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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88화 (88/137)

〈 88화 〉 chapter 12. 메이드

* * *

88.

이터널 게이트가 있던 산 중턱.

거뭇거뭇한 땅 사이로 드문드문 녹색이 보인다.

마법진이 사라진 후, 풀이 조금씩 나나 싶었다.

하지만 지금 스켈레톤들이 풀을 짓밟으며, 다시 죽음의 땅으로 만들고 있다.

“아직 움직임은 없습니다.”

“스켈레톤 프린스, 나이트, 위저드 모두 확인됐습니다.”

“총 숫자는 10,341마리.”

“시청 사건의 메이드도 있습니다.”

군대가 정찰 드론을 띄웠고, 상세한 정보가 들어왔다.

차 안 스크린에 드론이 찍고 있는 영상이 재생됐다.

전선 후방 지휘 차량에는 나와 케이라, 윌리엄박, 그리고 기갑부대의 대령이 함께하고 있었다.

“결국 리젠이 된 모양이네요, 케이라님.”

윌리엄 박이 케이라에게 말했다.

케이라는 메이드를 비롯한 언데드 군대가 이터널 게이트 내부 소속이 아닐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가설을 세운 적이 있다.

메이드는 명백히 자유 의지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생명이고, 게이트 내부에는 그런 생명이 존재할 수 없었다.

그건 이터널 게이트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아쉽게도요.”

그러나 희망적인 가설은 희망적인 가설.

결국 메이드 이하 언데드 군대는 이터널 게이트 소속으로 판명 났다.

리젠이 된다는 게 그 뜻이다.

그리고 그건, 우리가 1주일마다 저 군대를 물리쳐야 한다는 소리였다.

“이대로 상태를 볼까요? 아니면 먼저 공격합니까?”

기갑부대의 대령이 윌리엄 박에게 물었다.

현장 책임자는 윌리엄 박이 맡고 있었다.

두 사람은 저번 전투 때 함께 스켈레톤에 맞서 싸운 전우이기도 했다.

“준비는 다 됐나요?”

“네, 10대 모두 대기 중입니다.”

이터널 게이트를 통해 스켈레톤이 넘어온 건 10분 전이다.

10분 동안 스켈레톤들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고, 그동안 우리는 모든 전투 준비를 끝마쳤다.

저번 전투를 생각해보면, 스켈레톤들은 누군가가 건드리기 전에는 안 움직일 수도 있었다.

저번엔 한성민이 나타난 후에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먼저 갑시다. 일단은 죽여야 리젠 대책을 세울 수 있을 테니까요.”

윌리엄 박의 목소리는 뒷산에 산책하러 가는 것 마냥 가벼웠다.

이곳에 있는 전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다.

엘레나 포함 S급 키퍼가 4명.

A급 키퍼가 35명.

B급 키퍼 케이라.

C급 같은 D급 키퍼인 나.

K­1 전차 10대.

진지를 구축한 일반 보병 2개 중대.

1만 스켈레톤이라 해도 순식간에 녹일 수 있을 전력이다.

“전 부대, 일제히 사격 개시!”

쾅!

굉음과 함께 105mm 포구에서 탄이 쏘아졌다.

탄은 중력을 거슬러 산 중턱 스켈레톤 부대를 직격했다.

콰가가가강!

큰 폭발이 산을 뒤흔들었다.

산 아래 있는 우리도 진동을 느낄 정도였다.

“알파 철갑탄으로 변경, 나머지는 그대로 고폭탄 준비.”

시야를 가린 먼지구름이 조금 가라앉자, 적의 상태가 드러났다.

이번 공격으로 1/3 정도의 스켈레톤이 사라졌다.

폭발의 규모에 비해서는 적은 전과다.

위저드의 방어 마법과 나이트의 육탄 방어가 일반 스켈레톤의 피해를 줄인 듯했다.

“작전대로 사격 개시!”

대령의 명령에 따라 다시 전차의 포문이 불을 뿜었다.

쾅! 콰가가가강!

이번엔 포탄 종류가 다른 게 있었다.

아마도 철갑탄.

두세 개의 철갑탄이 위저드의 방어 마법을 꿰뚫고, 나이트의 방패를 쪼개며 계속 날아갔다.

하지만 그 위력적인 철갑탄도 프린스의 팔 하나 정도를 부수는 게 고작이었다.

메이드에게는 닿지도 못했다.

쾅! 퍼버벙!

두 종류의 탄이 스켈레톤을 향해 퍼부어졌다.

고폭탄은 일반 스켈레톤을 터트렸고, 철갑탄은 상위 스켈레톤을 꿰뚫었다.

스켈레톤의 수는 금방금방 줄어갔다.

이대로 3~4분만 지나면 모든 스켈레톤이 사라질 것 같았다.

물론 그럴 리는 없다.

