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쌍둥이와 던전 (5)
* * *
어비스 입구 앞을 포위하듯이 모여있는 모험가들과 로덴은 원의 한가운데에 쭈그려 앉아 있는 남자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핫! 이게 숨겨진 방을 찾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겠다니까."
발치 앞에 주먹만 한 상자를 내려놓은 남자가 옆면에 딸려있는 T자 모양의 손잡이를 여러 번 돌린 다음에 손을 떼자, 닫혀있던 상자가 입을 쩍 벌렸다.
"안은 텅 비어있는 거 같은데… 마커스, 이게 아티팩트라고?"
"보면 알아."
반대로 돌아가던 손잡이의 움직임이 멈추는 것과 동시에 상자의 뚜껑도 다시 닫혀버렸다.
그것을 회수한 마커스가 뚜껑 부분을 살살 건드리자 상자가 다시 입을 열더니, 안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안은 텅 비어있는 거 같은데… 마커스. 이게 아티팩트라고?
보면 알아.
상자에서 나온 목소리는 조금 전에 두 모험가가 나누었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목소리였다.
"에라이 등신아, 그리 호들갑을 떨길래 특급이라도 발견했나 했더니만 이런 건 그냥 3급 아티팩트잖아."
"…."
옆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로덴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상자의 정보를 쭉 읽어본다.
[소리를 기억하는 상자 : 어떤 종류의 소리든 상관없이 담아낼 수 있는 마법과 기술이 깃든 상자. 손잡이를 오래 돌릴수록 소리를 길게 저장할 수 있다(최대 3분)]
하긴, C랭크에서 발견되는 아티팩트는 보스한테서 얻는 거면 몰라도 비밀방에서 얻는 건 대체로 이런 느낌이었지.
어비스에서 발견되는 아티팩트라고 해서 무조건 보물 취급받을 정도로 귀한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지금 보고 있는 상자처럼 실용성이 떨어지거나 장식품 혹은 연구용으로만 취급할 수 있는 물건의 경우에는 가장 낮은 등급인 3급 아티팩트로 취급받는다.
"크흐흐, 엄연히 아티팩트를 발견한 만큼 너네들 앞에서 큰소리 좀 쳐보고 싶었거든. 그리고 씨이발~ 비록 3급이지만 이것만 팔아도 은화 몇십 개는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새끼… 그건 좀 부럽긴 하네."
아무리 3급이라도 엄연히 아티팩트인 만큼 제법 높은 가격에 팔리는 덕에 모험가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건 매한가지긴 하다.
서로 툭툭 건드리며 떠드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어비스를 지키고 있던 모험가 일행이랑 조금 전에 막 밖으로 나온 마커스 일행은 구면인 듯했다.
"아! 내 정신 좀 봐. 떠들게 아니라 불 먼저 피워야지."
마커스와 떠들고 있던, 리더 격으로 보이는 모험가는 사전에 미리 구축해둔 간이 봉화대로 부랴부랴 다가가 불을 피웠다.
화르륵
희뿌연 연기가 울창한 나무 사이를 지나가며 하늘 높이 떠오른다. 이것은 모험가 한 팀이 어비스에서 빠져나왔으니, 도시에서 대기 중인 다음 팀을 내보내라는 일종의 신호다.
불을 피우고 돌아온 모험가는 마침 잘 됐다는 표정으로 아직 자리에 남아있는 로덴을 가리켰다.
"여기 호기심 많은 연금술사 아재가 어비스를 좀 구경하러 나왔다는데 혹시 모르니까 너네가 돌아가는 길에 모셔다 줘. 평소에 이 양반한테 신세 많이 지고 있잖아."
"하도 자연스럽게 있어서 여태껏 몰랐네. 그러지 뭐, 저 사람한테 뭔 일이 생기면 우리도 많이 곤란하고…."
길드에서 들여오는 것보다 효과도 좋고, 가격도 싼 포션을 꾸준히 판매하고 있어서 그런지 로덴의 평판은 이 주변에서 활동하는 모험가들 사이에서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같이 갑시다. 로덴 선생. 도시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지."
"신세 좀 지겠습니다."
살다 보니 먼 후배들한테 호위도 다 받아보는군.
그렇게 생각하던 로덴은 마커스 일행과 같이 도심지 구역으로 돌아가게 됐다.
"…저기, 로덴 선생. 호위하는 대신이라긴 좀 그렇지만 우리가 부탁할게 좀 있는데…."
"뭐죠?"
