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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73화 (73/137)

〈 73화 〉 chapter 9. 사령술사

* * *

73.

“...그거, 많이 위험한 거 아니에요?”

“맞아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조용히 듣고 있던 수장님이 스르르 일어났다.

수장님의 표정은 굉장히 진지하다.

따라서 나도 그에 맞춰 줘야 하는데, 봉긋 솟아오른 가슴에 자꾸 눈이 간다.

저 끝에 매달린 과실이 얼마나 맛있는데.

“대책은요?”

“일단은 수장님께 성욕에 대해서 더 배워보려고요. 같은 류의 힘이니까, 힌트가 되겠죠.”

나도 몸을 일으켰다.

왼팔이 없는 건 여전히 어색해서, 일어나는 동작도 이상하다.

“이미 성욕은 다룰 수 있으시니, 배우고 싶은 건 정기겠군요.”

“네, 맞아요.”

수장님의 설명에 의하면, 정기는 성욕으로 100% 전환할 수 있는 에너지 저장 형태라고 한다.

서큐버스는 사람의 정기를 훔쳐서 저장한 뒤, 필요할 때 성욕으로 전환해서 사용하는 종족, 정확하게는 악마의 한 종류였다.

사령술사가 사람들에게서 기운을 빼앗아가는 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그래서 정기 흡수를 배우면, 혹시 사령술사가 만들어 놓은 통로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우선은 이게 정기예요.”

수장님이 오른 손 위에 울긋불긋한 빛으로 된 공이 떠올랐다.

주먹 정도의 크기였는데, 빛이 어째 굉장히 야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건 성욕 아니에요?”

“사실 맞아요. 그래서 100% 전환할 수 있는 거죠. 그래도 이걸 정기라고 부른답니다.”

“그게 무슨 말장난 같은...”

이라고 폄하할 건 아니다.

단어도 하나의 이미지라고 한다면, 결국 성욕을 정기라는 이미지로 전환 시키면서 보관을 유리하게 만든 거라고 봐야 했다.

경우는 다르지만, 이것도 내가 검기를 쓸 때 검기를 정확하게 이미지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무언가를 깨달으셨나요?”

“...조금은요. 그럼 정기 흡수는 어떻게 하죠?”

“저 같은 경우에는 정민씨의 성욕을 조금씩 가져와서 저장해요. 방금도 잔뜩 가져왔답니다.”

수장님이 굉장히 진한 미소를 지었다.

굉장히 만족스러웠나 보다.

진짜, 서큐버스 다 되셨다.

“네?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데...”

“그런 그만큼 정민씨가 제게 집중해 주셨다는 이야기네요. 감사해요.”

“그게 또 그렇게 되나요?”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얼굴이 화끈 거린다.

정신없이 누나를 탐하긴 했다.

나는 언제나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니까.

“그런 셈이죠. 하지만 알고 난 뒤에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거예요. 지금도 조금씩 가져오고 있거든요.”

“...오?”

확실히 알고 나니까 느껴진다.

내 주변에 떠 있는 몽글몽글한 기운이 수장님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럼 저도 해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일단 성욕을 일으켜 보세요.”

성욕은 이미 충분히 올라와 있었다.

아름다운 조각품이 지금 내 앞에 있는데, 차분히 있는 게 더 이상했다.

내가 성욕에 좀 더 집중하자, 수장님 쪽으로 흘러가던 기운이 멈췄다.

이게 막는 방법인 모양이다.

그럼 이런 식으로 빼앗아 오면 되겠지.

나는 수장님 근처의 기운을 끌어오기 위해 성욕을 움직여 보았다.

기운은 가볍게 끌려왔다.

하지만 수장님처럼 자연스럽게 내 성욕과 융화되지는 않았다.

“...다음은 어떻게 하죠?”

“간단해요. 저희가 뭘 하죠?”

“...섹스요?”

“정답이에요.”

기운과 섹스가 무슨 상관이냐 하겠지만, 상관이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형의 기운을 다루는 것은 이미지와 연관이 있다.

이미지가 명확하기만 하다면, 기운은 이미지를 따라온다.

나는 섹스를 떠올렸다.

그녀의 기운에 내 기운을 박아 넣는 것을 상상했다.

그녀의 안을 내 정액으로 채우는 것, 그게 이번 이미지다.

