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chapter 14. 미국 키퍼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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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미국 게이트 키퍼 협회 본부.
미국 6만 키퍼의 뜻을 대변하는 곳.
그만큼 위상이 높고, 위상이 높은 만큼 건물도 높았다.
지하 10층, 지상 52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었다.
한국 키퍼 협회 건물도 30층짜리 빌딩이었지만, 이곳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느낌이다.
간단한 기자 회견을 마치고, 우리는 이곳, 협회 본부로 왔다.
기자 회견은 정말로 간단했다.
사람이 많아서 버벅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케이라가 응원해 준 덕분에 잘 해냈다.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어색하다거나, 너드 같다거나 하는 말들은 하나도 없고, 신비하다, 멋있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내 외모가 의외로 이곳에서 먹히는 건지도?
물론 케이라와 엘레나에 대한 찬사에 비할 바는 아니다.
두 사람은 인형 같다, 여신이다라는 평가만 나오고 있었다.
아무튼,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공항부터 지금까지 실시간으로 우리를 찍고 있는 카메라가 있다는 게 문제였다.
사전에 촬영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었다.
카메라가 계속 보고 있으니까, 모든 말과 행동을 주의해야 했기 때문이다.
박세나가 카메라로 우리를 찍었던 생각도 나고 말이다.
그때는 찍는 줄도 모르고 할 말 안 할 말 다 했었는데.
어떤 면에서 보면 협회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소환사 미끼용 집에서 박세나가 나를 대놓고 유혹할 때 장면을 풀었으면, 내 이미지는 완전 바닥이었을 것이다.
박세나의 큰 가슴에서 눈을 못 땠으니까.
[다른 카메라는 없지?]
나는 케이라에게서 빌려온 차원 공통 백마법하급(C)으로 메시지 마법을 썼다.
[응. 이거 말고 다른 시선은 없어. 녹음기 같은 것도 없는 것 같고... 90%의 확률로 말이야.]
그동안 도청이니 감시 카메라니 하는 것에 우리는 상당히 취약했다.
하지만 케이라가 사령술사 베칸쵸의 지식을 흡수한 후에는 대응방법이 생겼다.
베칸쵸는 전자기기에 대한 방어 대책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케이라 말로는 3차원에 대적하기 위해 개발했다고 하는데, 이 이상 들어가면 나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여기까지 하겠다.
어쨌든 이제 눈뜨고 당할 일은 없어졌다는 거다.
정확도가 약간 떨어지긴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막말로 EMP같은 거라도 쓰지 않는 한 모든 감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까.
90% 정도면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케이라의 능력이 늘어날수록 좀 더 정확해진다고 하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
그녀는 이번에 A급 키퍼 수준으로 스탯이 올랐다.
이전에도 나와 함께 훈련을 하면서 스탯이 꽤 올랐지만, 이번 사령술사 지식 흡수를 통해서 한 번에 3이나 상승했다.
잠재력도 2나 오르고.
[신분:아르케니아인(임시체류중)]
[종족:인간]
[나이:21]
[레벨:41/53]
[체력:05][근력:02][민첩:02]
[마나:09][마력:08][친화:09]
[감각:05][신성:01]
[특성:푸른 눈의 계승자(S), 사령술사의 계승자(SS, 입문)]
[기술:푸른 마력(S, 마스터), 아르케니아 전통마법(A), 차원 공통 백마법(B), 차원 공통 흑마법하급(C), 필그림 이동법(B)]
안 그래도 든든한 케이라가 더욱 더 든든해졌다.
수백 년 동안이나 차원을 넘나들며 마법을 연구한 사령술사의 지식에는 없는 게 없었다.
나도 조금 더 강해졌다.
정확하게는 엘레나가 신성을 더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전에는 3초가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한계였는데, 지금은 5초 정도가 됐다.
이는 굉장히 큰 변화다.
이터널 게이트 앞에서 엘레나가 턴 언데드를 썼을 때 그녀에게 필요한 시간은 10초였다.
