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거중인 용사는 마왕과 함께 산다-11화 (11/149)

〈 11화 〉 쌍둥이와 던전 (7)

* * *

사방이 철판과 톱니바퀴로 만들어진 차가운 벽과 바닥, 천장으로 구성된 심계 1층 구역에서 막 전투를 끝낸 쌍둥이 자매와 두 남자.

메림 일행은 안전구역을 확보한 상태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경상을 입었던 핀이 포션을 꺼내 들었다.

꿀꺽꿀꺽…

"후우우…! 로덴 씨가 판매하고 계신 포션은 효과도 효과지만, 포션 특유의 떫은맛이 없어서 마시기 훨씬 편합니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을 한 핀이 포션에 대한 평가를 내리자 나란히 고개를 끄덕거린 쌍둥이 자매가 한 마디씩 덧붙었다.

"그러게 말이야~ 여태까지 마시던 포션은 죄다 으깬 풀을 삼키는 느낌이었는데."

"뭐랄까, 시원한 물을 마시는 듯한 기분이죠?"

한편, 혼자 떨어진 곳에 쭈그려 앉은 채 조금 전에 쓰러뜨린 마물을 내려다보고 있는 알타프는 마물의 잔해를 단검으로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이놈들 약점이 등짝이라는 게 얘기가 진짜였네."

"내 말이~! 특히 나는 평소에 머리통에만 마법이 적중하도록 연습했는데, 이번에 등짝을 노리려니까 오히려 더 어려운 거 있지?"

바닥에 널브러진 마물들은 사람의 겉모습을 흉내 낸, 태엽장치로 만들어진 자동인형들이다.

"묘하게 사람이랑 닮기도 했고 이상한 목소리도 내고 있어서 굉장히 섬뜩했어요…. 지상에 있던 마물도 사람의 형태라서 느낌이 영 별로였는데, 다른 차원의 마물은 다 이런 느낌일까요?"

"섬뜩하다는 의견에는 저도 공감합니다. 그나마 이 마물들의 등에 붙어있는 쇳덩어리가 비싸게 팔려서 다행이죠."

대화를 이어가며 자연스럽게 휴식을 끝마친 일행들은 전리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동인형의 등에 붙어있는 제법 큼지막한 태엽이다.

"이런 게 하나당 대동화 6, 7 개씩이나 한다니…,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 쇳덩어리에 레어메탈이 섞여있어서 그렇게 비싸게 팔린다고 하더라."

"레어메탈?!!"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구경도 하기 힘든 오리하르콘이나 미스릴, 아다만티움 같은 희귀 금속을 포괄적으로 뜻하는 레어메탈이라는 단어가 알타프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나머지 일행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진짜야?"

"나야 모르지. 그렇다는 소문만 접했거든. 더 자세히 들어보니까 이걸 당장 팔지 않은 채 최대한 모으고 있는 녀석들도 일부 있다고 해."

"흠… 일단은 모을 수 있는 데로 모으는 게 좋긴 하겠군요."

전리품을 거의 다 회수할 때쯤… 마릴이 다가간, 상체만 남은 자동인형의 태엽장치가 갑작스럽게 돌아갔다.

<끼기기긱­! 기체="" 손상!="" 끼기기긱­!="" 침입자="" 감지!="" 암="" 블레이드="" 개방!!=""/>

몸을 이리저리 들썩거리며 쇠를 긁는듯한 목소리를 낸 자동인형은 팔목 부위에서 시퍼런 칼날을 꺼내 들고는 상체의 힘만으로 마릴을 향해 단숨에 뛰어들었다!

"꺄아앗?!!"

까앙­! 반사적으로 버클러를 휘둘러 자신을 덮치려는 자동인형을 쳐낸 마릴은 버클러의 방패 날 부분으로 여러 차례 내리찍어 자동인형을 완전히 찌그러뜨렸다.

"마릴! 괜찮아?! 다친 곳은?"

곧바로 동생에게 달려간 메림이 신속히 포션을 꺼내 들었다.

"으, 응. 조금 놀란 거뿐이야. 포션은 도로 집어넣어도 돼."

"이 마물들은 몸의 절반이 날아가도 움직일 수 있군요…. 다음부터는 다들 주의해야겠습니다.

쩌저저적…!!!

마릴을 덮쳤던 자동인형의 태엽이 완전히 멈춤과 동시에 일행들의 발치 앞에 커다란 균열이 생겨났다. 심계 2층으로 진입하기 위한 입구다.

"보아하니까 조금 전에 마릴이 찌그러뜨린 녀석으로 숫자를 채운 모양이야."

쌍둥이 자매와 알타프는 파티장인 핀을 바라봤고, 잠시 팔짱을 낀 채 고민하던 핀은 진중한 목소리를 낸다.

"저희가 어비스에 진입한 지 대략적으로 10시간이 조금 넘은 거 같습니다만. 2층으로 진입하기에 앞서 여기서 한번 자고 움직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반대의견은 없었다. 조금은 이른 감이 있긴 하지만 지금처럼 안전구역을 확보한 상태에서 쉰 다음에 움직이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야영 도구를 꺼내기 시작한 쌍둥이 자매와 두 남자는 불침번 순서를 정하기로 했다.

* * *

"록시아, 오늘도 그냥 밖에서 먹고 오자."

같은 시각, 평소처럼 자동 배합기를 가동하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 지은 로덴과 록시아가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요즘 따라 외식을 자주 하게 됐네요. 주인님."

