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112화 (112/137)

〈 112화 〉 chapter 15. 지구해방작전

* * *

112.

휙, 쾅!

불덩이 하나가 나를 스쳐 지나가 내 앞에 떨어졌다.

나는 급제동해서 폭발을 피했지만, 덕분에 일반인의 태클 사정거리 안에 들어갔다.

“으어어!”

세뇌가 심해진 건지 이제 말도 못 하는 일반인.

그중에서는 운동을 한 사람인지 태클이 제법 빠르다.

“합!”

나는 땅을 박차며 앞으로 뛰었고, 일반인은 내가 서 있던 위치에 코를 박았다.

앞으로 구르며 일어나자, 이번엔 바람의 칼날이 내 앞에서 날아왔다.

이건 피할 수 없었다.

이걸 피하면 내 뒤에 있는 일반인들이 죽을지도 모르니까.

불끈.

내 분신이 솟아오름과 동시에 정기가 성욕으로 변환됐다.

나는 성욕을 왼팔로 모음과 동시에 바람의 칼날을 왼손으로 쳐냈다.

카캉.

바람의 칼날이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며, 그쪽에 있는 나무줄기들을 베었다.

저것도 사람들 위에 떨어지면 부상자가 생길 텐데...

“흐억!”

아쉽게도 그런 사치스러운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내 발목을 잡으려 드는 일반인의 손을 피하며 앞으로 뛰었다.

“젠장!”

숲속에는 레드우드 아래에서 자라는 잡목들도 많았다.

그런 잡목들의 줄기도 다 피해야 했다.

해가 거의 들지 않는 바닥은 거의 다 이끼였다.

발이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야만 했다.

그 와중에 제일 힘든 건 바로 키퍼다.

“****!”

몸놀림만 봐도 키퍼인 남자가 소리치면서 내게 발차기를 날렸다.

나는 허리를 뒤로 젖히며 슬라이딩으로 피한 후, 그의 디딤발을 건드려 그를 쓰러트렸다.

이 정도에 쓰러지는 것을 보면 C급 키퍼인 것 같다.

고등급의 키퍼는 대부분 다른 키퍼들이 막고 있고, 여기까지 나를 쫓아온 키퍼들은 다들 C, 최고가 B인 듯했다.

아주 짧은 대치였지만, 키퍼랑 대치하느라 수십 명의 일반인이 나를 둘러쌌다.

이미 내 오른팔을 잡은 이도 있다.

이대로 나머지 팔도 잡히면 그대로 끝이다.

성욕을 왼팔로 넘기고, 증폭된 성욕을 다시 온몸으로 퍼트렸다.

성욕으로 몸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여기에서도 중요한 건 이미지다.

나는 초X이어인을 떠올린다.

내가 아는 육체 강화의 최고봉은 그거니까.

다른 것도 있긴 하지만, 대머리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화르륵.

분홍색 기운이 짙어져 만들어진 붉은 빛이 불꽃처럼 온몸에서 타오른다.

나는 오른팔을 앞으로 휘둘렀다.

방금 전에는 팔을 잡고 있는 사람의 몸무게 때문에 굉장히 느렸겠지만, 지금은 그 무게가 무슨 깃털 같다.

오른팔에 매달려 있던 사람은 앞으로 날아가 나무에 부딪혔다.

“죄송합니다아!”

목소리도 커진 것 같다.

이 강화는 성대에도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다.

파팟!

각력도 2배는 됐다.

단번에 10m는 뛰어오른 것 같다.

이 정도라면.

나는 레드우드를 여러 번 박차고는 30m까지 올라갔다.

30m 면 레드우드의 가지를 이용할 수 있는 높이다.

가지 위에 서니 밑의 사람들이 닭 쫓던 개처럼 쳐다본다.

이대로 있으면 되나?

그러나 키퍼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

말은 못 알아들었다.

대신 행동으로 그 뜻이 뭔지는 확실히 알았다.

그들은 일반인을 인질로 삼아 공격 중이었다.

“미친놈들아!”

다시 땅으로 내려가며 키퍼 한 명의 머리를 쳤다.

깡!

기절한 키퍼가 쓰러지고, 그 키퍼가 위협하던 일반인이 나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내가 구해줬는데, 왜 이런 대접인가.

