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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63화 (63/137)

〈 63화 〉 chapter 9. 사령술사

* * *

63.

소환사를 한 번 막은 나.

소환사가 원하는 묠니르.

두 개가 같이 있는 것이 미끼 작전의 전부는 아니다.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집.

두 가지 미끼가 한 곳에 모여 있어도 그게 GGC 크루 하우스라면 고기가 접근하기 힘들다.

그래서 집이다.

나는 따로 나와 살기로 했다.

소환사가 마음 편히 공격할 수 있도록 말이다.

“여기야, 어때, 좋지?”

“네, 진짜 좋네요.”

가람형의 말에 내가 동의했다.

집은 진짜 좋았다.

서울 근교에 자리한 2층집으로, 정원에 풀장까지 있는 집이었다.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그런 곳이다.

내 평생 이런 집에 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급하게 구하느라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 좋은 매물이 있었다. 내부 인테리어도 깔끔해.”

끄덕끄덕.

나는 대답할 생각도 못하고 연신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고개만 끄덕였다.

침대보다 더 큰 것 같은 대형소파와 차가운 대리석 바닥이 마음에 들었다.

저기에서 섹스를 하면 어떤 기분일까?

게다가 거실의 큰 창을 통해서는 햇빛이 잔뜩 들어왔다.

저 햇빛을 맞으며 기상하는 것도 나름 재밌을 것 같았다.

“여기 지하도 있다?”

“지하요?”

가람이 안내한 지하는 먼지 쌓인 창고 같은 게 아니었다.

전면 거울이 반겨주는 훈련실이었다.

안에 각종 운동기구가 채워져 있었는데, 어째 크루 하우스보다 시설이 더 좋은 것 같은 느낌이다.

“우와...”

“수장님이 돈 좀 쓰셨어. 나중에 꼭 감사 인사를 전해 드려.”

“네, 물론이죠.”

이게 3일 만에 구한 집의 퀄리티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수장님과 가람형이 세세히 신경 쓴 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런데 자신은 있어?”

우리는 집 구경을 마치고 부엌에 앉아 차를 마셨다.

식료품도 최고급으로 다 채워져 있어서, 원하는 차를 다 마실 수 있었다.

“그건 제게 맡겨 주세요. 루의 검 앞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합니다.”

어떤 고급 커피 원두 보다 맥심을 좋아하는 엘레나다.

그녀가 있다면, 소환사 한 트럭이 온다고 해도 든든하다.

S급 키퍼란 그런 것이다.

“엘레나라면 걱정 없지만, 조심은 해야 해. 소환사도 S급 키퍼로 추정되니까.”

A급 몬스터를 소환해 내는 소환사다.

당연히 S급으로 봐야 한다.

“괜찮아요. 그래서 협회에서 사람이 오는 거잖아요?”

이 미끼 작전은 협회에서 먼저 제안한 거다.

협회에서는 미끼를 문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작살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작살이란 강한 키퍼다.

그 키퍼도 이 집에 살면서 소환사를 기다리는 게 이번 작전의 골자다.

누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최소 A급 키퍼는 와야 한다.

협회는 엘레나와 케이라의 존재를 모르니까.

집 주변에 대기하고 있을 대빌런전담부서가 도착할 때까지 소환사를 붙잡으려면 A급 중에서도 S급에 가까운 키퍼는 있어야 한다.

“그래, 그거면 되겠지? 나연이도 같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나연 누나는 수장님을 지켜야죠.”

나연 누나는 이 집에 오지 않는다.

원래대로 크루 하우스에 머물기로 했다.

미끼 작전의 불똥이 괜히 크루 하우스 테러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누군가는 수장님 옆에 있어야 한다.

“맞아. 아, 그리고 한 사람 더 온다고 했지?”

“네, 신용산에서도 사람을 보낸댔어요.”

신용산에서 오는 사람은 미끼 작전 때문에 오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은 연구 목적으로 오는 것이다.

바로 묠니르와 마나, 정확하게는 묠니르와 성욕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말이다.

신용산이 묠니르를 그냥 넘겨줄 리가 없다.

당연히 사전에 이런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묠니르를 받을 수 있었다.

“협회나 신용산에서 누가 오는지는 알아?”

“모르죠. 와 봐야 알아요. 같이 산다니까, 일단 남자가 오지 않을까요? 제가 남자잖아요.”

협회나 신용산은 내가 이 집에 혼자 사는 걸로 알고 있다.

케이라와 엘레나의 존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될 수 있는 한 숨길 생각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 집에서 숨어 지내기로 했다.

주로 내 방에.

하하하.

“그보다 이게 먹힐까요?”

“모르지. 소환사의 집착을 생각하며 가능성은 있다고 봐.”

가람형은 긍정적인 답을 내놓았다.

