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chapter 181. 막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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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무릎을 꿇고 손을 든다.
초등학교 때도 못 받아본 체벌이다.
그런데 그걸 수연이 앞에서 하고 있다.
수연이는 알몸에, 나도 알몸으로.
이 상황이 웃겨서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웃어요? 지금 웃음이 나와요?”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수연이 매섭게 쏘아붙인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손 똑바로 들어요. 키퍼잖아요. 그것도 못해요?”
나는 손을 귀 옆으로 바싹 붙였다.
“거 봐요. 말을 하면 잘 하잖아요.”
수연이 말투가 너무나 자연스럽다.
평소에 늘 저렇게 말하는 것처럼, 치고 들어오는 타이밍이 예술이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건가?
“그런데 이젠 말을 안 해도 잘 해야 하는 거 알죠?”
“네, 잘하겠습니다.”
“대답만 잘하면 뭐해. 진짜 잘 할 거였으면 그렇게 다리가 많지도 않았겠지.”
수연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녀의 얼굴에는 숨기지 못하는 미소가 걸려 있다.
말투는 매섭지만, 상황은 장난이고, 수연이도 그렇게 화난 거 같지는 않다.
진짜 화났으면 난 바로 섹스를 시도했을 것이다.
그게 제일 직빵이니까.
“아무튼 진짜 말 안 나오게 잘 해야 돼요. 말 나오는 순간 여긴 전쟁터야. 혈육 사이에 서로 싸울 거고, 케이라는 마법 쓰고, 엘레나님은... 오빠가 오히려 조심해야 할 걸요?”
“잘 알고 있습니다. 잘 하겠습니다, 천재 과학자님!”
그러니까 이건 상황극이다.
상황극인데, 수연이가 너무 찰지다.
나중에 저렇게 될까 봐 무섭다.
수연아, 제발, 연구만 아는 과학자로 남아주렴.
“천재는 무슨...”
아직은 연구만 아는 과학자인 모양이다.
내 칭찬에 수연이 볼이 빨개진다.
수연이는 확실히 칭찬에 약하다.
천재라는 소리는 이제 익숙해질 때도 안 됐나 싶은데... 뭐,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잘 이용해 먹자.
“아으...”
수연이가 자리에 앉으려다가 하복부를 짚으며 고통의 신음을 낸다.
“수연아? 많이 아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연이를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혔다.
하복부를 짚은 그녀의 손 위에 내 손을 겹쳤다.
확실히 내 성기가 크긴 했다.
수연이가 처음인 것도 있었고.
“...괜찮아요. 잠깐만 있으면 괜찮아진댔어요. 그리고 아픈 것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대요. 그게 오빠랑 하나가 됐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기쁘기도 하고.”
어쩜 이렇게 말을 잘 할까.
그런데 말은 말이고, 누구한테 좀 배운 게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드는데?
수연이가 이렇게 오글거리는 말을 잘 한다고?
“말 너무 예쁘다. 그런데 누가 가르쳐 준 거야?”
“나연 언...니가 아니라, 제가, 오빠? 지금 언제 일어난 거예요?”
“역시, 이런 오글거리는 멘트는 나연 누나지.”
처음 할 때 그렇게 튕기더니 속으로는 엄청 좋아했구나.
나중에 꼭 놀려야지.
“...언니가 말하지 말랬는데. 괜찮겠죠?”
“괜찮아, 모르는 척 할게.”
“알겠어요. 그보다 이제 무릎 안 꿇어요?”
“다시 꿇을까?”
“괜찮아요. 그보다 이렇게 손 대고 있는 게 좋아요. 아까 그건...”
“나연 누나가 준비해준 멘트구나.”
“정답이에요.”
수연이가 환하게 웃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를 보는 것은 건강에 너무 좋다.
나도 수연이 건강을 위해서 마주 웃었다.
