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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85화 (85/137)

〈 85화 〉 chapter 11. VS 협회

* * *

85.

내 게이트를 통해 신성 4가 통과되는 걸 버티다가 한계가 오지 않았다면, 나도 엘레나의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겨우 3초 유지할 수 있는 게이트를 닫았고, 엘레나도 그에 맞춰 다시 허리를 폈다.

그녀가 바이저를 닫자, 정체를 알 수 없는 탄식이 회견장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자영 본부장께서 말씀하셨듯, 엘레나가 악마가 아니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악마란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어떤 격언처럼, 엘레나는 진짜 악마일지도 모릅니다. 저와 엘레나가 할 수 있는 건 믿어달라는 말뿐입니다. 하지만 엘레나는 그날 언데드 대군 앞을 막아서며 시청과 시민을 지켰고, 시민을 지켜야 할 협회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누구의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나를 잡던 카메라 중 하나가 넋이 나간 한성민을 잡는 게 보였다.

저 정도면 비리를 밝힐 것도 없이 KO다.

그러나 이자영 본부장은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성기사 역시 네게 속았을 가능성이 있다. 악마 이정민! 협회는 지금 당장 너를 체포하겠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회견장 문을 열고 키퍼들이 진입했다.

이미 회견장 주변을 협회 키퍼들이 에워싸고 있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거?

당연히 대책이 있다.

협회 키퍼 중 제일 앞에 서 있는 건 박세나였다.

그녀는 큰 걸음으로 걸어 단상 앞으로 나와 내게 살짝 목례했다.

“박세나! 예를 차릴 필요는 없다! 빨리 이정민을 체포해!”

뭔가 이상함을 느낀 본부장이 박세나에게 소리쳤다.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대처였다.

박세나는 목례 후 몸을 돌려 본부장 앞에 섰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상관의 명령을 어길 셈인가?”

“한국 키퍼 협회 본부장 이자영, 협회 부서장 한성민, 두 사람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횡령? 어디서 그런 헛소리를! 그리고 너에게 날 체포할 권리는 없어!”

“여기 법원에서 발부한 구속영장이 있습니다. 저는 S급 키퍼인 한성민을 억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을 뿐, 모든 상황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자영 본부장이 박세나의 손에서 구속영장을 뺏어 읽었다.

그의 손이 부르르르 떨리는 게 아주 잘 보였다.

“...지금 이딴 종잇조각으로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협회장님께서 이걸 보고만 있을 것 같냐고!”

“한국 키퍼 협회장도 지금쯤 체포당했을 겁니다. 순순히 저를 따라오시는 게 재판에 이로울 겁니다.”

“닥쳐! 증거를 가져와라! 증거도 없이 이럴 수 있을 것 같아?”

본부장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증거는 있습니다.”

가장자리로 빠져 있던 수장님이 마이크를 들고 단상으로 나왔다.

스크린에는 국정원에서 모은 각종 증거가 올라왔다.

“2019년 3월, 조카 A씨에게 허위로 급여 지급. 같은 해 4월, 협회 식당 선정에 개입해 친척 회사를 선정. 같은 해 4월, 협회 간부 리조트 설립 비용 일부인 150억을 외부로 빼돌림. 같은 해 5월...”

수장님이 차분히 문장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본부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결국 그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더 증거가 필요할까요?”

“...”

본부장은 대답하지 않는 것으로 대답을 했다.

그는 반쯤 혼이 빠진 사람 같았다.

“그럼 이제 가시죠.”

협회 키퍼가 그를 일으켜 연행했다.

한성민도 아무런 저항 없이 박세나에게 잡혀 끌려갔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려고 했다.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야 한다.

지금 내 표정은 전 세계로 송출되고 있으니까.

“GGC에서는 협회장 이하 13명의 간부를 비리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저희에게 그들의 범죄 자료를 넘겨준 익명의 영웅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수장님이 인사하고, 다시 뒤로 물러났다.

이제 다시 내 턴이다.

