히 애도하고 있었을 때,

숲 속에서 나타난, 수상하다는 말 이외에는 표현하지 못할 인물이 굉장히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저놈은 또 뭐야?"

모험가들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온몸을 가리고 있는 회갈색 망토를 뒤집어쓴 채, 낡아빠진 투구를 쓰고 있는, 그야말로 수상함이라는 단어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한 차림새였다.

"뭐야 저거… 망토 간지라도 챙기려는 건가? 겉멋만 든 뜨내기들이 가끔씩 저런 행색을 하던데."

"이봐, 얼뜨기! 멈춰!!"

그나마 말은 통하는 모양새인지, 달려오고 있던 침입자는 모험가들 앞에서 멈춰 섰다.

상대방은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수상쩍기 짝이 없는 차림을 하고 있었기에 모험가들은 무기를 치켜들어 침입자를 위협했다.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바르멜라 길드에서 관리하고 있는 어비스 입구다. 들어오고 싶으면 길드의 인장이 찍힌 목패를 내놔. 네놈의 꼬락서니를 보니까 없을 거 같지만 말이지."

침입자는 대답 대신 미리 적어둔 듯한 팻말을 꺼내 들어 모험가들에게 보여줬다.

[안으로 들어가게 해 줘. 얌전히 보내주면 나도 너희들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을게.]

"……."

모험가들은 하나같이 어이가 없어져서 무어라 할 말조차 나오지 않다가도,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어서 원…이 씨발새끼…."

평소였다면 이런 녀석은 단순히 겁만 줘서 쫓아내는 걸로 말겠지만, 지금 그들은 같은 길드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료들을 잃어버린 상황이라 기분이 그다지 좋은 상태가 아니다.

"안 그래도 기분 좆같았는데 마침 잘 걸렸네."

"이제부터 죽도록 두들겨 맞기 싫으면 아무 짓이나 해야 할 거야."

오히려 화풀이할 대상을 찾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지금 그들의 눈앞에 분노를 표출할만한 적당한 대상이 몸소 행차한 상황이다.

죽이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흠씬 두들겨 팰 생각이었다.

"그전에 망할 투구 먼저 벗겨주마.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 ㅈ…"

침입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간 모험가가 그가 쓰고 있는 투구를 벗기려 손을 뻗은 순간,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침입자는 투구를 벗기려는 손을 붙잡아 무척이나 가벼운 물건을 당기는 느낌으로 끌어올렸다.

"어?"

모험가는 무게를 잊은 듯이 공중에서 빙글, 하고 세로로 회전하더니, 머리가 먼저 땅에 닿아 쓰러지며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이 자식이!"

이번엔 양 쪽에 서있던 두 명의 모험가가 무기를 휘두르며 침입자에게 달려들었다.

침입자는 흐르는 물처럼 유연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한 뒤, 손바닥을 펼쳐 양쪽에 있는 상대방의 가슴팍을 밀어치자, 그것만으로 상대방들은 땅바닥에 나뒹군다.

10초도 걸리지 않는 짧은 시간만에 침입자는 필요 최소한의 행동만으로 세 사람이나 되는 무장한 인간들을 맨손으로 제압했다.

일련의 행위는 매우 빠르면서도 군더더기 하나 없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역설적으로 느려 보이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남은 두 명은 덤벼들지 않았다. 자신들한테 무기가 있든 없든 침입자에게 덤벼봐야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이해한 것이다.

"……."

미안하게 됐어. 후배들.

침입자는… 아니, 투구를 쓰고 있던 로덴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비스의 입구로 걸어가 그곳을 향해 몸을 던졌다.

파즈즈즛­!

다른 차원의 경계를 넘나들 때 느껴지는 특유의 저릿한 감각이 로덴의 온몸을 간지럽힌다.

이 느낌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단 말이지.