그러자 두 기운이 하나로 합쳐졌다.

내 기운이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는 수장님의 기운이기도 했다.

오묘한 느낌이다.

“...이거, 원래 기운이 섞이는 건가요?”

“네. 같은 상대의 기운을 계속 흡수하면, 그 사람과 기운이 비슷해지게 돼요. 그래서 정민씨가 제 기운을 다루기 쉬운 것도 있어요. 이미 꽤 많이 동화됐거든요.”

‘제 몸과 마음은 물론이고, 기운까지도 모두 당신 것이랍니다.’

왜 저 말이 이렇게 들리는 걸까.

요즘 내 머릿속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까지 음란마귀가 잠식한 것 같다.

“...그럼 다음은?”

“기운을 끌어와서 몸에 저장하시면 돼요. 저는 자궁에 저장하는데, 정민씨는 아마도...”

“아, 그건 알 것 같아요.”

딴딴이를 통해 증폭된 성욕은 항상 내 분신으로 가서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가장 쉬운 저장 장소는 바로 그곳일 것이다.

나는 성욕을 분신으로 보냈다.

이미 빳빳해져 있던 분신이 더욱 단단해졌다.

여기까지는 딴딴이 연구를 할 때와 같다.

보통은 여기서 성욕이 가라앉을 때까지 시간을 보내거나, 혹은 케이라와 엘레나에게 박아넣으면서 성욕을 풀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기’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성욕으로 100% 전환할 수 있다는 정기.

아마 생명력의 또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는 에너지.

나는 성욕이 정기로 변화하기를 바랐다.

꼬무룩.

신기하게도 분신이 스르륵 줄어들고, 정신이 맑아졌다.

“된 거 같은데요? 역시 잘 하실 줄 알았어요.”

“그런가요?”

톡톡.

수장님이 내 분신을 건드리는데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이건 역시 현자타임이다.

하지만 정기는 바로 성욕으로 전환할 수 있다.

“어맛...!”

분신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위풍당당해졌다.

거기에 맞춰서 수장님의 손길도 끈적해졌고.

“그, 정민씨... 정기 흡수 연습을 계속해볼까?”

“응, 누나. 나도 계속 하고 싶었어.”

그 뒤로 우리는 몸을 섞으며 정기를 주고받았다.

정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서로의 정기가 섞이기 때문일까.

보통의 섹스와는 다른 묘한 고양감이 있었다.

그러나 결론은 이거였다.

이걸로는 사령술사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겠는데?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

키퍼 협회 본부 회의실.

“...그렇게 된 겁니다.”

박세나는 이정민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협회에 보고했다.

키퍼 협회 총괄 본부장 이자영과 대빌런전담부서장 박태영이 보고상대였다.

“악마? 이세계인? 정말 사실인가?”

“네.”

이자영의 물음에 박세나가 답했다.

“그런 중요한 사실을 왜 이제 알린 거지?”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박세나는 섣불리 변호하지 않았다.

그녀의 잘못된 발언이 오히려 피해를 줄 수도 있으니까.

“저희가 못 미더웠나 봅니다. 협회야말로 누구보다 키퍼를 위하는 단체인데 말이죠.”

“그런가? 그것 참 아쉽네. 우리가 더 노력해야겠어.”

‘...생각보다 놀라지 않아.’

박세나는 평범한 대화를 이어가는 두 사람이 의아했다.

게이트와 키퍼가 있는 세상이지만, 이세계인이 있다는 것과 악마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녀처럼 놀라 되묻기라도 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그녀가 열심히 준비한 대답이 쓸모가 없어지니까.

“악마가 딴딴이를 노렸다라... 이건 확실한가?”

“네, 제가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습니다.”

“이유는? 이세계 친구들은 뭐라고 하던가?”

“딴딴이는 이세계에서 ‘악마의 금속’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악마의 힘을 증폭시켜주기도 한답니다.”

“확실히... 이전에도 딴딴이를 악마의 금속이라 부르자는 의견이 있었지.”

“딴딴이에 그런 능력이 있는 줄을 처음 알았네요. 어떻게 보면 신용산의 전략이 통했네요.”

“그 사람은 그렇게 전략적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야. 그냥 자기 마음대로 부른 거야.”

두 사람은 딴딴이에 좀 더 관심이 많은 듯했다.

적어도 박세나가 판단하기에는 이 사실에 더 놀라고 있었다.

