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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106화 (106/137)

〈 106화 〉 chapter 15. 지구해방작전

* * *

106.

큰 폭발이었다.

지하 3층인 여기까지 흔들리고, 천장에서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건물이 무너지는 건 아니겠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나는 케이라 곁으로 움직였다.

엘레나는 공간이동을 느꼈을 때부터 내 옆에 붙어 있었다.

“(제가 올라가 보겠습니다! 테레사는 일반 마법진을 종료시켜 주세요! 엘레나님은 혹시 모를 적습을 대비해 주시고요. 믿겠습니다!)”

로저스가 바로 연구실을 떠났다.

“(제라스님, 베네시아님, 죄송하지만 오늘은 급히 돌아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보기를 희망하지.)”

“(무사하시길 바랍니다.)”

테레사는 협회 연구원들을 진두지휘해 베네시아를 역소환하고, 통신을 끊고, 연구실을 정리했다.

마정석을 금고에 넣고, 마법진과 마정석을 연결하는 장비를 치우고, 연구 자료를 백업했다.

그 사이에 위쪽에서 테레사에게 현재 상황에 대해 연락이 왔다.

“(20층 사무실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확인된 사망자 5명, 구조대기 중인 수십 명 이상입니다. 2차 테러가 예상됩니다. 지금 건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테레사는 협회 직원을 하나 붙여주며, 우리에게 빨리 탈출하라고 했다.

“(가시죠! 이쪽입니다!)”

당연히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지금 이 사태는 미국에서 일어났던 최악의 사건을 떠오르게 하고 있었으니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추가 폭발이 일어난다면 진짜로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52층 짜리 건물이 무너진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케이라, 지금 공간이동 방해 마법진을 설치할 수 있어?”

“이 건물 전체를 막으려면 적어도 5시간은 필요해...”

“혹시 공간이동이 일어난 곳으로 따라갈 수는 있어?”

“그건... 해볼게.”

케이라가 이제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가죽 로브 안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그녀는 그동안 거의 지팡이를 안 썼는데, 최근 사령술사의 지식을 계승한 후에는 마법사로서의 필요성을 느꼈는지 자주 꺼냈다.

그녀는 팔뚝만한 나무 지팡이를 연구실 바닥에 찍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마나를 뿜어내 연구실 바닥에 마법진을 그렸다.

지지직.

“(빨리 대피하셔야...)”

“혹시 B등급 마정석 하나 빌려주실 수 있나요? 다음 공간이동이 일어난다면, 그곳으로 갈 겁니다.”

“(네? 아, 네!)”

우리를 만류하려던 테레사도 바로 알아듣고는 마정석을 가져왔다.

케이라는 그 사이 마법진을 완성했고, 지팡이 옆에 마정석을 두었다.

“이걸로 됐어. 혹시 공간이동이 일어나면, 그곳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어. 이동할 사람은 나랑 너랑 엘레나면 되겠지? 엘레나, 가능하죠?”

“걱정마세요. 루의 힘은 모두를 지킬 수 있습니다.”

엘레나는 그녀의 검보다 유명한 방패를 들어 보였다.

그 무엇보다 든든할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우리의 뜻을 알아들은 테레사는 우리를 만류하기보다는 대피에 좀 더 신경 썼다.

여기까지가 대략 10분.

대피는 절반 쯤 완료됐고, 화재는 진압 됐으며, 사람들은 대부분 구출됐다는 소식이 연구실로 전해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폭발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영상 송출 중이랍니다. 바로 연결하겠습니다.)”

테레사가 연구실 스크린에 영상을 하나 띄웠다.

무채색의 벽지 앞에 검은 복면을 쓴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내가 모르는 언어로 말했다.

“(오늘 오후 3시 경, 미국 키퍼 협회 본부에서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이것은 경고다. 우리는 더 큰 폭발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은 미국 어딘가의 빌딩이 폭발에 휘말려 무너질 것이다. 폭발을 막는 방법은 딱 하나다. 일주일, 일주일 안에 ‘리’를 죽여라. 그는 악마, 이세계로부터 온 악마다.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지 마라. 우리도 사람들을 죽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악마를 죽여라. 그리고 깨달아라. 모든 키퍼가 악마라는 것을.)”

영상은 그걸로 끝이었다.

...빌어먹을.

욕지기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정확한 상황이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지금 당장 2차 테러는 없다.

“엘레나, 일단 폭발 현장으로 가 주세요. 엘레나의 신성 마법이 중상자를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

엘레나가 눈으로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이 자리를 뜨면 공격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하지만 난 테레사를 비롯해 연구에 미친 것 같은 연구원들이 그렇게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 중 키퍼는 한 사람도 없다.

우리의 안전이라면 나와 케이라만으로도 충분하다.

“가세요.”

“...알겠어요.”

그녀가 직원 한 명을 공주님 안기로 들고는 빠르게 연구실을 벗어났다.

“(미스터 리, 이건...)”

“일단 저는 이 자리에 그대로 있겠습니다. 도망칠 생각은 없으니 걱정 마세요.”

“(감사합니다.)”

“이해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폭탄을 공간 이동 시켜서 테러를 한다니.

지구에 마법사는 없는 게 아니었냐고.

“괜찮아?”

“안 괜찮아.”

내 목숨을 수백, 아니 수천 명과 연결시켰으니 괜찮을 리가 없다.

멈춰 있는 영상의 복면을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이 마구 올라왔다.

“후우...”

냉정해져야 한다.

이럴수록 더 냉정해져야...

“케이라, 어때? 방법이 떠올라?”

“지금은 아무것도...”

나도 모르겠다.

미국 땅이 얼마나 넓은데, 어떻게 폭발이 일어날 빌딩을 특정할지...

