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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76화 (76/137)

〈 76화 〉 chapter 10. 이터널 게이트

* * *

76.

“어때? 뭐 좀 알아낸 거 있어?”

나는 막사로 들어오는 케이라에게 물었다.

“딱히... 아침과 비슷해.”

그녀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아침과 비슷하다면, 진전이 전혀 없다는 거다.

우리가 죽음의 땅에 도착한지 이틀.

밝혀낸 건 공간 관련 마법진이라는 것 뿐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이틀 동안 마법진은 커지는 걸 멈췄다.

죽음의 땅도 마찬가지로 더 커지지 않았다.

이게 마법진이 발동하기 직전의 신호는 아닌가 해서 더욱 더 열심히 조사하고 있지만, 만능 마법사였던 케이라에게도 불가능한 게 있었다.

엘레나가 아는 교단 지식 중에도 이런 건 없었다.

신탁으로도 알 수 없었다.

신성 2의 신탁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정보라고만 했다.

“좀 쉬면서 해. 하루 종일 거기 있었던 건 아니지? 안 그래도 이미 구멍으로 줄줄 새는데.”

“알고 있어. 조절하는 중이야. 너는 어땠어?”

“나? 나는 잘하고 왔지. 이제 방송도 익숙해.”

나는 아침까지 여기에 있다가 촬영 차 서울에 갔다가 왔다.

협회에서 잡아준 스케줄이어였다.

세상은 아직 백화로 시끄럽다.

정확하게는 외팔이 영웅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한다.

대부분의 언론에서 나를 섭외하려고 연락을 하는데, 이것 때문에 다 컷트했다.

이번엔 간 건 협회가 여러 번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죽음의 땅이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면, 이곳에 케이라만 혼자 두고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엘레나, 정말이에요?”

“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졌어요. 저희 앞에 있을 때만큼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지만요.”

엘레나는 내 보디가드 역할로 나와 함께 서울에 갔다 왔다.

“그거야 당연하죠. 방송인데 긴장도 안 하고 있으면 큰일나요.”

방송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집처럼 편안한 건 아니다.

당연히 그래서도 안 되고.

방송인이란 자고로 화면에 어떻게 나올까를 항상 생각하며, 행동도, 말도 조심해야 한다.

괜한 물의를 일으키면 곤란하니까.

나도 어느새 방송인이 다 된 것 같다.

이렇게 적응이 빠르다니, 체질 아닐까?

그러나 케이라는 내 말에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하긴, 예쁜 패널들 보면서 발정나면 큰일 나니까. 잘 단속 했죠? 엘레나.”

“네. 케이라보다 예쁜 사람이 없어서인지 다행히 조용히 넘어갔어요.”

아니, 내가 언제 그랬다고?

케이라는 이번에는 내 항의의 눈빛을 다르게 해석했다.

“...나보다 예쁜 사람이 있었던 거야? 그런데도 넘어갔다고? 정민이가?”

“아니! 그게 왜 또 그렇게 되는 건데? 케이라보다 예쁜 사람은 없었어.”

“아아, 있으면 넘어간다는 이야기구나.”

“있어도 안 넘어가!”

“...그래?”

케이라가 눈이 엘레나에게 향했다.

나도 그 눈동자를 따라서 엘레나를 봤다.

엘레나.

그녀는 아름답다.

케이라보다 예쁘다고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다.

그러나 그 반대도 언제나 성립한다.

케이라도 엘레나보다 예쁘다고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다.

결국 두 사람은 취향차이에 가깝다.

케이라가 차가운 미녀라면, 엘레나는 따뜻한 미녀라고나 할까.

물론 나는 둘 다 좋아하지만.

“...저, 그렇게 빤히 쳐다보시면...”

엘레나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푹하고 숙였다.

나도 놀라며 다시 케이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이거 봐. 역시 예쁜 사람만 있으면... 읍.”

나는 조잘조잘 떠드는 케이라의 입술을 내 입술로 막았다.

말과 달리 그녀는 적극적으로 호응해 왔다.

