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chapter 9. 사령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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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하얀 천장이었다.
모서리의 마감재를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기분 탓일까?
고개를 아래로 내리니, 침대에 엎드려 있는 케이라가 보였다.
영화에서 자주보던 클리셰 그대로의 장면이다.
그럼 여긴 병원인가?
나는 오른손으로 그녀의 파란 머리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으음...”
케이라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일어났어요?”
엘레나다.
그녀는 창가 쪽 소파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소파를 보니까, 여기가 어딘지 알 것 같았다.
예전에 케이라가 입원했던 병원이다.
“몸은 좀 어때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보았다.
왼팔이 없어서 굉장히 어색했지만, 앉는 동작에는 무리가 없었다.
발가락도 잘 움직였다.
“왼팔 말고는 괜찮네요.”
“왼팔은... 2층이 날아가는 과정에서 다 소멸됐어요.”
“그렇군요.”
왼팔이 없다.
뭔가 실감이 안 났다.
아직 왼팔이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런 게 설마 환지통인가?
“그래도 괜찮아요. 나중에 제가 신성을 받을 수 있으면, 재생이 가능하니까요. 그때까지만 참으시면...”
역시.
엘레나에게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엘레나의 신성, 4의 신성을 받을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걸려도 확실한 보장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아, 괜찮아요. 그냥 좀 어색해서. 그럼 그냥 기다리면 되겠네요? 역시 엘레나는 든든하네요.”
“든든은요. 이번에도 한 일이 없어요. 전부다 정민님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정민님이야말로 진짜 든든하세요.”
“아니요, 마지막에도 그렇고 엘레나가 없었으면 못 했을 일이에요. 다들 같이 한 거죠.”
위기의 순간에 엘레나가 버텨주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서로를 바라볼 수 없었을 거다.
“나는? 나도 든든해?”
케이라도 깨어났다.
그녀는 바로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당연하지. 케이라가 없었으면 우린 다 죽었을 거야.”
“나는 별로 한 게 없는 걸.”
케이라가 말하면서 내 가슴에 얼굴을 도리도리 젓는다.
그녀가 갑자기 어리광쟁이가 됐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진짜로 죽음의 강을 건널 뻔했다는 이야기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게 아슬아슬했다.
진짜, 어떻게 이렇게 살아남았지?
“존재만으로 전부 다 했어. 그리고 너는 못 봤겠지만, 마지막엔 네 기술을 좀 썼거든.”
“응? 뭘?”
“푸른 불꽃. 네가 보여준 모습이 아니었다면, 그 힘을 그렇게 제어할 수 없었을 거야.”
내가 푸른 불꽃을 제대로 본 건 한 번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하지만 신용산의 그 장면이 진짜로 인상 깊었기에 사령술사의 힘을 제어할 수 있었다.
그걸 제어하지 못했다면, 우린 그 자리에서 다 죽었다.
“...푸른 마력을 썼어?”
케이라가 내 품에서 벗어나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어느 날에 본 눈동자다.
떠올려보면 그녀는 푸른 마력에 대해서 굉장한 주의를 줬었다.
정해진 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었지.
“걱정 마. 그냥 꽃 모양만 가져온 거니까. 이미지만이야. 이미지.”
“...그럼 다행이고.”
케이라가 내 품으로 다시 파고들었다.
진짜 어린아이가 다 됐다.
고개를 돌려 엘레나를 봤다.
케이라가 귀여운지, 엄마 미소를 짓고 있다.
저 미소도 보기에 너무 좋지만, 이젠 조금 더 나가고 싶다.
그렇게 다짐했으니까.
“엘레나도 이쪽으로 와요.”
“...네?”
엘레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고, 품 속의 케이라도 움찔했다.
나는 케이라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면서 다시 말했다.
“어서요.”
“저, 그...”
“케이라도 괜찮지?”
“...치이...”
“뭐야, 싫어?”
케이라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두 눈동자에 원망이 담겨 있다.
내 심장이 덜컹 거리게 만드는 공격이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엘레나를 받았을 때부터 예정된 일이니까.
엘레나를 부추긴 건 케이라니까, 그녀도 이런 상황이 올 걸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케이라라면 이미 모든 각오를 하고 시작했겠지.
