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chapter 8.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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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아타만티움이요?”
엘레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녀는 처음 듣는 이름인 모양이다.
“악마의 금속이라면 알아요. 저건 악마의 금속이에요.”
나와 엘레나, 그리고 케이라는 신용산 장인 거리의 동영상을 함께 보고 있었다.
엘레나의 한국어는 이제 꽤 능숙해졌다.
“이런 게 나오는 게이트라니... 끔찍하군요.”
“끔찍해요?”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최고의 재료라고 했던 케이라와는 자못 다른 반응이다.
엘레나는 악마의 금속을 혐오하는 듯했다.
“저 금속은 악마의 힘에 반응해서 그 힘을 증폭시켜요. 신마대전에서 신들이 매우 고생했다고 전해 내려와요. 그래서 신들이 악마의 금속을 모두 다 회수했어요.”
“그럼, 저기서 딴딴이가 성욕에 반응한 게...”
“네, 저게 악마의 금속이기 때문이죠. 성욕은 원래 악마의 힘이고.”
한 가지 의문이 풀렸다.
딴딴이와 성욕이 만나 폭팔적인 힘이 발생했다는 건 본능적으로 느꼈지만, 왜 그런 힘이 발생하는지는 몰랐으니까.
하지만 모든 의문이 풀린 건 아니었다.
알아야 할 게 많았다.
“엘레나, 혹시 부작용 같은 건 없어요?”
“부작용이요? 악마가 쓰는 힘이라... 흠...”
한참을 기다렸지만, 엘레나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죄송해요. 제 지식은 여기까지네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힘을 쓰지 않기를 바라요. 힘이 필요하시면 저를 쓰세요. 제가 정민님을 지킬 테니까요.”
“죄송할 필요는 없어요. 성기사가 악마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저도 그 힘을 쓸 생각은 없어요. 그래도 알아야 하니까요. 지켜준다는 말도 고마워요. 언제나 믿고 있어요. 루도, 엘레나도.”
“맡겨만 주세요.”
엘레나가 다짐하듯 루의 기도 자세를 취했다.
언제 봐도 저 자세는 드x곤볼의 순간이동 자세다.
“그럼 엘레나의 세계에서는 아타만티움이 없나요?”
한동안 가만히 있던 케이라가 질문했다.
“네, 케이라님. 신께서 모든 악마의 금속을 회수해 갔다고 전해져요. 악마가 아닌 이상, 그런 금속을 쓸 이유는 없으니까요.”
“혹시, 오리하르콘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오리하르콘이요?”
엘레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또 고개를 갸우뚱했다.
“제가 볼 때는 엘레나의 검은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거예요. 저희 세계에서는 신의 금속이라고도 불러요.”
“아, 저희도 신의 금속이라고 불러요. 오리하르콘이라는 이름도 있군요. 몰랐어요.”
세계마다 지식의 편차가 있음을 방금 눈으로 봤다.
우리 세계에서는 딴딴이라 부르고 있으니, 이상할 건 없다.
그래도 의외긴 했다.
전에 케이라와 게이트와 키퍼의 존재 의의에 대해서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다.
처음 이세계인을 만나 이야기하는 우리 두 사람의 잠정적인 결론은 이거였다.
‘강제 이세계 교류.’
흐르지 않는 물이 썩듯이, 세계도 고여 있다보면 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시스템이라는 녀석이 만든 게 게이트와 키퍼인 것이다.
근거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물론이고 과학자적 사고를 하는 케이라마저도 상당히 만족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본질을 꿰뚫은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이트와 키퍼가 있는 세계에서 이 정도로 중요한 지식의 수준이 차이가 나다니.
엘레나는 아타만티움과 오리하르콘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고, 케이라는 악마의 금속이 성욕 같은 힘과 반응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오리하르콘에 신성을 불어 넣을 때는 어떻죠? 어떤 효과가 발생하나요?”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요? 지금 케이라님은 악마의 금속과 신의 금속이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네. 그래요, 엘레나. 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만, 힘은 힘일 뿐이에요. 금속도 금속일 뿐이고. 결국은 그 힘과 금속을 쓰는 자가 중요한 거 아닐까요? 그래서 수장의 일도 받아들였고, 정민이 성욕을 쓰는 것도 넘어간 거잖아요?”
수장님이 서큐버스화 되었을 때 살짝 트러블이 있을 뻔했다.
