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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122화 (122/137)

〈 122화 〉 chapter 17. 다른 세계로

* * *

122.

LA 미국 키퍼 협회 본부.

원래 이 건물의 지하 5층에 이세계 소환 마법진과 이세계 소통 마법진이 있었다.

그런데 이젠 그 자리에 블란카의 본체가 들어갔기 때문에, 협회는 마법진을 새로 그렸다.

그게 바로 지금 내가 있는 지하 3층.

오늘의 소환게이트 뽑기식에는 제라스와 베네시아도 참관하기로 했다.

[(누구는 일주일 동안 에너지를 모으고, 비싼 마정석도 써야 하는데, 자네는 스킬 한 번이면 소환이 된다니... 정말 불공평하군.)]

“제라스님 수준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진짜 불공평한 거 아닐까요? 다 같은 사람일 텐데.”

[(세상이 불공평한 건 이미 알고 있다. 그런 거에 불평한 게 아니다. 그저 자네가 가진 기술이 얼마나 귀중한 건지 알았으면 하는 마음인 거지.)]

불평한 거면서.

하여튼 한 마디도지지 않으려는 영감이다.

노년의 할아버지에게 더 대꾸하는 것도 모양이 이상하니, 젊은 내가 넘어가도록 하자.

[(잠깐, 게이트가 다시 준비될 때까지 일주일이라고 했나? 공교롭게도 나 역시 일주일이 걸리지. 그래도 시스템이 만드는 효율까지는 왔군. 좌표를 지정해서 이동하는 걸 생각하면 내가 만들어낸 마법이 좀 더 효율이 높고... 역시 내 방법이 틀리지 않았어.)]

제라스는 기본적으로 말이 많았다.

동네 꼰대 아저씨가 말이 많으면 굉장히 귀찮았겠지만, 제라스는 조금 달랐다.

경지에 오른 대마법사는 말하는 와중에 많은 정보를 흘렸다.

이번에도 그랬다.

“시스템이 만드는 효율이란 게 무슨 뜻이죠?”

[(애송이가 그런 것도 안 가르쳐 주더냐? 너희 사이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

제라스가 지칭하는 애송이란 케이라를 말한다.

그녀는 지금 내가 소환게이트를 열 장소에 설치된 저주 마법진을 점검 중이었다.

그녀가 베칸쵸의 지식을 바탕으로 설치한 마법진으로, 발동하면 마법진 안의 존재는 움직임 둔화 및 주변 마나로부터 공격받는다고 한다.

“바쁘잖아요. 만난 지 1년도 안 됐고요. 그러니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제라스님.”

[(간단하다. 시스템은 우주 평균의 효율로 기술을 만들지. 네 소환게이트가 준비되는 데 일주일 걸린다는 건, 그게 우주 평균이라는 이야기다. 그보다 빠르면 평균보다 우수한 거고, 그거보다 느리면 덜 떨어지는 거지.)]

“그 말은, 시스템이 ‘마스터’라고 표현해도 더 효율적인 방법이 남아 있다는 건가요?”

[(좋은 질문이다. 맞아, 네 말대로다. 시스템은 마스터 다음 단계를 표현하지 않지만, 마스터에도 단계는 나뉜다. 그러니 정진하라고. 세상은 시스템이 다 설명해주지 않으니까.)]

“알겠습니다.”

할 일이 점점 많아지는 느낌이다.

나는 마스터도 아직 먼 것 같은데, 마스터 다음도 있다니.

“정민아, 다 됐어. 이제 시작하면 돼.”

“정민님, 저도 준비됐어요.”

케이라와 엘레나가 나를 보고 말했다.

케이라는 마법진을 준비했고, 엘레나는 보조 마법을 준비했다.

그녀 자신과 가장 강력한 전력인 로저스를 강화했다.

“(이거 진짜 대단한데요. 힘 조절을 잘해야겠어요.)”

로저스가 가볍게 주먹을 내질렀는데, 펑하는 소리와 함께 공기가 터져나갔다.

마스터급 성기사가 걸어주는 근력 강화의 위력이었다.

“그럼 가겠습니다.”

나는 케이라가 그린 마법진 중앙에 섰다.

그 자리에서 소환 게이트를 열고,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우우웅.

허공에 푸른 선이 그어지더니 좌우로 영역을 넓혔다.

푸른 원의 형태가 만들어지자, 확장이 멈췄다.

이번에는 말이 통하는 상대이길.

게이트에서 가장 먼저 나온 건 맨발이었다.

크고, 근육이 붙은 남자의 발.

그다음은 치마 같은 옷이 나오고, 조각 같은 복근이 게이트에서 나왔다.

그 위에는 그린 것 같은 얼굴이 있었다.

흰 머리에 백금빛 눈동자.

여기까지는 블란카가 생각나는 외모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놀라운 게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촤르륵.

날개가 양쪽으로 한 번에 펼쳐졌다.

전체 길이는 약 3m.