혀와 혀가 얽히고, 몸과 몸이 딱 붙었다.

잠시 후, 나는 그녀와 떨어졌다.

그리고 옆에서 고개를 돌릴 듯 말듯하면서 전부 다 보고 있던 엘레나를 끌어당겼다.

“어머... 읍!”

엘레나도 기다렸다는 듯이 팔로 내 목을 감았다.

케이라에게지지 않겠다는 걸까?

그녀의 혀는 조금 전 케이라보다 격한 느낌이다.

한 1분 쯤 그렇게 붙어 있다가 떨어지니까, 이번엔 케이라가 차례를 기다리는 듯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는 할 수 없다.

이곳은 죽음의 땅이고, 우리는 조사를 하러 온 거니까.

“오늘은 이걸로 끝. 이 일 해결 못하면 더 하는 건 어려워.”

“치이...”

케이라가 볼을 빵빵하게 만들고는 나를 쳐다본다.

너무 귀여워서 쓰러트리고 싶지만, 참았다.

섹스는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더 큰 일이 뒤따라올지 모른다.

“안 통해. 그보다 혼자 있을 때 안 불편했어? 협회에서 너한테 귀찮게 안 해?”

“전혀. 깔끔했어.”

“그래? 의외네.”

케이라 혼자 있을 때, 협회에서 케이라에게 접근할 줄 알았다.

이세계인과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

“질척대는 것보다는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게 아닐까요? 장기전이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이번엔 이렇게 넘어가고, 다음에 전력을 다하는 계획인 것 같아요.”

엘레나의 의견이다.

나도 거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협회가 이세계인에 대한 관심을 끊을 리가 없다.

“그럴지도. 아무튼, 둘 다 저 쪽에서 잘 해준다고 넘어가지 않을 거지?”

“당연하죠. 제게는 루와 정민님 밖에 없어요.”

성기사 답게 믿음직한 엘레나.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반면에 케이라는...

“...오늘 같은 대우면 넘어갈 지도?”

“뭐?”

“그러니까, 빨리...”

케이라가 몸을 비틀면서 내게 입술을 내민다.

...괜히 저 성욕 몬스터를 건드려가지고.

이렇게 되면 짧게라도 해야하나?

하지만 밖에서 방해가 들어왔다.

똑똑똑.

“마법진에 변화가 있습니다. 오셔서 봐야할 것 같습니다.”

협회원의 말에 우리는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문을 나섰다.

“무슨 일이죠?”

“그, 그... 일단 가시는 게...”

우리는 협회원을 따라 죽음의 땅으로 들어갔다.

마법진 위에는 이미 한성민이 서 있었다.

“부서장님, 무슨 일이죠?”

“직접 보시는 게 빠를 겁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구멍 아래를 보았다.

흰 색의 마법진 위에, 일렁이는 푸른 원이 생겨나 있었다.

“...게이트?”

나는 무심코 속마음을 말하고 말았다.

가로와 세로의 차이만 있을 뿐, 정말 게이트와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성민이 옆에서 동의했다.

“설마 벌써 누군가 들어간 건 아니죠?”

“아닙니다. 저희도 이제 막 발견했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할 생각입니다.”

의견이라...

일단은 들어가 볼 수밖에 없겠지.

게이트 너머에 기다리고 있는 게 뭔지는 몰라도, 닫을 수 없다면 들어가는 게 맞으니까.

아, 혹시 닫을 수 있나?

일말의 기대를 갖고 케이라를 보니, 그녀는 의외로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케이라? 뭔가 알고 있어?”

“응. 하나만 확인하면 돼.”

케이라가 바닥에서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케이라, 잠깐...”

그녀는 말릴 새도 없이 돌멩이를 아래로 던졌다.

“지금 뭐하는 짓...!”

갑자기 벌어진 일에 한성민도 돌멩이를 막지 못했다.

하지만 돌멩이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위에 멈추자, 그의 말도 멈췄다.

“맞네. 엘레나도 본 적 있죠?”

“네. 그게 맞아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한성민의 요청에 케이라가 주변을 둘러본 후 말했다.