숲 속을 가로지르며 나아가던 중, 마커스를 포함한 일행이 로덴에게 조심스럽게 건넨 '부탁'에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5일이라는 시간은 쏜살 같이 지나갔다.
이날도 어김없이 로덴의 가게에 방문한 쌍둥이 자매는 상당히 많은 양의 포션들을 계산대 위에 올려놨다.
"내일 어비스로 진입하는 걸 감안하더라도 제법 많이 담았군. 동료들의 몫까지 같이 사 오기로 했나 보지?"
"응. 이번 원정에서 곧장 심계 2층까지 내려가 보고서, 상황에 따라 3층까지도 내려가 보자고 미리 정했거든."
"어비스를 갔다 온 다른 모험가들에게 들은 정보도 쌓여 있어서 저희들이면 3층까지는 어떻게든 되겠더라고요."
"3층까지라…."
자신만만하게 대답한 쌍둥이 자매가 꺼내 든 은화 주머니를 챙긴 로덴은 고개를 들어 올려 정보기능을 활성화 한 뒤…
[이름 : 메림]
[종족 : 인간]
[직업 : 마법사, 모험가]
[기능 : 마법 LV4, 교육 LV2]
[레벨 : 24 / 64]
[나이 : 23]
……
……
언니인 메림의 정보창과,
[이름 : 마릴]
[종족 : 인간]
[직업 : 방패 전사, 모험가]
[기능 : 검 전투 LV2, 방패 LV2, 대장장이 LV4]
[레벨 : 25/ 48]
[나이 : 23]
……
……
동생인 마릴의 정보창을 순서대로 쭉 훑어봤다. 한 달 전에 확인했을 때와 비교하면 각각 1 레벨씩 올라간 상태다.
전에도 생각한 거지만, 둘 다 재능은 충분히 있군. 특히 메림의 잠재력은 금 등급까지도 노릴 수 있을 정도야.
보통 인간의 레벨 한계치가 평균적으로 30 정도라는 부분을 생각해본다면 이 쌍둥이 자매는 확실히 '우수한' 모험가다.
정보창을 비활성화한 로덴은 계산대 아래에 미리 준비해둔 포션병을 내밀어줬다.
"중급 포션이다. 지난번에 받은 애플 헤드에 대한 답례로 특별히 주는 거야."
"고마워~! 로덴 오빵!"
"가, 감사히 받겠습니다. 로덴 씨."
사양 따위 하지 않고, 일말의 고민 없이 포션을 넙죽 받는 쌍둥이 자매의 모습에 로덴은 쓰게 웃었다.
"한번 정도는 받을 수 없다고 사양하는 걸 상상했는데, 과연 모험가 답네."
"후후! 모험가 하고 가식은 가장 거리가 먼 단어라고 아저씨."
"그러고 보면… 언니들은 왜 모험가가 되기로 한 거예요?"
목소리를 낸 사람은 구석자리에서 한참 책을 읽고 있던 록시아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로덴도 상당히 궁금하긴 했다.
"으음~ 모험가가 되기로 한 계기라… 아무래도 그거밖에 없지?"
"응. 우리 둘 다 그 책을 읽고서 모험가를 동경하게 됐잖아. 아직도 갖고 있는걸."
잠깐만 기다려 달라며 배낭을 뒤적거린 마릴은 한 권의 낡은 책을 꺼내 들었다.
"……?!"
로덴은 그 책의 표지를 보자마자 몸을 흠칫거렸다.
[검은 머리 용사와 금발의 요정 기사]
"워낙 유명한 책이라서 로덴 씨도 잘 아시겠지만 마왕을 무찔렀다는 전설적인 용사랑 그의 연인이라는 요정 기사의 모험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에요."
"일게 모험가에서 시작한 이국의 전사가 왕에게도 인정받고, 쭉쭉빵빵한 애인도 사귀고, 끝내는 마왕과 대적할 수 있는 용사가 됐다는, 서민 출세의 상징이지."
"여행 중에 만난 동료들과 용사 본인의 생명을 대가로 마왕을 무찔렀다는 결말은 많이 슬펐지만요…."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로덴은 속으로 무진장 화끈거렸다. 지금 듣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그의 이야기였고, 결말 부분은 새빨간 거짓말이었기에 당연했다.
그런 마음을 알리 없는 메림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겨냈다.
"그러고 보니 그 용사는 짧은 활동 시기에 어비스가 출현한 곳만 귀신같이 찾아내서 공식적으로 재패한 어비스만 무려 7개라고 하더라? 그것 때문에 칠색의 패왕이라는 이명도 붙었고."
