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쌍둥이와 던전 (3)
* * *
조금 전까지 그렇게나 격렬하게 울렸던 것이 사실은 거짓말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지진은 완전히 멈추게 됐다.
"좀 괜찮아?"
"네… 계속 매달려 있어서 죄송해요. 주인님."
지진이 울리던 동안 로덴한테 꼭 매달려있던 록시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할게 뭐가 있어. 너 정도의 나이에서 이런 일을 겪으면 무서워하는 게 정상이야.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록시아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자리에서 일어난 로덴은 방에서 나와 산산조각 나 버린 접시들을 내려다봤다.
…산지 얼마 안 된 접시들이었는데. 다시 사야겠어.
"깨진 물건은 내가 치울 테니까 너는 넘어진 물건들을 세우거나, 한쪽에 모아 주렴. 혹시라도 깨진 조각을 밟지 않도록 조심해서 걸어가고."
"네."
이른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게 된 두 사람은 각자의 방과 거실을 순서대로 정리한 뒤, 곧장 지하로 내려갔다.
"여기도 영 엉망이네."
지하 작업장은 위쪽보다 훨씬 더 엉망이었다.
작업대 위에 놔뒀던 대부분의 비커와 유리병들이 깨져버린 것은 물론이고, 로덴이 볼 때마다 입술을 씰룩거릴 정도로 아끼던 자동 배합기도 처참하게 산산조각 나있었다.
"으아아아…, 주인님이 그렇게나 애지중지 하시던 자동 배합기가…."
로덴과 같이 저 물건을 구경하게 될 때마다 귀에 피딱지가 붙을 정도의 자랑질(매번 약 30분가량)을 들어야만 했던 록시아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심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주인을 올려다봤다.
"어지간하면 청소 정도는 직접 하기로 결심했지만… 어쩔 수 없지. 록시아, 지금부터 내가 재밌는 걸 보여줄게."
"재밌는 거요?"
작업장을 쓱 둘러보고서 뒷머리를 긁적거린 로덴은 인벤토리를 뒤적거리더니, 윗부분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는 기묘한 모래시계를 꺼냈다.
"후우우."
심호흡하며 쭈그려 앉은 로덴이 모래시계를 향해 상당히 많은 양의 마나를 집중시킨다. 텅 비어있던 모래시계에서 푸른색의 알갱이가 만들어졌다.
가느다란 관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간 알갱이는 푸른 안개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진 유리 파편과 톱니바퀴를 감쌌다.
뒤이어 펼쳐지는 기적적인 현상에 록시아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물건들이 다시 원래대로…."
주변에 널브러진 비커와 유리병의 파편들이 따닥따닥 달라붙으면서 작업대 위로 깔끔하게 정렬됐다.
"제법 신기하지?"
볼 때마다 역재생을 보는 느낌이라서 질리지 않는다니까.
이어서 산산조각 난 자동 배합기의 톱니바퀴 장치가 허공에서 맞물리면서 재조립됐고, 바닥에 쏟아져 있던 액체들이 배합기 안의 유리 막대 안에 다시 담겼다.
치이익 칙!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소처럼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 자동 배합기는 안에 들어있는 액체들을 이리저리 뒤섞는다. 저 액체는 다음날 아침이 되면 체력 포션의 원액이 될 것이다.
"여기는 다 됐고, 이제 올라가서… 읏!?"
모래시계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로덴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도 휘청거렸다.
"주, 주인님. 괜찮으세요?"
"괜찮아, 괜찮아. 살짝 미끄러진 거야. 가게 구역으로 가자."
오랜만에 써서 그런지 좀 어지럽네. 이 물건은 확실히 편리하긴 한데, 연비가 너무 안 좋단 말이지….
불행 중 다행히도 가게 구역 쪽은 진열장 안에 전시된 포션들이 이리저리 쓰러져 있을 뿐, 깨지거나 금이 간 물건은 딱히 없었다.
"진열장을 튼튼하게 만들어둬서 다행이야. 이것만 정렬하고서 끝내자고."
고개를 끄덕거린 록시아는 로덴의 반대편 자리에서 포션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다가도 주인의 모습을 연신 흘끔거린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혹시 주인님은 위대한 마법사이신가요?"
진열대를 거의 다 정리할 때쯤, 록시아는 끝내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그런 질문을 꺼냈다.
"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 아이가 자신을 마법사라고 오해하는 이유 정도는 대충 짐작하고 있던 로덴이었지만, 그는 굳이 이유를 물어본다.
"그야… 제 모습을 인간으로 보이게 해주시기도 했고, 조금 전에 그렇게나 엉망이었던 작업실도 순식간에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셨잖아요."
록시아는 지금까지 주인이 보여준 그 행동들은 마법 말고는 설명하기 힘들다는 말을 덧붙였다.
"뭐, 일단 네가 봤던 게 마법이 맞긴 하지."
세상의 상식 중 하나를 알려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로덴은 설명을 해주기에 앞서, 록시아랑 같이 손님용 테이블에 앉았다.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로덴은 록시아에게 반지를 꺼내 달라고 말했다.
주인의 지시에 따라 록시아는 언제나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검은 반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고, 로덴은 조금 전에 사용했던 모래시계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록시아는 아티팩트가 뭔지 알아?"
"아티팩트…? 잘 모르겠네요."
이 아이가 자랐던 환경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려나.
"이계의 기술력이나 마법, 혹은 둘 다 간직하고 있는 귀한 보물을 뜻하고 있어. 여기 있는 반지랑 모래시계가 바로 그 보물이지. 쉽게 말하자면 나는 마법을 사용한 게 아니라 아티팩트에 담긴 마법을 사용한 것뿐… 이제 의문은 좀 풀렸어?"