“순식간에 많은 일들이 지나갔지만, 저와 엘레나는 지금도 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를 믿어 주십시오. 범죄에 대한 혐의가 있다면, 경찰 조사든 협회 조사든 전부 응할 용의가 있습니다. 저희는 악마가 아니고, 빌런이 될 생각도 없으며, 권력에 대한 욕구도 없습니다. 그저 게이트를 탐험하고, 할 수 있는 한 사람들을 지키며 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나는 말을 마치고 단상 옆으로 나와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나를 따라 엘레나와 케이라도 인사했다.

플래시 소리가 한참 들리고 나서야 수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희가 준비한 기자회견은 이상입니다. 협회 분들은 이정민 키퍼와 그의 동료 두 명을 체포하셔도 좋습니다. 정직하고 투명한 조사를 통해 이번 사건의 진실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그러자 회견장의 문이 열리고 다시 협회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와 일행들은 그들을 따라 천천히 회견장을 나갔다.

“이제 질문을 받겠습니다. 모든 기자분이 만족하실 때까지 답변할 테니까, 천천히 질문해 주셔도 됩니다.”

회견장을 나갈 때까지 카메라의 플래시 소리가 나를 따라왔다.

탁.

문이 닫히자, 케이라가 내게 조용히 말했다.

“수고했어.”

그 말을 들으니까, 한순간에 긴장이 쫘악 풀렸다.

“뭘.”

이게 끝은 아니지만, 잠깐의 여유 정도는 괜찮겠지.

“...협회로 가시죠. 조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네.”

우리는 협회 키퍼를 따라 협회로 향했다.

+++

“...박세나, 지금 당장 우리를 놓아라. 명령이다.”

이자영이 차를 타자마자 말했다.

박세나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

이자영 본부장과 그녀가 알고 지낸 지도 벌써 15년, F급 키퍼일 때부터 그녀는 이자영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그럴 수 없습니다. 당신은 경찰서로 가게 될 겁니다.”

“우리가 먹여주고 입혀주고 교육까지 시켜줬는데, 이렇게 배반한다고? 은혜도 모르는 것.”

박세나는 또 한 번 움찔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당신이 먹여주고 입혀준 게 아닙니다. 협회가 먹여주고 입혀준 것입니다.”

그녀는 협회가 지원하는 보육원 출신이다.

그녀의 인생 전부가 협회랑 연관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그게 그거지. 무엇보다 네가 S급 키퍼가 될 수 있도록 빵빵한 지원을 받은 건 누구 덕이지? 다 내가 한 일이다!”

이자영의 말이 옳았다.

그저 그런 B급 키퍼였던 그녀가 S급 키퍼가 될 수 있었던 건 협회의 전폭적인 지원 덕이었다.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대부분의 일을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이자영이 친인척에게 외주를 맡긴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협회 간부들이 수백 억대의 횡령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도 알았다.

그녀는 이정민이 악마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협회의 의견이라면 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죽인 빌런 중 일부는 이자영의 정적일 뿐이라는 것도.

협회의 도구로 살고자 했다.

빌런에 의해 고아가 된 자신을 받아준 게 협회였으니까.

이미 죽은 목숨을 살려준 게 협회였으니까.

사소한 잘못을 저지르긴 하지만, 대의적으로는, 큰 관점에서는 항상 옳은 일을 하는 협회니까.

그녀의 이름이 드러나지 못해도, 협회가 잘 굴러간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럼 이번 일도 그렇게 넘어갈 수 있지 않느냐. 죽은 사람은 몇 명 없고, 네가 마음에 든 이정민도 별일 없을 거다. 나만 놓아주면 된다. 내가 다시 협회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아니야. 살려만 다오. 외국에 나가서 조용히 살겠다.”

그녀는 이정민이 마음에 들었다.

눈앞에서 피어난 백화는 평생 못 잊을 것이다.

그리고 이정민은 그의 동료들을 구했다.

몇은 죽었지만, 죽은 그들이 편해진 것도 그의 덕이었다.

그런데, 협회는 동료들의 죽음을 조롱했다.

