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chapter 12. 메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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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이다혜.
정민 일행에게 ‘메이드’라고 불리는 여자.
긴 생머리와 깨끗한 피부로 와곡리 새마을금고 퀸이었던 여자.
철원군 근남면 와곡리 번화가 총각들이 한 번쯤은 마음에 품었던 ‘모두의 여자.’
그녀는 갑자기 닥친 재앙으로 인해 인생을 잃어버렸다.
사령술사 베칸쵸.
서큐버스 킴리나가 보낸 신호를 쫓아 이곳에 도착한 베칸쵸는 이다혜의 집에 무단 침입했다.
그는 그녀의 부모와 동생을 도시락으로 삼았으며, 그녀의 정신을 봉인해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그때부터 그녀의 삶은 없었다.
하루 종일 베칸쵸의 시중을 드는 게 그녀의 삶이 되었다.
부모가 비명을 지르며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봐야만 했다.
동생의 휠체어를 베칸쵸 앞으로 직접 끌고 와야만 했다.
자지 않는 베칸쵸 때문에, 거의 한 달 동안이나 깨어 있어야만 했다.
메이드복이라는, 전에는 생각도 못 한 복장을 입기도 했다.
메이드복 차림으로, 베칸쵸가 좋아하는 와인과 치즈를 사러 마트를 방문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결국은, 봉인된 정신마저 지워지는 신세가 됐다.
그녀의 육체는 남았지만, 그녀는 죽어 버리고 만 것이다.
죽은 게 차라리 다행일 수도 있다.
봉인된 상태에서도 모든 것을 보고 들은 그녀의 정신은 이미 만신창이였으니까.
살아도 산 게 아닌 삶이니, 죽음이 오히려 그녀에겐 복이었을 것이다.
특히나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사령술사에게 잡힌 것 치고는, 깔끔한 죽음이었다.
그래도 산 사람이 삶을 싫어할 리가 없다.
봉인된 상태에서도 삶을 갈구했던 그녀는, 죽기 전에 작은 흔적을 남겼다.
‘이다혜’의 ‘ㅇ’도 안 될, 굳이 따지자면 동그라미 시작점의 픽셀을 쪼개서 그중 하나의 픽셀이라고 불릴만한 작은 흔적이 그녀의 몸에 남았다.
그 흔적엔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저 이다혜란 존재가 이곳에 살았다는 걸 증명하는 그림 같은 거였다.
그래서 베칸쵸가 이다혜의 몸에 들어왔을 때 아무런 방패막이 되어주지 못했고, 이다혜가 마법진에 입력된 마지막 정보를 따라 이터널 게이트로 들어갔을 때도 그냥 끌려갔을 뿐이었다.
흔적은 흔적일 뿐이니까.
이터널 게이트가 열린 후에도, 흔적은 이다혜, 이제는 ‘메이드’라고 불러야할 생명체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메이드가 게이트 밖을 공격하려고 스켈레톤을 모을 때도.
메이드가 한성민을 쫓아 공간 이동할 때도,
리젠 후에 또 스켈레톤을 모을 때도,
이터널 게이트 앞에서 키퍼들과 싸울 때도.
흔적은 흔적일 뿐이니까.
하지만 지금, 흔적은 힘을 얻었다.
성욕 때문이었다.
정민, 케이라와 연결된 통로는 원래 베칸쵸에게 연결되어 있다가, 베칸쵸가 죽는 과정에서 메이드에게로 옮겨졌다.
기본적으로 그 통로는 ‘삶’, 혹은 ‘삶에 의지’를 뽑아내어 베칸쵸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다른 힘은 그 통로를 이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민의 성욕이 케이라와 만나 폭발하자,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통로가 빨아들여야 하는 에너지가 전부 다 성욕으로 바뀌자, 통로가 ‘성욕’을 ‘삶’으로 착각하고 빨아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베칸쵸가 죽기 전에 생각했듯이, 삶과 성욕은 어찌 보면 비슷한 구석이 있었으니까.
거기다 폭발하는 성욕이 너무 많아서, 통로는 상당한 양의 성욕을 빨아들였다.
심지어 한 공간에 두 개의 통로가 있었다.
삶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에너지인 성욕은 그렇게 이터널 게이트 내의 어딘가, 굳이 따지면 ‘리젠 대기 장소’까지 흘러 들어갔다.
그곳에서 메이드는 ‘삶’이 충전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삶’이 그녀를 만든 힘이었고, 그녀가 사용하는 힘이었으니까.
처음에 그녀는 ‘성욕’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녀가 보기에도 ‘성욕’은 ‘삶’과 비슷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성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성욕’과 ‘삶’은 비슷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성별이 나누어져 있었다는 것.
의지가 완전히 사라지고 육체만 남은 ‘메이드’는 성별이 없는 존재였다.
여자의 몸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육체뿐.
메이드에게는 어떤 성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성욕’은 흔적까지 닿았다.
비록 흔적일 뿐이지만, ‘이다혜’라는 ‘여성’의 흔적이었다.
