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chapter 9. 사령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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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오빠! 괜찮아요?”
케이라에게 마력을 충전해주고, 엘레나에게도 마력을 충전해 주었다.
그러자 시간을 맞추기라도 한 듯 바로 수연이가 병실로 왔다.
그녀도 하얀 환자복을 입고 있다.
바로 옆 병실이라고 들었다.
참고로 난 하루 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다.
“응, 괜찮아. 너는 어때?”
“저야 물론 괜찮죠.”
“다친 데가 없어서 다행이야. 예쁜 얼굴에 상처라도 났으면 가슴 아팠을 것 같은데.”
“...네?”
수연이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왜?
“아, 아니에요. 그... 전부 오빠 덕이라고 들었어요. 진짜 감사해요.”
“뭘, 네가 가져온 딴딴이 덕분에 이긴 걸.”
수연이가 연구 목적으로 가져온 딴딴이 막대기가 아니었으면 절대로 살아남지 못했다.
그 전에 묠니르를 안 빼앗겼으면 됐겠지만, 사령술사의 힘으로 볼 때 뺏기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봐야했다.
“아... 딴딴이...”
수연이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뭐가 잘못됐나?
“왜? 딴딴이 설마 부서졌어?”
“아니요, 딴딴이는 멀쩡해요. 둘 다.”
“그럼?”
“저, 그... 죄송해요. 저 때문에 오빠가 그렇게 돼서...”
수연이가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목소리도 울먹이고 있다.
“괜찮아. 네가 아니었더라도 결국 벌어질 일이었어. 오히려 들고 와서 좋았어. 두 딴딴이가 한 자리에 있었으면 진짜 큰일 났을지도 모르니까.”
“그, 그래도... 정말로 죄송해요.”
뚝뚝.
굵은 물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방금까지 웃고 있던 사람이 맞는지 의문일 정도다.
탁.
스윽스윽.
난 수연이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쓰다듬었다.
“괜찮아. 실수잖아. 다음엔 잘하면 돼. 우리 다 살아 있잖아.”
“흐아앙.”
수연이가 나를 끌어안고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끄윽, 끄윽. 죄송해요, 죄송해요...”
나는 말없이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이 경험이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되기를.
머리 좋은 사람이니까, 한 번의 실수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파이팅.
수연이는 한참을 울었다.
내 가슴팍이 눈물로 다 젖어서 질척해질 때까지 울었다.
울음은 조금 전에 멈췄는데, 그녀는 여전히 내 품에 안겨 있다.
이제 부끄러운 모양이다.
“...이제 다 울었어?”
“...네.”
“그럼 얼굴 들어 봐.”
“...싫어요. 지금 얼굴 이상하다고요.”
“그게 잘못한 사람의 태도야? 내 말 안 들어?”
“아니, 그... 치사해...”
수연이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엉망...은커녕 더 예쁘기만 했다.
연구자라는 직함답게 화장이 적은 편이라, 눈물로 망가질 게 없었다.
나는 그녀의 눈가를 닦아줬다.
“예쁜데?”
“...네? 아니, 그...”
수연이의 볼이 빨개졌다.
고개를 숙이고 싶은데 내 손이 볼을 잡고 있으니까 안절부절 못하는 것도 귀엽다.
“몸은 진짜 괜찮은 거 맞지?”
“네, 괜찮아요. 울어서 그런지 속도 풀렸고.”
수연이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수연이는 역시 웃는 게 제일 잘 어울린다.
우는 것도 못지않게 아름답지만.
하지만 수연이의 몸에서도 ‘그 힘’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케이라와 엘레나처럼.
“그래, 그럼 다행이야. 앞으로도 답답하면 울어.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얘기하고.”
‘그 힘’에 대해서 아직은 말하지 않을 거다.
딱히 고칠 방법도 없으니까, 괜히 불안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낫겠지.
“네, 무조건 오빠 찾아올게요. 살아 있어줘서, 살려줘서 고마워요. 이 은혜는 오빠의 팔을 만드는 걸로 꼭 갚을게요.”
“팔을 만들어?”
“네, 제가 심혈을 기울여서 사람 팔보다 좋은 걸로 만들 거예요. 반드시요!”
자기 전문분야가 나오자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수연이다.
로봇 팔이라, 고마움과 미안함에 그녀 자신의 욕구도 채울 수 있는 아이템이다.
나도 급 구미가 당긴다.
내 팔은 엘레나가 재생시켜 줄 예정이지만, 수연이에게는 비밀로 해야겠다.
