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chapter 9. 사령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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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엘레나는 곁눈질로 이정민의 어깨상처를 보았다.
‘...이미 사령술사의 힘에 잠식당했어. 신성이 없으면 밀어낼 수가 없어.’
그녀의 힘으로 당장 저 상처를 치료할 수 없었다.
그러니 우선순위는 사령술사를 처리하는 거였다.
그녀는 자신 쪽으로 달려오는 두 명의 A팀을 보았다.
나머지 세 명은 뒤에서 그녀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케이라는 빨리 정민님을 뒤로 물려요! 저들은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쿵!
엘레나가 방패로 바닥을 찍자, 방패 앞 10m의 안개가 좌우로 물러났다.
케이라는 이정민을 부축하며 그 길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쪽에 숨었다.
팅, 팅, 팅.
엘레나는 방패로 A팀의 총알을 막았다.
동시에 다른 총알이 날아와 협회 사람들을 공격했다.
“빌어먹을 새끼들아! 정신 차려!”
박세나였다.
박세나의 뒤에서 공간이 열리며 총기가 여러 정 나왔고, 총기가 불을 뿜었다.
총알은 정확하게 A팀의 양쪽 무릎을 모두 관통했다.
수트는 보통 방검 방탄이기 때문에 관통하기 힘들지만, 박세나의 기술은 총기 강화류다.
일반적인 수트의 방어력은 그녀의 총기 앞에서 무력했다.
쿵, 쿵.
무릎이 관통된 5명 모두가 자세가 무너지며 쓰러졌다.
“오호? 하지만 그거 가지고 될까?”
창백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거짓말처럼 5명이 다시 일어났다.
통, 통, 통, 통.
그들의 무릎에서는 총알이 저절로 빠져나왔다.
“뭐야! 저게 무슨!”
“저들은 이미 죽었어요! 계속 살아날 겁니다! 그보다는 본체를!”
엘레나는 우선 적들의 총기를 향해 검기를 날렸다.
모두를 지켜야 하는 엘레나의 입장에서는 총은 까다로운 무기였다.
일정 이하의 약자는 바로 죽일 수 있으니까.
총이 부서지자, A팀은 각자 무기를 꺼냈다.
그들의 무기에는 검은 안개가 맺혀 있었다.
“최대한 안개에 닿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엘레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방패를 그 자리에 두고 스스로 안개의 바닥에 발을 디뎠다.
기운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있었지만, 견딜만 했다.
‘속전속결!’
A팀의 공격을 피해 그녀는 거실 중앙의 남자에게 달려가 루의 열세 번째 검, 트라우 팔가를 휘둘렀다.
트라우 팔가에는 흰 빛이 맺혀 있었다.
파지직.
방어막과 검 사이에서 검은 스파크가 튀었다.
“아윽...”
검은 스파크는 검은 안개와 비슷한 힘이었다.
엘레나는 스파크에게도 기운을 빼앗겼지만, 검을 뺄 생각은 없었다.
이건 그녀의 전력이 아니었으니까.
화아악.
검에 맺힌 빛이 더욱 밝아졌다.
눈이 부시도록 밝은 빛을 보며 남자가 말했다.
“성기사? 신성이 없는 성기사라... 의미 없다.”
엘레나의 등 뒤로 A팀이 공격해 들어왔다.
엘레나는 그 움직임을 읽었지만, 검을 빼지 않았다.
그녀는 박세나를 믿었다.
“아니, 너희들은 그냥 좀 누워 있으라니까!”
타당, 탕, 탕탕!
총구가 불을 뿜자, A팀은 다시 바닥에 누웠다.
금방 또 일어나겠지만 엘레나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녀는 주변 마나를 모으고 모아 검 위로 또 하나의 검을 벼려냈다.
오러 소드, 혹은 검강.
엘레나의 의지가 형상화 된 눈부신 빛의 검이 다시 보호막과 겨루었다.
“흐아아압!”
파지지직.
더 강한 스파크과 함께, 검이 조금씩 보호막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자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성기사이면서 소드 마스터라, 제법이군. 하지만 결과는 같다.”
남자가 묠니르를 살짝 들어올렸다.