“...나는 별로. 바보가 아닌 이상 이게 함정인 걸 모를까?”

이건 케이라의 반응이다.

나도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

이걸 함정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해볼 만한 시도인 것 같아요. 결국 누가 긴장을 놓느냐의 싸움 아닐까요?”

엘레나는 길게 봤다.

소환사도 이게 함정이란 걸 알고 있겠지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복수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고 하니까.

하지만 가람형의 의견처럼 바로 이 집을 습격하는 게 아니라, 기다릴 확률이 높다.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오지 않는 소환사에 지쳐 긴장을 푸는 그 때, 갑작스럽게 공격을 한다면 성과를 낼 확률이 높으니까.

협회도 이것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이건 누가 오래 참느냐의 싸움이다.

소환사가 참다 참다 공격했을 때, 우리의 준비가 잘 돼 있다면 우리의 승리.

소환사가 공격했을 때, 우리가 놀라 어영부영 대응한다면 우리의 패배.

협회는 짧게는 2개월, 길게는 6개월을 보고 있는 듯했다.

“너무 길어지면 너희 둘이 힘들 텐데.”

“어쩔 수 없죠. 그건 저희가 잘 해 볼게요. 그렇죠, 엘레나?”

“물론이죠. 6개월이라도 참을 수 있어요.”

이 작전의 문제점은 케이라와 엘레나가 숨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집은 넓으니 숨는 거야 어렵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갇혀 있어야 한다는 게 문제다.

빨리 강해지고 싶다.

그래야 그녀들도, 나도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걱정 마. 내가 한 달 안에 모든 걸 밝힐 거야. 한 달이면 충분해.”

“한 달 안에 하려면 네 머리가 터질 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할 거야.”

목표는 한 달 안에 B급에 도달하는 것.

마법 숙련도도 하급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띵동.

“어, 왔나 본데?”

“그럼, 저희는 숨어 있을게요.”

“이따가 봬요.”

벨 소리에 케이라와 엘레나가 후드를 쓰고는 스르르 사라졌다.

투명화 마법을 쓴 것이다.

거기에 소리를 없애고, 기척을 줄이는 마법도 쓸 거다.

저 정도면 마법사가 아니고서야 눈치 채는 게 불가능하다.

나야 마나가 움직이는 게 느껴지니 어디 있는지 알지만.

방에 갈 것처럼 얘기해놓고는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

“안녕하세요. 맡겨만 주세요에서 왔습니다.”

“아, 네. 어서오세요. 정민아, 이 분들은 내가 챙길게.”

집으로 들어오는 건 기다리던 협회나 신용산 쪽의 사람이 아니라, 가사도우미 직원들이었다.

여자 두 분이셨는데, 가람형이 데리고 집을 안내하기로 했다.

저 분들도 이곳에 거주하시면서 청소와 식사를 담당해 주실 거다.

띵동.

그리고 다시 벨이 울렸다.

이번엔 기다리는 사람이 온 모양이다.

...여자?

긴 생머리에, 눈이 커다랗다.

흰 블라우스에 긴 검정치마를 입었는데, 단아함과 귀여움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신용산 크루 소속 우수연이라고 합니다. 이정민씨죠? 만나서 반가워요.”

우수연이라고 자신을 밝힌 사람이 손을 내밀었다.

흰 블라우스처럼 하얀 손이었다.

휙휙.

그녀는 내 손을 잡고 크게 흔들었다.

“들어가도 되죠?”

“아, 네.‘

솔직히 조금 당황했다.

여자가 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집에 나랑 최대 6개월 같이 살아야 하는데, 어째서?

“좋은 집이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어, 오셨나보네요. 안녕... 어?”

도우미들을 안내하던 가람형이 입구로 왔다.

그는 인사하다가 멈췄다.

“...신용산 크루 소속이신가요?”

“맞아요. 우수연이라고 해요. 어떻게 아신 거예요?”

“저는 GGC 소속 가람입니다. 혹시 김무진 수장님의 조카 아니신가요?”

안 그래도 큰 우수연의 눈동자가 더 커졌다.

무슨 만화 같았다.

“맞아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보통 사람들은 모를 텐데.”

“업계 소식은 정통한 편이라서요. 신용산 크루의 젊은 재원하면 우수연씨가 유명하죠.”

“...그건 좀 부끄럽네요.”

우수연이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숙였다.

표정변화가 소연이 만큼이나 다채로웠다.

소연이보다 키도 크고 몸매는 훨씬 좋지만.

“일단 짐을 풀고 싶은데... 혹시 제 방이 어딜까요?”

“아, 저쪽 방이에요.”

나는 1층의 방을 가리켰다.

우수연이 캐리어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유명한 사람이에요?”

“조금? 능력도 능력이지만, 외모가 외모잖아? 너는 잘 모르겠지만.”