마스티 차원에 도착하자마자 주위를 둘러본 로덴은 근방에서 가장 높이 솟아올라있는 나무를 향해 뛰어가, 순식간에 나무의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정보'

전망을 최대한 드넓게 확보한 뒤에야 정보창 기능을 활성화시킨 로덴은 멈춰진 시간 속에서 버섯 인간들의 정보창을 하나하나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확인 작업을 끝마친 버섯 인간의 수가 30마리 이상을 넘어갔을 때쯤, 그는 원하던 단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개체명 : 머쉬 키메라]

[종족 : 인간/균체]

[직업 : 문지기]

[기능 : 맨몸 전투 LV1]

[레벨 : 14 / 20]

모험가들 사이에서 흔히 알려진, 어비스의 다음 심계로 넘어가는 조건은 현재 위치한 계층에서 일정 수 이상의 마물을 잡는 것.

그래야만 다음 심계로 넘어가는 입구가 드러난다.라고 대부분의 모험가들은 믿고 있다.

완전히 틀린 정보는 아니지만, 실상은 엄연히 다르다.

어비스의 다음 심계로 넘어가기 위한 진짜 조건은 해당 심층에 있는 마물들 사이에 숨은 '문지기'로 지정된 개체를 처리하는 것이다.

문지기를 발견하자마자 정보창을 비활성화시킨 로덴은 조금 전부터 눈여겨봤던, 무기로 쓰기 딱 좋은 굵기와 길이의 나뭇가지를 부러뜨렸다.

흠… 여기까지 올라온 김에 이것도 챙겨갈까.

마지막으로 큼지막한 크기의 애플 헤드를 하나 따서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뒤, 나무에서 풀쩍 뛰어내리고는 문지기가 있는 장소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초원을 어슬렁 거리고 있던 머쉬 키메라들 사이를 지나치며 문지기와의 거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좁혀낸 로덴은 나뭇가지를 검처럼 휘둘러 녀석의 머리를 베어냈다.

쩌저억­!

어비스에 진입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다음 계층으로 넘어가는 입구를 찾아낸 로덴은 그 균열 사이로 뛰어들었다.

* * *

최초에는 괴인의 선공으로 한 명을 잃어버린 뒤, 뒤늦게나마 나머지 인원을 지휘한 핀을 중심으로 시작된 전투는 여러 가지 의미로 불리했다.

이미 장시간의 탐색으로 지쳐버린 상태인 핀 일행과 다른 모험가 일행과 달리 괴인의 컨디션은 최상이었으며,

팔을 잘라내거나, 몸통을 깊숙이 찌르거나, 뼈를 부러뜨려도 금세 재생하는 괴인의 유지력과 맨몸으로 머리와 무기를 파괴할 수 있는 신체능력이 합쳐진 결과는 2시간 가량의 싸움에 걸친 패배였다.

그리고 지금은….

"아히히히히!! 장난감! 장난감! 장난감! 장난감! 장난가아아암!!!"

콰직! 콰직! 콰직!

광기에 절여진 웃음소리를 내고 있는 괴인은 온몸이 완전히 뒤틀려버린 모험가의 머리를 붙잡은 채, 벽을 향해 여러 차례 찧고 있기 바빴다.

그 행위가 여덟 번째로 반복되었을 때,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모험가의 머리통이 완전히 으깨지고, 새하얀 벽면은 뇌수와 피, 살점이라는 이름의 흉흉한 물감으로 붉게 칠해졌다.

"아아…, 또 부숴버렸네. 이제 장난감도 절반밖에 남지 않았어… 최대한 아끼지 않으면…."

손에 묻은 핏자국을 음미하듯이 핡짝 거리며 중얼중얼거린 괴인은 나머지 장난감을, 무력화된 메림 일행을 바라보며 히죽거렸다.

양다리가 부러져 버린 핀은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었다.

양 팔이 부러진 알타프는 더 이상 무기를 들지 못했다.

스태프가 부러져 버린 메림은 더 이상 마법을 쓰지 못했다.

