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 chapter 12. 메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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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시청사건 이후, 이터널 게이트는 여러 크루들의 정예가 함께 모여 경계하고 있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군부대 역시 대기 중이었다.
주둔지의 위치는 산 아래로, 저번 전투 때 방어선을 펼친 곳이었다.
다행히 7일 동안 게이트 안에서 튀어나온 건 아무것도 없었다.
“슬슬 내부로 들어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정예 멤버로 정찰대를 꾸리도록 하죠.”
“외부 경계를 철저히 하면, 전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막사 안에서는 크루 대표들의 회의가 한창이었다.
나는 엘레나, 케이라와 함께 자문 역할 및 게이트 방어팀으로 참가 중이다.
“케이라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수비만 굳건히 한다면, 진입하는 게 맞습니다. 언제고 이 자리에 이런 전력들이 잡혀 있는 건 큰 낭비니까요.”
케이라의 말은 회의가 원하던 말이었다.
그들은 하루라도 빨리 들어가서 이터널 게이트를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좋습니다. 그럼 정찰대 구성에 대해서 논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용산 크루 대표, 윌리엄 박이 말했다.
협회가 없는 이곳의 질서는 신용산 크루가 잡고 있었다.
신용사 크루의 입지는 ‘악마의 힘’ 사건 이후로 더 커졌다.
‘악마의 힘’을 증폭시킬 수 있는 것도 결국 딴딴이였기 때문이다.
“아, 이제부터 회의가 조금 길어질 테니 자문 분들은 나가셔도 좋습니다.”
축객령이라기보다는 배려다.
정찰대에 누가 들어가느냐야 말로 지금 회의에 모인 사람들의 주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먼저 본 게 꼭 그 크루의 것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이는 현장 분위기도 한몫했다.
중재를 담당해야 할 협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먼저 찾아서 깃발만 꽂으면 자기 것이 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막사밖엔 사람들로 빽빽했다.
각 크루에서 온 A급 이상의 정예 키퍼들.
군인들.
언론들.
그들 모두가 막사를 나서는 우리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대략 500명 정도의 시선.
예쁘다고 감탄하는 시선과 이세계인이라니 신기해서 보는 게 대부분이다.
케이라야 언제나처럼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엘레나도 이런 일이 익숙한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야 열세 번째 검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도 최근에 이런 일이 많이 있었다.
영웅이라는 과분한 칭호를 얻은 후에는 어딜 가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니까.
하지만 아직 아무렇지 않은 척 무표정으로 있기는 힘들었다.
특히나 이런 말이 들려오면.
“진짜 운이 좋네, 저런 게 진짜 게이트 빨이지.”
“C급 키퍼라며? 고작 C급이 저 회의에 들어간다는 게 말이 돼?”
내가 소환게이트를 가졌다는 건 대중에 공개됐다.
공개할 수 있는 건 다 공개했다.
두 사람과 성교를 통해 계약을 맺고 있다는 건 공개하지 않았지만, 일종의 소환수 계약을 맺고 있는 건 이제 모든 사람이 알게 됐다.
그래서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연예인 뺨치는 미인이 여자친구고,
심지어 그 여자친구는 세계 최초의 마법사.
방송에도 가끔 출현하고,
100억짜리 무기도 선물로 받았으며,
‘악마’라고 공격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영웅’이라고 칭송하는 사람도 있는, 보통 사람이라면 꿈도 꾸지 못한 관심을 받는 사람.
그리고 그 모든 게 ‘게이트 빨’이었다는 게 밝혀진 사람.
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도 그들처럼 생각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좋은 게이트만 나오면, 아니, 키퍼만 되면...’
답도 없는 단칸방에서 그렇게 속으로 되뇌었던 적이 얼마였는지, 나는 셀 수도 없다.
그리고 그들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내가 소환 게이트를 얻지 못했으면 이 자리에 있었을까?
처음 소환된 게 케이라가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있었을까?
위기의 순간에 엘레나가 케이라를 살려주지 못했다면, 이 자리에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게 기적과도 같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이런 걸 보통 사람들은 ‘운’이라고 하겠지.
하지만 생각은 그렇게 한다고 해도, 면전에서 저렇게 말하면 표정 관리가 힘든 게 사실이다.
게다가 지금 나는 B급 키퍼다.
죽음의 고비를 몇 번 넘겨서 그런지, 최근에 스탯이 대폭 상승했다.
[레벨:28/29]
[체력:04][근력:03][민첩:03]
[마나:04][마력:06][친화:03]
[감각:04][신성:01]
[특성:게이트키퍼(EX), 성욕 제어(EX), 정기 흡수(EX)]
[기술:소환게이트(SS, 숙련), 이세계체류계약(A, 숙련), 차원 공통 흑마법최하급(D, 숙련), 차원 공통 백마법최하급(D, 숙련), 지구 일반 체술(D, 달인), 제국 근위대 검술(B, 숙련)]
여기에 스탯창에는 나오지 않는 성욕과 정기까지 있으니, 스탯상으로는 B급 키퍼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시간만 있으면 협회에 가서 B급 키퍼 라이센스를 받을 자신이 있는데, 최근에 너무 바빴다.