오히려 각오가 늦은 건 나라고 봐야한다.
[너, 아무리 그래도 내가 제일 먼저인 거 알지?]
케이라의 메시지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괜찮아. 엘레나도 참지 말고 이쪽으로 와요.”
“네? 아니...”
“엘레나, 지금 안 오면 수장님 부를까요?”
“아니요!”
엘레나가 순식간에 침대로 달려왔다.
왼팔이 없어서 안아줄 수는 없어서, 그녀의 품에 안겼다.
갑옷 차림이 아니라서, 내 얼굴이 그녀의 가슴 속에 폭하고 들어갔다.
“...좋다.”
“나도.”
“저, 저두요.”
세 사람이 꼭 안고 있으니까, 이제 좀 끝난 것 같다.
그리고 언제나 끝은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다.
“둘 다 몸은 괜찮아?”
“나는 좋아. 너 마력이 부족한 거 빼면.”
“저도 좋아요. 마지막에 사령술사가 가져갔던 힘이 돌아왔으니까요. 그리고 저도...”
엘레나도 내 마력이 부족할 것이다.
둘 다 격하게 싸웠으니까.
어서 빨리 보충해야겠는 걸?
“그럼, 할까?”
“그래.”
“...네?”
케이라는 별 반응이 없었는데, 엘레나는 많이 놀란 듯했다.
우리 둘의 시선에, 엘레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저, 저, 저는...”
“강요는 아니니까, 싫으면 안 해도 돼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 같아요. 다음에, 마음에 준비가 되면요...”
조금 아쉽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
엘레나는 은근히 고지식해서, 이럴 것 같긴 했다.
“그럼 제가 먼저 해도 되죠?”
“물론이에요, 케이라님. 저는 일단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엘레나가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1인실 특실 안에는 그 언젠가처럼 나와 케이라만 남았다.
“지금은 내 생각만 해야 해?”
“물론이지.”
“츄릅, 츄웁.”
케이라가 입을 맞춰왔다.
평소보다 배는 격렬한 키스였다.
평소보다 배는 기분이 좋았다.
한참을 그렇게 타액을 교환한 뒤에야 우리는 입술을 뗐다.
한 손밖에 없는 날 대신해서 그녀가 내 상의의 단추를 풀어 줬다.
그녀는 아문 왼쪽 어깨를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아프지는 않아?”
“괜찮은데? 조금 간지러울지도?”
“빨리 마력과 마나를 키워야겠다. 이래서야 자위도 못하잖아.”
“...뭐야? 내가 왼손 양과 절친인 거 어떻게 알았어?”
나는 자위를 왼손으로 했었다.
하지만 케이라를 만나고 난 후로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서 나조차도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대체 어떻게 아는 거지?
“내가 너에 대해 모르는 게 있을 것 같아?”
쪽.
그녀가 내 어깨에 키스했다.
키스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쪽, 쪽.
어깨를 시작으로 목, 가슴, 배, 무릎, 발로 계속 이어졌다.
입술로 내 존재를 확인하는 듯했다.
나는 가만히 그녀의 정성스럽고 애절한 애무를 받았다.
나 역시 뜨거운 그녀의 키스를 받는 곳마다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 중이다.
쪽.
케이라가 마지막으로 분신에 키스했다.
분신은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넣을게.”
그녀가 내 위로 올라왔다.
원피스 차림의 그녀가 치마를 걷어 올리고 팬티를 살짝 옆으로 밀었다.
그녀의 계곡도 이미 흥건히 젖어 있었다.
“아흑...”
쑤욱하고 분신이 들어가자, 그녀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내 귀에 신음을 냈다.
찌걱, 찌걱.
그녀가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내 분신이 천천히 그녀의 계곡 안으로 완전히 들어갔다가, 다시 완전히 빠져나왔다가, 다시 끝까지 들어갔다.
“아흑, 항.”
달뜬 신음이 내 귀에서 계속 울린다.
질퍽, 질퍽.
이렇게 느긋이 서로를 느끼는 것도 좋았다.
왼손이 없는 게 조금 아쉬울 뿐.
“하으읏!”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의 계곡이 분신을 꽉 물었다.
그녀는 내게 완전히 밀착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아, 항...”
