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쌍둥이와 던전 (6)
* * *
죽음의 위기를 수시로 넘나드는 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하며, 이러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는 적절한 자극에 의한 쾌락이 필요하다
뭐…, 굳건한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신을 향한 기도나 수행을 통한 자기 계발의 성취감만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예외적인 경우도 종종 있긴 하지만.
현대에 비교하자면 즐길 것이 압도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이쪽의 시대에서 그러한 자극은 대체로 미식, 섹스, 술, 도박, 투기장이라는 수단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로덴에게서 피임 포션을 구매한 마커스 일행이 선택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은 물어볼 필요도 없이 섹스다.
포션을 받자마자 떠나가려는 마커스 일행을 잠시 붙잡은 로덴은 피임 포션에 관한 최소한의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행위를 하기 5분 전에 미리 복용하시고, 남성용 피임 포션의 경우 체질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지속시간은 10시간에서 12시간 사이니까 이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오오! 다른 도시에서 팔던 건 길어야 5시간 짜리였는데…, 로덴 선생이 만든 건 성능 한번 확실하군. 한숨 자고 나서 몇 판 더 즐겨도 남을만한 시간이야."
마커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 있던 동료가 실실거렸다.
"크흐흐. 마커스 대장, 그럴 체력이나 있어? 오늘 무리하다가 뻗어버릴 거 같은데."
"이런 씹새… 당연히 있고 말고! 하지만 만전을 기울이기 위해 오늘 저녁은 정력에 좋은 녀석들로만 꽉꽉 채우고서 돌격한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도시로 향한 마커스 일행의 뒷모습을 바라본 로덴은 옛날 생각이 났다.
멀쩡한 창관을 내버려두고 굳이 피임 포션을 찾는다는 것은 이 주변에서 눈이 맞은 여성 모험가나 순박한 마을 처녀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로덴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불장난을 아무런 뒤탈 없이 즐기고 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 대한 배려로서 피임 포션을 따로 빼두었다.
저 후배들은 이번 원정에서 대박이 터진 덕분에 거리낌 없이 산거겠지만, 모험가들의 지갑 사정을 생각하면 은화 한 닢은 조금 비싸긴 하군.
피임 포션의 재료는 그렇게까지 귀하진 않았지만 마냥 흔하지도 않고, 전문가의 손을 통해 약초와 독초들을 적절한 비율로 조합해서 만드는 수고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가격이다.
아무튼, 오늘의 장사를 마무리하겠다는 의미로 간판을 뒤집고, 문을 걸어 잠근 로덴은 곧장 지하 작업장으로 향했다.
"아, 주인님. 딱 맞춰서 오셨네요."
내려가 보니 마족의 모습으로 돌아간 채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록시아가 반겨줬고, 그녀가 미리 세팅해 놓은 막자사발과 비커 여러 개, 다종 다양한 약초들이 커다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기다렸지? 혼자서 준비하느라 수고했어. 작업만 끝나면, 밖에서 먹고 오자."
"네!"
어비스의 영향으로 최근에 포션을 찾는 모험가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로덴과 록시아는 장사가 끝날 때마다 포션 재료를 만드는 작업을 매일같이 해야만 했다.
달각달각
면장갑을 낀 로덴이 알맞은 크기로 잘라낸 약초들을 집어넣은 막자사발을 돌려가며 내용물을 갈기 시작하니 진한 풀내음이 작업실 내에 서서히 퍼져간다.
그의 옆자리에서 막자사발을 돌리고 있는 록시아 또한 부모의 행동을 따라 하는 아이처럼 로덴의 모습을 상시로 흘긋거리며 약초를 빻는다.
어찌나 집중하고 있는지 그녀의 얼굴에 투명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힘들지는 않아? 이제 거의 다 됐으니까 먼저 쉬어도 괜찮은데."
"저는 쉬는 것보다 주인님이랑 같이 일하는 게 더 좋아요."
아…, 치유된다.