그랬다면 여기에 군대만 있었겠지.

“공간 이동 와요! 위치는 전차 위!”

케이라가 외쳤다.

그녀가 사전에 공간 이동 방해 마법진을 그려놨지만, 보이는 위치로의 이동은 그녀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쿵, 쿵, 쿵.

포격 중이던 전차 위로 스켈레톤 프린스들과 스켈레톤 수백 마리가 떨어졌다.

“저는 가 보겠습니다! 지휘 부탁드립니다. 대령님!”

최고 전력인 윌리엄 박이 차량 위쪽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갔다.

A급 키퍼들이 프린스를 막는 중에 S급 키퍼가 프린스를 정리하는 게 우리 계획이었다.

전자 주변에 있던 엘레나는 이미 메이드와 무기를 맞대고 있었다.

“게이트 앞 스켈레톤 산개 중입니다.”

“보병 진지도 스켈레톤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쪽으로도 옵니다!”

공간 이동에 맞춰 산 중턱 스켈레톤들도 넓게 퍼지며 달려왔다.

보병 진지는 전차 대열 앞, 산 중턱과 전차 사이에 있었는데, 공간 이동한 스켈레톤들이 보병 진지 쪽으로도 공격을 시작했다.

전차 뒤에 있는 우리 차량 쪽으로도 공격하는 스켈레톤이 있었다.

“중대장, 작전대로 공격해! 전차는 계속 사격! 우리 차량은 뒤로 더 물러난다!”

윌리엄 박이 전차로 향하며 우리 쪽으로 오는 스켈레톤들을 날려 버렸고, 더 이상 차량 쪽으로 오는 스켈레톤들은 없었다.

“스켈레톤 부대 현재 3천까지 줄었습니다!”

“전차 피해 없습니다!”

“보병 진지 부상자 속출! 지원 요청입니다!”

“A급 키퍼 한 명 보내! 빨리!”

스켈레톤 프린스 하나가 보병 진지에 침투한 거 빼고는 전체적인 전황이 나쁘지 않았다.

하산하는 스켈레톤 부대는 전차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부서졌다.

전차를 공격하는 프린스들은 S급 키퍼들이 반쯤 정리했다.

보병 진지는 마공학 기술로 위저드의 마법을 막고, 소총으로 일반 스켈레톤을 줄여갔다.

메이드는 엘레나가 잘 막고 있었다.

아직 사망자도 없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우리 쪽의 대승이었다.

그러나 그때, 언데드가 언데드인 이유가 드러났다.

“산 중턱에서 스켈레톤들이 다시 일어납니다!”

“스켈레톤 수백 마리 보병 진지 위로 공간 이동합니다!”

“스켈레톤 프린스도 재생 중입니다!”

산산이 조각나면 언데드라도 재생이 쉽지 않다고 했는데, 산산이 조각난 스켈레톤들이 되감기 한 것처럼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메이드는 산 중턱으로 잠깐 이동한 뒤, 그런 스켈레톤들을 데리고 다시 보병 진지 위로 이동했다.

더 큰 문제는 스켈레톤 프린스의 회복이었다.

순식간에 회복한 프린스가 전차의 옆구리를 때리자, 전차가 반파되며 내부가 드러났다.

“정민아...”

“알아. 엘레나, 지금 시작해요.”

[알겠습니다. 루의 사랑으로.]

통신기를 통해 엘레나의 답을 듣자마자, 난 정기를 성욕으로 변화시켰다.

왼팔이 바로 핏빛으로 변했다.

나는 증폭된 성욕으로 몸을 강화하며 바로 게이트를 열었다.

오른손 위에 주먹 크기만 한 푸른 원이 나타났다.

“엘레나, 열었어요! 큭!”

[조금만 참아주세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걸 케이라가 받아줬다.

경련과 함께 몸이 활어처럼 펄떡펄떡 뛰면서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머리가 깨지는 와중에 난 게이트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아프다.

죽을 것만 같다.

온몸이 산산조각 난다.

한 번 해본 거지만,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아픈 것 같다.

“정민아, 거의 다 됐어! 조금만, 조금만...”

[...이곳에 당신의 사랑을 보이소서! 턴 언데드!]

이번에는 엘레나가 피우는 벚꽃을 똑바로 보고 싶었는데, 눈앞이 흐려 잘 보이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큰 고통과 함께, 나는 거하게 피를 토했다.

쿨럭, 쿨럭.

그리고 지속적으로 나를 찌르던 송곳니 같은 고통이 사라진다.

고통이 헤집어 놓은 상처 때문에 몸이 말이 아니었지만, 이제 더 이상 상처가 늘어나지는 않았다.

“...된 거야?”

“응, 이제 됐어. 좀 쉬어.”

“...부탁할게.”

“걱정 마.”

확신이 가득 찬 케이라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눈을 감았다.

“다음에느...”