흔적은 ‘성욕’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성욕은 흔적에게 힘을 주었다.
힘은 의지가 되었고, 흔적은 다시 한번 삶을 갈구했다.
재료는 대기 공간 안에 다 있었다.
힘이 있었고, 의지가 있었고, 1/7 정도 완성된 육체도.
흔적은 자기중심으로 재료를 모아 조립했다.
성욕을 심장으로 삼아, 흔적을 얼굴로 붙였다.
메이드의 기억을 뇌로, 1/7의 육체는 과감하게 영체로 바꾸었다.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흔적은 기다릴 수 없었다.
정민과 케이라의 섹스가 끝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는 새롭게 태어났다.
성욕을 채워 에너지로 삼는 영체.
다른 말로 하면 ‘처녀 귀신.’
“하으윽, 정민아, 좀 더, 더... 항, 항, 아앙!”
흔적, 이제는 귀신이 된 ‘다혜’가 태어나서 처음 본 건 정민과 케이라였다.
두 사람의 격렬한 섹스과 불처럼 타오르는 성욕이었다.
다혜는 뜨거운 성욕에서 황홀함을 느꼈다.
통로를 통해 들어오는 성욕도 여전히 맛있었지만, 직접 맛보는 성욕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직접 들어가서 맛보면 어떨까.’
영체는 빙의할 수 있다.
갓 태어난 데다가 힘도 거의 없다고 봐야 하는 다혜에겐 힘든 일이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가능했다.
다혜과 케이라는 통로가 연결되어 있고, 케이라는 격한 섹스로 반쯤 정신을 잃었고, 무엇보다 둘의 근원적인 욕구가 비슷했다.
다혜는 살고 싶었고, 케이라도 살고 싶어 했다.
겉으로는 삶에 초연해 보이지만, 진심은 그랬다.
다혜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럼, 내가 꼭 살려줄게.’
다혜는 그대로 케이라에게 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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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하읏, 하앙...”
전투용 수트를 다 벗고 알몸이 된 케이라는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다.
마찬가지로 알몸이 된 나도 짐승처럼 박아대고만 있고.
1시간 동안이나 이어진 풍경.
바뀐 건 없다.
착각인가?
쩌저정.
“...이런!”
변화는 케이라의 보지에서 시작됐다.
약간 열기가 식나 싶더니, 순식간에 얼어 버렸다.
그 안에 있던 내 자지도 함께 얼었다.
전부 삽입된 채로.
“하으응, 하앙!”
케이라의 신음이 이어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허리를 움직이지 않음에도, 내가 피스톤질하던 리듬 그대로 그녀는 신음을 냈다.
“뭐야, 케이라, 정신 차려! 케이라!”
허리를 강제로 움직여 볼까 싶었는데 무서워서 못 했다.
케이라의 질이 자지와 함께 끌려 나올 것 같았다.
“젠장, 지금 뭐가 어떻게 된... 하으읏...”
그리고 성욕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얼어 버린 자지에서 정액이 분출됐다.
푸쉬식!
그렇게 나간 성욕은 돌아오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는 성욕이 돌아왔다.
케이라는 성욕을 저장할 수 없었으니까.
돌아온 성욕은 케이라의 성욕이 일부 더해져 더 커졌다.
나는 그 성욕을 그대로 다시 케이라에게 쏘아 보냈고, 케이라는 거기에 다시 성욕을 더했고, 나는 쏘아 보내고, 케이라는 더하고, 그렇게 내 주변의 성욕은 커져만 가고 있었다.
나는 관계가 끝나고 성욕을 한 번에 갈무리할 생각이었다.
성욕이 클수록 관계의 즐거움이 더해진다는 건 이미 온몸으로 체득한 거였으니까.
나는 케이라와의 이 관계를 천상의 즐거움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런데 모아뒀던 성욕 덩어리도 어느새 사라졌다.
열기로 가득했던 텐트가, 설원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차가워졌다.
무슨 일이지? 갑자기 왜?
영문을 알 수 없는 와중에도 사정은 이어졌다.
참을 수가 없는 자극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든 저건 케이라의 몸이었으니까.
그녀의 보지는 내 자지를 사로잡는 데는 최적화 돼 있다.
뷰릇뷰릇.
끝없는 사정에 내 성욕은 바닥이 났다.
그럼에도 사정은 멈추지 않았고, 성욕은 얼어붙은 보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이 익숙한 느낌.
이건 바로 묠니르의 맛이다.
이렇게... 죽는다고?
팔의 혈색이 사라져 간다.
피부가 쭈글쭈글해지고, 갈증으로 목이 타들어 간다.
눈앞이 흐리다.
시야도 점멸한다.
깜빡.
“하응, 항.”
매끈한 등에 땀 한 방울 안 흘리지만, 케이라는 여전히 울부짖고 있다.
깜빡.
“하응, 히이익.”
내가 자지를 삽입하고 있는 건 케이라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매끈한 등은 같지만, 검은 머리에 골반이 작았다. 가슴은 케이라보다 컸지만.