그때 나는 10초를 견디느라 온몸에서 피를 뿜어냈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머리가 쥐어짜지고 다리에 힘이 풀리며, 인세에 다시없을 고통이 찾아오는 건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피를 토하지는 않았다.
회복도 빠르고 말이다.
이번에 강해진 것도 사령술사의 지식을 통해서다.
악마 선배답게, 증폭된 감정의 힘을 어떻게 다루는지 상세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엘레나는 자기만 강해질 수 없다며 한탄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녀는 잠재력 한계까지 스탯을 끌어올렸기 때문에, 더 강해질 곳이 없다.
나랑 섹스해서 올라가는 잠재력도 미미했다.
50이후의 잠재력은 체류계약의 영향으로는 거의 올라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여기예요.)”
우리를 건물 지하로 안내한 테레사가 문 앞에서 멈췄다.
“(안은 마법 연구실입니다. 이제 곧 미국의 이세계인을 만나실 겁니다.)”
테레사가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이 카메라는 우리를 찍고 있었지만, 우리가 주 목적은 아니었다.
이 카메라, 그러니까 이 방송의 목적은 미국의 이세계인을 소개하는 거였다.
한국 방송에서 공개된 미국인도 몰랐던 미국의 이세계인.
미국인과 언론이 난리나는 것도 당연했다.
하루 빨리 공개하라는 압박이 사방에서 밀려드는 상황이었다.
미국 협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며 넘어가려 했지만, 세금이 들어가는 단체가 국민에게 공개하지 못할 것이 뭐냐는 이야기만 돌아왔다.
결국 협회가 선택한 건 나의 방문과 함께 생방송으로 모든 것을 공개하겠다는 것.
기자 회견 장에 사람이 그렇게 많았던 것 중에 이런 이유도 있었다.
바로 며칠 전에 결정된 생방송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탓이다.
생방송은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미국 협회 쪽의 부탁이라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그들이 나 때문에 힘든 상황에 처했다는 건 백퍼센트 공감했으니까.
테레사가 문을 열었고, 연구실 내부가 드러났다.
연구실 내부에는 커다란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지름이 약 30m 쯤 되는 마법진으로, 마법진 내부에 글자가 빼곡히 들어찼다.
마법진 외곽에는 B급 마정석으로 보이는 돌이 수십 개 꽂혀 있고.
마법진 중앙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귀만 봐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나나리루리 베네시아.
영상으로 봤었던 귀가 긴 녹색 머리 엘프가 카메라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 나나리루리 베네시아닙니다.)”
인사가 두 번 들린 건, 통역 마법 덕이었다.
그녀가 한 번은 자기가 쓰는 모국어로, 한 번은 영어로 했기 때문이다.
“(통역 마법을 걸겠습니다.)”
“(오늘은 안 그래도 됩니다. 여기 머스탱님이 이미 통역 마법을 걸어주셨습니다.)”
테레사가 케이라를 가리키자, 베네시아의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그녀가 감사를 표현하며 고개를 숙였다.
“(제가 할 일을 대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어려운 일도 아니에요.”
녹색 머리 엘프와 푸른 머리 마법사가 인사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신비로웠다.
시청률 올라가는 소리가 내 귀에 마구 들린다.
“(제가 사는 차원은 링스라고 합니다. 머스탱님의 차원은 어디인가요?)”
“아르케니아예요.”
“(...다른 곳이군요. 지구 말고도 다른 차원의 존재는 처음입니다.)”
놀랍고 신기한 게 분명한 말이지만, 베네시아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대신 귀가 느낌표처럼 하늘 위로 올라갔다.
엘프는 귀로 감정을 표현하는 건가?
“(지구가 만남의 장이 된 것 같아서 기쁘네요. 두 분이 이야기를 풀 기회는 차차 드리겠습니다. 우선은 우리 국민들의 궁금증을 풀어야 할 것 같아서요.)”
테레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녀는 마법진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마법진은 게이트 내 동굴에 그려진 것을 복사한 것입니다. 마법진을 구동하는 데는 B등급 마정석 30개가 필요하고, 하루 정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면 소환이 취소되고, 베네시아님은 돌아가야 합니다. 자주 소환할 수 없다는 점, 여러분들이 이해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법진에 관한 이야기는 사전에 들었다.