실은 주인님이랑 같이 요리하는 순간이 좀 더 즐겁지만… 저 같은 게 감히 뭐라고 해선 안 되겠죠.

"일이 좀 늦게 끝날 때가 많아지니까 밖에서 먹는 게 좀 잦아지긴 했지. 오늘은 안 가본 식당으로 가볼까?"

"네. 좋아요."

각자의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가게 문을 걸어 잠근 채 나란히 도심지 방향으로 향한다.

"주인님. 지금쯤 메림 언니랑 마릴 언니는 뭐 하고 있을까요?"

어둑어둑한 도시 안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으니, 로덴의 옆자리에 꼭 붙으며 따라오던 록시아는 쌍둥이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침부터 어비스로 출발했다고 가정한다면 슬슬 야영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바보가 아닌 이상 탐색하는 중간에 한 번은 휴식할 수 있게끔 미리 준비하고 출발했을 테니 말이야."

모험가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로덴이 꺼낸 추측은 거의 옳았다. 실제로 지금 메림 일행은 불침번을 세우고 있으니 말이다.

"…두 분 모두 무사히 돌아오시겠죠?"

"듣자 하니 나머지 두 명의 동료도 걔네들이랑 같은 동 등급이라고 하더군. 나름대로 실력파로 구성된 파티니까 괜찮을 거야."

특히 파티장인 핀이라는 녀석은 얼마 안 있으면 은 등급으로 올라갈 정도로 모험가로서 신용과 경험을 많이 쌓은 남자라고 했던가…

록시아를 향해 고개를 돌린 로덴은 마릴이 그녀에게 빌려준 책을 언급했다.

"더군다나 그 낡은 책을 돌려받기 위해서라도 꼭 돌아와야겠지. 그나저나, 오늘 일할 때도 틈만 나면 그 책을 읽기 바빠 보였는데… 너도 어지간히 그게 재밌나 보구나."

"아하하…, 실은 어젯밤에도 정신없이 읽다가 조금 늦게 자버렸어요. 참고로, 제가 마지막으로 읽은 장면은 용사님이 수인의 왕과 결판을 지으려는 부분이에요."

낭제(??)하고 일대일로 싸웠을 때의 일이군…. 지금 그 아저씨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옆에 있는 소녀가 읽었다는 장면에서 옛날의 인연을 떠올린 로덴은 그녀와 같이 도착하게 된 식당의 문을 활짝 열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식당 안의 테이블들에는 먼저 자리 잡은 선객들이 자기들끼리 떠들며 술과 안주를 목구멍으로 넘기느라 바빠 보인다.

"여기요."

적당한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바빠 보이는 종업원을 시켜서 육류 위주의 요리와 술을 주문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에게 돌아온 종업원은 테이블 위로 음식들을 하나 둘 천천히 올려놓았다.

식탁 위에 펼쳐진 음식들과 주변의 테이블에서 뿜어지는 냄새가 난잡하게 섞여서 후각을 자극한다.

새하얀 접시에 담긴 훈제 고기는 최대한 빠르게 자신을 먹어달라며 애원 하듯이 지글지글거리고 있었고, 거품이 넘칠 정도로 가득히 따라진 맥주잔은 목넘김이 절로 기대됐다.

이야기는 이미 충분히 나눈 만큼, 두 사람은 별말 없이 식기를 들고 눈앞에 있는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내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포크와 나이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된 록시아의 모습을 지켜본 로덴은 새삼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식기도 요령 있게 잘 쓰게 됐네, 손으로 집어서 다람쥐처럼 볼에 꽉꽉 채우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한데."

주인과 처음 만났던 날의 일을 떠올린 록시아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채 기어가는 목소리를 낸다.

"주…, 주인님…. 더 이상 그때의 이야기는 하지 말아주세요오…."

"반응이 재밌어서 그만두겠다는 약속은 차마 못하겠어."

"우으으…."

은근히 어른스럽지 못한 로덴은 록시아와 식사를 할 때마다 종종 이런 식으로 놀리는 게 삶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볼을 부풀리고 있는 록시아의 모습을 실컷 감상한 로덴은 거품이 가득한 맥주잔을 집어 들고는 시원한 목넘김을 만끽했다.

"푸핫!"

마냥 비싼 술보다는 이런 맥주가 더 정겹단 말이지.

기분 좋게 입가를 닦아낸 로덴은 맞은편 자리에서 주스를 홀짝거리고 있는, 록시아의 부러워하는 시선을 느꼈다.

"저랑 같이 드시는 음식 중에서 주인님께서 유일하게 먹지 못하게 하시는 술은… 그렇게나 맛있는 건가요?"

"맛있다기보다는 기분이 좋아지는 맛이지. 너도 마시고 싶어?"

"…네."

고개를 끄덕거리는 록시아를 보며 미소를 머금은 로덴은 들고 있던 맥주잔을 그녀의 손에…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안 돼."

넘겨려주는 시늉을 하다가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쭈욱 들이켰다.

"흐흐, 네가 어른이 되면 그때 마시게 해 줄게."

"어른은 언제 될 수 있는 건가요?"

"음…."

이쪽 세상은 분명 16살 때부터 성인으로 인정했던가….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턱을 살살 긁던 로덴은 록시아의 눈 앞에 두 개의 손가락을 세웠다.

"앞으로 2년. 2년 뒤에는 너도 어엿한 어른이 될 수 있어. 술은 그때부터 마시게 해 주마."

"뭔가 길게만 느껴지네요."

"지금 당장은 길게 느껴져도 지나가 보면 2년 정도는 순식간이야.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네!"

계산을 끝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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