“...좋았어?”
“응, 너무 좋아.”
케이라가 붉게 달아오른 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사랑스러운 얼굴에 키스했다.
“츄릅, 츄웁, 하음...”
내 분신은 아직 굳건한 상태였다.
나는 앉은 채로 허리를 천천히 움직였다.
가동 범위는 굉장히 좁았지만, 나는 적당한 위치를 움직이면서 찾아냈다.
“하으읏!”
제대로 찾았는지, 케이라가 바로 반응을 보여줬다.
나는 그곳을 인식하며 천천히 움직였다.
케이라도 내 움직임에 동조해줘서, 훨씬 더 움직이기 편했다.
삐걱, 삐걱.
움직임은 점점 격해졌다.
침대가 부서질 듯 비명을 질렀고, 하체는 케이라가 흘린 물로 흠뻑 젖었다.
“이제 나도 쌀 것 같아.”
“응, 얼마든지 싸. 나는 네 거니까.”
케이라의 신비한 푸른 눈동자는 내 얼굴로 가득했다.
그 얼굴 속 내 눈동자는 아마도 케이라로 가득하겠지.
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깊숙이 찔러 넣었다.
“하으윽!”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나는 그때 모든 것을 토해냈다.
퓨슈슉.
“하으읏!”
그녀의 계곡이 다시 한 번 수축했다.
내 분신에서 모든 건 다 뽑아내겠다는 듯이 강하게 조여 왔다.
꿀렁꿀렁.
사정은 길게도 이어졌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음미하듯 내 정액을 받아냈다.
“하응, 항...”
한참 뒤, 사정이 끝나자 그녀가 다시 내게 기대며 밀착했다.
그녀가 내 귀에 속삭였다.
“사랑해, 정민아.”
“나도, 누구보다 널 사랑해.”
사실이었다.
지금 내 인생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케이라다.
그건 앞으로도 변하지 안을 것이다.
“치이, 말은 잘해.”
“말만 하는 거 아닌데?”
“하윽, 이게 또, 항...”
나는 바로 분신을 일으켜 세웠다.
성욕을 하도 많이 써서 그런가, 이제 이런 건 가볍게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발기를 안 하고 성욕을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잠깐, 항, 나는...”
케이라는 평소와 다르게 힘든 모양이다.
두 번이나 갔으니 그럴 만도 하다.
보통은 두 번 정도 가면 잠깐 쉬니까.
그런데, 이건 뭘까?
내 감각에서 뭐라 말할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나는 케이라를 조심스레 밀어냈다.
“...왜? 아니, 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힘들다더니 바로 태도를 바꾸는 케이라다.
하지만 나는 손가락을 들어 입에 갖다 댔다.
케이라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조심스레 물러났다.
주르륵.
일어나자마자 흘러내리는 정액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 나는 계속 감각에 집중했다.
스르르.
무언가 새어나가는 소리.
소리로 표현한다면 이런 느낌이었다.
새어나가는 지점은 왼쪽 어깨였다.
“케이라, 내 왼쪽 어깨에서 뭘 느낄 수 있어?”
“어? 잠깐만...”
케이라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내가 느낀 게 뭔지 확실히 알았다.
“...모르겠어. 뭔가 있어?”
“응. 아직 기운이 세어나가고 있어.”
“...뭐?”
“사령술사가 만들어 놓은 통로가 아직 그대로 있어. 아마 케이라나 엘레나도 그대로일 것 같은데.”
사령술사가 내 기운을 훔쳐갔던 통로가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정정하자, 통로라고 하긴 그랬다.
시작은 내 어깨에서 해도, 반대쪽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으니까.
통로보다는 구멍, 놈이 뚫어놓은 구멍이 그대로 있었고, 거기에서 내 기운이 미약하게나마 빠져나가고 있었다.
“...역시 케이라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케이라에게서도, 그렇게 빠져나가는 기운이 느껴졌다.
아직 이름을 못 붙이 기운이 케이라에게서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거, 언젠가는 죽는다는 이야기지?”
“아마도.”
분명 작은 양이지만, 이게 우리의 죽음을 가속화시키는 건 분명하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방법이 있을 거야.”
다행스럽게도 내가 기운을 느끼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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