묠니르에 맺힌 노란 빛이 조금 짙어지자, 바로 보호막이 완벽한 원이 되며 엘레나의 검을 튕겨냈다.
“컥.”
엘레나는 벽까지 날아가 벽에 강하게 부딪혔다.
“꼴사납구나, 성기사여. 여기는 너의 신이 없다. 따라서 네 믿음도 없지.”
“컥, 나는! 이곳에서도 루의 종이다!”
엘레나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번엔 방패와 함께였다.
그녀는 방패를 높이 들고는 그 뒤에 숨었다.
남자는 엘레나의 갑작스런 방어 태세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거기에는 수십 개의 총구가 그를 노리고 있었다.
숫자는 아까보다 작았지만, 총구의 크기는 이번이 훨씬 컸다.
“이번엔 나야!”
타다다다당!
콰가가강!
12.7mm의 대구경 탄과 각종 유탄이 방어막 위를 때렸다.
폭발이 겹치면서, 2층 창문이 깨지고 운동기구들이 밖으로 날아갔다.
건물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공격이었다.
엘레나는 폭발의 여파를 1층 계단 쪽, 케이라와 이정민, 그리고 우수연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게 막았다.
“어떠... 켁.”
폭발의 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박세나의 복부를 때리는 주먹이 있었다.
살점이 다 날아가고 뼈밖에 남지 않은 주먹이었다.
“큭, 저리 꺼져!”
박세나가 뒤돌려 차기로 해골만 남은 A팀을 날려 버렸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른 해골이 이미 박세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이 징그러운 놈들!”
해골은 움직일 뿐만 아니라 살이 다시 붙고 있었다.
해골의 주먹에는 어김없이 검은 안개가 맺혀 있었다.
“2차원의 기술로는 내 보호막을 뚫을 수 없다.”
남자의 창백한 목소리와 함께 폭발의 먼지가 가라앉았다.
거실은 난장판이 됐지만, 보호막은 그대로였다.
거실 바닥의 검은 안개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변한 건 해골만 남은 A팀이었지만, CG처럼 새살이 돋아나는 중이었다.
“자, 어디 이 보호막을 뚫어 보거라. 보호막을 깨면 모든 게 끝날 거야. 나 사령술사 베칸쵸,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남자는 보호막 안에서 양손을 펼치며 두 눈을 감았다.
“죽어!”
“루의 뜻대로!”
엘레나와 박세나가 베칸쵸를 다시 공격하기 시작했다.
+++
“이대로는 안 돼...”
왼쪽 어깨의 아픔보다, 케이라의 목소리에 담긴 위기감이 더 컸다.
하지만 왼팔이 없는 나는 정신을 잃은 수연이를 계단 쪽으로 데려오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정민아, 너라도 도망쳐. 나는 최대한 엘레나를 도와볼 테니까.”
“윽, 그게 무슨 소리야!”
“방법이 없어. 저 악마는 우리보다 강해.”
“그래도...”
“미안, 이제 시간이 없어.”
케이라가 두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그녀의 두 손 사이에서 푸른 불꽃이 피어났다.
그녀는 바로 불꽃을 앞으로 내밀었다.
화르륵.
불꽃은 1층으로 넘어오려고 하는 검은 안개를 태우며 앞으로 천천히 전진했다.
검은 안개를 태울수록 푸른색은 더욱 짙어지고, 불꽃은 조금씩 커졌다.
“케이라? 케이라?”
케이라는 신용산 때처럼 두 눈에 초점이 없었다.
저 불꽃이 모든 것을 다 태우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불꽃이 저 보호막을 삼킬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못 뚫을 때를 대비해서 제3안을 마련해야 하는 건 분명하다.
“으, 으...”
수연이 신음을 흘린다.
검은 안개에 닿지 말라고 계단으로 옮긴 건데, 별 소용이 없는 모양이다.
그녀의 몸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사령술사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처럼.
내 어깨에서도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지랑이는 보호막 쪽으로 조금 움직이다가 사라졌지만, 나와 사령술사를 연결한 선을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성욕과 비슷한 종류의 힘이라서 일까?