혼자서는 무미건조한 느낌으로 했던 작업이었지만 이 아이랑 같이 있으니 이것조차도 즐겁다고 생각한 로덴과 주인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록시아.
서로를 생각하고 있는 두 남녀의 작업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응 마지막으로 4번 비커를 건네줘."
"여기요."
비커에 들어 있는 빻은 약초와 약품을 섞어낸 내용물들을 자동 배합기에 부착된 유리병들에 순서대로 부어 넣은 다음에 가동하는 것으로 모든 작업은 끝이 났다.
치익치익칙!
"이제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면 완성이네요. 주인님이 만드셨다는 이 자동 배합기는 언제 봐도 대단해요."
"그치, 그치? 내가 이걸 처음 만들었던 과정은 지금 생각해도 말이지…."
로덴이 유일하게 말을 아주 길게 하는, 자동 배합기 자랑 모드에 돌입하려고 하자 뒤늦게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은 록시아는 서둘러 빠져나가기 위해 지혜를 발휘했다.
"가, 갑자기 배가! 죄, 죄송하지만 먼저 올라가 볼게요! 주인님!!"
"…응."
록시아가 급히 떠나간 작업실에 홀로 남아버린 로덴은 나이에 맞지 않게 굉장히 시무룩해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 * *
다음날 아침, 바르멜라의 거리에서 헐래 벌떡 뛰고 있던 쌍둥이 자매는 두 남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살짝 늦었습니다."
일반적인 남자들보다 키가 두 뼘 더 커다란, 상당히 체격이 좋은 실눈의 모히칸, 핀은 다가오고 있는 쌍둥이 자매를 향해 정중한 어조로 불만을 토해냈다.
핀이라는 이름의 사내는 중요 부위마다 두터운 철판으로 보강되어 있는 레더 아머를 착용하고 있었고, 허리춤에는 상당히 묵직해 보이는 철퇴를 양쪽에 하나씩 매달고 있다.
"아하하~! 미안 미안. 어젯밤에 잠을 좀 설쳤지 뭐야."
"늦어서 죄송해요. 핀 씨, 알타프 씨."
"마릴은 사과하지 않아도 돼. 평소 하는 짓을 생각하면 보나 마나 메림 때문에 너까지 덩달아서 늦었겠지."
핀과는 대조적으로 평균보다 체격이 작은 편인, 다소 호리호리한 붉은 꽁지머리의 소년, 알타프가 메림의 평소 행실을 지적하며 실실 웃고 있었다.
눈동자에 장난기를 머금고 있는 알타프가 팔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주름 하나 없는 말끔한 옷 안에서 절그럭 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경험 있는 자가 들었다면 알타프의 옷 속에 체인 셔츠와 자잘한 무기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아나, 보지도 않고 멋대로 판단하네."
"틀려?"
"쳇… 맞긴 하지만."
쌍둥이 자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남자는 그녀들과 같은 동 등급의 모험가. 쌍둥이와 자주 손발을 맞추던, 마냥 짧지만은 않은 인연이다.
"포션은 문제없이 구비해 오셨죠?"
얼핏 봐도 30대는 족히 넘어 보이는, 우락부락한 외모의 핀이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정중한 어조는 핀의 인품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당근이지. 넉넉하게 챙겨 왔으니까 걱정 말라고. 캡틴."
"저희도 필요한 물품은 전날에 다 구비했으니 바로 길드로 가보도록 합시다."
경험과 연륜 등의 이유로 자연스럽게 파티장 역할을 맡게 된 핀의 말에 나란히 고개를 끄덕거린 일행은 곧장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문을 열자 이 길드에 소속된 모험가들 만이 아닌, 가까운 도시에서 넘어온 모험가들도 있어서 상당히 소란스러웠다.
"어우~ 어비스의 소문을 듣고 몰려온 녀석들 때문에 요즘에는 숙소를 잡는 것도 일이야."
"마구간에서 자거나, 아예 노숙을 하는 애들도 있더라고."
