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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62화 (62/137)

〈 62화 〉 chapter 9. 사령술사

* * *

62.

[오빠, 이번엔 또 무슨 일이야?]

휴대폰 화면 너머 지민이의 표정이 안 좋다.

“미안, 미안. 그렇게 됐어. 이 빚은 나중에 다 갚을게.”

[아니, 이게 갚는다고 될 일이냐고. 오빠, 내 학창시절은? 내 청춘은?]

[지민아, 그만.]

[아니...]

[지민아.]

아버지의 목소리다.

지민이는 결국 휴대폰을 아버지에게 넘겼다.

아버지의 얼굴도 썩 좋지는 않다.

[우리는 걱정하지 마라. 그보다 네 몸이나 더 걱정해라. 소환사는 악질적인 범죄자니까.]

“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도 조심하세요.”

[그래, 그러면 네 일 봐라. 지민이도 시간 지나면 진정할 거다.]

짧은 통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아버지, 엄마, 지민이는 지금 나도 모르는 곳으로 이동 중이다.

저번 테러범이 나를 공격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소환사가 가족을 인질로 잡을 경우가 있으니, 가족을 피신시켜야만 했다.

피신하는 곳은 GGC에서 준비해 줬다.

“걱정하지 마세요. 거긴 안전하니까요.”

“안전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수장님이 하신 일이니 믿습니다. 다만 괜히 저희 가족이 폐를 끼치는 게 아닐지...”

지금 우리 가족이 가는 곳은 수장의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이다.

GGC 크루 하우스보다 그곳이 덜 알려지고, 안전한 곳이라고 했다.

게다가 GGC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곳이라고.

그래서 지금 부모님을 데리고 가는 사람은 GGC 사람이 아니라, 수장이 따로 부리는 사람이었다.

그곳에는 수장님의 가족만 산다는데,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어쩌다 트러블이라도 발생하면, 수장님과 내 관계도 어색해질 수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거긴 엄청 넓으니까요.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엄청?

이쯤 되면, 수장님의 집은 뭘 하는 곳인지 정말 궁금해진다.

인터넷에서는 안 나오고, 수장님에게 물어봐도 나중에 알려주겠다고만 할 뿐이다.

“지금은 그보다 신용산 크루에 집중해 주세요. 이야기는 잘 됐지만, 만나서 또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니까요.”

우리는 신용산 크루로 향하는 중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일들에 대한 마무리 및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다.

“어떻게 나와도 제가 있으면 다 안전할 거예요.”

엘레나다.

그녀는 지금 마법 때문에 GGC 크루원 중 하나인 한사랑처럼 보였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호위를 위해 같이 왔는데, 협상을 위한 자리에 로브를 입고 후드를 뒤집어 쓸 순 없기에 한사랑의 모습을 하고 함께 하고 있다.

“든든하네요. 잘 부탁해요, 엘레나.”

S급 키퍼가 내 뒤에 있다는 게 큰 도움이 된다.

이제 신용산 크루의 수장, 한국에서 제일 부자인 키퍼를 만나게 될 테니까.

+++

“잘 오셨습니다.”

신용산 크루의 수장, 김무진의 목소리는 중후했다.

‘딴딴이’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는 경박함은 전혀 없었다.

다만 그 이름처럼 그의 몸은 딴딴했다.

갑옷을 입은 것마냥 온몸을 근육으로 두르고 있었다.

특히나 팔은 팔씨름 대회에 나가도 될만큼 두꺼웠다.

특별 맞춤 정장일 텐데도, 팔을 조금만 움직이면 옷이 터질 것만 같았다.

망치를 쓰는 사람다운 몸매였다.

그렇다고 그가 제작 키퍼라는 건 아니다.

그는 망치를 들고 앞에 서서 싸우는 전사였다.

“저희야말로 어려운 제안을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리 수장이 김무진의 인사를 받았다.

확실히 어려운 제안이긴 했다.

100억 상당의 돈이 오가는 거였으니까.

“그 정도는 저희 체면을 지켜주신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뒤의 친구가 우리의 영웅이시군요.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정말 고맙습니다.”

김무진이 내게 허리를 숙였다.

말과 악수로 고마움을 표현했던 협회장과는 조금 차이가 났다.

제3자일 수밖에 없는 협회장과 달리 김무진은 사건의 당사자니까 내게 더 고마울 것이다.

내가 없었다면 딴딴이를 빼앗기고, 거기에 있던 키퍼들도 다 죽었을 수 있다.

