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chapter 9. 사령술사
* * *
69.
파지지직!
검은색의 스파크가 몸에 튈 때마다, 딴딴이를 놓고 싶었다.
기력을 훅하고 빼앗아가는 느낌이었다.
안 그래도 왼쪽 팔에서 기운이 빠져 나가는 데, 2번이나 나가니 정신이 없었다.
안 돼.
집중해.
집중해 이정민.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핏빛 창의 끝은 분명 보호막을 밀어내고 있었다.
아직 뚫고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보호막의 형태를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뭉개고는 있었다.
이건 엘레나도, 박세나도 하지 못한 일이다.
이대로 조금만 더 밀어 붙이면...!
“...혹시 기대했나?”
“...?”
사령술사가 묠니르를 내 쪽으로 들자, 보호막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완벽한 구를 이루었다.
스파크는 여전히 튀고 있었지만, 조금 전과 달리 보호막은 미동도 없었다.
“이런...”
“집중 안 해? 안 그러면 네 여자들 전부 죽을 텐데? 아니지, 내가 다 따 먹을 건데?”
“...닥쳐!”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처먹을!
순간 정신을 놓고 성욕이 가라앉을 뻔 한 자신에게 화가 난다.
놈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려야 하는 내 한심함에 화가 난다.
무엇보다 빌어먹을 상상을 하게 만든 저 놈에게 화가 난다!
후우웅.
핏빛이 더 강해졌다.
“크큭, 역시 인큐버스를 화나게 하는 데는 이게 최고지. 흐음... 이제보니 인큐버스가 아닌데?”
저 혼자 다른 세상에 있는 듯이 나를 평가하는 사령술사.
나는 그 놈에게서 신경을 껐다.
차가운 분노만 남겨 놓고, 모든 뜨거움은 아래 분신으로 몰았다.
노골적으로 나를 유혹하던 박세나의 육감적인 몸매를 떠올렸다.
그 가슴골에 질펀하게 싸는 장면을 상상했다.
수연이가 처녀막이 찢어질 때 아파하면서도 웃는 장면을 떠올렸다.
수연이로 상상하는 건 미안하지만, 그래서 더 하고 싶었다.
수연이도 아마, 싫어하진 않겠지.
나연 누나의 탄탄한 복근을 손으로 쓰다듬고 싶었다.
나는 상상 속의 나연 누나의 꿀벅지를 내 정액으로 더럽혔다.
나리 누나의 엉덩이와 내 치골은 하나에서 떨어진 것처럼 딱 맞았다.
몸과 몸이 부딪힐 때 출렁이는 나리 누나의 엉덩이 살은 매번 봐도 새로웠다.
소연이는 여전히 내게 미련을 가지고 있다.
눈빛이 아직도 뜨겁다.
그녀는 아마 나와 엘레나의 관계를 알면 내게 화를 낼 것이다.
나리 누나와의 관계를 알면 나랑 절교하려 들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토라진 입술을 내 입술로 덮어주면, 아마도 못이기는 척 내 품에 파고들겠지.
맛있는 과실은 나중을 위해 남겨두는 편이다.
하지만 상상 속에서는 수십 번도 더 따먹은 것 같다.
엘레나는 순종적이며 헌신적이다.
그녀는 신에게 봉사하듯 나에게 한다.
루가 여신이라서 정말로 다행이다.
남신이었으면 질투할 뻔.
그녀와 하는 섹스는 편안하다.
힐링이랄까.
사실 힐링은 그 풍만한 가슴에서 나오는 거다.
케이라를 떠올리면 그냥 분신이 벌떡하고 선다.
어쩌면, 난 조교를 당한 게 아닐까.
...그래도 좋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데려와서 성욕을 끌어 올렸다.
그럴 때마다 딴딴이에 맺힌 빛은 짙어져갔다.
마지막으로 난교를 떠올렸다.
이번에 저 빌어먹을 자식을 처리하고 나면 반드시 모두와 함께 섹스를 할 거다.
