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20골드짜리 마왕 (2)
* * *
"11골드!!"
시간이 갈수록 쭉쭉 올라가던 마족 소녀의 몸값은 10골드를 넘긴 시점에서 조금씩 정체되다가도, 맨 구석자리에 있던 뚱땡이가 11골드를 외쳤다.
"11골드! 11골드 나왔습니다!! 이 마족을 원하는 신사분은 더 없으십니까?"
경매장 내부에 처음으로 찾아온 침묵. 주변을 둘러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은 사회자가 능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 가장 중요한 말을 빼먹었군요! 마법으로 확인한 결과, 이 여자아이의 몸은 아직 남자를 전혀 모르는 순결한 몸이랍니다. 쉽게 말해서 처녀죠."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마족 소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더욱더 끈적해지고, 뜨거운 콧김을 내뿜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온다.
11골드 50실버!
12골드!!
12골드 40실버!!
…저 새끼들은 전생에 유니콘이었나?
불쾌하기 짝이 없는 광경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 로덴은 조금 전에 확인했던 정보를 떠올리며 마족 소녀의 모습을 다시 살펴봤다.
마족의 특징성을 제외하고 보자면…짙은 보라색 머리카락, 뚜렷한 이목구비와 갸름한 얼굴의 조화는 어린 나이임에도 벌써 미인의 상이 엿보인다.
미형의 얼굴이라는 것 이외에 무언가 특이한 것은 없는지 살펴보던 중, 그는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
아니, 마주쳤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마족 소녀의 눈은 공허하게 텅 비어있었다.
마족 소녀는 그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것으로 눈 앞에 펼쳐진 지옥도에서부터 도피하고 있을 뿐. 초점이 없는 그녀의 눈에는 슬픔도 후회도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로덴이 마족 소녀를 조용히 관찰하고 있는 사이에도 몸값은 계속 오르고 있고, 그녀의 옆에 있는 사회자의 입꼬리도 나란히 올라간다.
진작부터 경매를 포기한 듯 상대적으로 얌전해 보이는 몇몇은 소녀의 허벅지나 엉덩이, 가슴팍을 흘겨보며 눈으로만 즐기고 있기 바빴고, 점차 뜨거워지는 광란의 열기에 빠진 몇몇은 발정 난 개새끼처럼 헉헉거리기 바빴다.
"15골드!!!!!"
이것으로 끝내겠다고 선언하듯이 크게 외친 사람은 조금 전에 11골드를 외쳤던 뚱땡이다.
"………."
천막 안에 두 번째로 찾아온 침묵. 낙찰을 확신한 뚱땡이는 승자의 미소를 지었지만,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20골드."
때마침 주변이 잠잠했던 덕에 나직하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덴의 목소리는 천막 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
"이…, 이, 이, 이십!!"
세상에! 20골드가 나왔어!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다른 지방에서 여행 온 귀족 아냐?
얼굴 보여주기 싫은 귀족이 내보낸 대리인이겠지.
이번에는 침묵이 아닌, 로덴의 정체에 관해서 속닥거리는 소리로 천막 내부가 시끄러워졌다.
"2, 20골드가 나왔습니다만… 호, 혹시 더 하실 분 없으십니까?"
사회자를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맨 구석자리의 뚱땡이에게로 향했다. 사실상 그에게 물어본 것이나 다름없다.
"끄으으윽…!!"
하지만 뚱땡이는 몹시 분한 표정으로 씩씩거리기만 할 뿐, 차마 손을 들지는 못했다.
형식상으로나마 10에서부터 카운트를 센 사회자는 땅·땅·땅! 거세게 나무망치를 두들기며 소녀가 낙찰되었음을 알렸다.
"그, 그러면 이번 경매는 이걸로 끝입니다. 저희 라우즈 상회는 여러분들이 만족하실만한 상품들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이윽고 천막 안을 가득히 채우던 사람들이 서서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난 뒤, 사회자와 마족 소녀가 있는 곳으로 저벅저벅 걸어간 로덴은 진작에 인벤토리 속에서 꺼내둔 금화 주머니를 사회자에게 건네줬다.