“솔직히 저는 별 생각이 없어요. 남자랑 연애한다고 생각을 안 해봐서...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닌데, 그때는 연구하는 게 더 좋았어요. 그거 외엔 시간이 없었죠. 그런데 오빠를 만나서 이렇게 됐고, 지금은 그저 즐거워요. 독점욕이 있다는 말은 평생 들어본 적이 없어서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현재 상태에 거부감은 없어요. 오빠가 나를 좋아해주고, 찾아주기만 한다면요. 이렇게 아픈 걸 자주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쉽게 넘어가서 다행이다.
진짜 잘 해야지.
수연이가 다른 생각 안 들게.
“아프기만 한 거야? 그럼 안 되는데...”
“아픈 것만은 아니고...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말이.”
수연이가 얼굴을 붉히며 말을 돌린다.
좋긴 했던 모양이다.
내 경험상 이 정도 반응이면 다음에 생각날 텐데, 불만이 생기기 전에 꼭 한 번씩 풀어줘야 한다.
그런 사람이 지금 수연이 포함 다섯 명.
내 자지가 쉴 날이 없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불끈하고 일어나려는 자지는 쉴 생각이 하나도 없는 게 맞지만.
“...뭐예요? 또 하고 싶어요? 역시 아까 안 싸서 그런 거죠?”
“아니야, 얘는 그냥 시도 때도 없이 이러니까 무시해.”
“이렇게 늠름한 애를 어떻게 무시해요. 이제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성욕 제어를 통해 발기를 풀었다.
자지가 힘을 잃고 고개를 숙인다.
“앗... 귀여워졌다.”
풉.
늠름했다가 귀여웠다가.
그보다는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표현하는 수연이가 훨씬 귀엽다.
“그런데 누구한테 들은 거야?”
“모두한테 들었죠. 제일 먼저 찾아온 사람은 나연 언니예요.”
“오, 나연 누나가?”
“네, 언니가 와서 인사했어요. ‘선배님, 후배가 인사 박습니다.’ 하고. 얼마나 황당했는지 알아요?”
“후배가 인사... 푸하하하!”
빵 터졌다.
인사를 박는다니.
아까 오글거리는 멘트도 그렇고, 나연 누나 오늘 없는 데도 존재감 뭐야.
“중요한 건 한 적도 없는데 선배라니... 진짜 억울했단 말이에요.”
수연이에게 펠라를 받은 날, 케이라, 엘레나, 수장님께 얘기를 했었다.
그게 나연 누나에게 흘러가 수연이가 선배가 된 모양이다.
맞는 말이다.
정확히는 수연이가 선배다.
“억울했다는 건 그날 중요한 걸 하고 싶었다는 이야기야?”
“당연하죠. 그날 완전 준비 만만이었는데, 공부도 얼마나 했다고요. 그 연구실에서 했으면 더 많은 자료를 모을 수도 있었고. 여기는 솔직히 좀 부족해요.”
“...자료?”
“네, 자료. 그날 오빠의 기록은 다 남아 있어요. 어디를 자극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다 분석했죠. 저 진짜 펠라치오 잘 할 자신 있는데, 확실한 교보재로 연습했으니까.”
진짜 계획을 세웠을 줄이야.
반짝이는 눈을 보니 기대감이 모락모락 피어나긴 한다.
17살에 박사 학위를 처음 딴 후, 지금 박사 학위만 네 개인 사람이 연구한 펠라치오는 어떨까?
“우와... 너 진심이구나?”
“당연하죠. 오빠는 제 연구과제 중에 제일 우선 순위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다음에도 기대하세요. 오늘도 어느 정도 자료를 모았으니까, 다음에는 좀 다를 거예요.”
“...오늘도 자료를 모았다고?”
“네, 여기 연구실을 별로지만, 저도 이거...”
수연이가 눈꺼풀을 당겨서 내게 보여줬다.
이제 보니 렌즈가 있었다.
“내 거랑 같은 거야?”