깜빡.
“하응.”
다시 케이라다.
그녀의 골반은 손잡이로 쓰기에 좋았다.
케이라와의 후배위가 매력적인 이유다.
깜빡.
“히이익!”
괴상한 신음.
이건 케이라 목소리도 아니다.
땀에 젖어 등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보니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메이드.
내 상대가 ‘메이드’임을 자각한 순간, 나는 사정을 멈출 수 있었다.
상대가 케이라가 아니라면, 내 성욕을 제어하지 못할 리 없으니까.
“...왜?”
메이드가 고개만 돌려 나를 바라본다.
섬뜩한 붉은 눈동자.
눈동자가 내게 말한다.
‘빨리 싸, 안 싸면 잘라 버릴 거야.’
자지와 보지는 딱 붙은 채로 여전히 얼어 있었다.
그녀가 원하면 아마 뚝 하고 자지가 떨어져 나갈 것이다.
조금 전에는 내가 보지를 떼어낼 수 있을 듯했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나는 야위었고, 힘을 다 빼앗겼다.
“진짜... 멈출 거야?”
보라색 입술 사이로 붉은 혀가 나와 입술을 훑는다.
평소라면 단번에 발기했을 만큼 섹시한 장면이다.
그러나 나는 메이드가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는 성욕을 본다.
성욕이 내 정신에 침투해 나를 사정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정신 차리자.
일단 더 사정하면 안 돼.
성욕을 더 빼앗겨서도 안 돼.
정신 차려야 해.
그래야 케이라가 살 수 있어.
“우리 좋았잖아. 조금만 더 하자. 그럼 갈 수 있을 것 같아.”
...아직 못 갔어?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 말이 어쩐지 맘에 걸렸다.
그렇게나 쌌는데 아직 안 갔을 수가 있나?
정액이 다 케이라에게만 간 건가?
메이드 상태일 때도 싼 거 같은데?
“...이래도 반응이 없으면 다른 사람을 찾아볼까.”
보지의 한기가 강해졌다.
이대로라면 성욕을 빼앗기고 말고를 논하기 전에 얼어서 죽을 것 같다.
싸면서 생각해보자, 싸면서.
“쌀게, 쌀 거니까...”
“오, 그럼 빨리 싸!”
꿀렁꿀렁.
내 마지막 성욕이 정액으로 바뀌어 요도를 통과하고 있다.
이대로 포피를 지나면 내 생명력은 바닥이 날지도 모른다.
“그래, 그거, 그거야, 빨리, 빨리, 빨리이!”
실제로 내 몸은 텅 비어 있었다.
성욕도, 마나도, 체력도, 생명력도, 온몸의 물도 다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그렇게 텅 비어 있는 내 몸에 꽂혀 있는 빨대가 두 개 있었다.
어? 두 개?
하나는 당연히 자지고, 하나는 어깨였다.
어깨의 통로가 성욕을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바로 전까지는 자지에서 빠져나가는 에너지가 너무 커서 몰랐는데, 모든 건 비우고 나니 알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어떻게 하면 될지 깨달았다.
나는 정신세계 속에서 서큐버스와 섹스를 한 경험이 있다.
통로를 통해서 사령술사의 목을 직접 노린 적도 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된다.
모든 에너지는 없고, 정신력도 바닥이지만, 할 거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흐읍.”
나가려던 정액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정액은 요도를 타고 흐르고 있었으니까.
그러면 반대로 하면 돼.
어깨에 연결되어 있던 통로를 옮긴다.
왠진 모르겠지만 성욕을 빼가는 통로로 바뀌었다.
성욕을 빼간다면, 내 의지로 움직일 수도 있을 터.
중요한 건 언제나 이미지다.
요도 앞에 관, 소변관처럼 생긴 관은 메이드에게 연결돼 있다.
그리고 정액은 그 관을 통해 메이드에게로 간다.
눈앞에 메이드의 몸이 아니라, 메이드의 정신, 메이드의 본체에게로.
“간... 다...!”
“히이이익!”
한 번의 사정.
그 사정으로 모든 것이 결정 났다.
“좋아, 이게... 섹스...!
메이드가 허리를 활처럼 휘더니, 목도 젖히면서 외쳤다.
검은 긴 생머리가 펄럭하고 넓게 퍼지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다.
그게 메이드의 마지막이었다.
검은 머리가 푸른색으로 변했다.
창백했던 피부에 생기가 돌아왔다.
케이라가 돌아온 것이다.
이제 된 거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냈다.
나도 이젠 여한이 없었다.
이대로 쉬고만...
“하으으윽!”
케이라가 다시 허리를 활처럼 휜다.
보지의 얼음은 녹았지만, 이젠 내 자지가 불처럼 뜨겁다.
“...씨발!”
메이드가 모아놓은 성욕이 관을 통해 역행하고 있다.
이걸 처리해야 쉴 수 있나 보다.
젠장, 왜 내 섹스는 맨날 전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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