“...그만 하시죠. 협회에서 하는 실험이 밝혀지고 싶지 않으시다면.”

“...어떻게 그걸...”

“저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알게 된 이상, 저는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협회에서 잡은 빌런을 죽을 때까지 고문하거나 도구처럼 사용하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인간적으로는 약간 신경이 쓰이지만, 넘어갈 수 있었다.

세상은 동화처럼 굴러가는 게 아니니까.

그녀는 한성민이 쓴 공간 이동 스크롤도 최근 잡은 빌런을 조종해서 만들어낸 거라고 짐작했다.

그녀의 짐작은 이정민이 확인시켜 주었다.

더불어 이정민은 한 가지 사실을 더 알려 주었다.

‘협회 키퍼들을 인체 실험에 사용한 정황이 있습니다.’

대빌런, 대몬스터 작전에서 심각한 상처를 입은 키퍼들을 인체 실험에 사용한다는 이야기였다.

실험의 대상이 되는 건 주로 박세나처럼 고아로 자라 협회의 지원을 받고 키퍼가 된 이들, 바로 그녀의 동료들이었다.

그녀는 동료들이 병상에서 죽었거나, 상처 때문에 은퇴했다고만 들었다.

그런데 이정민이 건넨 자료에는 그런 동료들을 가지고 실험한 정황이 나와 있었다.

죽은 동료들의 시체도 대부분 실험에 사용됐다.

유가족들에게는 시체가 유실됐다는 변명만 전달되고서.

‘도와주세요. 이런 비극은 이번에 뿌리 뽑아야 합니다.’

사죄해야 할 건 박세나 자신이었다.

박세나의 시점에서 촬영한 영상이 외부로 나갔고, 그를 배신한 건 그녀였으니까.

하지만 먼저 고개를 숙인 건 그였다.

‘돕겠습니다.’

그녀는 이정민이 부탁한 대로 내부에서 협회 비리의 증거를 모았다.

그녀가 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국정원의 자료는 거의 완벽했고, 그녀의 자료는 약간 보완하는 정도였다.

‘감사합니다. 이걸로 썩은 수뇌부를 일망타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부탁드립니다. 협회 내부의 일은 협회 내에서 처리해야 하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제가 다 끌어안고 가겠습니다.’

비리는 다 밝히겠지만, 인체 실험을 밝힐 수는 없었다.

협회 자체가 무너지는 문제를 넘어서, 키퍼 전부가 사회에 배척받을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협회 내에서 처리해야 했고, 이 일은 전적으로 그녀가 맡기로 했다.

그녀는 관련 인물들을 다 쳐내고, 그들을 평생 감시하기로 했다.

실험에 대해 발설하거나, 실험 결과를 사적인 용도로 쓰지 않도록.

평생 감시받는 삶은 고달프겠지만, 그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결국 그놈도 똑같은 놈이 아닌가. 투명하겠다더니?”

“닥치시죠. 지금 제가 좋아서 참고 있는 걸로 보입니까?”

비꼬는 이자영에게 그녀는 숨겨왔던 분노를 살짝 내비쳤다.

그러자 이자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S급 키퍼의 기세를 일반인인 이자영이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 모습을 보니 박세나는 순간 속이 시원했지만, 동시에 허탈했다.

이제 와서 이래봐야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도 이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내게 화를 낼 자격이나 있을까?’

박세나는 그녀가 S급 키퍼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실험의 결과 중 하나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그녀도 처리되어야 하는 대상 중 하나였다.

그녀도 감시당하면서 살 것이다.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보고 있는 것들이 더 잘 기록될 수 있도록.

그녀가 보고 있는 것들은 지금도 그녀가 끼고 있는 렌즈를 통해 협회의 서버로 전송되고 있다.

새로 협회를 맡을 사람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게 될 것이다.

이전에는 그녀가 원할 때 끌 수 있었지만, 이젠 그녀가 원해도 렌즈의 기록을 정지할 수 없다.

이것이 그녀가 받는 벌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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