[괜찮아?]
내 표정을 봤는지, 케이라가 메시지 마법으로 물어온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마음에 스크래치 정도일 뿐이다.
이 자리만 벗어나면 다 잊어버릴 말들이고.
하나하나 대응하다간 끝도 없다.
모든 사람의 생각을 통제할 것도 아니고.
그런데 가만히 있으니까 선을 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도 이세계인만 우리 걸로 만들면 어떻게 안 될까? 이번이 기회일지도.”
“성기사라도 자지 박히면 꼼짝 못 하는 건 마찬가지일 거 아니야?”
이런 대화들은 앞의 대화보다는 훨씬 작은 소리였다.
더 멀리서, 그러니까 군인들 사이에서 나온 대화였다.
앞의 대화야 키퍼들이 진짜로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지만, 이건 군인들의 실수다.
키퍼들의 감각을 몰랐기에 ‘못 듣겠지’하고 내뱉는 이야기다.
“후우... 엘레나, 경고 좀 하고 와 주세요.”
“알겠어요.”
저건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커뮤니티 게시판만 가도 저것 이상의 언어폭력이 난무하긴 하지만, 현실에서도 저런 걸 듣고 참을 수가.
팟.
엘레나는 순간 이동한 것처럼 군인 앞으로 이동했다.
“움직이지 마세요.”
군인의 목에는 엘레나의 검이 닿아 있다.
“누가 꼼짝 못 한다고요?”
“그, 그게...”
군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는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사과, 하시겠죠?”
“무, 물론입니다.”
엘레나가 검을 거두자, 군인은 바로 땅바닥에 엎드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 아니 그냥 잘못 생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딱 한 번만 용서해 드리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팟.
엘레나는 간 것처럼 보이지 않는 빠르기로 돌아왔다.
군인은 여전히 엎드리고 있고, 주변 군인들의 얼굴에는 놀람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다.
“과하진 않았나요?”
“적당했어요, 엘레나.”
지금이 밖이 아니었다면, 정말 멋있다면서 찬사를 보내주고 싶은 카리스마였다.
역시 내가 이세계인 하나는 잘 뽑았다.
문제는 너무 잘 뽑았다는 걸까.
키퍼들도 놀라긴 했지만, 조금 포인트가 달랐다.
“와... 저게 S급의 몸놀림이구나.”
“내가 아는 S급 이상인데?”
“그런데 남자가 하는 게 뭐임? 이런 건 남자가 나서야 하는 거 아닌가?”
“야, 조용해. 이번엔 여자친구가 마법 쓸지도 모르잖아.”
...젠장, 팩트로 때리면 아프잖아.
대응하고 싶지만 대응해서는 안 된다.
팩트이기도 하고, 직접적인 비난은 하나도 없으니까.
어쩌면 계속 일부러 도발하는 건지도 몰랐다.
나랑 얽히면 어쨌든 유명해질 거고, 이런 일로 나서면 내 이미지는 안 좋아질 테니까.
[갈까?]
이번 메시지는 걱정보다는 놀림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
어쩐지 말이다.
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케이라지만, 눈매가 살짝 웃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고.
쳇.
이럴 때는 화제를 돌리는 게 최우선이다.
“그보다 괜찮겠지?”
“뭐가?”
“정찰대.”
정찰대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자, 사방이 조용해졌다.
자기 막사가 아니라 밖에 나와서 쉬는 사람들의 목적이야 뻔했다.
바로 회의 결과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알아내는 것.
“아... 괜찮을 거야. 어떻게든 시작해야 하는 게 맞고.”
“케이라는 전에 이터널 게이트에 들어가 본 적 있지? 안은 어때?”
“다른 게이트랑 비슷해.”
“안에는 누가 들어가게 될까?”
“음, 그건...”
어느새 우리 막사에 도착했기 때문에 대화가 끊겼다.
사람들이 더욱더 뜨거운 눈으로 우리를 쳐다봤지만, 우리는 무시하고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어떠냐, 궁금하지?
하지만 안 가르쳐 줌.
막사 밖에서 한숨 소리가 파도치듯이 이어지는 것 같다.
“마음은 좀 편해졌어?”
“어, 조금 갚아준 거 같아.”
“다행이야. 진짜 나서야 하는 줄 알고 긴장했어.”
“장난은 그만. 너도 나서면 안 되는 건 알잖아.”
“응? 난 유명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는데?”
‘유명한 적이 없어서’라는 단서를 붙인 거 자체가 안다는 이야기다.
반면 엘레나는 케이라의 말을 진지하게 받았다.
“케이라님, 방금 키퍼들의 대화는 도발이었을 거예요. 지금은 막 유명해진 정민님을 노리는 사람이 많을 거니까요.”
“혹시 유명세에 비해 실력이 떨어져서인가요?”
