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chapter 10. 이터널 게이트
* * *
77.
[어떻게 할까요?]
한성민이 화면 너머에서 묻고 있었다.
키퍼 협회 총괄 본부장 이자영이 답했다.
“이터널 게이트 안에 딴딴이가 나올 수도 있다는 거 아닌가?”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먹어야지. 딴딴이 말고도 다른 게 나올지도 모르고.”
“맞습니다. 협회에서 발견한 거니 저희가 다 먹는 게 맞죠. 이터널 게이트는 저희 것입니다.”
대빌런전담부서장 박태영이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그의 말은 틀렸다.
죽음의 땅을 발견한 건 협회가 아니라 군인이었으니까.
[그럼 다른 키퍼들은 부르지 말까요?]
“그런 모양은 좋지 않아. 일단 부르고, 기회를 봐서 먼저 들어가면 좋겠는데... 대충 느낌 알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겠어.”
[네! 맡겨 주십시오!]
통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요즘 일이 잘 풀리는 군요. 전부 다 본부장님의 덕입니다.”
“무슨 나를 잘 도와준 자네의 덕이지.”
이자영과 박태영.
두 사람은 얼굴에서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
마법진에서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하고 하루 뒤.
우리는 여전히 마법진을 조사하고 있었다.
케이라는 룬어 구성을 다시 한 번 점검해서 마법진이 이터널 게이트에 어떤 추가 효과가 있는지 알아내려고 애썼다.
엘레나는 죽음의 땅의 생성과정을 역산해서, 빼앗긴 기운을 돌려받는 신성마법을 구현하려고 시도했다.
엘레나의 연구는 죽은 사령술사 때문에 우리 몸에서 빠져나가는 기운을 막는 연구이기도 했다.
그녀 말로는 신성 4를 받아내면 이런 연구 없이도 구멍을 막는 게 가능 하다고 한다.
결국 게이트를 통해 막대한 신성이 넘어올 수 있도록 내 정신력을 단련하는 게 맞는 일일지도.
그리고 나는 사령술사의 기운을 추적 중이다.
그저께 느꼈던 거대한 기운은 이미 사라졌다.
마법진을 발동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마법진은 여전히 죽음의 땅을 통해 사람들과 생명체의 기운을 흡수하고 있다.
기운은 저번처럼 모이지 않고, 바로바로 어디론가 사라진다.
마법진이 사용하는 걸 수도 있지만, 마법진을 설치한 자에게 가는 걸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그 기운을 추적 중이다.
“정민아, 뭐 좀 찾아냈어?”
“아니, 꼬리도 못 잡겠어. 너무 멀리 있나 봐.”
“마법진이 발동했는데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라... 이미 죽은 걸까?”
“역시 그 놈일까?”
그 놈.
얼마 전에 죽은 사령술사.
쓰는 기운이 거의 같으니까,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생각이 간다.
이 마법진은 그 놈이 우리를 공격하기 전에 설치해 놓은 건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몰라. 다른 사령술사가 또 차원을 넘어왔다고 보긴 어려우니까.”
“그럼 그 놈이라 가정하고 생각해 보면 어때? 마법진을 설치한 목적을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사령술사가 이터널 게이트에 들어간다면 이유는 간단해.”
“뭔데?”
“죽음의 군대를 만드는 거야. 이터널 게이트에서는 몬스터가 나올 수 있으니까.”
굉장히 직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유였다.
오거 같은 몬스터가 그때 그 협회의 키퍼들처럼 불사의 몸이 되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진짜 죽어서 다행이네. 그럼 이제 문제없는 거 아니야? 이터널 게이트가 열릴 뿐인 거잖아.”
“그렇게 넘길 수만은 없어. 이터널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보통의 이터널 게이트보다 강화된 몬스터들이 지구로 넘어올 수도 있으니까.”
“마법으로 그런 조작이 가능한 거야?”
“몰라. 나는 마법으로 이터널 게이트를 열 수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게이트 내부를 조작하는 것도 일단은 가능하다고 봐야겠지.”
“...골치 아프네.”
죽은 후에도 사람을 괴롭히다니, 사령술사 답다면 사령술사 다웠다.
“더 어려운 문제는 사령술사가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네?”
