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chapter 14. 미국 키퍼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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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저게 진짜 난다니...”
케이라는 공항 창문에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비행기를 수도 없이 봤겠지만, 실제로 보니 또 신기한 모양이다.
“마나도 하나 없이 저 큰 게 난다는 게 말이 돼? 진짜 말이 되냐고!”
그녀의 눈이 반짝인다.
저런 표정의 케이라는 정말 간만이다.
최근 무력하니 마니 하면서 침울해 있었는데, 완전히 극복한 것 같아 다행이다.
다음에 신용산, 아니다 항구에 가볼까?
“조금 있다 직접 타서 쓰러지지나 말아.”
“쓰러져도 좋아. 쓰러져도 땅으로 떨어지지 않잖아!”
마법으로 하늘을 날려면 엄청나게 힘들지만, 비행기야 푹 자도 괜찮으니까.
비행기란 걸 만들어서 하늘을 날다니, 곰곰이 생각하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우와...”
케이라가 다시 공항 창문에 붙어서 움직이는 비행기들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어린 아이 같다.
케이라와 나 사이에 아이가 있다면...
지금은 계획이 없지만... 언젠가는 낳게 될지도?
솔직히 상상은 안 가지만, 반드시 올 미래이기는 하다.
아버지로서 지금부터 준비해야?
그 준비 중 하나는 이런 거다.
“엘레나는 안 신기해요?”
“저는 이미 놀라는 걸 포기했어요. 하나하나 놀라다간 제 정신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요.”
“현명한 선택이네요.”
“다 루님의 지혜예요.”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이마에 대며 기도 자세를 취하는 엘레나.
무의식적으로 기도하다가 후다닥 하고 손을 내린다.
최근에 드래곤 X를 본 영향이다.
그녀의 기도 자세가 지구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알고나서 엘레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녀가 무심코 하는 행동이 ‘루’의 품위를 낮추게 되는 일이 되어 버리면 안 되니까.
그러나 그런 고상한 고민과 상관없이, 엘레나의 얼굴은 빨갛다.
저건 그냥 부끄러워하는 거다.
“나연 누나, 내가 없어도 수장님을 잘 부탁해.”
“언니는 걱정하지 마. 너 따위 없어도 내가 있으면 충분하니까.”
나연 누나가 팔짱을 끼고서 늠름하게 서 있다.
팔짱 위에 걸쳐진 가슴 두 개를 어젯밤 밤새도록 주물렀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늠름하기보다는 애로하게 보인다.
나와 수장님의 공격에 목놓아 신음을 질렀으면서, 저런 식으로 우쭐대는 모습이라니.
또 괴롭혀주고 싶다.
씨익.
“뭐, 뭐야... 뭐, 불만 있어?”
“아니, 믿음직해서 그렇지.”
나연 누나는 어제 수장님과 레즈비언 섹스를 했다.
내가 없을 때의 대책이다.
수장님은 기본이 지구인이라서 이세계체류계약에 매여 있진 않았다.
주 1회 섹스를 안 해도 투명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만 그녀가 서큐버스라는 사실은 지구인이라는 사실과 전혀 관련이 없었다.
즉, 그녀는 매일 정기를 모아야만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잊고 있었던 사실이다.
주 1회만 챙기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면 그동안 수장님이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했냐하면, 그게 또 수장님의 치밀함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내가 있을 때야 당연히 내게서 정액을 뺏어갔다.
주로 아침마다 말없이 와서는 펠라를 했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없는 때는, 전부 해서 일주일 정도였는데, 다른 사람의 꿈에 들어갔다고 한다.
꿈이라도 남자의 꿈 속에서 정액을 취한다는 게 좀 맘에 안 들었는데, 수장님은 내 생각을 꿰뚫고 있다는 듯이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나연이의 꿈에서 정기를 취했어요.’
알고 보니 남녀 상관이 없었던 것.
괜히 성욕의 악마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남자에게서 빼앗는 것보다 효율은 안 나오지만, 여자에게서도 하루 살만큼의 에너지는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수장님은 나연 누나의 꿈에서 주로 내 모습을 하고서 나연 누나와 섹스를 했다.
그건 수장님의 뜻은 아니고, 꿈의 주인인 나연 누나의 소원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나연 누나는 매일 밤 나와 섹스 하는 꿈을 꿨다는 것이다.
수장님이 나와 나연 누나를 이어준 것 또한 그 꿈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연 누나가 날 그토록 원하는 걸 알았기에, 수장님은 기회를 찾았고, 그게 할아버지 댁에서의 일이다.
그날 방음 결계가 풀린 건, 수장님의 실수가 아니라 계획이었다고.
수장님은 주제넘게 행동해서 죄송하다고 나중에 사과했지만, 난 오히려 좋았다.
나도 나연 누나를 안고 싶었으니까.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수장님은 매일 정기를 섭취해야 하고, 그건 여자에게서라도 상관없다는 것.
지금처럼 나연 누나의 꿈에 들어가서 정기를 취해도 되지만, 정기를 취하는 데는 역시 현실이 효율이 좋다.
