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chapter 17. 다른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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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2달이 흘렀다.
그동안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일단 미국 협회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서 케이라, 베네시아와 함께 자주 방송에 출현하고 행사에 참여했다.
홍보 모델이 되는 게 나쁘지는 않았다.
유명한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었으니까.
스크린에서 보던 영화배우나 사진으로만 보던 연예인을 실제로 만나는 건 수련의 피로와 긴장감을 풀 수 있는 좋은 휴식 시간이었다.
재밌는 경험도 많이 했다.
탑스타가 내게 추파를 던지기도 했고, 케이라나 엘레나에게 접근하는 배우들도 많았다.
서로가 서로를 철벽 방어했기 때문에 그 어느 것도 성사되진 않았다.
나중에 혼자 오면 또 모를까.
반면 베네시아는 오는 사람을 전혀 거절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성욕이 왕성한 사람이었다.
그조차도 제라스의 명을 따르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은 들었지만, 난교 파티에도 갔다니... 뭐, 그 정도면 진심 아닐까.
그 외의 시간에는 수련에 전념했다.
주 2회 꼴로 외출이 있었으니 2달이라고 해도 시간은 조금 빡빡했다.
그래도 소기의 성과는 거두었다.
[다차원에너지 제어의 숙련도가 ‘숙련’에서 ‘달인’으로 상향됩니다.]
[이제 이세계체류계약 대상의 능력을 빌려올 때, 원본을 빌려오게 됩니다.]
[이제 다차원에너지 접촉으로 오르는 잠재력 상승 한계의 제한이 풀립니다.]
[다차원에너지 제어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기운을 접했습니다. 잠재력 상승 폭이 늘어납니다. 지금은 ‘상하’ 상승입니다.]
먼저 다차원에너지 제어의 숙련도가 드디어 올랐다.
이제 편할 때 케이라나 엘레나의 기술을 온전히 쓸 수 있게 됐다.
잠재력 상승폭이 ‘상’으로 바뀐 건 두말할 것도 없이 좋은 거다.
제일 중요한 건 ‘잠재력 상승 한계의 제한’이다.
이 변경 사항의 효과는 매우 컸다.
이것 덕분에 엘레나의 잠재력이 올랐으니까.
[51/55] > [51/56]
그간 나와 섹스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은 케이라다.
그리고 그다음이 엘레나, 수장님 순이다.
케이라는 이세계체류계약을 통해 잠재력이 많이 올랐다.
처음 만났을 때는 33/49였던 스탯이 45/54가 됐으니까.
중간에 사령술사의 계승자가 되면서 오른 걸 제외하고서라도, 그녀는 나와 섹스하면서 엄청나게 성장했다.
수장님은 잠재력이 많이 오르지 못했다.
그녀의 스탯은 25/26에서 33+4/52로 올랐지만, 내 영향은 아니다.
대부분 서큐버스를 흡수했기 오른 거고, 섹스를 통해 오르지는 않았다.
케이라만큼 많이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이 할 정도로 시간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고.
하지만 엘레나는 케이라에 비견될 만큼 나와 사랑을 나누었음에도 그동안 잠재력이 그대로였다.
처음에는 엘레나의 잠재력이 너무 높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케이라도 50이후 부터는 굉장히 더디게 올라갔기 때문이다.
55부터는 훨씬 더 올리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이제 그것만이 아님이 드러났다.
스킬 숙련도가 오르자마자 엘레나의 잠재력이 오른 걸 보면, 잠재력 55에 제한이 걸려 있었던 게 틀림없다.
이세계체류계약이 왜 A급 스킬이었는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제한이 풀렸다고 해도 2~30 구간처럼 막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이라도 올라간다는 건 아주 중요하다.
시간만 들이면 60이고 70이고 다 정복할 수 있다는 거니까.
케이라, 엘레나와 20년 정도만 섹스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두 사람은 혹 어려울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난 20년 내에 잠재력 70을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에도 다른 차원의 에너지를 직접 경험하는 나와 나를 통해 다른 차원의 에너지를 받는 두 사람은 잠재력이 오르는 속도가 달랐다.
그런 경향은 스킬이 ‘다차원에너지 제어’로 진화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이제는 원하는 만큼 흡수하고 제어할 수 있게 됐으니까.
지난 2달, 난 5번의 소환 게이트를 더 열었다.
5번 중에 2번은 이성이 없는 몬스터가 나왔고, 2번은 우리를 적대하지 않는 존재가 나왔고, 1번은 천사처럼 말은 통하지만 우리를 공격하는 존재가 나왔다.
몬스터는 죽이고 흡수했고, 우리를 공격한 네크로맨서도 죽이고 흡수했다.
우리를 적대하지 않았던 그랜드 마스터 급 검사와 어느 도서관 관장은 대화를 통해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에너지를 흡수하고 일주일 뒤에 귀환 게이트를 열어 돌려보냈다.
강력한 검사와 제라스, 케이라 이상의 정보량을 자랑하는 관장은 동료로 삼고 싶었다.
그러나 둘 다 지구에 관심이 없다고 해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여자였다면 억지로 붙들 생각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둘 다 남자였다.
두 사람이 임시로 체류하는 일주일 동안, 둘은 제라스와 케이라가 만든 체류용 마정석을 사용했다.
남자에게도 엘레나에게 했던 것처럼 내 마력을 전달하는 방식이 통하긴 했지만, 서로 그 방식을 거부했다.