나는 엘레나의 말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그는 죽음을 다루는 사령술사예요. 리치는 아니었지만, 죽었을 때 리치가 되도록 미리 손을 써뒀을 수도 있어요.”
“리치는 또 뭐예요?”
“불사의 마법사예요. 자신의 생명을 육체가 아닌 다른 곳에 저장하기 때문에, 육체를 없애도 죽지 않아요. 이번에 싸운 사령술사는 분명 그 육체에서 생명이 느껴졌지만, 최고위 사령술사는 언제 리치가 되도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어떻게 죽였는데, 또 싸워야 해?
“그럼 리치가 된 사령술사가 군대를 끌고 오는 게 되는 거네요.”
“최악의 경우에는요.”
엘레나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이유를 알겠다.
사령술사 단신으로도 힘들었는데, 죽지 않는 몬스터들과 함께라면 어떻게 막을까.
“그래서 키퍼들을 불렀잖아. S급 키퍼들이라면 최악의 경우라도 상대할 만 할 거야.”
케이라의 말은 큰 위로가 됐다.
엘레나와 동급의 키퍼들 10명이 모인다면야, 무서울 게 없어 보였다.
생각만으로도 든든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게이트 지금 당장이라도 열릴 수 있는 거 아니었어?”
“맞아. 부서장도 잘 알아들은 것 같은데... 왜?”
한 시가 급한데 왜 오라는 키퍼들은 안 오는가.
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말이다.
나의 영웅을 닦달하는 건 좀 그렇지만, 다시 한 번 얘기해야 하나 싶었는데, 의외의 목소리가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그건 S급 키퍼들이 대부분 게이트에 들어가 있기 때문일 거예요.”
“...수연이?”
분명 수연이 목소리였다.
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구멍 위에서 수연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오빠!”
환하게 웃는 얼굴에 나도 환한 웃음으로 답해 주었다.
그런데, 오랜만인가?
1주일도 안 된 거 같은데...?
...양 옆에서 째려보는 듯한 눈빛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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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산 크루 소속 윌리엄 박입니다.”
호리호리한 느낌의 길쭉한 남자였다.
헤실헤실하게 웃으며 굉장히 무방비해 보였지만, 겉으로 판단해서 안 되는 사람이다.
이름난 S급 키퍼인데다가, 실눈캐니까.
“안녕하세요. 이정민입니다.”
“신용산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연이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네? 수연이랑 친하신가요?”
“물론이죠. 제가 어릴 때부터...”
“삼촌!”
실눈이 더 가늘어지려고 하는 순간, 수연이가 옆에서 막았다.
삼촌이라고 하는 걸 보니 진짜 친한 모양이다.
나보다 더 친한 걸지도?
“요게... 알았어. 저는 나가보겠습니다. 수연이가 영웅을 만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으...”
“삼촌!”
수연이가 두 번째 외치고 나서야 윌리엄 박이 막사 밖으로 나갔다.
수연이 얼굴이 빨개졌다.
여기 나만 있었으면 그래도 좀 괜찮았을 텐데, 케이라와 엘레나가 내 옆에 떡하니 서 있다.
“어, 우리도 나가 있을까? 두 사람 하고 싶은 이야기 마음껏...”
“아니, 괜찮아요. 중요하거나 비밀 이야기 아니니까 계세요. 저는 그냥 전해주고 싶은 게 있을 뿐이거든요.”
나가려는 케이라를 수연이가 막았다.
아마 수연이 뒤쪽에 기타 케이스 같은 게 전해주고 싶은 물건인 듯했다.
“뭐길래 여기까지 왔어? 여기 위험한데.”
“키퍼가 아니라도 들어갈 수 있다니까 왔죠. 저도 게이트 안의 세계를 보고 싶다고요.”
나도 저 마음을 잘 안다.
더군다나 수연이 주변에는 키퍼밖에 없을 테니, 더욱 게이트 안에 가보고 싶겠지.
“그래도 지금은 안 돼. 나중에 정리되면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저도 알아요. 그래서 그냥 이거 전해주려고 온 거예요. 어쨌든 제가 만든 거라 제가 조정을 해야 하거든요.”
“조정?”
수연이 케이스를 앞으로 가져와 열었다.
안에는 금속으로 된 팔이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은빛이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줬다.
“와... 이건 언제 만든 거야?”