이왕 하렘으로 노선을 잡은 거, 그냥 무지성으로 밀고 나갈 거다.
그러니까, 살아야지.
화아악.
“인간 치고는 제법이야. 인간이 어떻게 성욕을 다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지, 성욕을 다루니까 이미 악마인 건가? 원한다면 내 권속으로 삼아줄 수도 있다. 어떤가, 악마여. 나를 섬기겠는가?”
핏빛이 짙어지다 못해 무광코팅을 한 듯 빛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내부의 은색 막대기를 이제 눈으로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보호막은 굳건했다.
힘만으로는 안 돼.
질을 올려야 해.
그게 안 된다면, 뒷문이라도...
“흠... 나는 자비롭지만, 답을 오래 기다리지는 않을 거야. 오래 기다릴 수도 없지만.”
사령술사는 지금도 내 기운을 빼앗아가고 있었다.
검은 스파크로, 또 내 어깨의 상처에서.
그래, 내 기운은 지금도 그에게로 가고 있다.
보호막 너머에 있는 사령술사에게로.
나는 여전히 나와 사령술사를 연결한 선을 느낄 수 있다.
그 선을 따라 공격하면, 보호막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해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선이니, 그 선이 정확히 어디에 연결되어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니 그곳을 창으로 찌른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대신 알고 있는 곳이 있다.
나는 창을 거뒀다.
“드디어 결심을 한 건가? 자발적으로 나에게 복종을 맹세한다면 너에게 이 지구의 절반을 주지!”
양팔을 벌리고 재수없는 검은 이를 보여주는 사령술사.
저 얼굴에 창을 직접 찔러넣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대신에 나는 내 왼쪽 어깨를 창으로 찔렀다.
푹.
“...무슨?”
“크아악!”
어깨가 타는 것 같았다.
이미 한참 전에 마비된 줄 알았지만, 여전히 비명을 지르는 세포들이 남아 있었다.
나는 고통 중에서도 선을 생각했다.
내 어깨와 놈을 이어주고 있는 선.
그리고 그 선 위를 타고 날아가는 창.
이미지만이 힘을 움직일 수 있다.
완벽한 이미지를 그릴 수 있다면, 저 목으로 창이 솟아나게 하는 것도 가능할 거야!
“죽는다고 내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냐. 오히려 죽음은 나의 영역이란 말이다. 바보 같은 놈.”
“크윽, 바보는 너다, 이 수다쟁이야!”
이미지는 생각처럼 잘 그려지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막힌 듯, 선이 이어지려고 하면 멀어졌다.
“뭐? 수다쟁이?”
그러나 이상한 곳에서 놈이 흔들렸다.
그 덕일까.
나는 오히려 차분해지며 머릿속에 완벽한 이미지를 완성시켰다.
“죽어!”
나는 창을 좀 더 깊게 찔렀다.
이젠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내 어깨를 찌른 게 아니라, 놈의 목을 찌르고 있는 거니까.
위잉.
거짓말처럼 핏빛이 보호막 속, 놈의 목에 나타났다.
“...무슨!”
푸직.
핏빛 창이 사령술사의 어깨를 가르며 폐를 찔렀다.
원래는 목과 심장을 노렸는데, 그 와중에도 놈이 잘 피했다.
“크윽, ...네 놈이!”
솨아아.
검은 스파크가 보호막에서 뻗어져 나와 나를 덮쳤다.
고통은 물론이고, 빠져나가는 기운의 양도 배로 늘어났다.
“윽...”
하지만 놈이 모르고 있는 게 있다.
빠져나가는 기운의 양이 많아졌다는 건, 놈과 나 사이의 통로가 더 커졌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나 역시 더 많은 힘을 놈에게 보낼 수 있다.
나는 창을 좀 더 깊게 쑤셔 넣으며 온 힘을 밀어 넣었다.
아예 놈을 반으로 갈라 버릴 수 있도록.
“크아악!”
사령술사의 비명과 함께 거인이 나를 향해 오는 게 느껴졌다.
