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chapter 9. 사령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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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이세계인이라뇨? 대체 그게 무슨 소리죠?”
“두 사람은 제 게이트를 통해 넘어온 이세계인입니다.”
“게이트요? 게이트에서 어떻게...”
박세나가 경악했다.
키퍼가 이 땅에 등장한지 27년, 짧지 않은 시간 중에 게이트에서 누가 나오는 건 내가 확실히 최초다.
“그렇게 됐습니다. 제 게이트는 제가 들어가는 게이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오는 게이트예요.”
“그게 말이 돼요?”
박세나가 눈을 더 크게 떴다.
이렇게 보니 그녀의 눈도 꽤 크고, 눈이 크니 사람이 좀 맑아 보인다.
분명 퇴폐적인 이미지가 가득했는데.
“말이 안 되도 어쩌겠어요, 이미 있는데. 저도 이유는 모릅니다. 제가 키퍼가 된 이유도 모르는데, 제 게이트가 다른 사람과 다른 걸 어떻게 설명해드리면 될까요?”
“...그렇죠. 제가 실언을 했네요.”
“이해합니다. 충격적인 이야기일 테니까요.”
그녀는 사과와 함께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럼에도 아직 놀람이 눈동자에 남아 있었다.
“그럼 두 사람이 한국... 아니, 지구인이 아니라고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키퍼도 아닙니다.”
“키퍼가 아니라는 건 무슨 의미죠? 마법사에 기사였는데... 설마...”
박세나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이었다.
상황 판단도 빨랐고.
“맞아요. 두 사람의 세계는 진짜 판타지 세계입니다. 둘은 게이트를 열 수 없으니 키퍼가 아니고, 따라서 키퍼 등록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맞지만... 법의 취지를 생각하면...”
“그렇죠. 그래서 이제라도 등록을 할까 합니다. 제 몸을 좀 추스르고 난 뒤에 천천히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협회에서 이런 예외 사항에 대한 조항을 조금 마련해 주시는 건 어떨까요?”
“...알겠습니다. 건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으로 약간은 시간을 번 셈이다.
그리고 협회가 대응책을 결정하는 동안, 우리도 움직여야 한다.
아무도 우리를 못 건드리도록.
“다행히 제가 은인 두 분을 연행할 필요는 없는 거군요. 실례를 범하지 않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말하는 걸로 보아, 박세나는 우리에게 상당히 우호적이다.
같은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동료애 같은 걸까나.
“이제 용건은 끝난 건가요?”
“마지막 이야기가 남았습니다. 빌런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계신 게 있습니까? 시체가 사라져서 저희에게는 단서가 전혀 없습니다. 그때 악마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아는 사이신지요?”
시체가 사라져?
‘힘’이 흩어지면서 사라진 건가?
돌이켜보면 서큐버스의 시체도 남지 않았다.
악마들의 육체란 실제 육체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아니요. 말 그대로 진짜 악마입니다.”
“악마... 그런 게 세상에... 있겠군요.”
게이트와 몬스터가 있지만, 악마와 신이 존재한다는 건 또 다른 문제다.
하지만 이세계인의 존재에 대해서 듣고 난 다음이니, 신과 악마도 존재에 대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게 이치에 맞으니까.
“제 이세계인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악마는 인간을 뛰어넘어 신이 되기 위해 여러 차원을 돌아다니는 존재라고 합니다. 흔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세계에서는 종종 나타난다고 하더군요.”
“악마의 목적은, 딴딴이 입니까?”
박세나는 그날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다.
악마의 목적이 뭔지는 그녀도 봤으니 알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다른 차원에서 딴딴이는 ‘악마의 금속’, 혹은 ‘아타만티움’이라고 불립니다. 악마의 힘을 증폭시켜준다던데, 악마도 그걸 노리고 온 것이겠죠.”
“저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제작 키퍼들 중에 딴딴이 이름을 바꾸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죠.”
“그랬나요? 역시.”
모든 의문은 풀렸다.
딴딴이란 이름은 신용산 크루 수장 김무진의 횡포다.
어쩌면 ‘악마의 금속’이란 이미지 대신에 선택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악마가 나타나는 이유도 아십니까?”
박세나가 굉장히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런 대화 흐름이라면, 실제로 묻고 싶은 질문은 저게 아닐 것이다.
악마와 나, 악마와 이세계인이 관계가 있는지 궁금한 거겠지.
“모릅니다. 다만 제 게이트에서 나온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 제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의심으로 들렸다면 죄송합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기도 하지요. 세나씨는 아니더라도, 이런 상황이면 저를 의심할 사람이 넘쳐날 테니까요.”
당장 그녀가 협회에만 돌아가도 나를 의심하는 사람이 나올 거다.
악마가 나타난 시기와 이세계인이 나타난 시기가 공교롭게도 겹쳐 버렸으니까.