말없이 주위를 둘러보던 핀은 곧장 접수처 앞에 늘어진 줄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면 저는 잠시 순번을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먼저 자리 잡고들 계세요."
"알았어."
잠시 후, 어비스를 어떻게 탐색할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일행에게 빠른 걸음으로 돌아온 핀은 길드의 인장이 찍혀있는 목패를 보여줬다.
"바로 다음 차례가 저희들이고, 조금 전에 막 봉화가 올라왔다고 합니다. 곧바로 출발하죠."
"오자마자 곧바로 출발이라니… 오늘은 일진이 좋은데?"
서로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인 네 사람은 망설일 필요도 없이 동북쪽의 숲, 어비스의 입구를 향해 나아갔다.
* * *
어비스에 진입함과 동시에 주변에 적이 있는지의 여부를 먼저 확인한 일행은 나란히 고개를 들고 다른 차원의, 알록달록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마치 거룩한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통째로 하늘에 붙여진 듯한, 기이하고도 신비로운 풍경이다.
"이걸로 두 번째지만 여전히 적응이 안 되네요. 은근히 어지럽기도 하고."
"재밌기만 하잖아~ 앞으로 살면서 어비스에 올 일이 얼마나 있겠어."
"다른 분들에게 받은 정보가 있긴 하지만, 여기서는 방심하면 안 됩니다. 다들 진형대로 움직이세요."
정찰 역할의 알타프, 전방을 맡은 핀, 후방을 맡은 메림과 그녀를 지키는 마릴의 순서로 진형을 짠 일행은 경계태세를 유지하며 천천히, 어비스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스윽
평상시의 가벼운 태도와 달리 침묵을 유지하며 앞을 정찰하던 알타프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수신호를 보냈다.
그의 시선 끝에 있는 건 이 어비스의… 정확히는 마스티 구역 지상층에 주로 서식하는 마물들의 모습.
버섯과 사람을 합친듯한 느낌의 기묘한 생물체들이 수상한 포자를 뿜어대며 어슬렁 거리고 있다.
"다시 봐도 징그럽네요…."
마릴이 그리 중얼거린 것은 그녀의 감수성이 예민해서가 아닐 거다. 다른 동료들도 그녀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시작할 건지 결정해줘. 대장."
속닥거리듯 말한 알타프가 파티장인 핀에게 결정권을 넘겼다.
"…메림 양. 평소처럼 범위 공격 마법을 준비해주세요."
"화끈한 걸로 날릴게~ 캡틴."
동료들을 향해 엄지를 치켜든 메림은 스태프를 양손으로 든 채,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파이어 레인(Fire Rain)!!”
메림이 눈을 번쩍 뜨며 마력을 담아 외친 언어가 세상의 이치를 바꾸자 언어는 주문이 되어 힘을 발휘했다.
스태프의 끝에서 붉디붉은 화염들이 거미줄처럼 퍼져나가 버섯 인간들을 향해 포물선으로 붉은 궤적을 그리며 쏟아져 내렸다.
버섯 인간들의 집결지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됐다. 군데군데에서 버섯 굽는 냄새가 풍겨 나온다.
"우워어어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돌격한 핀의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알타프와 마릴이 그의 뒤를 따랐다. 바닥을 구르며 몸에 붙은 불을 꺼트리려는 버섯 인간의 머리통을 하나하나 철퇴로 뭉개거나, 검으로 베어냈다.
간혹 저항하며 덤벼드는 놈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눈먼 공격에 당할 정도로 어설픈 모험가가 아니었다.
"후… 다친 사람은 없죠? 숨만 좀 돌리고 나서 이다음에 사냥할 마물들을 찾아봅시다."
일행들은 핀을 향해 일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들이 전리품도 주지 않는 버섯 인간들을 굳이 사냥하려는 이유는 일정 수 이상의 마물을 잡아야만 다음 심계로 가는 입구가 등장하는, 어비스만의 특수한 구조 때문이다.
짧은 휴식을 취한 쌍둥이 자매와 두 남자는 다음 사냥감을 찾기 위한 탐색을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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