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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121화 (121/137)

〈 121화 〉 chapter 17. 다른 세계로

* * *

121.

“(...에서 활약한 케이라 머스탱의 공로가 크고 평화에 이바지했으므로 미합중국 대통령이 미국 시민들을 대표하여 경의를 표하며 이 자유훈장을 드립니다.)”

케이라의 공로에 대해 길고 긴 설명이 이어진 후, 미국 대통령이 직접 케이라의 목에 훈장을 걸어 주었다.

와아아아!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에 모여 있는 인파가 함께 소리를 질렀다.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백악관 앞에서, 따로 행사를 열어가면서까지 수여하는 훈장.

그 훈장을 받는 당사자의 기분은 어떨까?

케이라는 늘 그렇듯 덤덤했다.

아주 옅은 미소로 사람들의 환호에 답할 뿐이었다.

얼음 마법사답다.

미국 사람들은 저 쿨한 이미지를 참 좋아했다.

옛날 유행했던 디즈니 캐릭터가 생각난다나.

그래도 계속 쿨한 이미지만 고수했다면, 분명 호불호가 갈렸을 것이다.

마법사로서는 추앙받아도, 인간적으로는 별로라는 이미지가 생겼을 확률이 높다.

미국 키퍼 협회에서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언론 플레이를 펼쳤다.

케이라가 나를 보며 활짝 웃는 장면을 인터넷에 풀어 버린 것이다.

완전 다른 사람처럼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표정이었다.

일본식으로 말하면 쿨데레라고 해야 할까.

일부 사람들은 그 갭에 열광했다.

열광하지 않는 사람들도 케이라가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받아들였고.

이런 이미지는 차후 마법사가 등장할 때 도움이 될 거다.

친근한 이웃이라는 이미지를 밀고 있는 미국 키퍼 협회, 아니 전 세계 키퍼 협회 입장에서는 이런 거 하나하나가 중요했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미국은 언제나 당신을 환영합니다.)”

나는 단상 위, 케이라와 대통령 뒤에 서 있었다.

대통령이 하는 이야기가 다 들린다는 거다.

미합중국 대통령의 스카우트 제의.

옆에서 듣는 내가 다 긴장되지만, 케이라는 여전히 덤덤하게 악수만 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지구인이 아니니까.

이런 행사와 인파가 대단하다고는 생각해도, 받아들이는 깊이가 나랑은 다르다.

나라면 인류의 역사, 미국의 힘, 미국과 한국의 관계 등등을 떠올리면서 엄청 긴장하고, 또 감격했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 내가 주인공이 아님에도 조금 긴장하고 있다.

이건 케이라가 혹시 실수라도 해서 흑역사를 남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그리고 오늘 또 소개할 사람이 있습니다. 저희 미국을 방문한 첫 번째 이세계인이자, 미합중국 소속 첫 번째 마법사, 그리고 이 지구에 처음으로 온 이종족인 엘프 나나리루리 베네시아입니다.)”

사회자의 멘트 후에 엘프 베네시아가 단상 위로 올라와 인사했다.

케이라와 제라스의 연구는 지난 2주간 꽤 발전했다.

지금은 A급 마정석 하나로 1주일 정도 지구에 머무를 수 있게 됐다.

물론 베네시아 기준이다.

베네시아보다 강한 사람, 이를테면 제라스가 넘어오면, A급 마정석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베네시아는 녹색의 투피스 정장을 입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녹색 머리에 녹색 정장은 과했겠지만, 그녀에게는 ‘엘프’라는 타이틀이 있다.

숲의 종족이라는 이미지에 현재 차림은 잘 어울렸다.

현대의 최신 기술이 들어간 안 꾸민 듯 꾸민 옅은 화장은 거기에 화사한 매력도 더했다.

그래봐야 케이라의 매력을 따라올 수는 없지만.

투피스에 로브의 느낌을 살린 하프 코트를 입은 케이라는 오늘 새롭게 리즈를 갱신했다.

케이라가 최고다.

베네시아는 대통령에게 인사하고 연단에 섰다.