둘 사이에 어떠한 연관이 없더라도 사람들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사건 두 가지를 연결 짓기 마련이다.
어쩌면 둘 사이에 내가 모르는 연관성이 있는지도 모른다.
악마가 나타났기 때문에 이세계인이 나타났다거나, 이세계인이 나타났기 때문에 악마가 나타났다는 것처럼 단순한 인과관계가 아니라, 조금 더 높은 차원에서의 연관성 말이다.
이를 테면 차원과 차원을 가르는 경계가 희미해졌기 때문에 악마도, 이세계인도 등장할 수 있었다 같은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제가 정민씨를 변호하겠습니다. 저는 정민씨를 믿습니다.”
“세나씨가 같은 편이 되어 주신다니, 든든하네요.”
“은인께 도움이 된다니 제가 더 기쁘네요.”
‘같은 편’이라는 용어까지 썼는데, 박세나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단순히 우호적인 걸 넘어선 모양이다.
“이제 진짜로 용건이 끝난 건가요?”
“네. 아, 그리고 미끼 작전은 잠정적으로 중단입니다. 딴딴이를 노리는 다른 세력이 또 있을지 모르니까요.”
“아쉽군요. 저희는 이것으로 마지막인가요?”
“...네? 아, 그게...”
박세나의 얼굴이 당황한 듯 풀어진다.
“잠깐만 이쪽으로.”
그녀는 수장님과 수연이의 눈치를 살피더니 머뭇거리면서 침대 가까이로 왔다.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건?”
“악수나 하자고요. 이게 마지막인데.”
“아, 아, 네.”
사람이 갑자기 바보가 된 듯했다.
‘아쉽다’는 말이 그렇게나 충격이었나 보다.
자기가 먼저 몸으로 유혹해놓고는... 또 나만 진심이었지.
박세나가 부끄러운 듯 내 손을 살포시 잡았다.
나는 그 손을 통해 내 감각을 확장했다.
그리고 박세나의 몸에서도 ‘그 힘’이 새어나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
이걸 알아내려면, 몸을 접촉해야만 했다.
“다음에 또 봐요.”
“...네. 쾌차하시길 기원합니다.”
박세나는 인사를 마치고 후다닥 병실을 빠져 나갔다.
“수연아, 이야기 다 들었지?”
“네? 아, 네!”
“김무진 수장님께 잘 전달해 드려. 이것저것 궁금하신 게 많으실 거야. 그에 관해서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으면 얼마든지 나한테 물어보고.”
굳이 수연이가 있는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한 건, 신용산 크루에게도 관련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세계인과 악마의 존재,
악마가 딴딴이를 노린다는 것도.
박세나가 협회에 내 이야기를 전해준 것처럼, 수연이도 신용산 크루에 내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두 집단이 내 이야기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우호적인 메신저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거니 좋은 반응이 돌아올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 확률이 높은 건 다수의 집합체인 협회보다는 한 사람이 모두를 지배하는 신용산 크루 쪽이다.
수연이가 나에게 느끼는 부채감도 박세나 보다는 클 것이고.
“그리고 딴딴이에 관한 연구라면 앞으로도 내가 전력으로 도와줄게. 이번처럼 같은 집에서 연구하는 건 어렵겠지만, 다른 방법이 있겠지.”
“알겠어요. 방법은 제가 찾아볼게요.”
신용산 크루에 직접 가서 연구를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그게 일반적이겠지.
왔다갔다 하느라 조금 피곤할 수는 있지만, 신용산과는 꼭 손을 잡고 있어야 했다.
협회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그런데 오빠,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수연이 답지 않게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뭔데?”
“오빠가 쓰는 힘은 악마의 힘인가요? 아니면, 마나가 악마가 쓰는 힘인가요?”
역시 그냥 넘어가질 않는다.
수연이가 질문한다는 이야기는 박세나도 질문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박세나는 질문의 무거움 때문에 하지 못했겠지만, 수연이는 학자로서의 궁금증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내가 쓰는 에너지가 마정석에서 나오는 에너지랑 달라서 의심하고 있었을 테니까.
“맞아. 악마의 힘이야. 하지만...”
“역시! 그럼 모든 게 맞아 떨어지네요. 그럼 마정석에서 나오는 게 마나가 맞는 거죠?”
수연이는 내가 준비한 변명, ‘하지만 힘은 힘일 뿐이고, 나는 악마가 아니다’를 듣기도 전에 신나서 내게 또 물었다.
“아, 아마 그럴 거야.”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렇게 되는 거였네요. 혹시 마나에 관해서도 연구할 수 있을까요? 오빠가 안 되면, 그 마법사 분이라도.”
수연은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 같았다.
케이라와 비슷하다.
