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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124화 (124/137)

〈 124화 〉 chapter 18. 크루스 상단

* * *

124.

짹짹.

저 새는 해로운 새일까.

차원 요이아르의 시작은 짹짹이였다.

곧게 자란 나무, 시야를 채우는 푸르름, 살랑대는 바람.

내가 아는 숲이랑 다른 건 없었다.

게이트 안에 들어가면 보통 이런 숲이 사람들을 반겼다.

내가 진짜로 차원을 넘어온 걸까?

솔직히 사람을 만나보기 전에는 실감이 나지 않을 것 같다.

한강에 들어가서 리셋 버튼을 누른 것도 아니고, 트럭조무사에 치인 것도 아닌데, 내 능력으로 차원을 넘어오다니.

정말 거짓말 같은 이야기다.

출발하기 전에 몸과 장비를 점검했다.

몸은 가벼웠다.

가장 중요한 그곳도 여느 때처럼 발기찼다.

장비는 대부분 멀쩡했다.

게이트용 수트, 로브, 가방, 아타만티움 검, 아타만티움 기계 팔, 팔에 넣을 배터리까지.

다만 예상대로 마정석은 모두 방전됐다.

이건 제라스의 차원 이동 마법에서도 발생한 일이었다.

제라스가 베네시아에게 마정석을 주고 지구에 보낸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마정석은 모두 방전되고 쓸모없는 돌이 됐다.

내 게이트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방전됐다.

수연이를 미국으로 불러서 팔의 동력을 마정석에서 태양열 배터리로 바꾼 건 아주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물론 이걸로 팔의 모든 기능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라서 마정석도 따로 구해 넣어야 한다.

수연이 하니까, 자기도 이세계로 데려가 달라고 떼쓰던 게 떠오른다.

정말 귀여웠는데.

솔직히 헤어진 지 1분도 안 됐는데 벌써 보고 싶다.

케이라도, 엘레나도.

애써 침착한 척 하던 수장님과 수연이 호위 겸 미국까지 온 나연 누나도.

3일 정도만 참으면 다시 보겠지만, 그 이상으로 물리적 거리가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니 그리움이 마구 밀려온다.

소연이의 귀여운 얼굴도 떠오른다.

수장님 말로는 잘 지낸다고 하는데, 사령 술사가 죽은 이후로 따로 연락한 적이 없다.

그 뒤로 수많은 일들이 폭풍처럼 닥쳐왔기 때문이지만... 솔직히 내가 너무했다.

3일 뒤엔 한 번 연락을 해봐야겠다.

이젠 내게 미련 따윈 없겠지만, 소연이는 그게 아니더라도 소중한 사람이다.

무려 내 비밀을 최초로 알게 된 사람이니까.

혹시 그녀가 미련이 남았다면, 그때는 또 다른 이야기지만.

그럼 출발해볼까.

먼저 나무 위로 올라가기로 했다.

숲은 울창하고, 길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대략적인 방향이라도 잡아야만 한다.

탁, 타닥.

땅을 한 번 굴러 위로 뛰어오르고, 나무기둥을 차면서 다시 뛰어올랐다. 대각선으로 뛴 후에 이번엔 다른 나무를 차고 또다시 점프. 그렇게 서너 번을 반복하자 나는 나무 꼭대기에 서 있었다.

이 정도로 육체를 다룰 수 있게 된 건 전부 엘레나의 가르침 덕이다.

지난 2달, 난 소환 기술만 수련한 게 아니다.

케이라에게는 마법을 배웠고, 엘레나에게는 검술과 체술을 배웠다.

그 덕에 겨우 제대로된 B급 키퍼가 된 것 같다.

급하게 성장한 탓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겨우 턱걸이 정도는 했다고나 할까.

나무 위에서 보니 사방이 나무였다.

아주 멀리 구름에 가려진 산꼭대기가 보일 뿐.

거리랑 높이를 생각하면 세계 최고봉 수준일 것 같은 산이다.

일단은 저 산 반대편으로 가야할 것 같다.

그렇게 방향을 정하고 내려오려는데, 쇠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챙, 챙!

와, 이 클리셰는 뭐지?

차원 이동했는데,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나 주인공인가?

즐겨보던 키퍼 소설에서나 나오는 상황에 당황 반 기대 반이었다.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뛰었다.