“(안녕하세요, 나나리루리 베네시아입니다.)”

오늘 이 자리는 케이라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자리이자, 베네시아를 정식으로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미합중국의 첫 번째 마법사, 첫 번째 이세계인으로.

케이라가 미국 협회의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저 자리는 케이라의 자리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케이라는 거절했고, 베네시아가 차선책으로 선택됐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미국의 명예시민이 될 것이다.

[수고했어.]

난 내 옆으로 돌아온 케이라에게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뭘,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화장, 힘들지 않았어?]

[아, 그건 좀 힘들었어.]

케이라는 이번에 처음으로 풀메이크업이란 걸 받았다.

평소에 화장도 안 하는 사람이 1시간 정도 가만히 앉아서 화장을 받는 건 곤욕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덕분에 진짜 예뻐.]

정말로 예뻤다.

용산에서의 화장도 수장님이 나름 열심히 해준 거지만,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각 잡고 하니까 또 달랐다.

인터넷이 전부 케이라의 얼굴로 도배될 게 그려지는 미모였다.

[...]

케이라의 답이 없다.

곁눈질로 슬쩍 보니, 얼굴이 조금 달아오른 게 보인다.

예쁘다는 칭찬은 들어도 들어도 새로운 모양이다.

내가 섹스할 때 그렇게 예쁘다고 해줬었는데...

아, 그거랑 평소랑은 좀 다른가? 평소에도 좀 열심히 칭찬해야겠다.

[이걸 또 해야 한다니 좀 막막해.]

[조금만 힘내, 어쩔 수 없잖아.]

이 뒤로도 나와 케이라는 여러 행사와 방송이 잡혀 있다.

이게 다 블란카 때문이다.

미국 협회 LA 본부에 자리 잡은 블란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웬만하면 한국으로 옮기고 싶었지만, 케이라가 반대했다.

공간 이동의 충격으로 블란카가 깨어날 수도 있다고.

물리적으로 옮기는 건 가능했지만, 큰 의미가 없었다.

블란카의 위치를 옮기는 건 블란카를 세상으로부터 숨기기 위해서인데, 물리적으로 옮기는 건 온 세상이 다 알게 되는 거나 다름이 없다.

그럴 바에는 미국 협회에서 최대한 사람들이 모르는 상태로 두는 게 낫지.

이곳은 한국 협회보다 안전하고, 지원도 훨씬 잘 받을 수 있으니까.

이런 상태다 보니, 미국 키퍼 협회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훈장을 비롯해 방송, 행사 등 우리를 마케팅용으로 쓰려는 게 뻔히 보이지만, 어쩔 수 있나.

기브 앤 테이크라고,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게 인지상정이다.

[쿨타임 끝나는 거, 오늘이지?]

[응. 오늘 저녁이야.]

[로저스가 도와준대?]

[오늘도 초대해달라는데.]

[다행이다. 오늘은 그냥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동감이야.]

쿨타임.

드디어 내 스킬, 소환 게이트의 쿨타임이 돌았다.

메시지가 뜬 건, 정신세계에서 블란카와 계약을 맺은 후였다.

[새로운 소환게이트가 준비되었습니다.]

엘레나를 소환한 후 5달 만이다.

길고 긴 세월이었다.

나는 거의 바로 소환게이트를 열었다.

큰 목적은 한 가지였다.

타도 나태.

세부 목표로는 세 가지 정도가 있었다.

하나는 소환게이트의 숙련도를 늘려서 빨리 게이트를 통해 ‘힘’ 뿐만 아니라 ‘사람’도 오갈 수 있게 되는 것.

그래야 블란카의 차원인 ‘요이아르’로 넘어가 신살기를 찾을 수 있다.

이게 가장 우선적인 목표였다.

둘은 다른 차원의 기운을 흡수해서 내 잠재력을 높이는 것.

내가 강해지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잠재력을 한계까지 올리고, 수련을 거듭해 잠재력 한계까지 스탯을 올리는 일.

정말 이번에야말로 무력함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최소 S급.

