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chapter 12. 메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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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폭주하는 성욕을 제어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웠다.
백화를 피우는 것처럼 터트리는 거라면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성욕을 제어해서 마나로, 다시 생명력으로 바꾸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쭈글쭈글해진 내 피부가 되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생명력을 다 써 버린 나는 재가 되어 스러질 테니까.
내게서 마력을 받을 수 없는 케이라와 엘레나도 투명해져 버릴 테니까.
그래도 어떻게 해냈다.
폭주하는 성욕이 온몸을 쏘다니며 세포들을 죽이고 살릴 때도, 정신력의 한계에서 삶과 죽음이 오락가락할 때도, 성욕 때문에 자지가 부풀어 올라 터지려고 할 때도, 억지로 버티고 넘겼다.
나는 1시간 동안이나 사투를 벌였고, 이전보다 더 건강한 상태로 회복했다.
일종의 환골탈태가 아닐까 싶다.
온몸의 수분을 다 뺐다가, 다시 채웠으니까.
그리고 환골탈태에 걸맞은 효과도 있었다.
[이세계체류계약의 숙련도가 올라갑니다.]
[이세계체류계약이 새로운 이세계의 기운과 접촉합니다. 차원 칼디, 차원 가비, 차원 창을 비롯 총 8개의 기운을 흡수합니다.]
[8개의 기운이 기존 기운과 반응합니다. 차원 칼디, 차원 가비의 기운은 강하게 반응하지만, 다른 6개 차원의 기운은 미약합니다.]
[잠재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28/29 > 28/32]
[계약을 통해 8가지 차원의 새로운 기운을 접했습니다. 잠재력 상승 폭이 늘어납니다. 지금은 ‘중’ 상승입니다.]
계약이 메이드에게 남아 있던 사령술사의 기운을 흡수한 모양이다.
이제 진짜 B급 키퍼가 눈앞이다.
이세계체류계약도 곧 숙련도가 한 단계 상승할 것 같다.
수치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진다.
“...끄윽, 끅...”
케이라는 내가 깨어난 것을 보고 울음을 터트렸다.
이번엔 진짜 죽는 줄 알았단다.
1시간 동안이나 경련을 일으키며 피를 토하는 걸 봤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못 할 짓을 했다.
“괜찮아요. 죽을 것처럼 피곤할 뿐이지, 죽지는 않아요. 이거 봐요.”
“흐어어억, 흐아아앙.”
케이라는 서럽게 울었다.
이전에는 눈에서 습기도 보기가 힘들었는데, 앞으로는 반대로 울보가 되는 거 아닌가?
“너는 괜찮아?”
“나는 괜찮아. 끅, 건강해.”
“엘레나는?”
“저는 괜찮아요. 다시 깨어나셔서 다행이에요, 정민님.”
엘레나는 케이라 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에도 물기가 가득하다.
“정말로 루의 도우심이에요. 진짜 다행이에요.”
기도 자세를 취하는 엘레나를 따라 나도 기도 자세를 취했다.
다시 살아난 건 정말로 루 덕분이기도 하다.
신성 4가 넘어오는 게이트를 몇 번이고 경험했으니까 이 성욕을 다룰 수 있었다.
“이런 때에 도움이 못 되는 성직자라니... 정말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엘레나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리고 엘레나는 엘레나 그 자체로 소중하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요.”
“정민님...”
엘레나는 텐트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혀 몰랐다.
이게 다 케이라가 설치해 둔 마법진의 힘이다.
소리, 기척, 마나 등 모든 것들을 차단하는 마법진 덕에 밖의 사람들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나의 섹스가 그만큼 격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저 정도의 마법진이 아니면 밖에서 다 알게 되니까.
그래도 마나를 기반으로 일어나는 일이라면 엘레나가 알았겠지만, 성욕은 엘레나에게 아직도 생소한 힘이다.
그녀는 내가 쓰러지고, 케이라의 연락을 받고서야 텐트로 들어왔다고 했다.
쓰러진 나에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회복 마법도 내 몸에 생명력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거지, 99%는 죽은 사람에게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인가요?”
“메이드가 케이라 몸에 빙의한 것 같은데요.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내가 아는 것은 그게 다였다.
마지막에 가게 해주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게 통했고.
“...그건 내가 말해줄게.”
“케이라가 어떻게 알아?”
“빙의 당했었으니까.”
케이라에겐 빙의한 메이드의 흔적이 남았다고 했다.
그녀는 그 흔적에서 메이드의 기억을 읽어냈고, 일의 전말을 다 알고 있었다.
“메이드는 이다혜라는 사람이었대.”
케이라가 메이드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철원에 살던 인간이 베칸쵸와 만나 메이드가 된 이야기.
베칸쵸의 마지막 마법에 이끌려 이터널 게이트까지 온 이야기.
성욕 덕분에 처녀 귀신으로 재탄생하고, 결국 성불한 것까지.
듣고 나니 조금 안쓰러웠다.
베칸쵸 이후부터 그녀의 인생은 없었으니까.
“...그나마 성불했으니 다행인가?”
“그녀는 마지막에 진짜로 만족했어. 너랑 했으니 좋았을 거야.”