잘만하면 수도에 있는 작은 건물조차 살 수 있을 만한 거금을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건네주는 로덴의 모습이 영 미심쩍었던 사회자는 감별사를 불러서 진짜 금화가 맞는지 확인하게 했고, 결과는 금방 나왔다.
"전부 문제없습니다."
"아, 아하하…, 기분 나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나으리. 금액이 금액이다 보니 저희도 신중할 수 밖에 없어서요."
로덴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고 싶었는지, 사회자는 손의 지문이 없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손바닥을 비비적 거린다.
"딱히 신경 안 씁니다. 그보다도…."
"예, 예! 물론이죠."
내내 굽신거린 사회자가 품 안에 있는 열쇠로 마족 소녀의 족쇄를 풀어주면서 로덴 앞으로 끌고 나왔고, 그녀는 자신의 생사여탈권이 누구에게 넘어갔는지 잘 이해한 듯 로덴을 향해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인사를 건네왔다.
"마, 마나서 바갑스니다… 즈, 주인님. 저…, 록시아… 입니다."
누가 들어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발음을 조합해서 간신히 문장을 완성한 록시아.
그 모습이 썩 만족스러웠는지 실실 웃은 사회자는 로덴의 옆으로 바짝 다가와 속삭인다.
"…저희가 어찌어찌 교육은 해놔서 말하는 건 다소 어눌하지만, 명령은 그럭저럭 잘 알아듣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밤의 일에 대한 지식도 미리 주입해뒀으니…, 오늘 밤에라도 당장 원하는 데로 즐기시면 됩니다."
여자 노예를 구매하는 목적은 대부분 뻔하다. 설령 처녀인 노예라 할지라도 손님에게 팔기 전에 기본적인 성교육과 훈련을 시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참 쓸데없는 짓을 다 한다고 생각한 로덴이지만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눈치를 살살 보던 사회자는 록시아가 걸치고 있는 넝마를 살짝 잡아당겨서 그녀의 가슴팍이 노출되도록 했고, 거기에 새겨진 문신이 드러났다.
그것은 단순한 문신이 아닌, 노예가 주인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게 만드는 복종의 각인이다.
"잠시 여기에 손을…."
각인을 향해 손을 올리자, 로덴의 마나를 인식한 각인은 푸른 빛을 내뿜으며 깜빡거리다가도 문신이 몸 안에 스며들듯이 사라졌다.
"그러면 이만."
"아, 예! 다음번에도 저희 라우즈 상회를 찾아주신다면 극진히 모시겠습니다!!"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어떻게든 상대방의 환심을 사려는 사회자의 모습을 본체만체 한 로덴은 록시아의 손을 이끌고 천막 밖으로 빠져나왔다.
천막 안에 있던 사이에 해가 완전히 저물었는지 하늘은 어둡기만 하다. 드문드문 설치된 마광석 조명대와 밝게 빛나는 건물 내부만이 거리를 비춰주고 있다.
돌아다니는 사람의 거의 없는 어두운 거리를 한참 걷는 동안에 두 남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로덴의 경우에는 원체 수다랑은 거리가 먼 성격이라 조용했고, 록시아의 경우에는 로덴의 눈치를 살펴보느라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문득, 잡고 있던 소녀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로덴.
슬슬…추워질 시간이네. 이러다 감기에 걸릴라.
록시아가 입고 있는 넝마는 옷이라 칭하기 민망할 정도로 너덜너덜했기에 로덴은 고민할 것도 없이 입고 있던 겉옷을 벗고서 그녀에게 걸쳐줬다.
"…! 가, 감사하니다."
자신의 몸에 걸쳐진 겉옷을 본 록시아는 예상밖의 행동에 상당히 의아해하는 눈치였지만, 빠르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이후로 그녀는 로덴의 얼굴을 연신 힐끔거리면서도, 앞으로 모셔야 할 주인의 손을 꼭 잡으면서 따라갔다.
* * *
바르멜라의 외곽, 구석지면서도 높은 자리에 지어진 건물은 집이라기보다는 가게의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로덴과 록시아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딸랑딸랑! 문짝에 매달아 놓은 방울 소리와, 새집에서만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냄새가 두 남녀를 반겨줬다.