생각은 짧게 스쳐 갔다.

슬플 겨를도 없다.

10m 옆에서 또 다른 일반인을 공격하려는 키퍼가 있다.

그들에게 일반인을 공격하면 자신이 다친다는 메시지를 심어줘야 한다.

퍼벙!

내 주먹과 키퍼의 복부 사이에서 폭음이 터졌다.

키퍼는 일반인들과 부딪히며 날아갔다.

그리고 어느새 내 앞에 날아오는 불덩이.

화르륵.

이건 피할 수가 없다.

나는 불덩이를 몸으로 받아냈다.

뜨겁다.

수트 아래 살이 녹아 수트랑 달라붙는 느낌이 난다.

그럼에도 난 불덩이 그 자체가 되어 테러범에게 나아간다.

고통에 익숙하다는 건 이럴 때 장점이다.

온몸이 타오르는 고통보다 엘레나에게 신성을 넘겨줄 때가 훨씬 크니까.

“****!”

경악하는 키퍼에게 불 주먹을 날렸다.

주먹이 그의 이를 부수었고, 불이 옮겨붙었다.

“으아아악!”

나는 땅을 한 바퀴 구른 후 다시 일어났다.

키퍼용 수트는 이 정도의 불로 타지 않아 다행이다.

주변에는 여전히 나를 노리고 덤벼드는 일반인들이 많다.

그들도 나처럼 곳곳이 타오르고, 상처에, 피를 흘린다.

다행히 아직 죽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언제까지 이 행운을 유지할 수 있을까?

빨리 엘레나와 로저스가 다른 키퍼들을 처리하길 바란다.

케이라가 어서 본체의 봉인을 풀기 원한다.

일반인들의 살의는 여전히 송곳처럼 날카로워서, 내 심장을 쿡쿡 찌르고 있다.

“빌어먹을, 다 덤벼!”

나는 다시 몇 안 남아 있는 키퍼를 향해 뛰었다.

일단은 저놈들 먼저 정리해야 한다.

+++

블란카는 케이라 등에 매달려 있었다.

보통이라면 케이라가 블란카를 들어야겠지만, 투명화 마법과 비행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케이라에게는 손이 부족했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자꾸나.)”

모두의 시선이 전투를 향해 있는 사이에 케이라와 블란카가 본체의 봉인을 푼다는 게 급조해낸 계획이었다.

헛간이 있던 공터는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 차 있어 두 사람의 기척을 느끼는 자는 없었다.

화르륵!

파지지직!

공격하는 쪽은 테러범이었고, 협회 쪽이 주로 방어했다.

공터에 아직 일반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미 천 명 이상이 공터를 빠져나갔지만, 공터에는 수백 명 정도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지하에서 나오는 이들은 거의 없어졌고, 협회 쪽도 곧 공세로 전환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S급 키퍼를 포함해서 질 쪽은 협회가 우위에 있었지만, 양은 확실히 테러범 쪽이 우위였다.

일반인들을 지키다가 눈먼 공격에 죽는 키퍼가 나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미끼가 된 정민을 쫓아간 키퍼도 있었다.

그들에게 죽는 정민을, 케이라의 두뇌는 계속 상상했다.

‘빨리...!’

헛간에 도착한 케이라는 투명화 마법을 풀었다.

블란카도 케이라의 등에서 내려섰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계단으로 뛰어 들어갔다.

타다다닥.

계단은 지하 공동으로 이어졌고, 공동엔 여러 개의 출구가 있었다.

블란카가 출구 중 하나를 가리켰다.

“(저쪽이다!)”

또다시 계단.

또다시 공동.

“(저기다!)”

다시 계단.

다시 공동.

케이라는 그제야 멈춰 섰다.

“(왜? 저기인데?)”

벌써 내려온 것만 해도 10층은 넘었다.

드래곤의 힘이라면 뭐든 가능할 것 같았지만, 또다시 내려가는 건 드래곤이라도 이상했다.

“블란카님, 환상 마법에 걸린 것 같아요. 혹시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신가요?”

“(환상? 잠깐만...)”

블란카는 마나의 주인, 마법을 마스터한 드래곤의 분신체, 아바타였다.

그녀의 어린아이 같은 외형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정체지만 말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그녀가 모든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체의 위치를 감지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방금 전의 세뇌까지.

