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chapter 18. 크루스 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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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데구르르.
마차의 바퀴가 아주 부드럽게 굴러갔다.
충격 흡수 마법이 걸린 고급 마차다.
마차에 타고 있는 건 남자 둘, 여자 둘.
주로 이야기하는 건 내가 구해준 여자였다.
“(서쪽에서 오셨나 봐요. ‘융’이라는 이름이었죠?)”
그렇게 나는 ‘융’에서 온 사람이 됐다.
“(여긴 카탈루니아예요. 그 중에서도 헤이엑 백작령이죠.)”
카탈루니아, 헤이엑 백작령... 머릿속에 잘 넣어두자.
“(이건 융의 전통 복장인가요? 특이하게 생겼네요.)”
개인적으로 특수 제작한 거라고 말했다.
천과 가죽을 섞어서 방어력과 활동력을 동시에 챙겼다고 말하니 그녀가 환호했다.
“(대단해요! 어떻게 그렇게 참신한 생각을! 마법사는 다르시군요!)”
마법사 보다는 검사라고 불러달라고 말했다.
마법은 키퍼가 돼서 얻은 거고, 진짜는 검사니까.
“(맞다. 키퍼라고 하셨죠! 키퍼가 되셨다니, 정말로 축하드려요!)”
요이아르에도 키퍼는 있는 모양이다.
상세한 규모와 키퍼의 역사는 모르겠지만, 키퍼라고 둘러댈 수 있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이다.
“(저는 까밀라 크루스, 부족하지만 이 크루스 상단의 주인이랍니다. 지금은 상행을 마치고 헤이엑 백작령으로 돌아가는 길이에요.)”
내 눈을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돈도, 권력도, 사람도 가지고 있었다.
내게 반한 게 확실한 그녀는 지금 간도 쓸개도 모두 내줄 작정인 것처럼 내게 딱 붙어 있다.
솔직히 조금 부담스러웠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시녀와 남자가 아니면 나를 잡아먹힐 것 같은 느낌이다.
“(저는 다비드 게레로입니다. 저희 아가씨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군요.)”
삐까뻔쩍한 갑옷을 입고 있었던 남자.
아마도 이 상행의 책임자.
그는 말과 달리 내게 감사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는 나를 여전히 의심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따라 까밀라의 마차에 같이 올랐다.
원래는 말에 타고 상행을 지휘하는 것 같았는데, 갑옷도 벗고서 마차에 올랐다.
그리고는 나를 뚫어지라 쳐다본다.
조금의 의심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런데 아까는 왜 크루스님께서 홀로 계셨던 건가요? 여기 게레로님이 계셨다면 크루스님께서 위험할 일은 없었을 것 같은데요.”
이런 질문은 게레로에게 ‘너네 아가씨 안 지키고 뭐했냐?’라고 돌려 말하는 꼴이 되지만,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게, 이 상행의 규모는 내 상상 이상으로 컸다.
마차만 다섯 대에, 말은 12필, 짐꾼 30명에 전투원이 20명이었다.
습격한 오크는 20마리도 안 됐는데, 대체 까밀라가 왜 혼자서 오크에게 쫓기도 있었던 거지?
“(그건...)”
“(그건 제 잘못이에요. 모처럼 밖에 나왔는데, 마차에만 있는 게 너무 심심했거든요. 따로 볼 일도 있었고요.)”
따로 볼 일이란 건, 아마도 화장실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곁눈질로 살펴본 바, 마차 안에는 요강 같은 물건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왜?
시녀도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걸로 보면 시녀도 대동하지 않고 마차를 나간 거 같다.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다.
“(죄송해요. 다음부턴 조심할게요. 오크가 그렇게 무서운 줄은 처음 알았어요. 무작정 뛰었는데 마차랑 멀어져서... 정말 정민님 덕분이에요.)”
그럴 때는 일단 일행 쪽으로 뛰어야 하는 거 아닐까...?
“(아닙니다, 아가씨. 아가씨를 더 보필하지 못한 저의 잘못입니다. 앞으로는 더욱 더 아가씨 옆에 딱 붙어서 아가씨를 지키겠습니다.)”
“(고마워요, 다비드. 다비드 밖에 없네요.)”
까밀라가 감동 받은 눈으로 게레로를 바라본다.
게레로의 표정도 비슷하다.
뭔가 오래 지내고 싶진 않은 사람들이다.
저렇게 쉽게 감동하는 까밀라나,
까밀라에게 점수 따는 것만이 전부인 게 분명한 케레로나.
“(그보다 이젠 즐거운 이야기를 해요. 리님은 어디로 가시는 길인가요? 일단 저희 상단에서 대접하고 싶은데요.)”