로봇 팔도 한 번쯤 보고 싶다.
똑똑.
“어, 누구 왔나 봐요.”
수연이가 재빨리 침대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마른세수를 몇 번 하고나자, 눈물 자국도 금방 사라지고 평소의 수연이 얼굴로 돌아왔다.
젊어서 그런가? 얼굴회복력이 장난 아니다. 키퍼도 아닌데.
...그러는 나도 수연이보다 3살 밖에 많지는 않지만.
“누구시죠?”
“저예요. 들어가도 될까요?”
수장님이었다.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뛰어온 모양이다.
“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왔다.
수장님과 박세나였다.
“무사히 깨어나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수장님의 얼굴엔 언제나와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감정이 한껏 묻어나 있었다.
듣고 있던 수연이가 놀랄 정도였다.
감정에 놀랐다기 보다는, 표정과 감정 사이에 괴리감 때문에 놀랐을 거다.
“다 수장님 덕분이죠.”
“진짜 다행이에요.”
어느새 수장님의 눈가에는 물방울이 맺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고.
귀여우면서도 대단하다.
저 포커페이스는 대체 어디서 배운 걸까?
나는 수장님을 위해 박세나에게로 화제를 돌렸다.
“세나씨도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에요. 덕분에 빌런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뭘 했다고요. 전부 정민씨가 한 일이죠.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박세나는 오늘 아주 차분한 차림이었다.
검은 바지 정장에 머리도 차분하게 묶었다.
평소에 헐벗은 것만 보다가 저런 차림을 보니 또 사람이 새로웠다.
한없이 가볍기만 한 사람은 아닌가보다.
그녀가 내게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죽은 부하들과 살아남은 부하들을 대신해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정민씨 덕분에 편하게 갔고,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았습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이번 사건에서 죽은 사람은 협회 사람 다섯 명이 전부였다.
박세나가 저런 차림으로 있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다 같이 한 일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없었으면 모두 죽었을 거예요. 죽은 사람들의 숭고한 희생에 저야말로 애도를 표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묵념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운 좋게 살아남았다.
모두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
꼭 잊지 말아야겠다.
“흠흠, 그럼 일적인 이야기를 해볼까요.”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수장님이 운을 띠웠다.
박세나가 말했다.
“협회에선 이번 일을 빌런과 키퍼의 전투로 세상에 발표했습니다. 빌런은 사라졌고, 사상자는 없었다. 물론 키퍼 사상자는 있었지만, 늘 그렇듯이 없는 걸로 발표되었습니다.”
이 부문에서 박세나가 잠깐 입술을 깨물었다.
자기 부하들이 이름도 빛도 없이 죽어갔으니 안쓰러운 게 당연했다.
“이런 일들은 종종 있었고, 민간인 사상자는 없었기에 이번에도 넘어갔으면 좋겠으나,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왜죠?”
또 저번처럼 영상이 남았나?
하긴, 마지막 폭발이 좀 크긴 했을 거야.
통제하는 것조차 많이 힘들었으니까.
“마지막 폭발 때문입니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영상을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박세나가 핸드폰을 꺼내 조작하고는 나에게 건넸다.
핸드폰에는 너튜브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지구를 찍은 영상이었다.
갑자기 웬 지구?
그러나 곧 왜 지구를 찍는지 알았다.
영상이 줌이 되더니, 아시아, 한국, 그리고 서울 근교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흰 빛이 꽃잎모양으로 퍼져나갔다.
화면에서는 작아 보였지만, 꽃잎은 서울에 닿을 정로 길었다.
어림잡아도 20km는 될 듯한 길이다.
이어서 그 빛을 이곳저곳에서 찍은 듯한 영상이 이어졌는데, 30km 안에서는 흰 빛밖에 안 보였고, 30km를 넘어가서야 가로로 길게 퍼진 모양이 대충 보였다.
“...이거, 뭐죠?”
내가 한 일이지만 스케일이 너무 커서 내가 한 일이 아닌 것만 같다.
이게 말이 돼?
“사람들은 화이트 플라워, 백화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니, 그 부끄러운 이름은 또 뭐예요.”
“저는 꽤 괜찮은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딴딴이보다는 훨씬 낫죠.”
“딴딴이는 갑자기 왜...”
갑자기 공격을 맞은 수연이가 울컥했지만, 박세나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조회수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백화에 대해서 말하는 중입니다. 협회는 백화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려달라는 압박을 받고 있고요. 원하신다면 끝까지 숨기겠지만, 협회에서는 정민씨가 직접 나서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영상이 올라온 지 6시간 정도 지났을 뿐인데, 조회수가 벌써 5천만을 넘어섰다.
