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chapter 14. 미국 키퍼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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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이 마법진도 차원 좌표를 임의로 설정해서 뿌렸기에 지구까지 닿은 건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애송이!)”
“차원 좌표가 없으니까 어떻게 설정하든 알 수 없는 곳에 닿는 게 당연해요. 그런데 개념적으로 접근하면 차원 좌표를 쓸 생각을 아예 못할 텐데... 설마, 3차원 공간 이동 마법진에서 시작하신 건가요?”
“(그, 그게 뭐 어떻단 말이냐. 모로 가든 도로 가든 가기만 하면 되는 거지! 이렇게 성공했으면 된 거지 않느냐!)”
“차원의 바다에서는 차원이 없다. 2차원도, 3차원도, 4차원도, 19차원도 존재하지 않는다. 차원의 바다는 그 모든 것이기도 하며, 그 모든 것이 아니기도 하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이런 것도 모르면서 차원 이동에 도전하셨던 건 아니시겠죠?”
“(내, 내가 그것도 모를 것 같으냐! 당연히 이미 알고 있다!)”
제라스가 호통 쳤다.
목소리 크기가 들으면 제라스가 이긴 줄 알겠지만, 통역되어 들리는 그의 뜻에는 긴장이 한 껏 묻어나 있었다.
통역 마법 성능이 무슨 관심법 수준이다.
“그러시겠죠. 그런데 무슨 차원 좌표를 찾고 말고... 아, 혹시 최초의 좌표를 찾고 계시는 건가요?”
“(그래! 그거다! 내가 찾고 있는 건 그 좌표야. 너도 그걸 계산하는 법은 모르겠지?)”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모든 마법사들이 찾고 있는 꿈의 좌표죠. 그것만 있으면 차원의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을 테니까요.”
잠깐... 아까는 좌표 계산 못한다면서? 앞뒤가 안 맞잖아!
일의 전말을 모르니 이게 케이라가 놀리려고 한 말인지, 진심으로 한 말인지 분간이 안 간다.
“(그래도 애송이 너 정도의 실력이면 최초의 좌표에 대한 실마리를 가지고 있을 거 같은데, 아니냐?)”
“약간의 실마리는 있습니다만, 이미 제라스님도 알고 계시는 부분일 것 같네요.”
“(아니다! 그건 말하기 전에 모르는 거 아니냐.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다 알려주지. 발전은 교환과 토론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역시 마탑의 주인다우세요.”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건, 제라스가 케이라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는 거다.
저 정도면 악마가 아닌 건 확실.
거기다 미국 키퍼 협회 뒤에 제라스 이상의 비밀이 없다는 것도 거의 확실이다.
또 비밀로 하고 있는 일이 있을 수야 있겠지만... 나도 내 전부를 드러내진 않았으니 쌤쌤이로 치자.
저쪽에서 날 적대하지 않는 한 내가 먼저 칼을 들 필요는 없지.
내가 권력에 미친놈도 아니고.
“(진전이 있을까요?)”
테레사가 내게 물었다.
케이라와 제라스, 둘의 대화는 좀 더 전문적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이제 끼어들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조금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아무런 진전이 없다면 S급 마정석으로 하나를 버티는 이세계인에 대해 밝혀야 하는데, 그걸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건 그냥 일은 했다는 면피용일 뿐이다.
A급 마정석 하나 정도로만 줄여도 대박일 것 같은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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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 뒤.
“(아니, 어떻게 그 때 일을 알고 있습니까?)”
“진짜 팬이었으니까요. 그 때 얘기 좀 해주세요.”
“(그게 벌써 10년 전... 갑자기 발생한 게이트 폭주 때문에...)”
로저스가 직접 푸는 로저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니.
그것도 언론에 공개가 거의 안 된, 로저스가 이 시대의 캡틴 아메리카로 불리기 전의 이야기를 말이다.
내가 성덕이 되다니 믿을 수가 없다.
이쯤되면 불안해진다.
설마, 이 사람도, 한성민처럼 되는 건 아니겠지?
6시간 동안 우리는 각자 시간을 보냈다.
케이라와 제라스는 마법진을 보며 쉬지 않고 토론을 했으며, 베네시아는 그 옆에서 토론에 간간히 참여했다.
엘레나는 루에게 기도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로저스, 테레사와 대화를 하며 이것저것 들었다.