“저는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저보다는 신용산 크루원들의 침착한 대응 덕에 모두가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김무진이 몸을 펴고 내게 물었다.

부리부리한 두 눈이 나를 꿰뚫어 버릴 듯 쳐다본다.

기세가 자못 대단하진 않지만 꿀릴 건 없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주된 역할을 하긴 했지만, 크루원들이 없었으면 내가 그런 일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잘못하면 나와 케이라도 죽었을 수 있다.

“물론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신용산 크루원들에게 저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하하하.”

호탕한 웃음소리였다.

...갑자기 왜 저래?

“좋습니다. 그 말씀은 꼭 저희 크루원에게 전달해드리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김무진의 표정은 나쁘지 않다.

뭔진 모르겠지만, 내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파란 머리 친구는 안 왔습니까? 그 친구에게도 인사를 하고 싶은데.”

“그 친구는 안 왔습니다. 인사는 제가 따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쉽군요. 그 친구에게도 직접 만나서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이번 일에 케이라는 나보다 더 큰 역할을 했다.

일의 전말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판단을 할 것이다.

그리고 김무진은 일의 전말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신용산 장인 거리의 모든 CCTV를 관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공개된 영상보다 훨씬 더 많은 영상을, 선명한 화질로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는 당연히 케이라가 얼음기둥을 뿌려대는 장면도 포함 되어 있다.

수장님이 사태를 파악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신용산 크루에 연락해 영상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거였다.

케이라의 존재가 알려지면, 빠른 시일 내에 그녀가 이세계인이라는 게 들통 날 테니까.

그건 내가 마법사로 알려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서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공개해야만 하는 거였다.

“다음에 자리를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용산에서 배려를 해주셨으니,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배려까지 나갈 것도 없습니다. 은인의 부탁인데 그 정도는 쉽죠.”

다행히 신용산 크루에서 협조적으로 나왔기에, 케이라에 대한 정보는 지킬 수 있었다.

그 탓에 이번에 도움을 준 일로 신용산에게 얻어낼 수 있는 게 없어지긴 했지만.

그러니까 지금 세간에 떠도는 영상의 출처는 신용산 크루가 아니라는 소리다.

물론 저 태도는 가면이고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신용산 크루가 영상을 뿌린 게 아니었다.

“인사는 끝났으니 다음 이야기를 해 봅시다. 미끼 작전을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협회에서는 이번에 소환사를 꼭 잡고 싶은 모양입니다. 저도 그렇고요.”

“크루 입장에서도 소환사는 꼭 잡아야 합니다. 살려두면 계속 딴딴이를 노릴 테니까요.”

소환사를 쫓는 입장인 협회.

소환사에게 쫓기는 입장인 나.

소환사가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신용산 크루.

셋의 이해관계가 맞았기에, 조금은 힘든 제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

“그럼 사전에 협의한대로 진행하시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정민씨에게 딴딴이를 맡기겠습니다.”

딴딴이 묠니르.

최고의 미끼가 되려면 가지고 있어야 하는 물건이었다.

신용산 크루에서는 소환사를 잡을 때까지 내게 딴딴이 묠니르를 맡기기로 했다.

오늘은 그걸 받으러 온 거였다.

+++

“...긴장돼요?”

“조금요.”

대기실엔 나와 나리 수장님만 있었다.

한사랑의 모습인 엘레나와 가람은 대기실 밖에서 대기 중이다.

왜 대기실이냐.

그건 딴딴이 묠니르, 아니 이제 묠니르라고 하자.

묠니르를 받아가는 걸 신용산 쪽에서 영상으로 남기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크루원 전부가 참여하는 큰 행사로.

“익숙해지셔야 할 거예요. 정민씨의 능력으로 보면,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조용하게 살긴 힘들 것 같거든요.”

“맞아요.”

당장 케이라와 엘레나가 이세계인인 것만 밝혀져도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될 것이다.

고작해야 백 명도 안 되는 행사에서 긴장하고 있으면 안 된다.

“정민씨는 잘 할 거예요. 그... 저한테 하시던 것처럼 하시면...”

“네?”

“아, 아니에요. 실언이었습니다. 잊어 주세요.”

수장님이 두 손을 들고 얼굴 앞에서 좌우로 흔든다.

그녀의 얼굴이 빨개졌다.

귀엽다.

서큐버스화 된 수장님은 수시로 흥분하곤 하는데, 지금이 그 타이밍인 것 같다.

그럼 또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읍, 하아, 츄릅.”

나는 그녀를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었다.