버클러와 동시에 한쪽 팔이 부러져 버린 마릴의 검도 반으로 쪼개져 있다.

"우후후, 다음은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볼까…? 슬슬 여자 쪽을 갖고 놀고 싶은데."

괴인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메림 일행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쌍둥이 자매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끄으으읏…!"

"피, 핀 씨…."

이번에 괴인이 노리려는 게 쌍둥이 자매라는 사실을 알아챈 핀은 그나마 멀쩡한 양팔로 엉금엄금 기어가 그녀들의 앞을 막아섰다.

"캡틴도 다쳤으면서 뭘 그리 무리하고 있는 거야?!"

"파티의 장으로서… 그 이전에 어른으로서 마땅히 해야하는 역할입니다. 그러니 모두들 제 뒤로 숨어 계세요. 어서!!"

"아, 알았어. 대장!"

그러한 핀과 대조적으로 알타프는 최대한 뒤로 숨어있다.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난 두 남자의 본성은 극과 극이었다.

짝짝짝!! 짝짝짝!!!

팔짱을 끼고 있는 상태로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던 괴인은 과장된 동작으로 박수갈채를 날렸다.

"너~어~무나도 훌륭해!! 이렇게 눈물겨운 동료애라니~!!! 감동스럽기 짝이 없어서 마음이 싹 바뀔 거 같은 걸?! 얘들아 이런 건 어떠니? 내가 딱 한 명은 살아서 나가게 해 줄게."

"저, 정말이야?!"

한 명 만은 살려준다는 말에 알타프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으며 안색이 밝아졌다.

"음음~ 이제부터 셋을 셀 거니까 내가 살려줬으면 하는 사람을 지목해봐. 가장 많이 지목된 사람을 살려줄게. 참고로, 자신을 지목해도 돼. 자 그럼~ 하나, 둘~ 셋!"

카운트가 끝났을 때, 알타프는 덜렁거리는 팔로 자신을 가리켰고, 메림은 마릴을, 마릴은 메림을, 마지막으로 핀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어머, 이 아저씨는 왜 기권을 날리셨을까?"

"어차피… 새빨간 거짓말이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짓은 더는 하지 말아 주시죠."

"아하하하!!! 다 들켜버렸네?"

배를 부여잡은 과장된 자세로 실컷 웃은 괴인은 웃음기를 싹 감추고 가볍게 몸을 풀었다.

"뭐, 아무래도 좋아. 이제부터 내가 할 놀이는 술래잡기야. 먼저 닿는 녀석은 죽을 때까지 갖고 놀 거니까 알아서 잘 도망가렴."

괴인이 다가오는 동안에 핀은 체념한 듯 가만히 쌍둥이 자매의 앞을 지키고 있었고, 쌍둥이 자매는 서로 끌어안고 있다.

"히…, 히이익!!"

…마지막으로 양팔을 덜렁거리고 있는 알타프는 다가오고 있는 괴인과 최대한 거리를 벌리면서 동료들과 멀찍이 떨어졌다.

저벅저벅저벅

저벅저벅저벅

저벅저벅저벅

저벅저벅저벅

저벅저벅저벅

히죽히죽 거리고 있는 괴인은 그저 느긋한 발걸음으로 알타프가 거리를 벌린만큼 거리를 좁혔다.

"씨바알!! 왜…!! 왜 나만 따라다니는 거야?!!!"

"그야 술래잡기는 도망가는 걸 쫒는 게 더 재밌잖니? …아, 그렇다고 이제 와서 가만히 있을 생각하지 마렴? 만약에 그랬다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 끔찍한 방법을 동원해서 고통스럽게 죽여버릴 거니까."

"으…,으아아아!!!!"

"우후후후, 최선을 다해서 도망치렴…죽을 때까지."

괴인이 시작한 술래잡기는 알타프가 정신적으로 완전히 지쳐서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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