가서 어떤 일을 하게 되든, 인적도 없는 이 숲 속에서 처음 듣는 소리를 무시할 순 없었다.

챙!

“****!”

“****!”

가까이 다가가자 알 수 없는 언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늘고 높은 목소리와 돼지 멱따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다.

이 느낌은 오크?

“취에엑!”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오크의 트레이드마크인 콧소리가 들렸다.

차원을 넘어도 오크는 오크인가 보다.

드디어 나무 사이로 소리를 낸 사람과 몬스터가 보인다.

몬스터는 오크다.

게이트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초록색 피부의 오크.

위로 툭 튀어나온 어금니가 멀리서도 잘 보인다.

“꺄아아악!”

가늘고 높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여자였다.

금발 머리에 깨끗한 옷을 입은 여자가 오크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뒷모습만 보였지만 어쩐지 예쁠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전력으로 뛰었다.

땅과 나무가 뒤로 밀려나며 오크의 전신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 여자의 상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오크는 바지를 입고 있지 않았다.

오크의 흉물이 눈에 적나라하게 들어왔다.

인간보다 짧은 느낌이지만 굵기는 엄청났다.

저런 걸 넣으면 질이 바로 찢어질 듯했다.

지지직.

“**** 꺄아악!”

오크는 여자의 치마를 찢어 버렸고, 자기 흉물을 가져다 대는 중이었다.

끔찍한 광경이다.

달리던 속도 그대로 놈에게 몸통 박치기를 했다.

검으로 베어 버리기엔 여자 때문에 각이 조금 안 나왔다.

쿠당탕탕!

“취에엑!”

오크가 튕겨나가 나무에 부딪혔다.

나는 바로 검을 뽑아 오크를 베었다.

캉!

오크가 팔을 들어 내 검을 막았다.

소리를 들어보니 가죽 갑옷 안에 철판을 대고 있는 모양이다.

“취에엑!”

내 다리를 태클하려고 달려드는 오크를 점프하면서 피했다.

나는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하면서 오크의 뒤를 점하고는 알몸이 된 하체를 베었다.

푸시식!

허벅지를 깊게 베고 나오자, 피분수가 터진다.

강인한 오크는 그걸로 쓰러지진 않았다.

다시 트레이드마크인 그 콧소리와 함께 내게 돌진했다.

손에는 오크답지 않은 단검을 들고서.

나는 오크의 단검을 피해 빙그르르 돌면서 오크의 옆을 스쳐갔다.

그와 동시에 검에 성욕을 불어넣었고, 빨개진 검은 오크의 두꺼운 피부와 목 근육, 통뼈를 한 번에 잘랐다.

휘리리릭, 턱.

오크의 머리가 뱅글뱅글 돌면서 피를 뿌리고는 땅에 떨어졌다.

목이 사라진 오크는 그 자리에서 넘어졌고.

뒤로 넘어진 게 그나마 다행이다.

흉물은 보이지 않으니까.

나는 검을 한 번 휙하고 털었다.

검에 묻은 피가 촥하고 떨어져 나갔고, 검을 검집에 넣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천천히 뒤로 돌면서 성욕을 일으켜 얼굴로 보냈다.

내가 서큐버스의 성마법을 배우진 않았어도, 대충 성욕을 쓰면 어떤 효과가 나는지는 잘 안다.

매력이 상승하고, 일정 확률로 매혹을 걸 수도 있었다.

그 상대는 오크에게 겁탈을 당할 뻔한 여자.

멀리서 봤을 때도 느꼈지만, 확실히 귀한 집 자제 같은 느낌이었다.

땀과 먼지로 산발이 된 긴 금발은 아직 윤기를 잃지 않았고, 옷도 깨끗한 편에 화려한 느낌이었다.

외부활동을 거의 안하는 아가씨 느낌이 났다.

“....”

그 아가씨는 지금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예상했던 것만큼 예뻤다.

배우는 아니고, 아이돌 정도는 할 수 있을만한 상이었다.

몸매는 웬만한 아이돌 뺨치게 좋았다.

전형적인 서양식 몸매다.

금발에 백인인 것도 그렇고.

물론 지구의 백인과 인종이야 다르겠지만.

눈은 푸른색으로, 케이라 보다 소연이 먼저 떠올랐다.

