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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65화 (65/137)

〈 65화 〉 chapter 9. 사령술사

* * *

65.

“아니요. 저는 조금 쉬려고요.”

“아쉽네요. 윽, 같이 운동, 하아, 하면서 친해지고 싶었는데요.”

박세나가 벌린 팔을 모을 때마다 큰 가슴이 출렁거렸다.

탈 한국인급 가슴이다.

엘레나보다 더 큰 거 같다.

약간 부담스럽긴 한데, 그래서 더 눈이 간다.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흠흠, 차차 시간이 있을 거예요. 시간은 많으니까요.”

“그렇죠. 이렇게 편한 시간은 오랜만이에요. 합, 하아... 운동만 해도 되고.”

드러난 배꼽 속으로 땀이 쏙 들어가는 게 보인다.

구리빛 피부에서 건강미가 강하게 느껴진다.

우수연과는 다른 의미에서 매우 매력적이다.

“그동안은 바쁘셨나 보네요. 어디서 들어본 적은 없는 거 같은데...”

“그리 유명하진 않으니까요. 정민씨 여자 친구만큼도 유명하지 않은 걸요?”

그 말에 박세나의 몸 이곳저곳을 돌던 내 눈이 그녀의 얼굴로 향했다.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다.

“정민씨 여자 친구는 언제 한 번 안 오시나요?”

“아무래도 미끼 작전은 위험해서요.”

“그렇군요. 정민씨에게는 힘든 시간이 되겠어요. 후우...”

다시 박세나의 가슴과 허벅지로 눈이 간다.

어쩔 수 없는 남자의 본능이란.

왜 대화중에 운동하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낀다.

대화에 집중할 수가 없다.

“뭘요. 큰일을 위해서는 참을 줄도 알아야죠. 그럼 저는 이만.”

“네, 쉬세요.”

박세나는 나를 보며 윙크했다.

마지막까지 노골적이다.

이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탁.

“케이라, 있어?”

“있지.”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그쪽으로 감각을 넓혀보니, 케이라와 엘레나가 침대와 의자에 앉아 있는 게 느껴졌다.

“수연이는 잘 모르겠고, 박세나는 확정이야. 그 사람은 날 유혹하려고 작정했어.”

“역시네.”

“박세나 지금 훈련실에서 거의 알몸으로 운동 중이야. 시선을 둘 데가 없더라.”

“그럼 이 방으로 쫓아왔을 수도 있겠네.”

“진짜 왔어요. 문 앞이에요.”

뭐?

내게는 전혀 안 느껴졌다.

마법을 써 볼까 했지만, 조금 위험했다.

엘레나 말로는 박세나의 감각이 날카롭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두 사람은 박세나에게 가까이 다가가질 않았다.

“좀 더 모여 봐. 사일런스 마법 범위를 좀 줄일게.”

케이라는 이미 마법을 쓰고 있었나 보다.

그녀는 위장을 위해 TV를 켰다.

이제 TV 소리가 문 밖으로 나갈 것이다.

“저 여자는 진짜 첩자네.”

“수장님이 말한 대로네.”

나리 수장은 이 작전의 목적이 소환사가 아니라, 나라고 했다.

어쩌면 케이라일 수도 있고.

아까 케이라에 대해서 운을 띠운 것을 보면, 둘 다라고 봐야 했다.

“최초의 마법사는 매력적이니까. 그나저나 그 하얀 여자애는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수연이는 그냥 하얘. 아무것도 몰라.”

“아까부터 이상했는데, 수연이는 뭐야?”

어라라...?

내가 뭔가 잘못했나?

왜 이렇게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지.

“아, 그, 오빠 동생하기로 했어서.”

“...내가 보기엔 그 하얀 여자애가 더 위험한 것 같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정민님이 좋아할 스타일이에요.”

케이라와 엘레나는 아직 투명화 마법을 쓰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어떤지는 안 보였지만, 나를 노려보고 있을 듯했다.

“아니, 내가 뭐? 수연이는 아무것도 안 했다니까.”

“안 봐도 뻔해. 정민 오빵 하는 소리에 훅하고 넘어갔을 거야.”

“맞아요. 평소에 소연이를 보는 눈만 봐도 뻔해요.”

여기서 갑자기 소연이는 왜 나오는 건데?

케이라도 케이라였지만, 옆에서 거드는 엘레나도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두 사람의 표정이 안 보여서, 나는 좀 더 무서웠다.

이거 진심이야? 장난이야?

“혼을 좀 내줘야겠어. 엘레나, 제가 먼저 해도 괜찮겠죠?”

“물론이에요, 케이라. 다시는 그런 짓 못하게 혼을 좀 내주세요.”