체류용 마정석으로도 되는데, 굳이 남자 둘이서 얼굴을 붉히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동료는 못 됐지만, 두 사람과는 검과 대화로 깊은 교류를 나눴다.
덕분에 엘레나와 케이라가 한층 더 성장했고, 제라스도 차원 이동 마법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나는 그 대화에 낄 레벨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술적인 성장은 거의 없었다.
대신 잠재력은 미친 듯이 올랐다.
[28/40] > [30/45]
이제 S급 잠재력을 가지게 되는 날도 멀지 않았다.
이런 속도로 올라간다면, 잠재력 70이 되는 것도 금방이지 않을까.
내가 죽기 전에는 될 것 같다.
아니, 되어야만 한다.
도서관장이 내 사연을 듣고 말해준 게 있다.
‘나태라... 위험한 신이군요. 여러분의 일이 성공하기를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그런데 신살기를 쓰러면 최소 그랜드 마스터는 되어야 한다는 거, 알고 계시나요?’
블란카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드래곤이란 원래 70레벨부터 시작하는 종족이니까.
그녀에게 신살기를 쓰기 위한 조건 따윈 없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 덕에 내 목표가 수정됐다.
S급 키퍼에서 그랜드 마스터 수준으로.
그것도 최소한 내가 죽기 전에.
블란카는 잠들기 전 엘레나에게 많은 걸 알려주고 갔다.
그 중 한 가지는 봉인이 언제 풀리는지에 관해서였다.
봉인은 내가 죽는 날에 풀린다.
내가 죽으면 내 마력으로 이 차원에 체류하고 있던 블란카는 더 이상 체류를 이어나가지 못하게 된다.
그럼 자연스레 봉인이 풀리고, 나태가 다시 활동한다고.
결국 봉인이 됐다고 끝난 게 아닌 것이다.
봉인은 세계의 멸망은 몇십 년 정도 늦춘 것뿐이다.
반드시 신살기를 찾고,
반드시 그랜드 마스터가 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세계의 멸망을 막고,
블란카를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그녀를 이런 식으로 떠나보내고 싶진 않았다.
이게 지난 2달 내내 내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소환게이트 5번에, 귀환게이트 2번을 열고나서야 소환게이트의 숙련도가 올랐다.
[소환게이트의 숙련도가 ‘숙련’에서 ‘달인’으로 상향됩니다.]
[게이트 쿨타임이 대폭 감소합니다.]
[케이트 쿨타임 : 일주일 > 3일]
[연결 가능한 차원은 소환게이트를 통해 소환이 한 번이라도 이루어진 차원입니다.]
[현재 연결 가능한 차원 : 아르케니아, 케루온, 요이아르 외 10개 차원]
[다만 숙련도에 따라 게이트를 통해 오갈 수 있는 것은 제한됩니다.]
[현재 ‘달인’단계에서는 ‘힘’, ‘연결된 차원사람’, ‘게이트 주인’만 오갈 수 있습니다.]
[참고 : 다른 차원에서는 원래 차원으로의 귀환 게이트만 열 수 있습니다.]
원하던 숙련도 상승이었고,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건 내가 원하던 거였다.
하지만 조금 미묘했다.
저 설명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다른 차원에는 나만 갈 수 있으니까.
케이라와 엘레나는 이곳에 남아야만 했다.
혹은 자기 차원으로 돌아가거나.
우리는 며칠 동안 대화를 나눴다.
케이라는 처음에 내가 넘어가는 것을 반대했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른다면서, 숙련도가 ‘마스터’가 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아마 ‘마스터’가 되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게이트를 넘어갈 수 있을 거다.
마스터가 되어서 케이라, 엘레나와 함께 신살기를 찾으러 떠나는 건 합리적이며, 안전한 선택이다.
그런데 그게 언제일 줄 알고?
일반적으로 숙련도가 달인에서 마스터로 가는 건, 숙련에서 달인으로 걸린 시간의 최소 10배 정도다.
이건 지구에서도 경험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도서관장도, 케이라도, 제라스도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숙련에서 달인까지 7개월쯤 걸렸으니까, 마스터까지는 최소 70개월이 필요한 셈이다.
어디까지나 최소이므로, 6년에서 10년은 걸린다고 봐야했다.
그것도 10년 내내 지난 7개월처럼 빡세게 산다고 가정했을 때 말이다.
10년.
세계의 멸망을 막겠다고 하는 데 10년을 기다리지 못할 건 또 없다.
10년 동안 먹고 자고 훈련만 한다고 해도, 그 정도의 각오는 돼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거다.
신살기를 찾는 데 걸리는 시간도 생각해야만 한다.
어쩌면 신살기가 차원 요이아르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 그에 따른 대책을 또 세워야 하는데, 거기에는 시간이 또 얼마나 걸릴 것인가?
그때까지 내 수명은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난 다음에는 케이라도 무작정 반대하지 못했다.
솔직히 케이라와 엘레나가 같이 간다고 꼭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다.
확실한 건 내가 위험할 때 그들도 같이 위험할 것이며, 최후의 순간에 같이 죽을 수 있다는 것 정도겠지.
나도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나도 둘과 떨어지고 싶진 않다.
그러나 지금은 나아가야 할 때다.
나태를 죽이기 위해서,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블란카를 다시 보기 위해서,
케이라, 엘레나와 좀 더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2021년의 마지막 날.
나는 아쥬블란카르의 차원, 요이아르로 가는 게이트를 열었다.
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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