“오늘 아침에 1차로 끝냈어요. 아직 완성하려면 멀었지만, 오빠가 또 싸워야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가져 왔어요.”
“아침에? 밤 샌 거야?”
“밤새는 건 일상이니까 걱정 마시고요. 어서 팔 줘 봐요.”
나는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민소매 전투복에 자켓을 입고 있었는데, 자켓을 벗으니 노란색 의수가 나왔다.
수연이가 의수를 과격하게 뜯어 버리자, 맨살로 덮여 있는 어깨가 드러났다.
“조금 아플지도 몰라요.”
수연이가 들어 올린 은색 팔에는 뾰족뾰족한 게 튀어나와 있었다.
“뭐야, 그걸로 바로 연결할 수가 있다고? 어떻게 그래?”
“영업 비밀이예요.”
수연이는 씽긋 웃더니 팔을 어깨에 꽂아 넣었다.
“흡...!”
밀려오는 격통에 나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조금 아프다더니,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크윽...”
“...죄송해요. 많이 아프다고 하면 안 한다고 하실까 봐서.”
“...아니, 그래도, 이런 게... 어?”
격통을 참으며 주먹을 꽉 쥐었는데, 오른손 뿐만 아니라 왼손도 움직였다.
지잉, 지징.
작은 모터 소리와 함께, 왼손가락들이 모아지며 주먹이 만들어졌다.
“어? 어?”
왼쪽 어깨가 번개 맞은 듯 아팠지만, 그보다는 왼손이 움직인다는 는 게 더 신기했다.
“됐다! 잘 붙었어요! 성공이에요!”
나는 팔을 들어올리고, 팔을 접고, 팔을 돌리기까지 했다.
반응도 빨랐고, 굉장히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원래 내 팔인 것만 같았다.
“이, 이게 뭐야? 뭐가 이렇게 잘 움직여?”
“그거야 제가 3일 밤낮을 샌 결과물이니까 그렇죠. 진짜 이거 만드는 데 얼마나 고생한 줄 아세요?”
“아니, 3일로 이게 된다고?”
“이 천재 과학자에게 불가능은 없어요. 이런 건 숨 쉬듯 할 수 있거든요.”
“진짜, 미쳤다, 아니, 와...”
내가 말을 못 잇고 있으니까, 케이라가 답답한지 메시지를 보냈다.
[바보야, 칭찬, 빨리 칭찬 좀 해 줘. 머리라도 쓰다듬으라고!]
어?
나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케이라의 마력에 의해 돌아가던 고개를 멈추고는 시선을 수연이에게 고정했다.
수연이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가슴을 편 채 서 있었다.
나는 그녀가 달아준 왼팔을 들어서 그 머리를 스윽 스윽하고 쓰다듬었다.
수연이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왼팔이 생긴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고마워, 수연아. 진짜 잘 쓸게.”
“헤헤.”
수연이가 기분 좋게 웃는다.
꼬리만 있으면 강아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귀엽다.
“그런데 이거, 뭔데 이렇게 가벼워?”
팔이야 모터가 알아서 움직이지만, 허리가 느끼는 좌우 밸런스가 차이가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2030kg은 나갈 것 같은 쇳덩어린데, 오른팔과 거의 같은 무게인 듯했다.
“딴딴이요.”
“...뭐?”
“제가 무진 삼촌한데 이거 얻어내느라고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엄마!”
“고마워, 수연아, 진짜 고마워.”
나는 감격에 젖어 수연이를 껴안았다.
두 팔로 사람을 안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격스러운데, 그게 딴딴이로 된 거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아니, 오빠, 잠깐만요.”
수연이가 민망한지 나를 떼어내려 했지만, 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고마움을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다.
어차피 케이라와 엘레나도 내가 수연이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익숙해질 필요도 있고.
그때, 막사 밖에서 한 사람이 뛰어 들어와 수연이를 구해줬다.
“죄송합니다. 급한 일...”
그 사람, 박세나는 뭔가 말하려다가 나와 수연이를 보고는 잠시 정지했다.
...왜 하필?
아니지, 윌리엄 박 보다는 낫나?
내가 스르르 수연이를 풀어주자, 그녀는 헛기침을 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게이트가 열렸어요.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모두 같이요.”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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