"네…."
"이런 아티팩트에 깃들어진 마법을 발동시키는 방법은 마나를…."
로덴은 설명을 더 이어가려 했지만 록시아의 눈이 점차 풀리면서 고개를 꾸벅거리는 모습을 보고 입을 닫았다.
아이고, 내가 새벽부터 애를 너무 오래 붙잡았었네. 간단히 씻겨주고 재워야겠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쯤 눈이 감겨있는 록시아가 손과 발을 씻을 수 있게끔 도운 다음에야 방으로 데려다줬다.
* * *
바르멜라 영지의 거리는 새벽에 난데없이 발생한 굉음과 지진의 영향으로 그 여느 때보다 특히 소란스러웠다.
박살나버린 집안의 물건들을 치우느라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과, 어디 망가진 장비나 없어진 물건은 없는지. 배낭을 뒤적거리는 모험가들이 눈에 밟힌다.
그중에는 쾡한 눈을 한 채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 쌍둥이 자매도 포함되어 있었다.
"흐아암~! 졸려… 새벽부터 시작해서 난리도 아니네. 잘만 자고 있다가 이게 무슨 봉변이야?"
눈을 비비적거리고 있는 메림은 주변에서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크게 하품하면서 배낭을 뒤적거렸다.
"일단 내 짐은 별 문제없는데, 마릴은 어때?"
"음, 이쪽도 크게 문제는… 아, 포션이 하나 깨져있어."
"아~ 어제 마련한 물건인데, 아깝게 시리…."
배낭 안에서 깨져버린 체력 포션을 조심스럽게 치워낸 쌍둥이는 한숨을 푹 쉬면서도 그 이외의 물품은 멀쩡하다는 것을 위안 삼았고, 자연스럽게 로덴과 록시아의 얘기가 튀어나왔다.
"그러고 보면 로덴 아저씨네 가게도 난장판이겠다. 두 사람은 괜찮으려나? 특히 록시아가 걱정이네."
"로덴 씨가 그 애랑 같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지켜줬을 테니까 괜찮을 거야."
"하긴. 그 아저씨… 제 딴에는 티 안 낸다고 애쓰지만 록시아를 바라보는 눈빛이 완전히 딸바보의 그거라니까."
가게를 방문할 때마다 로덴이 록시아를 대하는 평소의 모습을 떠올리며 키득 거린 쌍둥이 자매는 어느새인가 그녀들의 일터, 모험가 길드에 도착했다.
"오늘은 좋은 일거리가 좀 있으면 좋겠는데."
발을 들이자마자 여기저기에 흠집이 새겨져 있는 낡아빠진 벽과 테이블, 수많은 방문객에 의해 바닥에 흙먼지가 자욱이 깔린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평소에도 깔끔하다고는 표현할 수 없는 모험가 길드. 특히 오늘은 한층 더 했다. 여기저기서 모험가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대부분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쓸데없는 헛소리였지만, 옆자리에서 새벽의 기현상과 관련된 이야기가 들려오자 쌍둥이 자매는 귀를 기울였다.
그거 들었나? 새벽에 일어난 지진은 어비스가 출현할 때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네.
어비스…? 그게 진짜야?!
지금 다들 그걸 찾는다고 난리도 아니라네. 우리도 빨리 쓸만한 녀석들을 모아서 입구를 찾아보자고.
이야기를 엿들은 자매는 서로 눈을 마주쳐 고개를 끄덕이고, 모험가들이 옹기종기 몰려있는 게시판 구역으로 달려갔다.
[어비스 조사 파티원 모집]
[강철 등급 이상 호위 인원 구합니다]
[어비스 조사할 인원을 모집]
[조건 없이 짐꾼 일당 대동화 3개로 영입]
…
…
게시판을 쓱 훑어본 메림은 삐뚤게 쓰고 있던 고깔모자를 고쳐 쓰고서는 드물게 진지한 표정으로 동생을 바라봤다.
"…절반 이상이 어비스 조사에 대한 모집글이야. 마냥 헛소리는 아닌 거 같네. 마릴, 우리도 준비하자."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그렇긴 한데, 두 번 다시없는 기회잖아. 전에 같이 일했던 그 두 사람을 찾아보자고. 걔들도 분명 파티원들을 모으고 있을 거야."
마릴은 언니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어렸을 때 책에서 읽었던 어비스에 관한 정보를 떠올린다.
이계와 이어지는 균열, 어비스.
아무런 조건도,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출현하다가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미지의 공간이다.
미지의 공간인 만큼, 그 안을 조사하는 것은 크나큰 위험이 따르지만 그런 위험을 충분히 감수하고도 남을 만큼의 막대한 보상을 얻을 수 있다.
다른 세상의 지식이 담긴 기록이라던가, 귀중한 생물체, 희귀한 금속, 골동품 등등 하나하나 나열하면 끝이 없지만…
모험가들이 위험은 물론 죽음마저 무릅쓰고 어비스를 조사하는 이유를 굳이 꼽자면 그것은 틀림없이 어비스에서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아티팩트의 존재다.
"마릴~! 찾았어! 이쪽이야, 이쪽!"
마릴이 어비스에 관한 생각에 푹 빠져있던 사이, 어느새인가 함께 움직일 파티원들을 찾아낸 메림이 동생을 향해 손을 흔들거렸다.
"어? 어, 잠깐만 금방 갈게."
괜찮아… 이번에도 언니랑 함께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언니가 마법으로 적들을 무찌르고, 내가 검과 방패로 언니를 지키고…. 지금까지도 늘 그래 왔잖아. 이번에도 조심하면 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릴은 어비스에 관해서 왠지 모를 불길한 느낌을 떨쳐내지 못한 채, 언니와 동료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