그게 내 목표였다.

셋은 신살에 도움이 될 만한 새로운 동료의 모집이었다.

S급이 예약된 마법사 두 명과 S급 성기사 하나, A급 무투가가 내 동료였다.

웬만한 상황이라면 차고 넘치겠지만, 내 상황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케이라에 따르면, 신살 파티에는 적어도 그랜드 마스터, 지구 기준으로는 레벨 70 이상의 키퍼가 여럿 있어야 했다.

지금의 파티는 그에 한참 모자랐다.

지구 최강이라고 짐작되는 마이클 로저스를 내 파티에 억지로 넣는다고 해도, 저 기준에는 맞추지 못했다.

로저스조차도 아직 60레벨이 안 되니까.

그래서 괜찮은 실력의 이세계인이 소환되길 기대했다.

실력이 없더라도 유틸면에서 뛰어나기를 기대했다.

그렇게 모바일 게임 가챠를 하는 느낌으로 소환했는데, 나온 건 꽝 중 꽝이었다.

그어어어.

푸른색의 소환게이트로부터 나온 건 검은색 슬라임 계열 몬스터였다.

젤리 같은 몸체에 수백 개의 팔을 가졌고, 크기는 자그마치 30m가 넘었다.

엘레나의 판단에 의하면 적어도 마스터급 이상의 힘을 가진 몬스터.

그곳이 키퍼 협회의 연구실이 아니었고, 구경 차 같이 있었던 로저스가 아니었다면, 큰일이 일어날 뻔했다.

슬라임은 강했지만, 로저스와 엘레나의 합공에 케이라의 보조를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정말, 그동안의 소환이 기적이었다는 걸 몸소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두 번 소환해서 케이라와 엘레나가 나오다니.

실은 내 운을 여기에 다 쓴 게 아닐까?

다행히 몬스터에게서도 이세계의 기운을 흡수하는 건 가능했다.

이게 전부 다 이세계체류계약이 진화한 덕분이다.

진화는 마찬가지로 블란카와의 계약을 맺은 후에 이루어졌다.

[오래도록 다른 차원의 기운을 흡수한 이세계체류계약이 진화합니다.]

[이세계체류계약(A, 숙련) ­> 다차원에너지 제어(S, 숙련)]

[이제 잠재력 상승 폭 제한이 풀립니다.]

[이제 계약을 통하지 않아도 이계의 기운과 접촉할 때 잠재력이 상승합니다.]

[이제 계약 상대가 아니라도 이세계 기운의 운용에 따라 잠재력이 상승 가능해집니다.]

진화로 변경된 사항들은 하나하나 놀라운 것들이었다.

그전에도 탈 A급 기술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탈 S급 기술이 되어 버렸다.

잠재력 상승 폭 제한이 풀린다는 건 앞으로 내 잠재력이 날개 돋친 것처럼 오른다는 이야기다.

계약을 통하지 않아도 접촉 시 상승한다는 변화 덕분에 난 슬라임으로부터 이계의 기운을 흡수, 잠재력을 상승시킬 수 있었다.

세 번째 변경 사항은 그 무엇보다 놀라웠다.

그동안은 나와 계약한 사람들만 나와 섹스할 때 잠재력이 올랐다.

세 번째 변경 사항은 그 제약을 푼다는 이야기다.

이제 나연 누나도 나와 섹스하면 잠재력이 오른다.

누나의 잠재력은 S급 키퍼에 살짝 모자랐는데, 이제 진짜 S급 키퍼가 될 가능성이 열렸다.

지금은 미국에 있으니까 나중을 기약해야겠지만, 나연 누나가 이 소식을 들으면 엄청 기뻐할 것이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검은 슬라임이 나온 탓에 5개월 만에 얻은 뽑기 기회가 날아갔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시스템이 새로운 메시지를 내게 던져줬다.

[소환게이트 쿨타임 : 6일 23시간 59분]

소환이 실패해서 그런지, 아주 혜자스러운 쿨타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오늘이 일주일째.

다시 한번 가챠를 할 시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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