이 정도면 밖이 꽤나 시끄러울 것이다.
“수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되도록 빨리 알리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백화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 백화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아질 테니까요. 정민씨는 지금 용사라는 이미지가 있으니까, 백화의 존재가 있더라도 정민씨를 지지하는 세력을 만들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시기를 놓치면, 정민씨를 두려워하는 세력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그 리스크를 안고 가느니, 조금 귀찮아지는 게 낫습니다.”
나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라...
영상 댓글에도 이미 싸우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개인이 저 정도의 힘을 가지는 건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막으려다가 발생한 거라잖아. 힘과 힘이 충돌해서 생긴 거라고.]
[그게 그거잖아. 저거 보다는 약해도 비슷한 크기의 힘이겠지. 그런 걸 개인이 휘두른다니... 너무 무섭네. 갑자기 돌변해서 사람들을 죽이면 어떡해 해?]
[키퍼들은 착해. 그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고.]
[헛소리, 인간은 다 똑같아. 키퍼놈들이라고 다를 거라는 건 동화지. 이런 건 시스템으로 막아야 해. 키퍼들에게 폭탄목걸이를 끼우자.]
[난 찬성. 키퍼들은 악마야.]
[...너네들 다 병신이냐? 이미 옛날에 끝난 이야기를 또 하고 있어. 공존하는 게 이득이야. 제재는 빌런에게 가해야지. 키퍼에게 제재를 가하자는 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래, 그들은 이미 충분히 제재를 받고 있다고.]
케케묵은 논란이다.
게이트 내에서 발견한 신물질 덕에 지금은 키퍼에 우호적이지만, 15년 전만 해도 키퍼는 진짜 악마에 가까웠다.
적당한 강자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만, 차원이 다른 강자는 두려움을 받게 되는 법이니까.
이번 폭발은 당사자인 내가 봐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차원이 다른 스케일이었다.
저런 힘을 나나 혹은 다른 사람이 다시 쓸 수 있을 가능성은 매우 적고, 저 폭발의 위력은 실제로 보이는 것보다 작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걸 구구절절이 설명한다고 사람들이 알아줄 리는 없다.
사람들은 그런 설명보다 확실한 이미지 하나를 더 쉽게 받아들이니까.
이미 ‘우주에서도 보이는 폭발’이라는 단어 조합이 머릿속에 박혔을 거다.
케케묵은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이건 내가 나서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마냥 숨는다고 지나가는 문제가 아니다.
협회에서도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없을 것 같고.
애초에 숨길 생각도 없었다.
이것 말고도 골치 아픈 문제가 많은데, 고작 이런 거에 쫄아서는 다음 문제는 손도 못 댄다.
어차피 묠니르로 이미 유명해진 상태라 조금 더 유명해진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다.
“폭발의 주인공을 저라고 해도 괜찮다고 전해주세요. 모든 키퍼들을 위해서라도 제가 안고 가야겠네요.”
“감사합니다. 협회의 일원으로서, 또 키퍼의 한사람으로서 감사를 드립니다.”
박세나가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인사했다.
하지만 저게 협회의 진심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녀는 내게 직접적인 빛이 있으니 저렇게 조심스럽지만, 협회는 아닐 것이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언제든 뒤로 정보를 돌릴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뭘요, 제가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보다 또 이야기해야할 게 있겠죠?”
“네. 정민씨를 비롯한 두 키퍼에게 이런 말씀 드리는 게 굉장히 죄송스럽지만, 이게 원칙이라 어쩔 수 없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박세나가 무슨 말을 꺼낼지는 안 들어도 알 것 같긴 했다.
사실 앞의 이야기보다 지금 이야기가 훨씬 더 중요한 이야기고, 본론이었다.
뒤에 나오는 것만 봐도 알지 않은가?
“알고 있어요.”
“알겠습니다. 파란 머리 마법사와 금발 기사를 미등록 키퍼에 관한 법률 제3조에 의거해 체포하겠습니다. 지금이라도 키퍼 등록을 한다면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지만, 일단은 협회로 가셔야 합니다.”
결국 올 것이 왔네.
답은 이미 정해 놨다.
내가 데뷔를 결심했을 때부터.
“두 사람은 키퍼가 아니니 그 법률에 저촉될 이유가 없어요. 두 사람은 이세계인입니다.”
“네?”
박세나의 표정이 이상해진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내 대답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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