“에이, 제가 왜 몰라요. 저 분도 예쁘...”

찌릿.

갑자기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생각해보니, 케이라와 엘레나 둘 다 아직 거실과 부엌사이에 서 있었다.

“...지는 않네요. 실력은 확실해요?”

“17살에 박사 학위를 딴 천재야. 지금은 박사학위만 4개라던데? 키퍼는 아니지만, 키퍼 이상으로 신용산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래.”

누구는 26살이나 먹어도 학사 하나 밖에 없는데, 박사학위만 4개라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이도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그런 사람이면 자기 옆에 두고 보호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왜 이런 곳에 보냈대요?”

“그거야...”

“그거야?”

“나도 모르지.”

띵동.

어이없는 대답에 가람형을 쏘아붙이려는데, 다시 한 번 벨이 울렸다.

오늘 참 많이도 울리는 벨이다.

“내가 갈게.”

가람형이 현관으로 가서 손님을 데리고 들어왔다.

이번엔 두 사람이었다.

남자와 여자.

선남선녀였다.

돌아보면 키퍼가 되고 난 뒤에 못생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사실 키퍼가 못 생길 수가 없다.

육체 자체가 재구성되기 때문에 피부도 좋아지고, 몸도 조금만 운동하면 효과가 금방금방 나온다.

그럼 이목구비가 조금 이상하다 해도 대충 평균 이상의 외모가 된다.

나도 그렇고 말이다.

하지만 저 두 사람은 이목구비 자체가 뚜렷했다.

키도 크고 팔다리도 길쭉길쭉했다.

키퍼든 아니든 원래 미남미녀란 뜻이다.

둘 중에 누가 이 집에 살지는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여자가 살았으면 좋겠다.

나보다 잘생긴 남자가 이 집에 산다고 하니 조금 거부감이 든다.

이왕이면 가슴 큰 여자를 보는 게 내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될 거고.

우수연이 이 집에 왔다고 당황한 게 바로 조금 전인데, 사람이 이렇게나 간사하다.

“대빌런전담부서 1팀 팀장 장구민입니다.”

“같은 부서 1팀 박세나입니다.”

두 사람은 우수연과 달리 전투용 수트와 무기를 장비하고 있었다.

이게 연구원과 전투원의 차이일까?

“신용산의 영웅과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희가 할 일을 대신해 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장구민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별 거 아닙니다. 할 일을 했을 뿐인 걸요.”

“그 전에도 빌런을 잡는 데 큰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일도 늦었지만 감사를 드립니다.”

“저번...? 아...”

박창식 이야기인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일도 있었다.

굉장히 오래된 것 같은데, 실은 얼마 안 됐다.

“이번 작전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작전 개요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장구민이 자그만 기계를 꺼내 탁자에 놓자, 벽에 주변 지도가 나타났다.

휴대용 빔 프로젝트인 모양이다.

지도에는 현재 위치와 이 집을 둘러싸고 네 개의 점이 찍혀 있었다.

“여기 네 곳에서 저희 팀이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혹시 모를 사태가 벌어지면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곳에 남는 사람은 누구죠?”

“이 친구가 남을 겁니다.”

장구민이 얘기할 때부터 촉이 왔다.

박세나라는 여자가 이 집에 남을 거라고.

내가 원하던 바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난 여섯 명의 여자와 함께 살게 된다.

좋은 건가...?

장구민이 말을 이었다.

“세간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 친구는 협회 두 번째 S급 키퍼입니다. 안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이게 무슨 일이지? S급 키퍼를 6개월 동안 한 작전에 투입하는 게 말이 되는 거야?

띵동.

이걸로 네 번째.

끝난 줄 알았던 벨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

가람형과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먼저 현관으로 뛰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아, 제가 나갈게요! 제 짐이거든요.”

우수연이 방에서 나와 총총걸음으로 뛰어가다가, 뛰어가는 자세 그대로 멈췄다.

“아, 정민씨, 혹시 큰 방이 있나요? 아주 큰 방이 있어야 되는데.”

“...큰 방이요?”

“짐이 좀 많거든요.”

안 그래도 큰 방을 줬는데, 대체 무슨 짐이 많다는 걸까.

가람형과 함께 현관으로 나가보았다.

현관 앞에는 5톤 트럭 두 대가 와 있었다.

트럭에는 각종 장비들이 가득 실려 있었고.

“...이게 다 뭐예요?”

“딴딴이를 연구하려면 이 정도는 있어야 하거든요. 들어갈 곳이 있을까요? 없으면 정원에 연구실을 짓고요. 이 정도 정원이면 부지는 충분한데.”

...머리가 살짝 아파왔다.

연구소급 장비에, S급 키퍼라.

점점 일이 커지는 것 같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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