심지어 공간 이동 후 폭발이라 폭탄을 설치하기 위한 사전 준비 같은 것도 없다.

공간 이동 방해 마법진이 없으면 막을 수 없는 테러다.

“공간 이동 방해 마법진은 양산할 수 있어?”

“마법진이야 그릴 수 있지만, 발동은 마법사가 해야 해.”

“마법사를 일주일 안에 기를 수 있을까?”

“...어렵지.”

“하...”

차라지 내가 죽을까?

“...가짜로 죽는 방법은? 사령술사의 지식을 뒤져 보면...”

“차라리 그쪽이 더 가능성이 있을지도.”

테레사는 우리 옆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협회는... 아마 테러에 굴복하진 않겠지만, 이 사태는...)”

“마법이라는 신무기가 결합된 일이라 대처가 어렵겠죠. 이해는 합니다만...”

[이대로라면 도망치는 게 나을지도 몰라.]

케이라가 통역되는 말 대신 메시지 마법으로 내게 말했다.

[그냥 도망갈 수는 없어. 테러범이 무고한 시민을 죽이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그때, 케이라가 만들어둔 마법진이 빛을 냈다.

“...케이라?”

“공간 이동입니다. 일단 저희가 가보겠습니다.”

“(아! 잠깐만...)”

테레사의 뒷말은 못 들었다.

푸른빛이 시야를 가렸기 때문이다.

새로운 장소에서 나를 가장 먼저 반기는 건, 매캐한 탄 냄새와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였다.

그을린 벽, 부서진 천장, 조각나거나 타버린 사무용 가구들도 푸른빛이 사라진 시야 속에 차차 들어왔다.

어느새 내 앞에 서 있는 엘레나와 그 너머에 서 있는 로저스도 보였다.

이곳은 아마도 방금 전에 일어난 폭발의 한 가운데, 20층의 사무실인 것 같았다.

“엘레나? 또 폭탄인가요?”

“아닙니다. 직접 보시죠.”

엘레나가 내 앞에서 물러났다.

로저스 옆에 어린 아이 한 명이 쓰러져 있었다.

9­10세 쯤 됐을까?

백발에 가까운 백금발에 흰색 옷을 입고 있는 여자애였다.

“누구죠?”

“(방금 허공에서 나타났습니다. 정신만 잃은 것 같네요. 테러와 관련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폭발의 현장에 나타난 여자 아이라니.

누가 봐도 수상하다.

“2차 폭발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저희가 없어져서 당황하고 있을 테레사에게 연락을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아... 알겠습니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시 마십시오! 저희 미국은 테러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적들을 뜻을 꺾고, 친우를 지킬 것입니다!)”

이 시대의 캡틴 아메리카다운 말이다.

팬으로서 그에게 이런 말을 듣는 건 꿈꾸었던 일이지만, 맘 편하게 기뻐할 수만은 없다.

지금 이곳은 생각보다 분위기가 밝다.

매캐한 냄새가 나도 공기가 무겁지 않고, 폭발의 잔열이 남아 있는데도 오래된 폐허인 냥 분주한 느낌이 없다.

화재 현장에 있어야 할 고통의 비명이 안 들리는 게 밝은 분위기의 이유 중 하나였다.

엘레나와 치유 스킬을 가진 키퍼들이 많이 활약한 모양이다.

그리고 이곳엔 미국의 영웅, 마이클 로저스가 있다.

그가 어떤 활약을 하며 이 폭발의 현장을 영웅에게 환호하는 콘서트장으로 만들었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그만 있다면 이곳에도 또 폭발이 일어나도 아무렇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이곳에 있는 부상자들과 구조대원들에게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한 명 뿐이다.

치유 스킬을 가진 키퍼들도 그리 많지 않다.

이곳은 협회 본부니까 상시 대기하는 치유 키퍼들도 있었던 거고.

전미를 대상으로 이런 분위기를 만들 수는 없다.

당장 내일부터 모든 회사가 재택 근무를 채택할 수도 있다.

어떤 빌딩이 위험한지 아무도 모르니까.

지금쯤 미국은 혼란의 도가니일 것이다.

언론이 어떤 기사를 쏟아낼지 뻔하다.

한국 협회가 나를 악마로 몰아붙인 것과는 차원이 다른 부담감.

무엇보다 수백 명의 목숨이 달렸다는 걸 생각하면... 이건 맘 편히 도망갈 수도 없다.

“콜록.”

여자 아이가 기침했다.

아이는 천천히 눈을 떴다.

금안, 토파즈를 닯은 진한 금색이었다.

로저스가 아이의 등에 손을 대고 일으켰다.

“...”

아이가 천천히 사방을 둘러보면 한 사람 한 사람씩 눈을 맞추었다.

아이의 눈동자는 뱀처럼 세로로 길었다.

그러다 아이의 시선이 케이라에게 멈췄다.

“(그대가 케이라?)”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목소리.

이번에도 알 수 없는 언어다.

그래도 복면 남자는 언젠가 들어본 언어였다면, 아이가 쓰는 언어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언어였다.

본능적으로 아이가 이세계 출신인 것을 깨달았다.

“(지구 유일의 마법사라 들었다. 나를 도와라. 나를 구해준다면 내가 새로운 마법을 알려주겠다.)”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는 아이에게서는 그 외형과 다른 위엄이 느껴졌다.

케이라도 그걸 느꼈을까?

그녀는 아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

“마나의 주인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위대한 이여.”

[뭐야, 뭔데?]

내가 급하게 메시지 마법을 보내자, 아이도 느꼈다는 듯이 나를 본다.

뭐야? 진짜 마나의 주인이야?

“그렇지만 이런 모습으로는 그 위엄을 세울 수 없습니다. 드래곤이시여.”

...드래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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