로저스에게는 옛날이야기를, 테레사에게는 마법진의 발견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법진은 그녀가 이전에 말했듯이 게이트 내 동굴벽에서 발견한 거였다.
연구실에 그려져 있는 소환 마법진 말고, 그 다음에 보여준 영상통화 마법진이 게이트 내에서 발견해 복사한 거였다.
영상통화 마법진은 B급 마정석 하나로 하루 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미국 키퍼 협회는 영상통화 마법진을 통해 제라스와 만났고, 제라스의 뜻에 동의했다.
‘나는 차원 이동을 하고 싶네. 도와줄 수 있나?’
미국 협회가 파악하는 바로는 그게 지구인이 최초로 이세계인과 만난 거였다.
테레사가 2월 13일이라고 했으니까, 나보다는 빨랐다.
나는 3월 1일에 각성했으니까.
최초의 이세계인이 차원 이동을 하고 싶다는 데 혹하지 않을 협회는 없다.
그것도 세계 최강국인 미국 협회라면.
그 뒤로 그들은 소환 마법진을 그렸고, 소환 실험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생물이 넘어왔고, 다음은 동물이 넘어왔으며, 마침내 인간까지 넘어오는 데 성공했다.
넘어온 건 주로 베네시아였지만, 제라스의 다른 제자들도 넘어왔다.
실험 정신이 투철한 제라스는 각기 다른 종의 제자들을 이동시켰고, 그 중에는 드워프와 오크도 있었다.
물건을 포함해서 차원을 넘어온 모든 것은 베세지아처럼 마법진을 벗어나면 투명해졌고, 결국 사라졌다.
보완할 점은 많았지만 어쨌든 성공했기에, 그들은 다음스텝도 진행했다.
바로 지구인이 저쪽 차원, 링스로 넘어가는 것.
그러나 이건 제대로 시작도 못했다.
지구에 제라스 정도의 마법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환, 정확하게는 차원 이동을 하려면 링스에서도 동시에 마법을 써야만 했다.
정확하게는 링스의 마법이 주고, 지구의 마법진은 부다.
링스에서 제라스가 일주일 동안 모은 마나 전부와 S급 마정석 하나를 써서 마법을 발동시키는 데, 발동 와중에 제라스는 그 모든 에너지와 그가 차원의 바다에서 모아둔 허무 에너지까지 컨트롤 해야만 했다.
그것도 2시간 연속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재능과 노력, 재력에 집념까지 갖춰줘야 가능한 일이다.
링스에서도 할 수 있는 건 제라스 뿐인데, 마법의 ‘마’자도 모르는 지구에 그런 인재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랬었으니, 지금 제라스가 신난 것도 자연스레 이해간다.
케이라의 지식이 자신에게 필적하고, 자신 정도의 마법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만 되면, 그의 평생소원인 이세계 방문을 할 수 있으니까.
처음엔 도발 때문에 언성을 높였다면, 지금 제라스는 기대감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말년에 재능 있는 제자를 받은 스승님 같다.
케이라도 기분이 좋은 것 같다.
마법을 주제로 심도 깊은 대화를 하는 것.
마법사인 그녀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때는 제가 아직 C급 키퍼였던 시절이라, 아주 힘들었죠. 하지만 사람들을 지키려는 마음만 있다면!)”
나도 아주 즐거웠다.
성덕이니까.
그리고 무한정 늘어날 것만 같던 즐거운 시간의 끝이 왔다.
“한 번쯤 시도해볼 가설이 생겼습니다.”
“(오! 그게 뭡니까? 무엇이 필요하죠?)”
케이라의 말에 테레사가 반색했다.
“A급 마정석을 하나 준비해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테레사는 연구실 한쪽의 문을 열고 사라졌다가, 바로 마정석을 들고 나타났다.
보는 순간 내 시야를 푸른색으로 물들일 정도로 마나 농도가 진한 푸른 돌, A급 마정석이었다.
A급이 저 정도면, S급은 대체...?
“정민아, 이쪽으로 와 봐.”
마정석을 건네받은 케이라가 자신 앞에 마정석을 띄워 놓고는 나를 불렀다.
“마정석에 마법진을 그릴 건데, 네 마나로 그릴 거야. 내 왼손에 마나를 흘려 보내주기만 하면 돼.”
“...괜찮겠어?”
내 마나가 몸에 흐르면 케이라는 성욕을 느끼게 된다.
그 상태에서 집중할 수 있을까?