나리 누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혀를 받아들였다.

“츄릅, 츄웁.”

타액과 타액이 교환되고, 서로가 서로의 엉덩이를 주물럭하고 있으니까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었다.

이미 내 분신은 발딱 섰고, 나리 누나도 다리를 들어 내 허벅지를 비비는 중이었다.

똑똑.

진짜, 이 소리만 아니었으면 바로 했다.

“정민아, 이제 나가야 해.”

가람형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형이 방 안의 소리를 들었을까? 들었으면 좀 곤란한데...

“...가람 형, 모르겠죠?”

“알면 어때요? 그보다 이제 긴장은 좀 풀리셨나요?”

“...네?”

그러고보니, 어느새 마음이 편안하다.

설마, 노리고 한 거야?

“나가 보세요. 저희는 뒤에서 보고 있겠습니다.”

살짝 미소 짓는 나리 누나의 얼굴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내조를 저렇게 자연스럽게 하다니, 정말 사랑스럽다.

진짜, 행사만 아니면...

“...네.”

대기실을 나가니, 신용산 크루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직원을 따라 연회장으로 향했다.

“자, 이제 들어가시면 됩니다.”

직원이 연회장의 문을 열어줬다.

레드카펫이 입구에서 단상까지 깔려 있었고, 좌우로 수십 명이 서 있었다.

레드카펫 위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반가운 얼굴들이 몇 있었다.

그날 같이 싸운 사람들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들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단상 위로 올라가, 중앙에 서 있는 김무진 앞에 섰다.

“모두들 알다시피, 3일 전에 이 거리에서는 작은 소란이 있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큰 일로 번질 뻔 한 소란을 잠재운 건, 여기 서 있는 우리의 친구, 이정민 키퍼입니다!”

김무진은 나를 끌어당겨 자기 옆에 세웠다.

“저는 오늘 우리의 친구에게 우정의 증표로 하나의 선물을 하려고 합니다. 친구가 목숨을 걸고 지켰으며, 친구에게 새로운 힘을 준 물건을 친구에게 증표로 선물하려고 합니다.”

그는 그의 옆에 선 직원이 들고 있던 묠니르를 들었다.

연회장이 고요해졌다.

아까부터 조용했지만, 지금은 숨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신용산 장인 거리의 관광객을 책임지던 물건이다.

추정가치 100억이라지만, 이미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물건이다.

저걸 넘긴다는 걸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사전에 들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그 장면을 보니 긴장되는 모양이다.

그에 반해 나는 아주 편안했다.

머릿속에 나리 누나를 어떻게 요리해 줄까하는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케이라랑 하는 날이지만, 양해를 구하고 수장님과 하룻밤을 보내야겠다.

“자, 이게 우리가 드리는 증표입니다.”

나는 김무진에게서 묠니르를 받았다.

다시 든 묠니르는 여전히 가볍고, 무엇보다도 딴딴해 보였다.

이제 대본에 있는 대사를 읊으면 된다.

“감사합니다. 저 혼자 한 일이 아닌데, 이걸 이렇게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정의 증표로 받았으니, 저도 소소하게나마 제 우정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자, 여러분.”

나는 묠니르를 들어 문을 가리켰다.

연회장의 문이 열리고, 대기하고 있던 음식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음식은 GGC에서 지원하는 거긴 했다.

나리 누나가 나 때문에 돈을 많이 썼으니, 오늘밤엔 몸으로라도 꼭 갚아야겠다.

“오늘은 즐거운 날이니, 모두 같이 먹고 마시자고요!”

묠니르를 높이 들자, 연회장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와아아!”

마지막은 포옹이었다.

나는 김무진과 포옹을 하며, 대본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거 편집만 잘하면, GGC와 신용산이 혈맹을 맺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GGC에게도, 신용산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신용산이라는 대기업 중에서도 대기업과 친분이 생기는 건 GGC에게 무조건 이득이다.

심지어 묠니르까지 받았다.

신용산도 이번 일로 이미지가 좋아질 것이다.

묠니르를 지킨 건 나 때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게 선뜻 묠니르를 내주는 건 굉장히 낭만적인 일이며 사람들이 열광할 게 뻔했다.

모든 게 다 대본이라고 알고 있는 저 크루 사람들의 표정만 봐도 확실했다.

신용산이 얻는 건 그것 뿐만은 아니다.

이 행사로 신용산은 ‘나’라는 존재와 강력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이세계인들의 연인인 나와.

지금은 다들 모르지만, 앞으로는 이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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