케이라도 장거리 공간 이동 마법진을 그리거나, M­EMP를 만들 때 블란카의 조언을 많이 받았다.

블란카가 없었더라도 케이라 혼자서 해냈겠지만, 블란카가 없었다면 테러범의 행동에 맞추지 못했을 것이다.

“(이건 차원의 바다에 마법으로 구조물을 만들고 그 안에서 뱅글뱅글 돌게 하는 미궁류의 마법구나. 환상이 아니라 공간 마법의 일종이다. 해결할 수 있겠느냐?)”

“...해보겠습니다.”

케이라가 최근에 가장 많이 쓴 마법은 공간 이동 마법이었다.

빈도수만 높은 것도 아니고, 쓸 때마다 한계에 한계를 거듭한 마법을 썼다.

그녀의 한계보다 더 멀리, 더 많이 공간 이동하기 위해서 그녀는 공간 마법을 더 이해하기 위해 많은 것을 배웠다.

블란카에게서, 제라스에게서, 그리고 사령 술사 베칸쵸에게서.

‘차원의 바다에 있는 거라면 파괴하면 안 돼. 파괴하면 나랑 블란카는 원래 차원으로 돌아갈 수 없어. 지구에 연결된 길을 찾아야 해. 허무 에너지가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곳이 길일 거야. 그리고 여긴 전부 드래곤의 마나로 이루어진 곳. 내 에너지를 써야 해. 정민아, 힘을 줘.’

이런 경우에 쉽게 일으킬 수 있는 힘은 역시나 성욕이다.

케이라는 정민이의 육봉을 떠올렸다.

한쪽에서는 정민의 죽음을 상상하면서 한쪽에서는 육봉을 떠올리다니, 그녀도 어지간한 또라이였다.

케이라의 비부가 바로 젖었다.

“(이런 때에 뭐 하는 게냐!)”

“조용히.”

그녀는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성욕으로 공동을 감지했다.

널리 갈 것도 없었다.

허무 에너지는 바로 아래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화아악.

그녀는 푸른 마력을 모으는 방식으로 성욕을 꺼냈다.

언젠가 정민이 만들었던 백화가 다시 나타났다.

콰가강!

케이라는 꽃을 바닥에 대고 터트렸다.

콘크리트 바닥이 깨지고, 회색 구멍이 나타났다.

“가죠!”

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구멍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시야가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그녀는 자신이 아까 보던 공동 중앙에 천장 부근에서 떨어질 거라는 걸 바로 파악했다.

아까 전과 다른 점은 공동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드래곤이 이곳에서 자고 있다는 것이다.

눈처럼 하얀 비늘을 가진 화이트 드래곤.

그게 아쥬블란카르의 정체였다.

“****! ****!”

자고 있는 드래곤의 앞, 만세 자세를 하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서 있었다.

케이라는 그를 향해 매직 미사일 다섯 발을 쐈다.

푹, 푹, 푹, 푹, 푹.

다섯 발은 모두 그에게 명중했다.

매직 미사일로 착지할 시간이나 벌려고 했던 케이라에게는 싱거운 끝이었다.

‘뭐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지만, 그보다 먼저 할 일이 있었다.

“(저 마법진이야! 내가 알려준 방법대로 하면 돼!)”

비행 마법으로 드래곤 앞에 착지한 후, 케이라는 드래곤 앞에 다가갔다.

드래곤은 지름 50m짜리 마법진 안에서 몸을 말고 누워 있었다.

케이라에게는 익숙한 마법진이었다.

이게 드래곤을 봉인하는 마법진이었는데, 이 마법진의 잔상이 그동안 적들의 은신처에 항상 남아 있었다.

블란카는 은신처의 마법진을 가지고 케이라에게 봉인 해제법을 가르쳤고, 지금에 와서는 순식간에 해제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화르륵.

케이라가 이번엔 진짜 푸른 마력을 만들어 냈다.

불꽃은 마법진의 일부를 흡수하여 지워 버렸다.

파아앗.

마법진의 글자들이 빛을 내며 공동을 가득 채웠다.

빛이 사라졌을 때, 바닥에 그려져 있던 마법진도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블란카도.

번쩍.

화이트 드래곤이 드디어 눈을 떴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