B등급 마정석 30개면 대략 600억 원이다.
천조국이라도 마구 사용할 수 있는 돈은 아니겠지.
“(그리고 베네시아님은 그 하루 동안에도 이 마법진을 나갈 수가 없습니다. 저희 팀이 밤낮으로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케이라가 투명해지는 것과 비슷할 것으로 짐작된다.
테레사의 말과 달리 어떻게 해결은 했다고 이것 역시 사전에 들었다.
다만 그게 소환 이상으로 마정석이 들어가는 일이라 진짜로 해결된 게 아닐 뿐.
“(저희 키퍼 협회에서는 이런 문제들 때문에 그간 공개하기를 꺼렸던 것입니다. 이건 소환에 성공했다고 하기엔 어려우니까요. 그러다 이번에 공개를 결심하게 된 건, 히어로 리와 마법사 머스탱님께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이 모든 공개는 한국에서 이세계인이 나왔다고 먼저 공개해 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미국 키퍼 협회 입장에서는 기술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에 이세계인을 공개하고 싶었겠지만, 그런 기회는 내 존재와 한국 키퍼 협회의 삽질 때문에 날아가 버렸다.
다음으로 미국 협회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이런 거다.
‘부족한 기술이지만, 우리도 따라가고 있다.’
이래야 여론이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가지, 이세계인 문제에 어떤 대응도 없다면 협회에 압박을 주는 여론이 반드시 생길 것이다.
이미 중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들의 협회도 압박을 받고 있다.
그들 중에는 우리도 이세계인이 있다고 말한 나라도 있으며, 미국처럼 투명하게 공개할 거라고 말하는 나라도 있었다.
그리고 미국 협회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나’를 초청해서 이런 이미지를 얻기 원했다.
‘우리는 최신 기술을 도입해서 바로 따라갈 것이다.’
그게 성공하든 안 하든, 노력하고 무언가를 한다는 이미지는 중요한 일이다.
협회는 기본적으로 이익을 위한 집단이 아니라, 정치적인 집단이니까.
미국 협회가 나를 도와준 건, 이 모든 계산 후에 한 일이다.
단순히 신용산이 딴딴이를 통제할까 무서워서 도운 게 아니다.
당연히 나도,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수장님과 의논 후 움직이는 거다.
생방송은 바로 며칠 전에 결정 됐지만, 공개 및 조언 부탁에 관해서는 처음 초청 받았을 때부터 들었고, 이미 상세한 조율을 끝낸 이야기였다.
“제 능력은 게이트 은혜라 큰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케이라의 마법은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나와 케이라가 카메라를 보면서 한국어로 이야기했고, 테레사가 그걸 통역 마법으로 알아듣고 영어로 옮겼다.
“(감사합니다. 미국 키퍼 협회는 당신의 도움을 꼭 기억할 겁니다. 그리고 꼭 성과를 낼 것입니다.)”
그들은 반드시 성과를 낼 것이다.
어쨌든 마정석을 때려 부으면 베네시아가 마법진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하니까.
우리가 실패해도 그에 대한 대책이 있는 것이다.
그 후로는 베네시아와 우리 일행들의 담소 및 질의응답이 이어졌고, 테레사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카메라가 꺼졌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좀 쉬고 싶지만, 베네시아님이 하루 뒤에 돌아가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드르륵.
연구실 좌측 벽이 열리고, 연구실만한 공간이 드러났다.
그곳에는 새로운 마법진과 그 위에 떠 있는 화면이 있었다.
화면에는 마법사로 짐작되는 노년의 인간 얼굴이 떠 있다.
“(안녕하신가. 나는 제라스라네. 반가워, 이계의 친구들.)”
아마도 저 사람이, 이곳 마법진의 진짜 비밀.
다른 이야기는 한국에서 다 들었지만, 제라스의 존재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직접 보기 위해 이곳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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