깃털 길이도 30cm는 되는, 크고 시원시원한 느낌의 날개였다.

“...천사?”

딱 봐도 천사였다.

무기도 창 같은 걸 들고 있고, 하체를 가리는 치마도 하늘거리는 느낌의 물건이었다.

신전 경비를 서면 어울리는 복장이랄까.

상체가 알몸인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신전에 찾아오는 여신들의 눈요기를 위해서라면 저 정도는 기본이다.

“(수준 낮은 통역 마법... 다행히 악마의 주구들은 없는 모양이구나.)”

중후한 목소리만큼이나 무게감이 있는 발언이었다.

어느새 내 앞에는 엘레나가 방패를 들고 서 있었다.

지금 하얗게 백열하고 있는 천사의 창 때문이다.

창 주변은 이미 열기 때문인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너희들은 누구지? 어떻게 성역에 게이트를 열었지?)”

“제가 게이트를 열었습니다.”

나는 엘레나 뒤에서 나와 그녀의 옆에 섰다.

“제 키퍼 기술이 다른 차원의 생명체를 소환하는 것입니다. 성역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의도한 일은 아닙니다.”

“(악마들은 다들 그렇게 이야기하지. 아닌가? 씨앗이여.)”

씨앗이라고 한 시점에 창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젠장!”

내 반응이 조금 늦었고, 창은 내 어깨를 꿰뚫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프지도 않고, 뒤로 날아가지도 않았다.

저 정도 속도의 창이라면 내가 버티지 못해야 했는데.

그 순간, 나는 또 창이 날아오는 걸 느꼈다.

정확하게는 앞의 창은 허상이었고, 이게 진짜였다.

나를 피하게 만들고 내가 피한 위치에 창을 던지는 고급 스킬.

이미 자세가 무너진 나는 저 창을 피하지 못한다.

캉!

다행히 창은 내게 닿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철벽이 내 앞에 있었으니까.

“(이것들이....!)”

보라색 사슬들이 마법진에서 올라와 천사를 붙잡았다.

천사가 뿌리칠 때마다 사슬이 끊기며 사라졌지만, 사슬은 마법진에서 또 올라왔다.

“(악마의 주구들이 발악하는구나!)”

펄럭.

천사가 날개를 펴자, 그를 중심으로 원형의 파동이 퍼져나갔다.

상당히 강하고 빨라 보이는 공격에 엘레나가 방패를 들었다.

“루여, 당신의 자비를 이곳에!”

방패가 연분홍빛에 휩싸이며 열댓 개로 분열됐고, 분열된 방패들이 천사의 사방을 점하며 파동을 막았다.

파동과 방패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고, 연구실이 진동했다.

[(투명해지지 않는다. 저놈도 이 차원에서 버틸 방법이 있는 모양이지. 시간 끌지 말고 처리하는 게 맞아.)]

제라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로저스가 방패를 뛰어넘어 천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단순하게 주먹을 질렀다.

“(미개한 것들이!)”

천사가 날개를 접고 날개로 주먹을 막았다.

쾅!

폭발음과 함께 연구실이 강하게 진동했다.

로저스가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쾅! 쾅! 쾅!

이 정도면 건물이 흔들리는 게 아닐까 싶은 정도다.

그래서 이런 부분도 사전에 대비했다.

이 연구실에는 제라스가 만든 강화 마법이 걸려 있다.

공간 마법에 미친 제라스답게, 이 강화 마법은 공간을 격리시키는 방식에 가까웠고, 건물이 흔들릴 리는 없다.

“(물리력으로 나를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나와서는 호통치는 거 말고는 하는 게 없는 것 같은 천사지만, 로저스의 공격에도 멀쩡하다는 건 팩트다.

물론 막는 게 한계라는 것도 팩트지만.

쉬이익.

로저스의 공격을 막고 있어서 그런지, 엘레나의 방패를 공격하던 파동이 약해졌다.

이제 엘레나가 공격할 차례였다.

그녀는 검을 뽑아 들고 천사에게 돌진했다.

“(어찌 신의 사도가 악마와 함께! 회개하라!)”

순간 후광이 천사의 뒤에서 뿜어졌지만, 그게 전부였다.

일행 중 영향을 받는 이들은 없었다.

로저스는 계속 주먹을 내지를 뿐이고, 엘레나는 이제 천사의 코앞에 있었다.

“(이게 악마의 세뇌가 아니란 말인가!?)”

“당연히 아닙니다! 저는 루의 사랑만을 따를 뿐!”

엘레나가 검을 세로로 베었다.

천사는 어디선가 창을 꺼내어 검을 막았다.

“(그래도 나를 어찌할 순 없다. 내가 성역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그런 말이 클리셰인 걸 모르나 보네.”

나는 천사의 왼쪽에 서서 훤히 드러난 옆구리를 노렸다.

붉은빛으로 빛나는 손이 그 옆구리에 닿았다.

지지직.

천사의 옆구리가 찢기었고, 내장 대신 빛이 떨어졌다.