“음... 아무래도 그렇죠. 정민님의 발전이 빠르긴 한데, 아직은 조금 더 성장해야 해요.”
그 말이 맞다. 적어도 A급 키퍼는 돼야 사람들의 말이 쏙 들어가겠지.
“정민아 들었지?”
“나도 알아. 그런데 케이라도 실력을 좀 올려야 하는 거 아냐? A급은 돼야지.”
케이라도 지구에 와서 4개 정도 스탯이 상승했지만, 아직 A급에 조금 모자라다.
그녀는 스탯이 아니라도 마법의 유틸성 때문에 이미 A급 이상이라고 봐도 되지만, 위급할 때 승패를 가르는 건 기본기, 역시 스탯이다.
“맞아, 그러니까 하자.”
“좋아, 마법 훈련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야.”
좁은 막사 안에서 체력 훈련은 어려울 거고, 마법 훈련이라면 여기서도 가능하다.
나도 슬슬 상위의 마법을 배우고 싶었다.
“아니, 그거 말고 섹스.”
잠깐, 또 대화가 왜 그쪽으로 가는 건데?
왜 또 기승전섹스냐고, 이 성욕 몬스터야!
“왜? 너랑 나랑 해야 잠재력이 올라가잖아. 나도, 너도. 잠재력이 올라가면 스탯도 더 잘 오르고. 그리고 너 지금 잠재력도 부족할 텐데... 안 그래?”
케이라가 점점 다가온다.
눈빛이 조금 전이랑 달랐다.
장난기는 하나도 없고, 색기가 가득하다.
언제 봐도 매력적이지만, 같은 성욕 몬스터인 나 역시 이미 반응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이미 사일런스 걸어뒀으니까, 하자.”
“엘레나는? 엘레나는 어떻게 하고?”
“엘레나도 동의했어.”
뭐? 전에는 안 된다더니?
엘레나를 바라보니, 얼굴이 빨개지더니 고개를 푹 숙인다.
“아니, 그래도 대낮에, 이런 곳에서는...”
“우리가 언제 그런 걸 가렸다고 그래? 유명해지니까 초심을 잃었어?”
“이게 초심이랑 뭔 상관이야!”
“상관있지! 지금 나는 잊어버렸잖아!”
케이라가 소리쳤는데, 이번 건 좀 다른 느낌이다.
색기 너머의 진심이 살짝 느껴진다.
“너, 마지막으로 나 언제 안아줬는데?”
“그, 그게...”
솔직히 최근에 케이라에게 조금 소홀하긴 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해야 하는 섹스도, 마력을 넘겨주는 걸로 끝내 버렸으니까.
그때는 기자회견 준비로 바빠서 그렇다 쳐도...
케이라 입장에서는 서운할 것이다.
나는 그사이에 수연이랑 유사 섹스를 했고, 엘레나랑도 호캉스를 즐겼다.
“바쁜 거 알아. 그래도 이건 아니지. 일주일 동안 한 번도 안 했다는 게 말이 돼? 그러니까 지금 해. 이제 진짜 틈날 때마다 해. 안 그러면 못 할 것 같아. 엘레나도 그래서 동의한 거야. 우리가 같이하면 눈치 볼 일이 줄어드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굉장히 현실적인 접근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서운함과 쓸쓸함이 느껴진다.
진짜 초심을 잃었는지도 모르겠다.
“...좋아, 그럼 하자.”
“응!”
케이라가 밝게 웃으며 나를 덮치며, 내 옷을 벗겼다.
그 옆에선 엘레나가 주뼛주뼛 갑옷을 벗었다.
2 대 1은 처음인데, 잘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런 걱정도 케이라에 대한 미안함도 전부 다 성욕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게 나다.
내 특성에 왜 ‘성욕 제어’가 괜히 붙었겠냐고.
내 분신이 부풀어 오르며 옷을 벗고 있는 케이라의 하복부를 찔렀다.
그녀가 황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아... 이 느낌이야...”
흥분 100%짜리 목소리에 내 분신이 더 성을 낸다.
자기 앞에 있는 게 자신을 처음 받아 준 보지라는 걸 아는 듯이, 그 보지를 처음 뚫은 게 자기 자신이란 걸 아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때였다.
“정민님, 케이라님.”
갑옷을 다시 착용해 완전무장 상태인 엘레나가 우리를 불렀다.
“...언데드가 나왔습니다.”
그 말에 케이라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마법으로 엘레나의 말이 사실인 걸 느꼈나 보다.
“이거 봐아... 이게, 진짜... 나한테 왜 이러냐고!”
웃으면 안 되는데, 케이라가 귀여워서 웃음이 나온다.
“푸흡.”
“이정민! 너 지금 웃음이 나오냐고!”
“미안, 진짜... 풋.”
“야!”
“저, 정민님, 케이라님, 지금 진짜 비상사태예요!”
안절부절하는 엘레나.
진심 억울해하며 짜증 내는 케이라.
그리고 마음에 스크래치 따위는 새로 칠해서 덮어버린 나.
내가 진짜 이세계인 하나는 잘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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