“일단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건 당분간은 그대로 둬도 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럼.”

한성민이 협회 사람들에게 몇몇 지시를 하고는 우리를 자신의 막사로 안내했다.

+++

“이터널 게이트입니다.”

케이라가 설명을 시작했다.

“이터널 게이트는 항상 열려 있는 게이트로,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고요?”

한성민이 놀라며 반문했다.

나도 이터널 게이트에 대해서 처음 들었을 때 저런 표정이었을까?

“네. 키퍼가 아니라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부는 다른 게이트와 비슷합니다. 몬스터도 있고, 자원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이터널 게이트가 키퍼의 게이트보다 훨씬 큽니다.”

“그런 게 있는 줄은... 하지만 어떻게 저게 이터널 게이트란 걸 확신할 수 있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높아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게이트가 가로로 열렸다는 것. 두 번째는 게이트가 열리는 중이라는 겁니다.”

“게이트가 가로로 열린 건 알겠는데, 열리는 중이라는 게 어떻게 증거가 되죠?”

“일반 마법진의 효과는 한 번에 완성됩니다. 발동 전 준비 기간이 길 수는 있어도, 발동 후에는 보통 바로 효과가 나타나게 설계합니다. 지금처럼 애매한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러니 저 마법진의 효과는 이터널 게이트를 불러오는 것이라고 봐야합니다. 그리고 이터널 게이트는 늘 저런 식으로 열립니다. 갑자기 게이트가 나타나고, 짧게는 하루, 길게는 한 달 정도 기간 후에 완전히 열리게 되죠. 아마 게이트가 조금씩 커지는 걸 관찰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방금 전에 확인했습니다.”

“그럼 일단은 이터널 게이트라고 봐야겠네요. 어떻게 대처하면 되겠습니까?”

“일단 수비 병력이 필요합니다. 이터널 게이트에서는 몬스터가 나오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팀을 꾸려서 탐색하는 게 그다음이겠죠.”

“몬스터가 나온다고요?”

한성민의 표정이 좀 더 다이내믹해졌다.

“네, 몬스터가 나옵니다. 일반적으로는 작은 몬스터들이 소규모로 나오지만, 내부 게이트의 위치에 따라 대형 몬스터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조금 더 수비에 치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건...”

“이터널 게이트는 일반적으로 저절로 형성됩니다. 적어도 저희 세계에서는 그랬습니다. 엘레나는 어떻죠?”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세계에서도 저절로 열린다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엘레나도 그렇다네요. 그런 점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라는 겁니다. 저는 마법진에 의해서 이터널 게이트가 나타나는 현상을 처음 접합니다. 저희 세계의 기록으로도 본 적이 없고요. 이터널 게이트라는 건 90% 이상 확신하지만, 마법진이 게이트에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마법진을 설치한 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죽음의 땅’이라는 부가적인 효과를 보면 이 세계에 호의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렇다면 S급 키퍼를 불러 모아 수비를 단단히 하는 게 좋겠지요. 게이트를 통해 어떤 몬스터가 넘어올지 모르니까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본부장님과 상의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리고 다른 S급 키퍼들의 도움을 받으려면, 두 분이 이세계 출신이란 걸 알려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케이라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긴 설명 동안 케이라 예쁘고 멋지다는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협회가 알고 있는데, 숨길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제는 널리 알리는 게 나을 거다.

“괜찮습니다. 필요하시다면 알리세요. 그보다 강자들을 모으는 게 중요합니다. 마법진에 모인 기운은 철원을 날릴 만큼 거대했고, 그 막대한 에너지가 어딘가에는 쓰였을 테니까요. 반드시 뭔가가 일어날 겁니다.”

케이라가 마지막으로 강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협회의 역량을 총동원하겠습니다.”

한성민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받았다.

협회의 힘이라면 이 상황을 별탈 없이 넘길 수 있을 거다.

아마도...?

개인적으로는 그냥 그렇게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그럴 것 같지 않은 건 기분 탓이 분명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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