“내가 무슨 짓을... 읍.”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군가 내 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몸매로 보아 이건 케이라다.

“츄릅, 하압.”

이어 투명화가 풀리고, 푸른 머리에 홍조를 띈 케이라가 나타났다.

엘레나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밖엔 박세나가 대기하고 있는데... 뭐, 엘레나가 알아서 하겠지. 그녀도 S급이니까.

“정민아, 또 다른 생각하지?”

“응? 아니야.”

“이러면 나한테 집중해줄 거야? 정민 오빠?”

불끈.

“효과 확실하네? 오빠? 오늘 어떻게... 꺄악”

이젠 나도 모르겠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해야지.

나는 케이라를 침대에 눕히고는 오전 내내 참아왔던 성욕을 터트렸다.

“학, 정민 오빠! 거기, 하윽...!”

+++

[와아아!]

TV에 이정민이 묠니르를 받는 모습과, 환호하는 신용산 크루원의 얼굴이 나왔다.

크루원들은 굉장히 들뜬 표정이었다.

이러서 화면이 바뀌면서, 드론으로 찍은 집이 나왔다.

드론은 주변 풍경을 같이 찍어주다가 집 앞에 서 있는 사람을 클로즈업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최초의 마법사를 만나러 왔습니다! 요새는 영웅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한대요! 영웅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할까요? 고고!]

리포터의 하이 텐션과 함께 집 내부가 공개됐다.

그리고 이정민이 나타나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키퍼 이정민입니다.]

욱씬욱씬.

팔이 날아가 버린 오른쪽 어깨가 아파왔다.

저 평온한 얼굴 때문이다.

저 얼굴 때문에 그 날의 치욕스러운 기억이 떠올랐다.

소환사는 들고 있던 잔을 TV를 향해 던졌다.

쨍그랑.

잔이 깨지고 유리가 사방으로 날렸다.

그러나 그런 걸로 사라질 분노가 아니었다.

“제기랄...”

소환사는 당장에라도 저 집에 들어가서 평온한 얼굴을 절망으로 바꿔주고 싶었다.

하지만 함정인 걸 뻔히 아는데도 갈 수는 없었다.

저렇게 방송에 집을 내보낸다는 거 자체가 대놓고 유인하는 거였다.

드론으로 주변 풍경을 찍는다는 것도 집 위치를 그걸로 알아내라는 이야기였고.

그런데도 들어가는 건 바보나 다름 없었다.

“...그래도 반드시...”

소환사는 끝까지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럴 거였으면 조잡한 영상을 이곳저곳에 뿌리지도 않았을 거다.

“그보다 왜 그 년은 안 나오는 거지? 저 새끼보다 그 년이 더 짜증났는데...”

뭔가가 있었다.

소환사가 뿌린 영상 중에는 파란 머리 년이 마법을 쓰는 장면도 있었는데, 그건 방송에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뭐, 좋아... 언젠가는 나오겠지. 언젠가는...”

존버는 자신 있었다.

존버는 그가 지난 10년간 해왔던 일이다.

욱씬욱씬.

“빌어먹을! 술 더 가져와! 술!”

그러나 이번 존버는 역대급 난이도가 될 것 같았다.

그만큼 입은 상처가 크니까.

+++

철원군 사금리 어느 집.

TV 화면에 이정민이 묠니르를 받는 장면이 나왔다.

“오호?”

사령술사는 아타만티움을 훔치기에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게 나으니까.

개인이 가지고 있을 때가 훨씬 더 어려울 때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저 개인은 사령술사보다 약할 게 뻔한 악마였으니까.

“오호?”

드론이 찍어주는 집 풍경을 보면서 사령술사는 또 한 번 탄성을 내질렀다.

저 정도 정보면, 그냥 찾아오라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굳이 마나에 물어보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었다.

“...함정인가?”

사령술사도 바로 함정인 걸 깨달았다.

하지만 자신을 노린 함정이 아닌 것도 깨달았다.

그를 막으려면, 저 정도론 안 된다.

“그럼 맛있게 먹어야지.”

그에게 저 정도의 아타만티움이 주어지면, 이 세계에서 그를 막을 자는 없다.

머뭇거릴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

새 집으로 온지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진짜 바빴다.

일단 방송출연을 두 번이나 했다.

한 번은 이 집에서 미끼용 인터뷰를 했고, 한 번은 스튜디오에 가서 토크쇼에 출연했다.

키퍼가 무슨 토크쇼인가 싶지만, 인기 있는 키퍼는 연예인이나 다름없기도 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만큼 내 인기가 많다는 이야기였다.

최초의 마법사에 신용산 참사를 막은 영웅, 10년 만에 등장한 네임드 빌런의 대적자 등 인기 있을 요인은 많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인기요인은 신용산에서 공개한 수여식 영상이었다.