사랑에 빠진 눈 같았기 때문이다.

그 왜, 내가 소연이를 구했을 때의 느낌?

이건 매혹을 안 걸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혹시 몰라 성욕을 끌어올린 채로 미소를 지었다.

기회가 있을 때, 확실히 내 편으로 만들어 두는 게 좋았다.

금전적 지원이나 탈 컷, 혹은 지도 같은 걸 쉽게 받을 수 있는 길이니까.

게다가 지금 상황은 오해를 사기 십상이라서, 그녀가 내 변호를 확실히 해 줘야만 했다.

그녀는 지금 치마가 찢어진 상태다.

백옥 같은 허벅지와 얇은 천으로 된 팬티를 내게 보인 것으로 모자라, 놀랐는지 오줌까지 싼 직후라 바닥엔 노란색 웅덩이까지 있다.

“...”

내 미소에 얼굴이 붉어진 그녀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게 확실하지만, 이미 이곳으로 향하는 발자국 소리가 있으니 조심해야만 했다.

나는 두꺼운 로브를 벗어 그녀의 하체를 덮었다.

그제야 자신의 상태를 눈치 챈 그녀가 빨개지며 몸을 오므렸다.

로브를 벗으면 암살자 같은 수트만 남는데다가 머리도 검은 색에 피부색도 달라서 의심받을 까 걱정이다.

걱정은 바로 현실이 됐다.

촤르르륵.

“****!”

열댓 명의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는 검을 들이댔다.

겉으로 볼 때에 딱히 강해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다 해서 14, 여자를 보호하려고 간 사람 둘 까지 포함하면 16명.

저 쪽이 공격을 시작하면 바로 도망가는 게 맞았다.

그런데 왜 여자가 혼자 있는 거지?

저 정도 전력에?

“****!”

내 앞에 서 있는 남자.

가장 삐까뻔쩍한 은색 갑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말했다.

장비와 다르게 실력은 가장 없어 보이는데, 그러니까 분명 책임자일 것이다.

“****!”

남자가 계속 소리쳤지만, 나는 뭐라 말 할 수가 없었다.

모르는 언어고, 이럴 때 한국어로 얘기해 봐야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 뿐이니까.

저 쪽이 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면 통역 마법이라도 쓰겠는데, 지금 내 수준으로는 통역 마법 중에 방어가 안 된다.

그때, 드디어 내가 들어 놓은 보험이 움직였다.

“****!”

여자가 로브로 몸을 감싸고는 내 앞에 섰다.

그녀가 양팔을 들자, 남자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안 좋아졌다.

나도 좋지 않았다.

그녀에겐 로브가 컸고, 로브는 바닥에 끌렸고, 바닥에는 오줌이 있었고, 로브 밑자락은 오줌에 오염됐다.

...아니지, 오히려 좋은가?

“****!”

“****!”

남자와 여자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자, 남자 빼고는 주변 사람들이 다 검을 내렸다.

후우, 이제야 마법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성욕을 마나 대신 삼고, 왼쪽 팔을 지팡이 대신으로 삼아 통역 마법을 펼쳤다.

부족한 내 마법 실력이지만, 성욕과 아타만티움 증폭 덕에 여자와 남자에게 통역 마법을 거는 건 비교적 간단했다.

“(상단주님! 지금 빨리 떨어지십시오! 어찌 그런 수상한 자를 믿는단 말입니까. 상단주님을 구해준 사람이라도 일단은 제 뒤로...)”

“(너무해요! 그게 사람을 이렇게 포위하고 할 말인가요? 어서 검부터 내리세요. 저를 구해준 사람이라니까요.)”

“(정황상 그게 맞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 자는 아직 한 마디 말도 없이...)”

“(저는 여러분을 적대할 생각이 없습니다. 통역 마법을 거느라 인사가 조금 늦었군요.)”

남자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고, 여자가 내 쪽으로 돌아본다.

여자에게 살짝 미소지어주자, 그녀가 고개를 숙인다.

귀가 빨갛다.

음... 이거 조금 과했을지도?

여자의 모습을 본 남자의 눈빛이 바뀌는 걸 보니 확실히 그런 느낌이 온다.

뭐 어쩌겠어?

다 내가 잘난 탓인데.

“(이정민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니, 이제 진짜 이세계에 온 느낌이 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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