“나는 성욕도 제어할 수 있어. 너나 조심하는 게 어때?”
“날 뭘로 보는 거야? 나야말로...”
“나한테 푹 빠져서 정신 못 차리는 퐁퐁남.”
아니, 지금 무슨 그런 심한 말...
나는 생각을 잇지 못했다.
당장 성욕 제어에 집중하지 않으면 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케이라가 내 귀에 대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나는 바로 풀발기했다.
성욕 제어를 아무리 해도 발기가 풀리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각도로 서서 케이라의 왼손을 잡았다.
“...두고 봐.”
바로 마나를 그녀에게 넘겼다.
평소라면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평온했다.
그녀에게서 피어오르는 성욕이 공중으로 흩어지는 게 보였다.
벌써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건가?
역시 성욕 몬스터답다.
그녀는 정기로 변환시키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다른 에너지를 다루기 힘들기 때문에 일단은 하지 않는다고.
케이라의 목표는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감정의 힘을 다루는 것이다.
사령술사의 지식을 계승하면서 새로 생긴 마법사로서의 목표다.
우우웅.
케이라는 내 마나를 사용해서 오른손 손가락으로 공중에 떠 있는 마정석에 마법진을 새기기 시작했다.
주먹만 한 돌에, 뱀처럼 생긴 룬어들을 빽빽하게 새겨 넣었다.
그냥 해도 힘든 일을, 내 마나를 사용해서 하고 있는 케이라의 이마에는 금세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닦아주고 싶은데, 방해할 게 분명해서 참았다.
키스하고 싶은데, 생각만으로도 자지가 더 크게 부풀어 올라서 참았다.
그렇게 10분 쯤 참았을까.
그녀가 마정석에서 손가락을 땠다.
마정석의 푸른빛이 마법진 때문에 검게 변한 상태였다.
“됐다. 수고했어, 정민아.”
“아, 음...”
케이라가 오른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머리를 넘겼는데, 그게 참...
으... 예쁘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여자 친구를 두니까 참 힘들다.
“베네시아, 이걸 가지고 밖에 한 번 나가 볼래요? 마정석 마나량 측정은 할 수 있죠? 초당 얼마나 빠지는 지 한 번 계산해 주세요.”
“(맡겨 주세요.)”
베네시아가 마정석을 받아들고, 마법진을 나갔다.
마정석을 든 덕분인지, 베네시아는 바로 투명해지지 않았다.
10초, 20초, ... 1분이 지나도 베네시아는 그대로였다.
그동안 마정석은 검은색 마법진을 뚫고 푸른빛을 냈는데, 그녀가 마법진 안으로 들어오자 다시 검은색으로 돌아왔다.
“어떻죠?”
“(정확하게 계산은 해봐야겠지만, 이 정도면 하루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됐어! 우리 이론이 맞았어! 멋지군!)”
“다행이에요. 주먹구구였다고 생각했는데.”
제라스가 크게 웃었고, 케이라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테레사와 로저스의 얼굴도 상당히 밝아졌다.
나도 입을 떡 벌렸다.
성공할 거라고는 믿었지만, 6시간 만에 성공한 게 맞아? 진짜야?
역시 케이라는... 천재?
“(이세계의 마나와 융합하는 방법이 역시 맞았어! 그동안은 마법사가 없어서 못했었는데... 자네 제자가 솜씨가 제법 뛰어나군. 그 정도의 마나 컨트롤이라니. 자네가 말해준 융합 비율 또한 신기해. 어떻게 그 비율을 안 거지?)”
“정민이는 뛰어난 제자예요. 알아낸 방법은 비밀입니다. 그리고 비율을 좀 더 개량할 필요가 있는 것 같네요.”
뛰어난 제자? 내가?
나한테 마법 가르쳐 줄 때는 그렇게 구박을 하더니... 저렇게 말할 거면 미리미리 좀 해주지.
야박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헤헤, 케이라에게 칭찬 받았다.
“(좋아, 이유야 차차 알면 되겠지. 비율도 개량하면 되고, 그리고...)”
“잠깐만요!”
그때였다.
케이라가 제라스의 말을 끊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녀는 천장 위에 뭐가 있다는 듯이 위를 쳐다봤다.
“공간이동...”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건물 위쪽에서 거대한 마나의 파동을 느꼈다.
그리고 10초 뒤, 건물이 진동했다.
콰아아앙!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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