100억 상당으로 추정되는 딴딴이 망치를 넘긴다는 것만으로도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될 게 뻔했는데, 영상 퀄리티도 그에 못지않았다.

소환사가 쳐들어와서 엉망이 된 신용산 거리와 싸우는 장면 일부, 거대화한 망치와 오크 치프에 수여식까지 들어가 있는 영상이었다.

곳곳에 CCTV가 있었는지, 케이라 빼고 모든 사람들이 그 영상에 들어가 있었다.

영상만 보면, 내가 무슨 세계를 구한 영웅으로 보였다.

거기엔 나와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신용산 크루 사람들의 리얼한 표정이 한몫했다.

그들은 진짜 나를 존경하는 듯했다.

아니, 크루 수장을 놔두고 나를 그렇게 쳐다보면 어쩌겠다는 건지.

영상은 너튜브에 올라갔는데, 일주일만에 조회수는 억을 돌파했고, 댓글은 각국 언어로 십만 개쯤 달렸다.

자고 일어났더니 세계적인 유명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적어도 딴딴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제 내 이름을 알 수밖에 없게 됐다.

그리고 전세계 사람 중 절반 이상은 딴딴이를 안다.

딴딴이는 세계에서 제일 단단하고, 가벼우며, 비싼 금속이니까.

온갖 방송에서 러브콜이 오는 것도 당연했다.

그 중에서 고르고 골라 하나 나간 거고, 앞으로도 몇 개의 방송 출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댓글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달리고 있었다.

[신용산 크루 대단하다. 어떻게 저걸 넘기지? 진짜 배포가 넘사벽이네.]

[자기 일도 아닌데 나섰으니까. 영웅이라 불리기에 충분해.]

[저런 사람이 키퍼가 돼야지. 다른 키퍼들도 반성해야 함.]

[부럽다. 100억짜리 망치를 휘두르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

.

.

나를 댓글의 홍수에서 빠져 나오게 한 건 최근 가장 상큼한 목소리였다.

“오빠, 뭐하고 있어요?”

“영상 보고 있었어.”

“혹시 그거요?”

“응. 잘 만들었더라. 역시 신용산 크루야.”

“별 거 아니에요. 그게 다 오빠가 그만큼 놀라운 일을 해서 그렇게 나온 거라니까요.”

말도 어쩜 저렇게 예쁘게 하는지.

사랑받으며 자란 게 저런 건가 싶다.

“그냥 묠니르 한 번 휘두른 게 끝인데 뭘. 너도 봤잖아. 얼마나 강한지.”

“확실히 무식하긴 했어요.”

저번에 실험하다가 조금 늦게 망치를 놓은 적이 있었다.

아주 조금 늦었을 뿐인데, 망치는 에너지를 미친 듯이 흡수해 분홍색을 지나 핏빛이 되었다.

저번처럼 커지려는 망치를 보며 바로 놓았지만, 그 에너지가 사방으로 퍼지는 것만으로 측정 장치를 반파 시켜버렸다.

그래서 지금 있는 장비는 신용산에서 다시 가져온 거다.

장비가 어젯밤에 막 도착해서, 오늘 아침까지 수연이가 조정 중이었다.

나는 그걸 기다리고 있었고.

“이제 다 설치 됐으니까, 여기 서시면 돼요.”

“그런데 이거 계속 하는 게 의미는 있는 거야?”

참고로 수연이는 여전히 성욕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성욕이란 성욕이 있는 자만 발견할 수 잇는 거니까.

게이트 내 몬스터도 눈치 채지 못하는 걸 기계가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아직은요. 실험이나 측정은 보통 수백 번 단위거든요. 이제 4번 정도 했으니, 실망하기는 이르죠. 그래도 혹시 지루하다고 여기실 오라버니를 위해서 이걸 준비했어요.”

수연이 은색 막대기를 내게 건넸다.

일단 막대기 생김새보다 훨씬 가벼워서 놀랬다.

바로 뭔지 알 것 같았다.

“이거...”

“맞아요. 딴딴이예요. 크루에서 남는 거 좀 가져다 달라고 했어요. 망치는 아무래도 공격적이니까요. 다른 걸로 실험해 볼 필요도 있어서요.”

망치는 공격적이라.

나도 조금은 궁금했다.

다른 딴딴이와는 어떻게 반응할 지.

...그런데 나도 어느새 딴딴이에 익숙해진 것 같다.

생각도 딴딴이로 하고 있다.

주변, 특히 너튜브 영상에서 계속 그렇게 나오니까 입에 붙어 버렸다.

안 돼, 아타만티움이 좋은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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