“맞아요. 오늘 제가 본 모든 게 녹화되고 있죠.”
소름.
진짜 몰랐다.
그럴 거라고 생각도 못했으니까.
“보안은 걱정하지 마세요. 저니까요.”
“그런 걱정은 안 해. 그런데 그거 혹시 공유하는 거야?”
“필요하다면요? 그리고 공유는 오빠가 허락해야 하죠. 녹화도... 생각해보니까 녹화도 그러네요. 이게 진짜 연구가 아니니까.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죄송해요.”
나는 일어나서 사과하려는 수연이를 잡았다.
연구 자료 정도는 괜찮다.
다 나에게 잘해주려고 하는 거니까.
수연이가 섹스 비디오 같은 걸로 날 협박하지 않는 이상은.
“괜찮아, 괜찮아. 설마 그걸로 날 협박하려는 것만 아니면.”
“그런 일은 절대 없어요. 오빠가 절 버리더라도.”
수연이가 연구자라서 그런가, 말하는 게 확실히 조금 극단적이다.
실험 가설 세울 때처럼 예상된 결과를 전부 생각하는 느낌이랄까.
이런 부분은 케이라랑 점접이 있다.
“그런 일도 절대 없어.”
“믿어요. 그래서 공유는 안 되는 거죠?”
“잘 모르겠어. 해도 상관없을 것 같긴 한데... 먼저 나서서 주지는 마.”
“알겠어요. 아, 맞다. 나연 언니는 오빠 이세계 여행기도 공유 좀 해달라고 하던데 그건 괜찮아요?”
“그건 괜찮은... 게 아니라! 안 돼. 공유 안 돼! 앞으로 영상 공유 금지.”
생각해보니 공유하면 안 될 장면들이 너무 많다.
까밀라랑 대화하는 장면이라든가.
그건 보고서에도 올라가서는 안 되는 장면이다.
“너도 영상 분석 하지 마. 나랑 너랑 섹스 하는 거 분석하는 건 괜찮은데, 이세계 영상은 하지 마. 그냥 찍지도 말자.”
“네? 그건 왜요?”
“하지 말라면...”
‘하지 마’라고 하고 싶진 않았다.
진짜 궁금하다는 수연이 눈앞에서 거절을 얘기하는 게 쉽지는 않다.
솔직히 숨길 만한 이야기도 아니고.
안 그래도 험난한 길인데, 벌써 이것저것 가리면 우리 사이가 좋을 수가 없다.
“...너무 사생활이라서. 너도 다른 여자랑 하는 거 보고 싶지 않을 거 아니야?”
“사생활이기는 하네요. 그런데 그런 거였으면 전 오빠랑 하지도 않았을 건데요?”
논리적으로는 그게 맞다.
그런데 그걸 넘는 게 쉽지 않은 것도 맞고.
실제로 케이라와 엘레나는 아직도 서로의 섹스 장면을 보는 데 주저하고 있다.
하지만 수연이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그, 그렇지만 상대방 입장도 생각해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
“맞네요. 이게 사람과 사람 일이니까 제가 좀 생각을 못하는 게 있네요. 그럼 이렇게 해요.”
수연이는 렌즈를 켜고 끄는 걸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평소에는 켜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끌 용도로.
그리고 영상에 관해서는 수연이가 직접 다 검열하고, 내게 허락을 맡겠다고 했다.
영상을 안 찍기에는 아쉽다면서.
나도 동의했다.
내가 전부를 기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록한 것 중에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으니까.
“이제 된 거죠?”
“응. 이 정도면 된 거 같아.”
“다행이다. 오빠를 도울 수 있겠네요.”
“너는 존재만으로도 나를 도우는 거야.”
나는 수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연이가 기분 좋게 웃는 걸 보니 나도 좋다.
이세계에서의 일도 이렇게 웃는 걸로 끝났으면 좋겠는데.
이제 다시 요이아르로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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