“그나저나 그럼 이정민이 악마의 힘을 쓴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흐름에 맞겠지요. 네 의견은 어떻지?”

“저도 그렇게 추측합니다.”

박세나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를 했다.

그녀에겐 이정민이 알려준 것을 굳이 숨길 이유까진 없었다.

그리고 숨긴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협회에서는 이미 이정민이 쓰는 힘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마력과 마나, 마정석에 관한 연구는 하고 있었고, 마정석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딴딴이와 그리 격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정민이 말하는 ‘마나와 딴딴이가 반응했다’ 걸 순진하게 믿을 협회가 아니었다.

이제 악마가 등장한 이상, 이정민이 쓰는 힘도 악마의 힘이라고 보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증거는 없다는 이야기군. 혹시 악마로 보였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박세나는 짧고 굵게 답변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하고 싶었다.

그녀가 보기에 코드 네임 ‘사령술사’와 이정민의 행동은 확실히 달랐다.

“제가 보기에도 악마는 아닐 것 같군요. 출생 기록부터 확실하니까요. 악마였다면 딴딴이도 마나랑 반응한다고 끝까지 밀고 갔겠죠.”

“그래도 주시는 해야겠네.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악마의 힘을 쓰니까.”

“그 외에도 관심을 가질 이유가 많습니다. 마법사에, 이세계인에... 젊은 친구가 모든 걸 다 가졌네요.”

“포섭이 확실히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자신을 슬쩍 쳐다보는 이자영 본부장의 눈길에 박세나가 고개를 숙였다.

이정민을 포섭하라던 그녀의 임무는 명백히 실패였다.

“...조금 더 노력해 보겠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박세나는 협회와 이정민이 조금 더 돈독한 관계에 들어가길 바랐다.

그녀는 어쩔 수 없는 협회 소속이고, 이정민은 은인이니까.

“자네를 계속 소통 창구로 쓸 거니까, 기회라면 기회지. 알아서 해봐. 할 수 있으면 이세계인도 포섭해 보고.”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일단 나가 봐.”

박세나는 인사를 하고 회의실을 나섰다.

탁.

문을 닫고 나온 박세나는 쉽게 회의실을 떠나지 못했다.

‘뭔가 찜찜해.’

상사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이정민은 악마화 되지 않았고, 협회는 아직 포섭하려는 입장을 고수한 셈이니까.

그런데도 뭔가 놓치는 게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엿들어 볼까.’

회의실에 남은 두 상사가 중요한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그녀 앞에서야 이정민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반응했지만,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니까.

빌런들은 항상 그랬다.

늘 앞과 뒤의 모습이 달랐다.

‘...아니야.’

그녀는 고개를 젓고서는 회의실을 떠났다.

협회를 빌런과 동급으로 생각하다니, 그녀 스스로 생각하고도 어이없는 일이었다.

협회를 의심하는 일은 그녀가 할 일은 아니다.

그녀는 협회의 도구로서 받은 임무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니까.

+++

“우리도 드디어 이세계인이군.”

총괄 본부장 이자영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세계인이 이렇게 굴러들어오다니, 이걸로 뒤쳐질 걱정은 없겠군요.”

대빌런전담부서장 박태영도 마찬가지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그간 한국은 키퍼 강국의 입장이었다.

세계 최고의 금속 딴딴이가 있었고, 인구대비 키퍼도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최근 다른 나라에서 나타난 이세계인 때문에 그 위치를 위협 받을 뻔했다.

물론 세간에 공개되진 않았고, 아는 사람도 일부 중에 일부인 정보이지만.

“어떻게 하면 이세계인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

“그냥 잡아들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악마라고 밀어 붙이고 말이지요.”

“그것도 한 방법이긴 하지. 하지만 악마를 갑자기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건 조금 꺼려지는군.”

“동의합니다. 리스크가 있죠.”

“일단은 천천히 가자고. 그들에게 어떤 제약이 있는지는 알아야 진짜 계획을 세울 수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웃었다.

그들에게는 요즘 모든 것이 잘 되는 중이었다.

협회의 이미지는 올라가고, 이세계인도 손 안에 들어온 거나 다름없으니까.

이대로라면 세계를 손끝으로 주무르는 것도 머지않은 일이 될 거라고, 두 사람은 속으로 생각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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