엘레나 입장에서 서큐버스를 놔두는 건 태생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
그래도 엘레나는 이해했다.
거기에는 자애와 사랑의 신을 섬기는 것도 아마 한 몫 했을 것이다.
“...맞아요. 그랬었죠. 케이라님의 뜻은 알겠어요. 잠시만요.”
엘레나가 다시 기도하는 포즈를 취했다.
두 눈을 감고 기도하는 모습이 진지하다 못해 신성했다.
잠시 후, 다시 눈을 뜬 엘레나의 눈동자에는 아까와 같은 떨림이 없었다.
“신의 금속... 아니, 저도 오리하르콘이라고 할게요. 오리하르콘에 신성을 불어 넣으면, 그 위력이 배가 되죠. 작은 힘으로도 큰 힘을 낼 수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효과네요. 루께서 부작용이나 주의사항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 적은 없나요?”
“따로 부작용이라고는... 신성은 본래 루께서 직접 나눠주시는 힘이기 때문에 부작용이라는 게 있을 수가 없어요. 사용 가능한 힘만 내려 주시니까요.”
저 말인즉슨, 아타만티움 무기를 사용하기엔 내 수련이 아직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당연하다.
내 추정 성욕 스탯은 아직 1이고, 마력은 아직 4일 뿐이니까.
“어쩌면 루께서 직접 컨트롤 해주고 계시는 수도 있겠네요?”
“루께서는 모든 종을 살피시니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흠... 신이 통제해야 하는 힘이라.
내가 죽을 뻔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진짜 살아난 건 반지 때문일지도.
소연이에게 크게 사례를 해야겠다.
물론 배상도.
“엘레나, 혹신 검을 빌려줄 수 있나요? 한 번 정도는 시험해 봐도 좋을 것 같은데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정민님의 말대로라면, 힘이 폭주해서 정민님이 죽을 수도 있어요.”
나는 엘레나가 검을 빌려주는 데 거부감을 가질 것 같았는데, 그건 문제가 없는 모양이다.
“그럴 때는 바로 놓으면 될 것 같은데... 정민이 네 생각은 어때?”
“나? 저는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어요. 힘을 적당히 조절할 수는 없어도, 힘을 아예 안 쓰는 건 그때도 가능했어요, 엘레나.”
다만 죽을 각오를 하고 힘을 썼을 뿐이다.
어차피 그 힘이 아니었으면 오크 치프에게 죽었으니까.
도박이긴 했다.
성공한 도박이라 살았지만.
그래서 지금도 실험이 필요하다.
다음에 이런 상황이 왔을 때는 도박하지 않기 위해서.
“알겠어요. 그럼, 여기.”
엘레나가 그녀의 검, 트라우 팔가를 내밀었다.
케루온 어로 트라우 팔가는 13이란 뜻이다.
스르릉.
청명한 소리와 함께 검이 검집에서 나왔다.
실전용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아름다운 검이었다.
검신에는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고, 검막에는 조각이 붙어 있으니까.
그래도 나는 이 검으로 엘레나가 무쌍 찍는 걸 직접 봤다.
이건 그저 아름다운 검은 아니다.
휙.
가볍게 휘둘러보니 느낌이 왔다.
일단 너무 가벼웠고, 쓰기가 굉장히 편했다.
오늘 처음 들었는데도, 내 평생의 파트너인양 손에 꼭 맞다.
내가 엘레나에게서 검을 배워서 그런 걸까.
“후우...”
나는 검을 두 손으로 들고, 성욕을 일으켰다.
발기와 함께 따뜻한 기운이 주변에서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천천히, 성욕을 검으로 밀어 넣었다.
우웅.
검에서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이 느낌은 그냥 보통 검에 성욕을 넣을 때와 비슷했다.
나는 어제의 일들을 떠올리며, 날카로워지는 걸 상상해보았다.
그래도 검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안 되나 봐요.”
결국 엘레나에게 검을 돌려줬다.
“확실히 오리하르콘과 아타만티움은 다른 모양이네. 그럼 아타만티움을 구해야 하나?”
“...위험한 힘입니다. 차라리 제가 더 강해지면 안 될까요?”
엘레나는 여전히 걱정되나 보다.
“괜찮아요, 엘레나. 엘레나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리고 앞으로는 엘레나도 같이 가요. 이번에도 엘레나가 함께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당연합니다. 저런 오크 따위는 한주먹 거리도 안 돼요.”