반드시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지.

케이라가 슬퍼하니까.

+++

케이라는 포션을 꺼내 입에 머금었다.

그녀는 그대로 핏물이 가득한 정민의 입을 입술로 덮으며 포션을 밀어 넣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케이라가 특수 제작한 포션이었다.

포션은 케이라의 마력을 따라 정민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가며 바로 효력을 발휘했다.

“하아... 하아...”

정민의 숨이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케이라는 남은 포션을 귀와 코에 바르며 마력으로 흡수를 도왔다.

정민의 볼에도 핏자국이 있었다.

눈에서 흐른 피눈물이었다.

케이라는 그 자국도 손가락으로 닦아 냈다.

“상황은 어떻죠?”

“...메이드 제외, 근처의 언데드는 모두 소멸했습니다.”

“메이드는요?”

“S급 키퍼 넷이 협공 중입니다.”

“빨리 처리하라고 알려주세요. 틈을 주면 아마 언데드가 살아날 거예요.”

케이라는 조금 전 언데드가 되살아날 때, 메이드 주변에서 큰 힘의 이동을 감지했다.

아마도 그 힘이 언데드를 되살렸을 것이다.

“네!”

대령의 대답에 기합이 들어가 있다.

정민의 희생이 인상 깊었나 보다.

다들 목숨을 걸고 이 자리에 있는 거지만, 피를 토하며 경련하는 걸 눈앞에서 보는 거 또 다른 느낌이니까.

‘이대로 끝났으면 좋겠는데...’

정민이 게이트를 열고 턴언데드를 쓰는 건 이 부대의 마지막 수였다.

메이드에게 다른 무기가 있다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다.

그건 정민이가 원하는 일이 아니다.

‘무력해...’

케이라는 마법을 배우기 시작하던 어릴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힘도, 지식도 부족했다.

그녀는 아직 몸에서 빠져나가는 기운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승님, 저는 아직 알아야 할 게 많은데...’

“메이드 사라집니다! 언데드 일부 재생 중입니다!”

병사의 보고에 케이라가 차량의 스크린을 훓었다.

다행히 프린스 일부의 재생이었다.

이미 가루가 된 스켈레톤이 전부 살아난 건 아니었다.

“키퍼와 프린스 전투 중, 하산하는 스켈레톤 무리 소탕 중입니다.”

1시간 뒤, 전투는 마무리됐다.

사망자 제로.

부상자 118명.

전차 1대 반파.

스켈레톤 10,341마리 격파.

짧은 전투의 결과였다.

+++

눈을 뜨니 천막이 보였다.

병원 천장이 보일 줄 알았는데, 아직 막사인 모양이다.

“일어나셨군요.”

“...엘레나?”

“네, 엘레나예요. 몸은 좀 어떠세요?”

“괜찮은 거 같아요. 엘레나는요?”

“저도 괜찮아요. 케이라님도 무사하고요. 케이라님은 지금 회의에 가셨어요.”

아... 뭔가 허전하다 했는데, 케이라가 없어서였다.

눈을 뜨면 늘 케이라가 반겨줬는데.

“얼마나 지났죠?”

“반나절 정도 지났어요.”

“네? 엘레나가 회복 마법이라도 쓴 거예요?”

“아니요. 케이라님이 만든 포션이 잘 든 모양이에요.”

엘레나는 쓰러진 나에게 회복 마법을 쓰지 않는다.

신성이 없는 엘레나는 회복 마법에 무지막지한 마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녀를 유지하는 마력이 순식간에 줄어들고, 혹여 내가 깨어나지 않으면 그녀는 마력을 충전하지 못해 사라져 버린다.

정말로 급한 경우라면 그녀도 어쩔 수 없겠지만, 내가 금지했다.

“다행이네요. 상황은요?”

“모두 무사해요. 부상자는 좀 있지만, 죽을 위기는 아니고요. 정민님이 제일 큰 부상이었어요. 얼굴에서 피를 뿜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니, 그게 왜 엘레나 귀에 들어갔지?

“괜찮아요. 이렇게 회복했잖아요.”

“아니, 그동안도... 알겠어요. 이러면 정민님만 힘드시겠죠. 다음에는... 다음에도 이러시겠죠?”

당연히 그러겠지만, 그러면 엘레나가 슬퍼할 테니까.

“다음에는 쓰러지지 않을 만큼 강해질 거예요.”

“...저도요.”

결의에 찬 눈 아래가 살짝 부어 있는 걸 보니, 내 마음이 다 아프다.

진짜 강해져야지.

그러려면 이번 일을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

왼팔에서 계속 빠져나가고 있는 이 에너지도.

펄럭.

막사가 열리고 케이라가 들어왔다.

“일어났어? 쉬게 해주고 싶지만, 내일 바로 들어갈 것 같아.”

드디어 이터널 게이트로 진입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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