피할 겨를이 없다.
나는 지금 성욕을 끌어올리고, 창의 이미지에만 온전히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중이 풀리면, 모든 게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대신 나에게는 동료가 있다.
“루의 뜻으로!”
엘레나가 방패를 들고 거인을 막았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든든했다.
“세나님! 뒤를 공격해요!”
“안 그래도 간다!”
타다다당! 쾅! 쾅!
박세나의 공격은 여전히 놈의 보호막을 뚫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었다.
사령술사의 힘과 정신력이 분산되었으니까.
“...이게 마지막이다!”
나는 창을 당겼다가 빠르게 찔렀다.
이번에는 심장을 노리고서.
창이 내 왼팔 앞에 나타났다가 다시 보호막 안에서 나타났다.
사령술사가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폐와 내부가 엉망이 된 놈의 움직임은 한없이 느렸다.
푹.
핏빛 창이 끝내 심장을 관통했다.
“크아아악!”
사령술사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쓰러졌다.
동시에 검은 스파크가 팟하며 흩어지고, 살점 거인이 다시 살점으로 돌아갔다.
나는 움직임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손에 힘을 빼지 않았다.
“크아아...”
비명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간헐적으로 떨던 놈의 육체도 멈췄다.
이제 끝인가?
끝이 아니래도 성욕을 더 유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핏빛 창이 사라졌고, 나는 앞으로 쓰러졌다.
“정민님!”
엘레나 목소리다.
그녀가 나를 받아 준 것 같다.
이럴 때는 갑옷이 아쉽다.
얼굴에 닿는 게 갑옷이 아니라 가슴이었으면 좋겠는데.
엘레나가 나를 천천히 바닥에 눕혔다.
눈이 절로 감겼지만, 엘레나의 목소리가 눈꺼풀을 강제로 올렸다.
“정민님! 정신 차리세요! 정민님!”
“...괜찮아요, 엘레나. 아직 살아 있어요. 그보다 놈은...”
“사령술사는 죽었...”
엘레나가 말을 멈췄다.
나는 불길한 예감에 고개를 돌려 사령술사가 있던 쪽을 바라봤다.
“...나는...”
심장에 구멍이 뚫린 사령술사가 허공에 떠 있었다.
젠장.
“...불사신이다.”
엘레나가 놈과 나 사이에 섰다.
나도 몸을 일으키려고 노력했다.
이미 온 힘을 다 쏟았지만, 남자라면 지금 일어나야만 했다.
놈이 불사신이라면, 나도 불사신이다.
쿵.
그러나 놈은 거짓말처럼 다시 땅으로 떨어졌다.
“...어라?”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미동도 하지 않는 사령술사를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다졌던 각오가 무색해질 만큼 허무한 끝이었다.
“...진짜 끝?”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사령술사다 보니... 리치는 아니었지만, 리치가 되기에 충분한 힘이기도 하고...”
엘레나가 하는 소리가 잘 이해되진 않았다.
머리를 돌릴 만큼 에너지가 없기도 했다.
“아무튼, 이제 끝이라는 거죠?”
“일단은 끝이...”
하지만 내 말이 무슨 클리셰를 건드린 건지, 또 다른 일이 발생했다.
쏴아아.
소리로 표현한다면 폭포수가 떨어지는 소리였다.
수 톤의 물이 20m 높이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강렬하게, 엄청난 에너지가 내게로 쏟아지고 있었다.
“크윽...”
이건 사령술사가 가져갔던 에너지였다.
사령술사가 죽고 구심점이 사라지니, 연결된 통로를 통해 내게로 돌아오고 있는 거였다.
문제는 내게서 가져간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돌아오고 있다는 거였다.
놈이 수십, 어쩌면 수백 년간 모았던 에너지가 역류하는 중이었다.
털썩.
엘레나가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표정도 안 좋았다.
에너지가 역류하는 건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엘레나도, 수연이도, 박세나도, 그리고 케이라도.