어두컴컴한 천장을 향해 손을 더듬거려서 줄을 잡아당기니, 천장에 설치해둔 마광석이 내부를 환하게 비추어낸다.
사흘 즈음 전에야 막 지어진 가게 내부는 계산대 역할을 하는 긴 탁자와 의자, 다양한 포션이 널려있는 진열대 이외에는 딱히 이렇다 할 만한 장식품 같은 건 없었다.
이 정도면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나만의 가게, 라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미소를 머금은 로덴은 여태껏 잡고 있던 록시아의 손을 놔줬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옷 거치대를 찾아낸 록시아는 그곳을 향해 쪼르르 걸어가 그녀가 걸치고 있던 겉옷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리고는 로덴의 발치 앞에서 넙죽 엎드렸다.
"미, 미천한…, 저르 구매해져서 감사…"
"인간의 언어는 영 불편한 거 같은데, 그냥 편한 쪽으로 얘기해라."
"?! 마족의 언어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까?"
로덴의 입에서 자기네 종족의 언어가 술술 나오자, 록시아는 깜짝 놀란 눈으로 조아렸던 머리를 치켜들며 그를 바라봤다.
"뭐, 그럭저럭. 여기서 떠들기는 좀 그러니 일단 내 방으로 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주인님."
두 사람은 가게의 안쪽에 있는 공간에서 맨 오른쪽에 위치한 방으로 들어갔다.
로덴의 방 또한 평범한 옷장과 침대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삭막한 풍경이다. 곧장 침대에 걸터앉은 그는 옆자리를 팡팡 두드려서 록시아가 옆으로 오게끔 유도했다.
그녀가 얌전히 앉자, 다시 한번 정보창을 펼친 로덴은 록시아의 정보를…, 정확히는 [마왕]이라 쓰여 있는 직업을 클릭해본다.
[마왕 : 가장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마족만이 전승받을 수 있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생명체의 정점. (미각성)]
노예가 돼버린 마왕이라니… 이건 뭐, 농담거리로도 못 쓰겠네.
마음속으로 실소하며 정보창을 닫은 로덴은 눈앞에 있는 마족 소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도대체 어떤 경위를 거치면 마왕의 재능을 타고난 마족이 인간한테 포획당했을지 상상도 되지 않지만, 일단 눈앞에 있는 소녀는 확실하게 마왕이 맞긴 하다.
그렇다면 인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훗날 마왕이 될 소녀를 제거해야 할까?
적어도 로덴이 내린 답은 '아니다'였다.
먼 미래에 록시아의 힘이 각성해서 인류를 위협하게 된다고 가정해도… 까놓고 말해서 그의 입장에서는 알 바 아니다.
과거에 목숨을 걸고 마왕을 토벌했던 이유는 대의를 위해서가 아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가능성에 매달린 것뿐.
더군다나 저번 회차에서는 마왕을 쓰러뜨리자마자 토사구팽 당한 경험도 있었기에 마왕의 부활이 도리어 기대될 정도다.
쓱, 하고 소녀의 가슴팍으로 시선을 옮긴 로덴은 그곳에 스며들었던 각인을 생각했다.
지금은 평범한 어린아이나 다름없는 록시아에게 있어 그 각인은 주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을 일체 불가능하게 하고, 명령에 무조건 적으로 복종 해야하는 절대적인 구속구다.
당장은 자신에게 위협이 될만한 요소는 전혀 없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로덴의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이해한 록시아는 각오를 굳힌 얼굴로 걸치고 있던 넝마를 헐벗는다.
비쩍 마른 팔과 다리, 간신히 여자라는 게 구분이 갈 정도로 솟아오른 가슴과 수줍게 앙다물고 있는 아랫입, 채찍질과 화상으로 인한 흉터가 드문드문 새겨져 있는 앙상한 몸이 드러났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된 록시아는 침대 위에서 넙죽 엎드리며 최대한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비록 처음이지만 주인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말문이 막혀버린 로덴은 잠시 눈을 감고 록시아에게 자신의 첫인상이 어떻게 비쳤을지 제 3자의 시점으로 냉정하게 생각해봤다.
14살짜리 꼬마한테 눈이 돌아가서 20골드를 꼬라박은 색골 로리콘 아저씨.
맙소사, 그게 나라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