으어어어… 그만해….
창피하기 짝이 없는 옛날 별명까지 언급되자 더 이상 버틸 수 없던 로덴은 서둘러서 화제를 바꾸기 위해 아무거나 생각나는 대로 내뱉었다.
"크흠! 흠! 너, 너네는 나중에 모험가 생활이 끝나고 나서는 뭘 하고 싶지?"
"나중에…?"
로덴의 의도는 통했는지 쥐어 잡고 있던 스태프로 바닥을 콕콕찍어대던 메림은 눈을 감고 미래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뭐, 나중에는 우리도 로덴 아저씨처럼 여관이든 잡화점이든 근사한 건물로 지어서 떵떵거리고 살아야지. 우리 같은 초절정 미녀 쌍둥이 자매가 운영하는 가게라면 장사도 존나 잘 될 거야."
"메림…! 초절정은 또 뭐야…."
뒤에 붙은 미녀 쌍둥이는 별 말 안하는군.
당당하게 가슴을 피고 있는 메림과 달리 그녀의 옆에서 짧게 중얼거리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마릴은 상당히 창피한가 보다.
"너는 본인 입으로 그런 말을 하면 부끄럽지도 않냐."
"저언~혀. 사실을 말했을 뿐이거든?"
로덴도 일단 딴지를 걸긴 했지만 미녀 쌍둥이라는 말 자체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긴 했다.
오렌지색의 단발과 포니테일이라는 머리 모양의 차이점을 제외하면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닮은 얼굴의 쌍둥이 자매.
영롱한 녹빛을 머금은 눈동자와 갸름한 얼굴 라인의 절묘한 조합덕에 활동하고 있는 모험가 길드에서 상당히 인기 있는 편이다.
두 사람 모두 노출이 적은 로브와 레더 아머를 착용하고 있지만 성숙하게 자란 여성 특유의 들어갈 데는 들어가고 나올 때는 나온 몸매까지는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마릴에게 다가간 록시아는 그녀를, 정확히는 그녀가 들고 있는 책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혹시 이 책이 읽고 싶니?"
시선을 느낀 마릴이 그리 묻자 록시아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마릴은 잠시 고민하다가도 부드럽게 웃으며 자세를 낮춰서 록시아에게 책을 건네줬다.
"록시아는 착한 아이니까 어비스에 갔다 오는 동안 빌려줄게. 언니한테도 정말 소중한 책인 만큼 록시아도 소중히 읽어주렴."
"네! 언니."
…이후로도 한참을 떠들던 쌍둥이 자매는 평소처럼 손을 흔들거리면서 포션 가게에서 떠나갔다.
"다음에 또 올게, 책 좀 잘 보관하고 있어줘!!"
"두 분 모두 무사히 돌아오세요!!!"
여전히 로덴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말없이 배웅했고, 록시아는 마릴에게 받은 낡은 책을 양손으로 꼭 쥔 채 최대한 큰 목소리로 작별인사를 건넸다.
쌍둥이의 뒷모습이 작은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 때쯤, 가게에 점차 가까워지는 무리가 있었다.
언제 오나 했는데 이제야 오는군.
"후우우…! 로덴 선생! 전에 부탁한 건 준비하셨나?"
"예. 인원수에 맞춰서 따로 보관하고 있으니 바로 갖다 드리죠."
일전에 로덴이 개인적인 부탁을 받았던 마커스 일행이다. 보아하니 쌍둥이 자매와 엇갈린 모양.
"록시아, 오늘은 이 사람들로 끝이니까 너는 먼저 지하 쪽으로 가서 작업 좀 하고 있으렴."
"네. 삼촌."
록시아가 가게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자 로덴은 진열대의 숨겨진 공간을 열어서 분홍색의 액체가 들어 있는 병 네 개를 꺼내 들었다.
"오오오! 그게 바로… 그 포션이군요. 로덴 선생!"
"원래는 이러면 안돼는데, 이번에만 따로 빼둔 겁니다. 한 개당 은화 한 닢이에요."
적지 않은 가격이었지만 마커스 일행은 흔쾌히 은화를 지불했다. 평소에 매물이 없어서 사기 힘든 이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니까.
"으흐흐흐, 오늘 밤은 마음껏 즐겨야겠군! 정말 고맙구먼 로덴 선생!"
로덴에게 허리를 푹 숙이고 있는 마커스 일행이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의 정체는 다름아닌 피임 포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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