뒤이어 온 10명의 협회 키퍼들은 검은 안개에 닿은 적이 없는지 멀쩡했는데, 나포함 다섯 명은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아아악!”
박세나가 비명을 지른 뒤 기절했다.
엘레나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나는 상대적으로 멀쩡했다.
방금 전까지 진짜 죽을 뻔했는데, 에너지가 돌아와서 지금은 좀 살 것 같았다.
거기에 폭주하는 에너지를 다루는 건, 증폭된 성욕을 다루는 걸로 약간은 익숙해진 상태였다.
결국, 이것도 내가 처리해야만 했다.
에너지의 폭주가 문제라면, 써 버리면 된다.
다른 사람에게 갈 에너지까지 다 내가 가져와서 써 버리면, 모두들 괜찮아질 것이다.
우우웅.
나는 두 손을 모으고 푸른 불꽃을 상상했다.
푸른 마력을 다루는 법은 기억나지 않지만, 케이라가 불꽃을 만드는 장면만은 생생하다.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기 쉽다는 이야기다.
사령술사의 에너지.
서큐버스의 에너지가 성욕이었으니, 이건 죽음일까?
죽음이라기엔 너무 생기가 넘친다는 느낌이지만.
그래서 꽃을 피우기가 쉬웠다.
화아악.
흰색 꽃이었다. 내 상체만한 크기의 꽃이다.
이 방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케이라와 수연의 숨소리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바닥을 뒹굴며 발악하던 박세나도 멈췄다.
엘레나도 어느새 일어나 나를 보고 있었다.
“정민님... 이건...”
“사령... 술...”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다른 것에 집중하면 에너지가 흩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게 흩어지면 이곳은 초토화될 게 뻔했다.
“말씀 안 하셔도 돼요! 천천히 하늘로, 하늘로 보내시면...”
나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천천히 두 손을 올렸다.
하얀 꽃도 천천히 올라갔다.
꽃이 내 손을 떠나 허공을 유영했다.
앞에는 건물의 천장이 있었다.
케이라의 불꽃이라면 천장을 먹고 올라갔겠지만, 나로서는 저기에 부딪히면 꽃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제가 갈게요!”
엘레나가 내 마음을 안 건지, 검기로 천장을 날려 버렸다.
그녀는 떨어지는 조각까지 모두 다 검기로 잘라냈다.
비로소 푸른 하늘이 보였다.
스으윽.
꽃은 느릿느릿 올라갔다.
천장을 지나는 데 약 10초,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올라가는 데는 약 2분 쯤 걸렸다.
“크윽...”
사령술사의 에너지를 다루는 일은 이미 내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이 막대한 에너지를 내가 컨트롤 하는 거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좀 더 높이, 아주 높이 올라가야 지면에 피해가 없을 테니까.
“정민님... 루의 뜻대로.”
엘레나의 기도를 들으며, 인내의 인내를 거듭했다.
한 5분까지는 참을 만했는데,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냥 꽃만 생각했다.
꽃이 아름답게 피어서, 우주에서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내 손에서 꽃을 놓아 주었다.
파아아.
하얀 빛이 세상을 가득 채웠다.
밝다.
그게 내 마지막 생각이었다.
“...정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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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한국 상공 10km 지점에서 거대한 에너지 폭발이 전 세계에서 관측되었다.
석학들이 대충 추측한 폭발의 위력은 약 5kt 정도.
일본에 떨어진 핵폭탄의 약 1/3 위력 정도였다.
그러나 그보다는 폭발의 형태 때문에 더 유명했다.
화구나 버섯구름 대신, 꽃모양의 거대한 흰 빛이 관측됐기 때문이다.
30km 밖에서 보일 정도로 빛은 폭발에 비해 거대해서 지상에서는 그 모양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우주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서야 사람들은 폭발의 정확한 모양을 알았다.
흰 연꽃 모양이었다.
이후 사람들은 폭발의 이름을 백화, 화이트 플라워라고 불렀다.
그리고 폭발을 조사하기 위해 전 세계의 정보기관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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