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chapter 10. 이터널 게이트
* * *
74.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백화의 주인공, 이정민 키퍼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GGC 소속 키퍼 이정민입니다.”
나는 카메라를 보면서 인사했다.
살짝 긴장한 상태라 목소리가 떨렸다.
너무 티가 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생방송은 처음이시라고 들었습니다. 크게 다른 건 없으니 편하게 하시면 됩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젠장, 심하게 떨었나 보다.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해 볼까요? 백화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제 기술에 그런 멋있는 이름을 붙여 주셔서 좋았습니다. 처음 시작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감사합니다.”
“에이, 그건 너무 형식적인 거 같은데요? 솔직하게 답한다면?”
이 사람이?
왜 대본과 다른 말을 시키는 거야.
나는 재빨리 짱구를 굴리다가, 그냥 나오는 대로 답했다.
“...큰일났다 싶었죠. 영웅에 백화에, 무슨 무협지 좋아하는 중2병 같잖아요.”
“조금 오글거리기는 하죠. 영웅 이정민의 백화... 이렇게 붙여 놓으니까 정말 선을 넘은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이런 부분이 싫었단 말씀이시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사실 오글거리는 건 좋아합니다. 중2병도 좋아하고요. 큰일 났다 싶은 건, 저는 무협지보다 판타지를 좋아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앞으로는 히어로라고 불러 주세요. 그리고 백화보다는 화이트 플라워가 마음에 듭니다.”
“하하하.”
진행자, 이재석이 내 대답을 듣더니 크게 웃었다.
“이거 참, 재밌으신 분이네요. 개그맨 하셔도 되겠는데요?”
“과찬입니다.”
내 눈앞의 남자, 이재석은 유명한 개그맨 출신이다.
그런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빈말이래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럼 히어로 이정민씨, 화이트 플라워란 어떤 기술이죠?”
“기술이랄 것도 없습니다. 그냥 에너지를 빛으로 바꾸었을 뿐이에요. 마법이죠.”
“그건 너무 만능 단어 같은데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일단 마법을 보여 드리죠.”
나는 오른 손을 들고 룬어를 떠올렸다.
화아악.
주먹만한 크기의 빛의 구가 내 손 위에 떠올랐다.
“이게 라이트입니다. 그냥 빛이에요. 한 번 만져 보시겠어요?”
“...만져도 되는 겁니까?”
“물론이죠.”
이재석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라이트를 만졌다.
이어 그의 손가락이 라이트 안으로 들어갔고, 손이 라이트를 통과했다.
그의 손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라이트의 모양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냥 빛이니까.
“오, 걸리는 게 없네요. 신기하네요. 진짜 아무것도 없는데 알아서 빛나고 있어요.”
“그렇죠. 이게 마법 ‘라이트’입니다. 백... 아니, 화이트 플라워도 기본적으로는 이것과 같아요. 대신 투입된 에너지가 지금의 수천 배 정도라서 그렇게 큰 빛이 되었을 뿐이랍니다.”
“그럼 화이트 플라워에는 파괴력이 없었다는 말씀이신가요?”
“가까이에서 터지면 실명은 하겠지만, 그냥 빛일 뿐입니다.”
“전 세계 석학들이 핵폭탄에 버금가는 위력이라고 한 건요?”
이게 백화가 유명한 이유 중에 하나였다.
핵폭탄 급 위력이라고.
개인이 그런 힘을 가지는 게 말이 되냐고.
실제로 백화는 그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백화를 구성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이 빛으로 바뀌었다해도, 사령술사의 잔존 에너지 자체가 워낙 컸으니까.
그러나 그 말을 여기서 할 수는 없다.
“그건 그냥 그 정도의 빛이 나오려면 일반 폭발물이 얼마나 필요할까를 계산한 거라서 그런 겁니다. 하지만 제가 쓴 건 일종의 마법입니다. 위력이 없어요.”
“석학들이 마법을 몰라서 잘못 해석한 거다. 그렇게 봐야 하는 군요.”
“네. 과학과 마법은 아직 어색한 사이니까요. 좀 더 알아가는 단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어색한 사이! 좋은 비유네요. 저희도 아직은 어색한 사이니까, 조금 더 알아가 볼까요?”