연구자는 어느 차원에서나 똑같은 모양이다.
“수연이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해. 그 마법사도 연구를 좋아하니까.”
“좋아요. 할 일이 많아지겠네요. 저는 얼른 가서 준비할게요. 마나를 좀 더 잘 다루게 되면, 오빠 팔도 더 멋있는 걸로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수연이는 말처럼 바로 병실을 나가려고 했다.
그녀도 아직 환자복을 입고 있는 환자인데, 당장 퇴원 수속을 밟을 기세다.
“그, 수연아. 그런데...”
“그 부분은 걱정 마세요. 저랑 오빠 사이잖아요? 저는 오빠를 믿어요. 그러니까 오빠도 저를 믿어주세요. 비밀은 꼭 지킬게요.”
수연이는 그 말과 환한 미소를 남기고 병실을 나갔다.
그녀의 마지막 말에 주어와 목적어는 거의 다 생략되었지만, 뭘 말하고 있는지는 나도 알고, 그녀도 알고, 수장님도 알았다.
“정민씨의 친화력은 남다르네요.”
“과찬이세요. 평범할 뿐입니다.”
“그래서 신용산의 젊은 재원을 오빠 동생하고, 협회의 비밀 병기를 자기편으로 만드셨나요?”
“그거야 전부 GGC를 위한 제 노력의 산물이랍니다. 지금 제 위치가 조금 애매하니까, 조금이라도 우호적인 사람들이 있어야하지 않겠어요?”
“...제가 더 도와드릴...”
마지막 말은 굉장히 작아서 잘 안 들렸다.
안 들어도 내용은 알 것 같았다.
그냥 질투인 게 뻔했다.
“케이라와 엘레나는 별 말이 없나요? 정민씨가 이렇게...”
“다른 여자와 노닥거려도 괜찮냐고요?”
나리 누나가 당황한 듯 두 손을 흔든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리 누나, 가까이 와 봐.”
“...왜.”
퉁명스러운 척하는데, 누나의 몸은 굉장히 솔직했다.
그녀는 침대에 바싹 붙어 섰다.
내가 그녀의 허리를 감기 쉬운 위치에.
나는 그녀가 원하는대로 그녀의 허리를 감아 끌어당겼다.
“야, 잠깐... 읍..., 츄릅.”
뭔가 오랜만에 맛보는 거 같은 누나의 입술.
실은 3일 밖에 안 됐지만.
누나의 혀는 여전히 나보다 더 현란하게 움직였다.
우리는 한동안 키스를 하다가 떨어졌다.
“...”
“이제 좀 조용하네. 내가 다른 여자들이랑 잘 지내는 것 같으니까 질투 나?”
“아니, 그게 아니... 하윽...”
나는 누나의 정장 위로 꼭지를 정확하게 집어내어 꼬집었다.
“또, 또, 또. 솔직해지지 않으면 상은 없어.”
“...그래, 미워 죽겠어. 누구는 걱정 돼서 밤새 잠도 못 잤는데, 그것도 몰라주고 젊은 여자애들이랑 놀고 있고.”
“세나씨는 누나보다 나이 많을 텐데?”
“지금 그게 중요해? 그런 말이... 읍... 하읍...”
나는 다시 누나의 입을 막았다.
화를 내는 것 같으면서도 키스는 아주 뜨거웠다.
어쩌면 화내는 만큼 더 격렬한 것 같기도 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누나가 질투가 제일 심하네.
“...그래서 이제 내가 싫어?”
“...아니, 좋아.”
“그럼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다른 여자랑은 말도 하지 말까? 케이라랑 엘레나도 버릴까?”
“아니, 그게... 진짜, 이제 그만 놀려.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이제...”
조금 더 놀리고 싶다.
조금 더 안달나게 하고 싶다.
이미 그녀 스스로 허벅지를 비비며 참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그러니까 이제, 뭐?”
“...나도 사랑을 줘.”
“응?”
“씨발, 이 좆 좀 달라고!”
누나는 더 이상 못 참겠는지, 스커트를 허리 위로 올리고는 팬티 스타킹을 스스로 찢었다.
이미 흥건히 젖은 팬티를 옆으로 밀자, 핑크빛 보지가 나타났다.
“말 잘했어. 누나.”
나도 이불을 걷어내고 잔뜩 성이 난 자지를 꺼냈다.
그러자 누나가 바로 그 위로 앉았다.
“하으응! 씨발, 이거야, 항, 이거야앙”
신음 한 번 시원시원해서 좋다.
소리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케이라와 엘레나가 어떻게 해 줄 거다.
나는 누나의 움직임에 맞춰 강하게 허리를 튕겼다.
“좋아, 정민씨, 거기야, 거기, 흐읍!”
나리 누나의 눈동자가 언제나처럼 쾌락으로 뒤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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