그래서 수장님은 내가 없는 동안 나연 누나와 레즈비언 섹스를 하기로 했다.
듣기만 해도 흥분되는 주제인데, 어제 직접 보니 역시나 였다.
아리따운 쌍둥이가 딜도를 박고 서로를 위로하는 장면은 최고였다.
처음이라 어색할 줄 알았지만, 서큐버스는 서큐버스인지, 수장님이 모든 것을 리드했다.
저렇게 늠름한 표정을 짓는 나연 누나는 그저 정신을 잃었을 뿐이다.
“빠, 빨리 안 오면 언니는 널 잊게 될 거야. 어제 내가 하는 걸 봤다면 알지?”
“알아. 최대한 빨리 올게. 수장님도 누나도 날 잊게 되면 큰일이잖아.”
“내가 널 언제 잊는... 그렇지, 빨리 안 오면 다 잊고 새로운 사람 찾을 거라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내가 빨리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이 그냥 눈에 다 보인다.
나연 누나는 아직 이런 대화를 어색해 하지만, 이제 곧 저 순박함을 잊어버리게 될 거다.
케이라야 처음부터 달관한 사람처럼 말했고, 그나마 부끄러움이 많은 엘레나도 최근에는 덤덤해졌으니까.
얼굴이 달아오른 나연 누나의 모습을 꽤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귀한 표정이니까 지금 열심히 봐 둬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미국 협회에 안 간다고 연락을 할까요?”
나리 누나, 수장님이 얼굴에 걱정을 띄우고는 물었다.
철벽의 포커 페이스가 깨지다니.
이것도 귀한 표정이니 눈에 담아두어야 한다.
수장님과 대화만 끝내면, 아버지로서의 준비는 끝난다.
수연이랑은 조금 전에 영상 통화로 얘기를 나눴으니, 내 여자들 모두 하고 담소를 나눈 셈이다.
하렘의 주인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것.
그게 내 아버지로서의 준비다.
애들이 생기면 그 애들도 하나하나 다 챙겨줘야 할 텐데... 그러면 온종일 대화만 하다가 하루가 끝나게 되는 거 아닐까?
흠... 그래도 싫지 않은 거 보면 욕심이 아직 그득그득한 모양이다.
“괜찮아요. 이미 가기로 한 거, 가야죠. 이제 곧 비행기가 뜰 텐데요.”
“비행기야 취소하면 그만입니다. 저쪽에서의 불만은 신용산에 부탁하면 해결되고요.”
딴딴이만 조금 넘겨주면 협회도 크게 불만은 없을 것이다.
신용산이야, 이제 한가족이나 다름없다.
수연이를 제외하고서라도 그렇다.
저번에 연대를 이뤄 협회를 공격한 일이 컸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GGC와 신용산을 하나 취급하고 있다.
“갈 거예요. 그러고 싶으니까요.”
엘프를 보고 싶은 것은 진심이다.
어차피 이세계로 가면 볼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 이세계를 언제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스킬 숙련도가 %로 상태창에 표시되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
이제 곧 인 거 같기는 한데, 그 곧이 언제인지는 또 모른다.
이미 돌아왔을 것 같은 소환게이트의 쿨타임은 아직도 안 돌아왔으니까.
그래서 가고 싶다.
가서 엘프를 보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
솔직히 지구에서 이세계 관련된 일에 내가 빠지는 게 말이 안 된다.
이미 사람들에게 이세계 전문가로 알려졌으니까.
“...위험합니다. 분명 정민씨를 가만 두지 않을 겁니다.”
수장님이 내 미국행을 막는 건 이것 때문이다.
미국 키퍼 협회에서 내게 어떤 짓을 할지 모르니까.
한국 키퍼 협회의 수작이야 할아버지, 수장님, 신용산 크루의 도움으로 이겼지만, 미국에는 내 편이 없다.
확실히 위험하다.
위험하긴 한데...
“괜찮아요, 수장. 이동은 언제나 가능하니까요.”
케이라가 나섰다.
그녀는 만약을 대비해서 GGC크루 하우스에 공간 이동 대응 마법진을 그렸다.
지구 어디에 있든지 이동할 수 있는 마법진이었다.
그녀가 이번에 사령술사의 기억 속에서 새로 배운 마법이었다.
마법만 알아서는 안 되고, S급 마정석도 필요하지만, 어쨌든 한순간에 이동이 가능했다.
“이동할 때까지 시간은 제가 벌겠어요.”
엘레나도 보탰다.
S급 키퍼, 정확하게는 그 이상의 힘을 지닌 엘레나의 보증이다.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완강히 반대하던 수장님이 물러났다.
그리고,
“제가 가고 싶어요. 거기는 이세계인을 어떻게 부른 건지도 알고 싶고요.”
무엇보다 내 뜻이 확고했다.
이세계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다.
나 같은 기술을 가진 사람이 또 있는지도 궁금했고, 그게 아니라면 무슨 수를 썼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야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내가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알겠어요. 잘 다녀오세요.”
“네, 금방 다녀올게요.”
2021년 가을.
나는 미국 키퍼 협회의 초청으로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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