“(...신이시여!)”

천사가 외치자 옆구리가 바로 다시 회복됐다.

그러나 그러면 뭐 하는가, 마법진은 천사를 잡고 있고, 엘레나와 로저스의 공격은 천사의 힘과 주의를 분산시켰다.

천사는 그나마 덜 위협적인 내 공격을 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지직.

그리고 아타만티움으로 강화한 내 성욕은 그리 만만한 힘이 아니다.

“(...신이시여!)”

“(...신이...)”

“(...신...)”

5분 뒤, 끊임없이 부상과 재생을 반복하던 천사는 결국 가루가 돼 사라졌다.

“(후후, 좋은 샌드백이었습니다.)”

로저스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의 공격은 가벼운 듯 보였지만, 실제로 가벼운 건 아니었을 것이다.

공격만 한 그의 수트가 파열된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만큼 그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심했다는 이야기다.

“...마법진을 조금 더 개량해야...”

케이라는 이미 마법진을 보고 있었다.

사령 술사의 마법은 효과가 확실히 있었다.

이게 아니었으면 천사는 로저스의 공격에 반격하고, 엘레나를 한 번에 날려버렸을 거다.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미안해요. 천사가 나올 줄을 몰랐어요.”

엘레나에게는 조금 미안했다.

그녀는 먼저 공격하는 이들은 제압 혹은 사살하기로 했지만, 천사를 죽이는 데 동참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아무리 그래도 같은 계열인데, 조금 상심하지 않았을까?

“괜찮아요. 신들끼리 싸우는 경우도 있고, 저희 교단과 사이가 나쁜 교단과는 전쟁도 하는걸요.”

와... 저쪽도 밖에서 보는 거랑은 달리 복잡하구나.

“그보다 정민님, 아까 살기 감지는 좋았어요. 그걸 감지한다는 거 자체가 성장하셨다는 거예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나는 페이크에 당했다고만 생각했는데, 페이크 자체가 고급 기술인 게 맞는 것 같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발전하면 페이크도 안 당할 수 있겠지.

[(제자야, 마력 소모는 어느 정도냐.)]

“(강화 마법을 유지하는 데 체류용 마정석을 다 소모했습니다. 이 정도의 활동을 위해서는 지금보다 7배의 마정석이 필요합니다.)”

[(무시무시한 양이군. 개량이 더 필요하겠어)]

베네시아와 제라스가 대화 중이었다.

제라스의 강화 마법은 베네시아가 사용했고, 강력한 반동에 꽤 많은 마나를 쓴 모양이다.

그들은 이번 결과를 토대로 차원 체류용 마법을 조금 더 개량할 것이다.

내가 쓰는 체류계약을 봤으니, 제라스는 적어도 거기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지.

그게 우주 평균의 효율이라니까.

“제라스님이 보시기엔 지금 상태가 어떻습니까?”

[(시스템의 보정이 확실하게 먹혔다. 저번에 나왔다는 검은 슬라임보다는 저 천사가 강한 개체다. 이계에서 다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자는 몇 안 될 테니까.)]

시스템의 보정.

소환 게이트에서 검은 슬라임이 나왔을 때, 나는 지금까지 운이 굉장히 좋았던 거라고 생각했다.

단 두 번의 소환에서 케이라와 엘레나 같은 이들을 얻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그게 그저 운일 리가 없다.

제라스는 내게 그걸 지적했다.

‘키퍼의 스킬은 자기 게이트 내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설계되지. 적어도 초입에서는 절대로 죽지 않아. 자네 게이트도 마찬가지야, 애송이가 자네 게이트로부터 나온 건 다 시스템의 보정이지. 어쩌면 자네와 애송이 사이에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지.’

전생의 인연, 뭐 이런 건가?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게이트와 스킬에 시스템의 보정이 존재한다는 건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안 그러면 다들 게이트 진입하자마자 죽을 텐데, 그런 경우는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욕심부리다가 죽는 경우는 있어도.

나에게도 시스템의 보정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

케이라와 엘레나의 존재가 보정을 증명했고.

그렇다면 내 보정은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 걸까.

내 상황을 들은 제라스가 또 가설을 내놓았다.

듣고 바로 상황을 정리하는 걸 보면, 대마도사가 괜히 대마도사가 아니다.

‘자네 같은 경우는 게이트가 열릴 때 주변 상황이 중요할 것 같아. 주변에 강한 동료들이 많을수록 그에 맞는 사람이 나오는 게 아닐까? 그들과 계약하는 건 그다음 문제일 테고. 로저스가 옆에 있을 때 검은 슬라임이 나왔으니, 내가 관전하고 있다면 더 강한 존재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리스크가 있는 실험이지만, 한 번은 해보고 싶었다.

왜냐고? 리턴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잠재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28/34 ­> 28/40]

검은 슬라임과 천사.

단 두 번의 에너지 흡수로 내 잠재력은 6이나 상승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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