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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111화 (111/137)

〈 111화 〉 chapter 15. 지구해방작전

* * *

111.

레드우드 국립공원.

캘리포니아 북부 해안지대에 있는 레드우드(미국삼나무)의 군락지.

90m짜리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곳.

테러범의 은신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다.

우리는 방금 레드우드 사이로 공간 이동했다.

국립공원은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어두웠다.

나무들이 지붕처럼 하늘을 막고 있고,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과연 은신처가 있을 법한 장소였다.

“(제가 잠깐 보고 오겠습니다.)”

로저스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위성으로 확인한 위치를 정찰하고 돌아올 것이다.

그는 1분도 안 돼 돌아왔다.

“(예상했던 위치에 있습니다. 계획대로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머스탱님.)”

“네, 그럼 시작할게요. 각자 위치에 마정석을 박아 주세요. 완료되면 신호주시면 됩니다.”

정예 키퍼 30명이 사전에 정해진 위치로 이동했다.

그들의 목표는 그 위치에 마정석을 박는 것.

그것으로 케이라는 마법진을 활성화할 것이다.

공간 이동 방해 마법진.

본체가 또 공간 이동하면 진짜로 문제였기에, 무엇보다 필요한 작업이었다.

옛날에는 마정석도 부족하고, 사람도 없고, 케이라의 실력도 부족해서 그녀 스스로 돌아다니면서 그려야 했다.

하지만 달라는 대로 다 주는 미국 키퍼 협회와 함께하니, A급 마정석에 나눠 그리고 정확한 위치에 박아넣는 것으로 바꿀 수 있었다.

삐빅.

모든 신호가 도착했고, 케이라가 수인을 맺으며 마법진을 활성화했다.

순간 푸른빛의 선이 케이라로부터 빠져나갔다.

선의 각도로 보아 큰 원을 그린 듯했다.

꽤 강력한 마나의 파동이었는데, 테러범의 은신처 쪽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다.

드래곤이라면 당장 달려 나왔겠지만, 본체는 의식도 없이 이용당하고 있는 입장이다.

실시간 감시에는 약할 거라는 우리의 예상이 맞았다.

“(이제 놈들에게 철권을 먹여주는 일만 남은 거 맞겠죠?)”

“네, 맞아요. 본때를 보여주자고요.”

은신처의 전력이 어떨지는 모른다.

폭탄을 뛰어넘은 첨단 무기로 무장했을 가능성도 있고, S급 키퍼가 다수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도 과하게 준비했다.

로저스, 엘레나 포함 S급 키퍼만 넷, 나머지는 모두 A급 키퍼로 채웠다.

거기에 케이라와 블란카도 있다.

미국 키퍼 협회가 완전 작정을 하고 지원하는 중이었다.

이 정도의 재정적, 인적 지원이라면 웬만한 국가 하나와 전쟁을 해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마천루처럼 솟아오른 나무들 사이를 조금 걸으니 은신처의 입구가 나타났다.

약간의 공터와 숲지기의 헛간처럼 보이는 낡은 집.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그림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이곳은 사람들이 다니는 산책로와는 한참을 떨어진, 숲의 깊은 곳이다.

이 공터를 제외하고 주변은 이끼가 가득한 원시림 느낌인데, 이곳만 사람의 흔적이 닿을 수는 없다.

“(경비도 없네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공간 이동은 막았고, 이곳은 인적 하나 없는 깊은 숲속이다.

최강의 미국인이 우리에게 있는데, 우리가 쫄 이유는 하나도 없다.

로저스를 필두로, 키퍼들이 천천히 나아갔다.

저벅저벅.

우리가 문 앞에 도착했는데도 헛간에선 전혀 반응이 없었다.

“블란카, 지금도 여기 있는 거 맞아?”

“(응, 지하에 있어.)”

그렇다면 진행하는 수밖에 없다.

끼이익.

나무 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굉장한 퀄리티의 재현이다.

조금 쓸데없는 재현이기도 했다.

문만 삐걱거리면 뭐 하나,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내부는 너무 깨끗한데.

“(역시나 지하에 있나 봅니다.)”

헛간 가운데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에는 우리를 환영하는 듯이 조명도 켜져 있다.

“(주의해서 내려가야... 아, 먼저 옵니다. 모두 전투 준비!)”

로저스의 말이 끝나고 나서야 나도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다.

발소리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

먼저 튀어나온 사람은 양복을 입은 남자였다.

전투에 안 맞는 복장은 둘째로 치더라도, 남자의 운동 능력부터가 전투에 맞지 않았다.

그의 움직임은 딱 봐도 일반인이었다.

그는 무기도 없이 최강의 미국인에게 돌진했다.

탁.

로저스는 깔끔한 손날치기로 그 사람을 기절시켰다.

문제는 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

“****!”

“****!”

지하 계단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전부 일반인이었다.

로저스나 협회 키퍼들 모두 상대가 키퍼였다면 가차 없이 손을 썼을 것이다.

지하 계단이 무너지더라도, 땅을 다시 판다는 각오로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그럴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눈동자가 하얗게 변한 사람들, 딱 봐도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이들을 마음대로 죽일 수는 없었다.

설사 그들이 원래 지구해방작전 멤버라고 해도.

“(물러선다! 밖으로! 빨리!)”

로저스는 그 와중에도 그가 기절시킨 남자를 둘러업고 밖으로 나왔다.