코웃음을 치며 영상의 오크를 노려보는 엘레나.
A급 몬스터에게 한주먹 거리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니, 진짜 든든하다.
하지만 엘레나와 같이 다니기 시작하면, 더 센 적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은 왜 드는 걸까.
에이, 아니겠지.
그건 내가 이 세계의 주인공이라는 이야긴데, 고작 D급 키퍼인 내가 주인공일 리가 없잖아?
+++
경기도 철원군 사금리의 어느 집.
[GGC 크루 소속 키퍼, 신용산 장인 거리를 구하다.]
TV에서 자막과 함께 이정민의 활약상을 담은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호오... 아타만티움이 있단 말인가?”
소파에 앉은 남자는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잔을 높이 들자, 옆에 서 있던 여자가 와인을 따랐다.
주르륵.
여자는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다.
남자처럼 창백한 피부에, 그에 대비되는 진한 검정색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여자도 남자처럼 새빨간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저 빛깔은 인큐버스나 서큐버스겠군.”
남자는 그제야 자신을 이 세계로 불러온 악마의 종류가 뭔지 알았다.
영상에서 보여주는 것만 보자면, 상당히 약한 악마인 듯했다.
‘그러니 키퍼 놀이나 하고 있겠지.’
그러는 그도 사정이 그리 다르진 않았다.
이쪽 세계로 넘어온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철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이 지구라는 곳은 거의 3차원에 근접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는 정말로 경거망동할 수가 없었다.
3차원의 대량 살상 무기는 그와 상극이었다.
그는 사령술사로, 그가 자신 있는 분야는 다대다 전투였으니까.
하지만 스켈레톤을 수도 없이 만들어 봐야, 탱크 하나 처리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이런 세계에서는 강자를 하나씩 붙잡아서 천천히 세력을 불려 나가야 하는데, 그조차도 쉽진 않았다.
이런 시골 촌구석에는 강자가 없고, 도심부로 가자니 잘못 걸리면 죽음이었다.
“혹시 저기 나오는 금속이 뭔지 알아?”
“딴딴이입니다.”
여자 메이드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들었으면 기계음인 줄 알았을 것이다.
생기가 전혀 없어서, 보컬로이드 보다도 못한 느낌이었다.
“얼마지?”
“제가 알기로는 저희 집의 재력으로 살 수 없는 수준입니다.”
남자는 지금 있는 집의 일가를 자기 종으로 만들었다.
딸은 ‘삶’을 얼마 주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기가 없지만, 밖에 나가서 일을 하는 딸의 부모는 다른 사람이 볼 때 그의 종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 정말 쓸모없네.”
“...”
‘어쨌든 아타만티움이 있다는 건 희소식이지. 저것만 있으면, 세력이고 기술력이고 다 필요 없으니까. 1kg만 어디에서 구하면 되는데.’
구하는 일이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남자는 처음 계획했던 대로, 미리 들어둔 보험을 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보험만 제대로 작동한다면, 3차원에 근접한 기술력이든 뭐든 쓸모가 없다.
“식사를 가져와. 밥 먹을 시간이야.”
“알겠습니다.”
메이드는 부엌인 아닌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안방에서 휠체어를 끌고 왔다.
휠체어에는 초췌한 20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아직은 살아 있는, 이 집의 막내였다.
“사, 살려 주세요.”
“걱정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살 거니까.”
남자가 손을 내밀자, 메이드가 식칼을 건넸다.
남자는 식칼을 들고 천천히 막내에게로 다가갔다.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좋아, 아주 좋아. 걱정 마. 살려 줄 거야. 이때까지도 늘 그랬잖아? 어디보자, 오늘은...”
푹.
남자는 식칼로 막내의 배를 찔렀다.
“크아아악! 아악! 아아악!”
휠체어에 묶여 있는 막내는 몸부림치지도 못하고 목청으로만 울었다.
“좋아, 아주 달콤해. 계속 그렇게 해. 그래야 살 수 있지.”
“아아악! 살려 줘! 살려 달라고!”
남자는 막내의 비명을 들으며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삶’의 비명, 그게 그가 모으는 에너지였다.
이 세계에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이기도 했고.
비명을 지르는 막내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모두 잘렸고, 몸에는 칼자국이 넘쳐났다.
‘흐음... 슬슬 식량을 바꿔야 하나?’
남자는 비명을 지르는 막내를 두고, 다시 TV를 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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