성욕, 서큐버스가 쓰던 악마의 힘.
마찬가지로 남자도 분명 악마의 힘을 쓰고 있다.
묠니르가 반응하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 힘 덕분에 저렇게 여유롭게 엘레나와 박세나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핵심은 묠니르와 묠니르가 주는 증폭이다.
정문으로 쳐들어올 때부터 그는 여유로워 보였지만, 지금처럼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처음에도 지금 정도로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면, 수연이가 묠니르를 들고 나타나자마자 공간이동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냥 지금처럼 보호막으로 두른 채 터벅터벅 걸어왔을 것이다.
묠니르만 빼앗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해볼 법도 한데...
그런데 보호막도 못 뚫는 상황에서 어떻게 묠니르를 빼앗느냐고!
아!
나는 그제야 지하연구실에 있을 딴딴이 막대기를 떠올렸다.
제3의 대안이 거기에 있었다.
“으, 으...”
“후우, 후우...”
신음을 흘리는 수연과 초집중에 들어간 케이라.
둘 다 무방비상태였다.
내가 자리를 뜨는 순간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몰랐다.
하지만 다행히도 구원의 손길이 있었다.
“이정민씨? 지금 무슨 일이죠?”
협회의 다른 팀이었다.
모두 10명.
“2층 싸움에 끼어들지 마시고 두 사람을 꼭 지켜 주세요. 금방 올게요.”
나는 그들에게 두 사람을 맡기고 지하연구실로 뛰었다.
+++
“내가 잘못 봤나? 분명 네 쪽이 더 강할 텐데? 이상하군.”
베칸쵸가 지친 엘레나를 보며 이상하게 여겼다.
끊임없이 공격, 그것도 최고 위력의 공격만 하는 박세나와 엘레나는 이미 지쳤다.
그리고 둘 중 더 많이 힘들어 하는 건 엘레나 쪽이다.
‘...정민님의 마력이 다 떨어졌어...’
엘레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평소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마력은 상시 100%이상으로 꽉꽉 충전 중이며, 크게 힘을 쓸 때도 없으니까.
하지만 S급의 힘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자, 그간 충전한 마력과 마나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심지어 지금은 검은 안개에 기운도 뺏기고 있었다.
엘레나는 정민의 마력과 마나를 지렛대 삼아 이 세계의 마나를 움직일 수 있다.
그의 마력이 없으면 힘을 쓸 수도 없을뿐더러, 곧 사라질 터였다.
그게 이세계체류계약의 본질이다.
‘그래도... 조금만 더...’
엘레나의 뒤에는 케이라가 있었다.
케이라가 쏘아 보낸 푸른 불꽃이 있었다.
주변의 검은 안개를 태우며 팔뚝 정도의 크기로 자란 불꽃이다.
어쩌면 저 보호막을 뚫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엘레나는 불꽃이 더 클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고 싶었다.
“아직 눈빛이 살아 있군. 좋아, 아주 좋아. 산다는 건 그런 거지. 아름다워. 작은 희망 하나로 저렇게 불태울 수 있다니.”
“닥쳐라! 삶을 비웃는 자가 삶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엘레나가 베칸쵸에게로 뛰어들며 검으로 내려쳤다.
그녀의 검에는 오러도 맺혀 있지 않았고, 검기도 없었다.
이제 그녀가 행사할 수 있는 건 물리적인 힘이 전부였다.
“오해가 있군. 죽음을 비웃는다면 모를까, 삶을 비웃은 적은 없다. 나는 누구보다도 삶을 사랑하지. 이렇게 타오르는 삶도, 한없이 차가워진 삶도.”
딱.
베칸쵸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박세나의 총기에 구속되어 있던 A팀의 죽은 자들이 총기를 튕겨내더니 푸른 불꽃으로 돌진했다.
화르륵.
불꽃은 죽은 자들을 태웠고, 잡아먹었다.
동시에 죽은 자들은 재생했고, 푸른 불꽃을 그들의 몸으로 덮었다.
2층을 뒤덮고 있던 검은 안개도 죽은 자들 위를 덮었다.
화르르륵!
불꽃은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가 불꽃의 저항을 알려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피를 토하는 소리가 타오르는 소리를 대신했다.