나도 모르게 실실 웃을 뻔했지만, 참았다.
케이라의 말속에 뼈가 느껴졌다.
웃었으면 복부에 주먹이 하나 들어왔을 거다.
“성불했으면 이제 리젠은 안 되는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성불한 건 이번의 흔적이고, 리젠은 다시 원래의 메이드로 될 거예요. 우리 통로도 이렇게 남았잖아요.”
“통로요?”
어?
케이라가 어떻게 알지?
나는 내 왼쪽 어깨에 여전히 통로가 연결되어 있는 걸 느끼고 있다.
원래라면 케이라는 통로의 존재를 몰라야 했다.
“베칸쵸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통로요. 이번에 조금 변질 돼서 성욕도 함께 뽑아내고 있어요.”
그 말 그대로다.
통로에서는 성욕과 사령술사의 에너지가 둘 다 나가고 있다.
“그런데 케이라가 그걸 어떻게 알아? 원래 못 느꼈잖아?”
“그건 내가 사령술사의 기억까지 읽을 수 있기 때문이야.”
“뭐?”
케이라가 눈을 빛내며 이야기했다.
남은 것은 메이드의 기억뿐만이 아니었다.
메이드가 가지고 있던 사령술사의 기억까지 남았다고 한다.
대박이다.
사령술사의 기억은 단순히 사령술사의 삶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사령술사의 경험, 지혜, 지식, 무엇보다도 사령술사의 마법이 포함된 사령술사의 모든 것이었다.
“그럼... 사령술사의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야?”
“전부는 아니고, 일부만. 게다가 그의 기억은 수백 년짜리라 일단은 봉인해놨어. 잘못하면 내가 먹힐 수도 있어서. 차차 더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일부만 해도 그게 어디야. 차원을 넘는 마법사의 마법인데!”
사령술사의 힘은 누가 뭐래도 그 마법에서 나온다.
그가 그걸 보여줄 기회는 적었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마법을 쓰기 시작했다면 우리는 다 죽었을 것이다.
이번 이터널 게이트 사태도 전부 그가 손을 쓴 탓에 일어난 거니까.
그가 방심하지 않고 묠니르를 들고튀었다면, 한국은 그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를 이긴 것은 진짜 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맞아. 그래서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케이라가 눈을 감고 내 왼쪽 어깨에 손을 올렸다.
사령술사가 남겨 놓은 통로 바로 위였다.
우웅.
나는 통로에서 성욕이 움직이는 걸 느끼고 깜짝 놀랐다.
서큐버스도 아니면서, 케이라는 성욕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사령술사의 에너지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우우웅.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통로가 스르르 사라졌다.
지난 3주간 마음속 짐이었던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케이라! 진짜 멋있어! 사령술사의 에너지도 움직일 수 있는 거야?”
“조금만. 내가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거엔 영향을 줄 수 있어. 아무튼 이제 없어진 거지?”
“응. 깨끗하게 없어졌어.”
이어서 케이라는 자기와 연결된 통로와 엘레나에게 연결된 통로도 없앴다.
“수연이랑 세나씨도 없애면 되겠다.”
“그럴 거야.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야.”
“또 뭐가 더 있어?”
“메이드를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어.”
나와 엘레나가 놀라는 와중에 케이라가 사정을 설명했다.
“일주일이면 돼.”
케이라가 메이드를 소멸시키는 게 걸리는 시간이다.
지금은 모르지만, 사령술사의 기억에서 필요한 마법을 끄집어내면 가능하다고 했다.
메이드를 이터널 게이트와 합친 마법을 역순으로 펼치면 된다고 한다.
“좋아, 부탁할게. 믿고 있어.”
“응, 맡겨 줘.”
케이라가 환하게 웃었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웃음이었다.
메이드에 관해 아무런 답을 못 내던 그간의 마음고생이 한 번에 씻겨 나간 걸까.
여러모로 다행이다.
+++
일주일 후, 우리는 메이드가 리젠 안 되는 걸 확인하고 이터널 게이트를 나왔다.
메이드를 완전 소멸시키기 위해서 케이라가 굉장히 고생했다.
처음에 지웠던 크기의 마법진을 또 그리고 나서야 성공했으니까.
나오자마자 우리를 반긴 건 수장님이었다.
수장님은 중간에 마력 충전 관계로 이터널 게이트에 들어왔었기 때문에 일주일만은 아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메이드는 끝난 건가요?”
“네, 케이라가 완벽하게 정리했어요.”
길고 긴 싸움의 끝이다.
따지고 보면 서큐버스 때가 시작이니까... 거의 2달에 걸친 일이 마무리됐다고 할 수 있다.
“다행입니다. 그럼 이제 다음 스케쥴을 진행할 수 있겠네요.”
“그거죠?”
“네. 저희 할아버지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김나리, 김나연 자매의 할아버지.
전 국정원장 김웅찬을 만나야 할 시간이었다.
그게 그가 저번 협회 사건 때 나를 도와준 조건이었다.
가서 혼나는 건 아니겠지?
수장님 일로?
에이... 그건 사생활... 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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