그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면, 그는 사람들에게 짓밟혀 죽었을 게 뻔했다.

“****!”

“****!”

헛간 앞 작은 공터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나무 사이사이도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런데도 지하에서는 사람들이 계속 나왔다.

그들은 대부분 ‘죽어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사이에 끼어 있던 키퍼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화르륵.

10m 이상의 불꽃이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적어도 B급 이상의 키퍼.

막는 건 문제가 전혀 아니었다.

문제는 오히려 아래쪽에서 일어났다.

“끄아아악!”

“아악! ****!”

키퍼가 아닌 일반인, 불꽃에 화상을 입은 일반인의 비명이 숲을 채웠다.

적들은 우리처럼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너희들은 동료애가 없나!)”

“****(동료들도 너희들을 위해 죽는 거라면 천국에서 기뻐할 거다!)”

파지지직.

이번엔 번개다.

스파크를 맞은 일반인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대거 쓰러졌다.

“(멈춰! 멈추라고!)”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협회 키퍼 몇이 사람들 사이로 뛰어들었지만, 테러범 쪽 키퍼가 사람들 사이에 숨는 게 더 빨랐다.

협회 키퍼는 무작정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잡힐 뻔했다.

“****(너희들이 항복하면 멈춰주지! 왜 또 그건 싫은가?)”

“(이렇게 하면 세상이 너희를 가만히 둘 것 같아?)”

“****(어차피 세상은 키퍼가 민간인을 학살한 것만 기억하게 될 것이다!)”

화르르륵!

불꽃은 아까보다 더 커졌다.

이젠 대놓고 같은 편을 공격하는 것이다.

결국 협회 키퍼 중 한 명, 물을 무기로 쓰는 키퍼가 아래로 내려가 대신 불을 껐다.

그러다 그는 테러범의 공격에 한쪽 팔을 잃었다.

“크아아악!”

그를 공격한 테러범은 방금 막 등장한 사람이었다.

검은색 단검부터 시작해서 온몸이 검은 옷에, 피부도 검은 사람.

‘더 어쌔씬’ 제임스.

암살자 컨셉으로 미국 내에서 로저스와 인기를 양분하고 있는 S급 키퍼였다.

“(너, 너가 어떻게...!?)”

“****(악마를 죽이기 위해 악마가 됐을 뿐이다.)”

그가 끝이 아니었다.

제임스 옆에는 세 사람의 S급 키퍼가 더 있었다.

둘 다 키퍼로서 유명했다.

외국인인 내가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너희들의 계획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순순히 ‘리’를 내놓고 물러나면 여기서 끝내겠다. 너희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텐데?)”

어쌔씬이 하는 말이 뭔지는 모른다.

영어 사용자들의 표정이 굳는 걸 보면 충격적인 이야기인 모양이기는 한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개소리일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보다 블란카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블란카는 나무 위에 올라와서 불꽃이 일어났을 때부터 대책을 말했다.

“(저들은 지금 본체의 힘에 세뇌당하고 있구나. 내가 세뇌의 방향 정도는 꺾을 수 있다.)”

“어디로?”

“(원래 목표였던 그대라면 가능하겠지.)”

“나? 나만 쫓아오게 만들겠다는 거야?”

블란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인 즉, 내가 도망만 잘 치면 이곳은 키퍼들만 싸우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해!”

“(시원시원한 건 좋구나! 잠시만 기다려라.)”

그리고 어쌔씬이 나타났을 때, 모든 준비가 끝났다.

“(사람들 앞에서 외치면 된다. 내가 ‘리’라고!)”

나는 나무 아래로 뛰어내리면서 양팔을 쫙 펼쳤다.

“내가 리다!”

천 명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 모든 시선은 살의로 가득했다.

불특정 다수의 살의를 현장에서 견디는 거?

그들의 관심 어린 시선을 받는 것과는 비교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무형의 살의가 유형의 힘을 발휘하는 것마냥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할 수 있어.

믿자.

날 대단한 사람이라고 했던 케이라를 믿자.

사람들로 빽빽한 아래는 착지할 곳이 없었기에, 나는 한 사람의 어깨를 밟고 다시 뛰었다.

“쫓아와 보든가!”

남쪽, 우리가 처음 이동한 곳으로 가려고 몸을 돌린 순간, 섬뜩한 느낌이 내 목을 스쳐 간다.

그야말로 송곳, 아니 번개 같은 살의.

그 살의에 무심코 반응해 고개를 숙인다.

파스스.

검은 번개가 내 머리카락을 자르며 나를 지나쳐 갔다.

어쌔씬의 공격이다.

“****!”

“빨리! 멀리 가세요!”

단검과 함께 쫓아오는 어쌔씬은 엘레나가 막았다.

S급 키퍼 셋은 우리도 S급이 셋 있으니 문제없다.

그 외에 키퍼들은...

테러범 측의 키퍼 수가 적기를 기도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난 아직도 지하에서 올라오고 있는 일반인 수천 명에 키퍼들을 상대로도 도망쳐야 하니까.

나는 사람들의 어깨와 나무 기둥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좀비 영화 같아서 무서우니까.

“****(죽어라!)”

“****(지옥으로 꺼져! 이 악마!)”

젠장, 다들 쫓아오지 마!

물론 쫓아오라고 한 사람은 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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