“쿨럭, 컥...”
케이라가 피를 한 움큼 토하며 쓰러졌다.
정신을 잃은 케이라를 협회 키퍼들이 부축했다.
목숨은 붙어 있지만, 전장에서는 아웃이다.
“안 돼...”
엘레나가 한숨처럼 탄식을 내뱉었다.
그녀의 희망이 사그라져 버렸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방법은 없다.
“걱정 마. 금방 죽이지는 않을 거니까. 너희들의 삶을 내가 다 먹어 버릴 때까지는.”
베칸쵸는 좌중을 누르는 무거운 절망을 맛보았다.
부하를 잃고, 부하의 시체까지 잃어버린 박세나.
강자들의 전투에 앞으로 가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는 협회 키퍼들.
힘을 다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엘레나.
베칸쵸는 모순적이게도 절망에서 진한 삶을 느꼈다.
살고 싶었으니까, 살고 싶으니까 절망하는 거다.
그는 그 삶의 비명을 원동력으로 삼는 자.
이곳은 그에게 최고급 뷔페와 마찬가지였다.
“자, 이러면 또 어떨까.”
딱.
베칸쵸가 또 한 번, 손을 튕겼다.
그러자 불꽃을 삼킨 검은 안개가 꾸물꾸물 커지기 시작했다.
“뭐야! 씨발, 또 뭔데!”
쾅쾅, 타다다당!
박세나가 총기를 꺼내 검은 안개를 공격 했다.
보호막처럼 그녀의 공격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안개는 3m쯤 커지고야, 천장에 닿고야 커지는 걸 멈췄다.
“크르아!”
안개 속에선 거인이 튀어나왔다.
죽은 자 다섯 명을 섞어서 반죽을 만들고, 그 반죽으로 살색 거인을 만든 듯한 모양새였다.
팔이나 다리에 깜빡이는 주인을 모르는 눈동자가 굉장히 그로스테크했다.
“...이 악마야!”
박세나가 분노했다.
그녀의 부하를 죽이는 것도 모자라, 다시 살아나는 좀비 같은 것들로 만든 것도 화나는데, 저 인간을 우습게 여기는 괴물은 뭐란 말인가.
“칭찬 고마워.”
“죽어!”
박세나는 기술 ‘전우의 총’을 전력전개했다.
수백 개의 총구가 허공에서 나타나 베칸쵸와 거인을 노렸다.
“...다들 피해요!”
엘레나가 협회 키퍼들을 아래로 내려가도록 지시하고는 계단에서 방패를 들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케이라를 지켜야 했다.
이정민이 도망치는 시간도 벌어야만 했고.
콰가가가강!
폭발은 아까보다 세 배는 크고, 길었다.
2층의 모든 것을 태우고 부수며 뒤흔들던 폭발과 총알은 결국, 2층을 무너트렸다.
쿠아왕!
2층 바닥이 부서지며, 1층으로 떨어졌다.
계단은 엘레나의 방패 덕분에 부서지진 않았다.
박세나는 총구를 밟고서 공중에 떠 있었다.
“크라아!”
“젠장...”
거인의 괴성과 박세나의 한숨이 동시에 들려왔다.
거인은 피를 조금 흘릴 뿐, 멀쩡했다.
아직 먼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보호막 역시, 멀쩡할 터였다.
“...이제 끝인가? 그럼 이제 너희들의 살점을 잘라내 한 점씩 먹어도 되는 거겠지?”
창백한 목소리와 섬뜩한 미소.
베칸쵸의 얼굴에는 어떠한 동요도 없었다.
오히려 처음으로 보여주는 그의 검은색 이에, 모두의 심장이 덜커덩 하고 내려앉았다.
그때, 뜨거운 목소리가 공포를 깨트렸다.
“닥쳐!”
은색 막대기는 핏빛으로 빛났다.
그 끝은 무엇이라도 꿰뚫을 듯이 뾰족했다.
이정민은 1층을 내달려 핏빛 아타만티움 창을 보호막에 찔러 넣었다.
파지지직!
붉은색과 검은색의 스파크가 1층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