“저는 세상을 여행 중입니다. 상단까지 동행하는 건 어렵지 않죠.”
“(정말요? 좋아요. 제가 생명의 은인에게 최고의 대접을 할 테니까 기대해 주세요.)”
방금 전의 감동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까밀라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내 성욕 레이더에 의하면, 그녀의 비부는 젖는 중이다.
냄새가 난다. 성욕의 냄새가.
인터넷에 한 때 젖어야 썸이라는 게시물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까밀라가 딱 그런 상태다.
그리고 게레로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노려보고 있다.
이건 그거다.
처음엔 나도 의심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의심이 아니라 연적이라고 생각하는 눈이다.
‘어서 빨리 아가씨에게서 떨어져!’
그는 눈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나?
나는 조금 질렸다.
까밀라는 예쁘지만, 지금까지는 예쁜 게 다고.
게레로의 쓸데없는 분노를 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당분간은 이용해 먹을 수밖에.
“기대가 되네요.”
난 애매하게 웃었다.
+++
헤이엑 백작령의 주도 헤이엑 성.
3일 만에 도착한 성은 지난 3일의 고생이 사라질 만큼 매력적이었다.
반듯한 돌로 만들어진 성벽, 물이 흐르는 해자, 오르락 내리락 하는 도개교까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 실제 살고 있으며, 지금도 사용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융에는 이런 곳이 없습니까? 헤이엑 성은 규모가 꽤 작은 편인데.)”
대놓고 디스하는 게레로.
지난 3일 얘 때문에 굉장히 피곤했다.
“(리님, 나중에 수도에 같이 놀러 갈래요? 카탈루니아 성은 정말로 크고 아름답거든요.)”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하며, 나와 연결시키려는 까밀라.
얘 때문에도 엄청나게 피곤했다.
그래도 카탈루니아 성은 어떨지 궁금하다.
자유민 천 명 정도 산다는 헤이엑 성이 저렇게 멋진데, 수도는 어떨지.
“(시간이 늦었습니다. 빨리 들어가시죠.)”
게레로가 우리를 다시 마차로 밀어 넣었다.
아직 해가 중천인데 뭐가 늦다는 건지.
잘 닦인 도로를 따라 성으로 향했다.
수확을 준비하는 밀밭 사이를 지나 성문으로 들어가니, 내성이 우릴 반겼다.
높이 솟아오른 첨탑이 멋진 내성이다.
성 중심부에는 어느 정도 상가 거리가 존재 했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장이 열리거나 하면 활성화 되는 걸까?
새로운 장소에 오니 여러 가지 궁금증이 마구 일었다.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곳에서도 게이트 내에서 광물을 채취하는지.
계급 사회의 분위기는 어떤지, 서민들은 뭘 먹고 사는지.
차차 알게 되지 않을까.
하나 확실한 건, 크루스 상단의 세가 적지 않다는 거다.
상단 행렬이 지나가자 사람들이 전부 길을 비켜서며 고개를 숙였다.
크루스 상단의 저택도 매우 컸다.
거의 내성 반만 한 지부에 자리한 3층짜리 저택이었다.
“(그럼 일단 여독을 풀고 만나기로 합시다.)”
“(저녁에 큰 파티가 있을 거니까, 꼭 참석하셔야 해요!)”
나는 2층 방에 배정받았다.
원룸 두 배 정도 되는 크기에, 원룸만 한 큰 침대가 있는 방이다.
디즈니 공주가 잘 법한 그런 큰 침대였다.
팡팡.
침대는 매우 푹신푹신했다.
잠은 잘 오지만 몸에는 안 좋을 것 같은 느낌?
짐을 풀고 있자니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들어오라는 신호를 주자 한 사람이 들어왔다.
빨간 머리에 녹색 눈을 한 남자.
청년보다는 소년의 느낌이 나는 남자가 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페르난도 루이즈입니다. 상단주님을 구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상단을 통해 준비하겠습니다.)”
문득 생각나는 건 목욕이었다.
오면서 까밀라가 저택에 가면 큰 욕탕에서 뜨거운 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3일 간의 야영을 하는 동안 쌓인 긴장감을 풀고 싶었다.
3일 동안 자는 게 자는 게 아니었다.
자는 동안 누가 나를 공격하면 안 되니까.
항상 반쯤 깨어 있는 상태로 누워 있었다.
“목욕탕에 가고 싶은데요.”
“(아, 역시.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목욕탕은 지하에 있었다.
매끄러운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곳으로, 탕 크기만 20평 정도 되는 거대한 규모였다.
상단주 집에 이런 게 있어도 될까 싶을 정도의 느낌이다.