“물론이죠. 그러려고 나왔으니까요.”
“그럼 또 질문! 여기서도 화이트 플라워를 재현할 수 있나요?”
‘방금 재현했잖아!’라고 하고 싶지만, 나도 저게 무슨 말인지는 안다.
대본에 적혀 있던 다음 질문이니까.
“아니요. 못합니다.”
“왜죠? 설마... 빛이 아니라 폭발이라든가?”
“아닙니다. 절대로 아니에요. 일단 화이트 플라워를 만든 에너지는 제가 가진 에너지가 아닙니다.”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 에너지는 빌런과 키퍼의 격렬한 전투 중에 발생한 에너지입니다. 원래라면 서로 부딪혀 없어져야 할 것이 묘한 균형을 이루면서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그대로 두면 폭발하며 주변을 날려버릴 것이 분명하기에 저는 에너지를 빛으로 변환시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뒤로 나는 빌런은 누구고, 키퍼는 또 누구며, 에너지는 어떻게 발생하게 됐는지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했다.
이게 미끼 작전이었다는 이야기도 할 수밖에 없었다.
키퍼와 빌런의 존재를 설명하려면 필요했으니까.
빌런의 정체를 사령술사라고 밝히진 못했지만, 실제와 같이 전투 중에 사망했다고 말했다.
A팀의 사망 소식도 도중에 전했다.
이 모든 이야기는 협회와 상의한 결과물이었고, 이미 기사도 여럿 나갔다.
“...그렇게 된 거였군요. 시민들을 위해서 미끼를 자처하시다니,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저는 그런 인사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자격이 있다면, 제가 아니라 협회의 키퍼들에게 있겠죠. 또한 그 누구보다도, 이번 사건 때문에 죽은 다섯 명의 키퍼들이 감사 인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감사를 보내 주십시오. 그들이 여러분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리고 소환사를 잡기 위해 지금도 쉬지 않는 키퍼들에게 응원을 보내 주십시오. 이번에는 비록 잡지 못했지만, 다음에는 꼭 소환사를 잡아낼 겁니다.”
이재석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응원하겠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응원 덕에 키퍼들이 위험을 무릎 쓰고 빌런과 싸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PD의 신호에 따라 카메라를 보면서 고개를 숙였다.
대본대로라면 지금 화면에는 내 인사 후에 죽은 다섯 명의 얼굴이 나가고 있을 것이다.
잠시 후, PD가 신호하자 이재석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정민씨,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빌런을 막으려다 한 팔을 잃은 키퍼가 있습니다. 그는 해야 할 일을 한 걸까요? 명예로운 일을 한 걸까요?”
“당연히 명예로운...”
“그렇죠! 명예로운 일이죠.”
그가 미소를 지으며 내 몸을 슬쩍 돌렸다.
카메라에는 계속 내 옆모습만 나왔는데, 몸을 돌리자 정면이 나왔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임시 의수를 착용한 왼팔은 명백히 어색해 보여, 누가 봐도 의수란 걸 알 수 있었다.
“여러분은 못 보셨겠지만, 저는 계속 이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넘어갈 수가 없군요. 이 팔, 이번 빌런을 막기 위해 이렇게 된 건가요?”
“...그렇습니다. 제가 감당하기엔 벅찬 에너지라, 에너지를 제어하는 도중에 팔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싸게 먹힌 겁니다. 제 팔 하나를 잃고 수많은 사람을 구했으면 다행인 거죠.”
“그렇군요. 그럼 다시 한 번 인사드리겠습니다. 이 인사는 꼭 빼지 말고 받아주세요. 아시겠죠?”
“...당했네요. 알겠습니다.”
이재석이 진지한 표정으로 허리를 정중하게 숙였다.
“시민들을 지키기 위한 당신의 위대한 일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도 마주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별 거 아닌 일에 이렇게까지...”
인사까지는 별 반응 없던 그가 내 뒷말에 바로 일어나 짓궂게 웃었다.
“또, 또, 또. 정민씨, 정민씨가 이러시면 나중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뭐가 됩니까. 적당한 겸손은 좋지만, 과한 겸손은 좋지 않아요.”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갈 영광을 제가 가로막으면 안 되니까요.”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입니다. 제가 나중에도 그러면 꼭 찾아가서 강제로 감사를 받게 만들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그런 귀찮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가 더 조심해야겠네요.”
나는 그의 뒤편, 내 대본이 띄워져 있는 프롬프터를 보면서 말했다.
이게 마지막이었고, 이제 인사만 하면 생방송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럼 정민씨,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어? 이건 대본에 없는 건데?
조금 당황해서 이재석을 쳐다보니, 그의 눈이 웃고 있는 게 보였다.
“무, 물론이죠.”
“나중에 백화를 쓸 수 있을 만한 키퍼가 되시면, 꼭 한 번 더 보여주세요. 백화는 진짜 아름다웠어요. 영상으로는 담을 수 없는, 그런 아름다움이 있었거든요.”
“...”
순수한 기대감이 그 얼굴에서 보였다.
그래서 더욱 당황해 말을 멈추고 말았다.
백화를 이런 식으로 보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정민씨?”
“아, 그런데 제가 백화를 다시 쓰려면 S급 키퍼는 돼야 팔에 무리 없이 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게 가능할지... 또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기다리겠습니다. 제가 죽기 전엔 가능하지 않을까요? 꼭 한 번 더 보고 싶습니다.”
그는 아직 40대 초반 정도.
그가 죽기 전에는 충분히 가능할 거다.
“알겠습니다. 꼭 보여 드릴게요.”
의외의 곳에서, 성장할 이유를 하나 더 찾았다.
“좋네요. 기대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외팔이 영웅, 이정민과 그의 지지자 이재석이었습니다. 저는 다음에 또 다른 사람과 찾아오겠습니다!”
“...네?”
외팔이 영웅?
+++
“...진짜 당했네.”
화면엔 난 입을 반쯤 벌린 채 멍하니 있는 표정이었다.
마지막에 ‘외팔이 영웅’이란 말을 듣고 지은 표정이다.
“괜찮아요. 반응은 굉장히 긍정적입니다. 외팔이 영웅이라는 좀 없어 보이는 말이 정민씨를 친근하게 보이게 해주고 있어요. 역시 이재석이네요.”
수장님이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다.
이재석이 과연 그런 효과를 노리고 한 걸까?
“이 정도면 백화 때문에 정민씨를 무섭게 여길 사람은 없어 보여요. 다행입니다. 무엇보다 팔을 희생한 거에 대해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중이고요.”
외팔이가 된 건, 이 방송으로 처음 공개한 것이다.
넷상에선 모두 내 이야기인 모양이다.
외팔이 영웅, 히어로, 백화, 그리고 중2병까지.
“생방송 고생하셨습니다. 저도 생방송은 힘든데, 정민씨는 의외로 방송체질인가 보네요.”
“아니에요. 진짜 긴장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그런 것 치고는 처음 말고는 한 번도 안 떠셨어요. 아, 마지막에 조금 귀여웠습니다.”
“놀리지 마세요.”
내가 수장님을 노려봤지만, 수장님은 미소로 대응할 뿐이다.
사랑스럽다는 눈빛이 보기만 해도 느껴지니, 조금 분하다가도 금세 가라앉았다.
대신에 나도 밤에 잔뜩 놀려야지.
“협회에서도 방송 잘 봤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협회로부터 정민씨에게 요청이 왔습니다.”
“무슨 요청인데요?”
“이상한 마법진을 발견했다고 하네요. 케이라의 조언을 구하고 있습니다.”
“마법진이요?”
마법진이라면 나나 케이라가 가는 게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뭔가 찜찜하다.
협회를 적이라고 단정하지는 않았지만, 협회가 케이라와 엘레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는 건 사실이니까.
무슨 일을 꾸미는 지 알 수 없다.
“...그거 꼭 가야 하는 건가요? 수장님의 판단은 어떠세요?”
“일단은 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고요. 아직은 저쪽에서 들고 있는 카드가 많습니다.”
백화가 관측된 지 이제 3일.
우리 쪽도 이것저것 하고는 있지만, 아직 성과는 없는 상태다.
지금은 협회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맞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마법진은 또 뭐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