뜨거운 물은 이미 가득 차 있어서, 탕은 증기로 가득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샤워는 이미 들어오기 전에 작은 욕탕에서 했고, 여기는 팬티 같은 느낌으로 수건만 두른 채 들어왔다.
탕에 바로 몸을 녹여도 된다는 이야기다.
스윽.
물의 온도는 딱 좋았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곳 관리가 어떻게 되는지 느껴졌다.
왜 까밀라가 그렇게 노래를 불렀는지도.
나는 몸을 담궜다.
욕탕 가장자리에 층계가 있어서 적당한 곳에 앉으면 가슴 아래까지 물에 잠기게 된다.
적당히 뜨끈한 물에 절로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후우...”
이런 목욕은 진짜 오랜만이었다.
지구에서 목욕탕에 마지막으로 간 거? 중학생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솔직히 샤워나 하지, 목욕탕에 갈 일이 잘 없으니까.
그런데 이세계에 와서 처음 하는 게 목욕이라니, 참 이상한 일이었다.
더 이상한 일은 바로 다음에 일어났다.
“(리님! 역시 리님께서도 목욕을 좋아하시는 군요!)”
하이톤의 목소리.
가벼운 발걸음.
증기 너머에서 들어오고 있는 게 누군지는 분명했다.
까밀라였다.
“(상행이 끝나면 목욕이죠. 이게 진리라니까요.)”
나는 놀라 주변을 돌아봤지만, 마땅히 피할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무심코 가슴과 분신을 가리며 탕 속으로 몸을 더 집어넣었다.
이제 목만 밖으로 나와 있는 상태다.
나와 다르게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당당히 들어와 탕에 몸을 담궜다.
그녀는 나처럼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있어서 알몸은 아니었다.
알몸은 아니었지만, 물방울이 맺혀 있는 윗가슴이 다 보이는데 알몸이 아닌 게 무슨 상관?
모아서 올린 머리 때문에 가녀린 목선이 다 보이는데 알몸이 아니라고 넘어갈 수 있겠냐고.
성욕 제어가 아니었으면 내 물건은 발딱 섰을 거다.
“(어때요? 제가 특별히 공을 들인 장소예요. 좋죠?)”
“네, 아... 좋네요.”
“(다행이다. 리님이 마음에 들어하시니까 저도 기뻐요.)”
까밀라는 점점 내게 다가왔다.
해맑게 웃는 그녀의 표정에서는 그 어떤 것도 읽을 수 없었지만, 그녀의 몸짓이 말하는 바는 명확해 보였다.
둘 밖에 없는 목욕탕.
수건 한 장.
가까워지는 거리.
이건 어쩔 수 없는 건가?
‘정민아, 엔조이는 얼마든지 해도 돼. 그래야 너도 다른 차원의 기운으로 잠재력을 키울 수 있을 거 아니야. 뭣보다 이제 와서 착한 척 하지 마.’
‘정민님, 그래도 파트너는 고심해서 선택해 주세요. 저희가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날 뛸 게 분명하시겠지만... 그래도 파트너는... 벌써 5명이잖아요.’
‘정민씨, 저는 편한대로 하셔도 괜찮아요. 당연히 저도 사랑해주실 거잖아요? 100명의 여인과 잠자리를 하신다고 해도, 제 잠자리만 확보될 수 있다면 상관없어요.’
‘정민아... 하... 말을 말자. 다 내 잘못이지.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그래도 가끔 나랑 놀아는 줄 거지?’
케이라, 엘레나, 수장님, 나연 누나.
그들은 내 생명도 걱정했지만, 내 옆의 사람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에 관해서도 걱정했다.
나는 아무도 안 늘릴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넷 다 믿지 않았다.
불신에 오기가 생긴 나는 적어도 한 번 귀환하기 전에는 아무도 안 건드릴 거라고 내기까지 했다.
‘적어도’를 붙이 시점에서 이미 내가 진 게임인 것 같은 느낌이지만, 아무튼.
그런데 벌써 이런 기회, 아니 위기가 오다니.
까밀라에게 막 마음이 가는 건 아니지만, 오는 여자를 마다할 명분 따윈 남자에게 없다.
거기에 난 이세계인과 섹스를 통해 강해질 수도 있고.
나랑 한 이세계인의 잠재력을 올려줄 수도 있다.
목욕탕 섹스.
지구에서도 욕조 안에서 섹스한 적은 없었는데, 이세계답게 신선한...
나는 성욕 제어를 풀며 다시 층계 위에 앉았다.
내 분신은 바로 성을 냈다.
하체를 가리고 있던 수건의 모양이 변했고, 그건 물과 증기로 가려지지 않았다.
“(어머...)”
까밀라가 볼을 발그레하게 물들이며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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