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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57화 (57/137)

〈 57화 〉 chapter 8. 데이트

* * *

57.

“저희는 바로 가보겠습니다. 이곳을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저희가 잘 막고 있겠습니다.”

신용산 크루의 리더와 키퍼들이 나와 케이라에게 인사를 하고서는 C단지를 떠났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장인 거리의 중심부, 딴딴이가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괜찮을까?”

“우리? 아니면 거기?”

“둘 다.”

“여기는 문제없어.”

나와 케이라는 이곳, C동에 남았다.

몬스터를 토해내는 자주색 스파크를 그냥 둘 순 없었기 때문이다.

“음... 이건...”

케이라는 지금 자주색 스파크를 분석 중이다.

그녀는 조금만 있으면 해제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할 수 있겠지?’

자주색 스파크의 정체는 잘 알고 있다.

케이라는 모르겠지만, 이건 아주 유명한 빌런의 기술이다.

빌런은 범죄자 키퍼를 가리키는 단어다.

하지만 대부분의 빌런은 바로바로 잡힌다.

한국의 키퍼 협회와 공권력은 그리 만만하지 않으니까.

유명하다고 할 정도의 네임드는 몇 명 없다.

5명 정도?

그 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게 바로 이 기술의 주인공, 소환사다.

그는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었다.

몬스터를 소환해서 게이트 폭주가 일어난 척 한 뒤,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취하는 게 그의 범죄 방법이었다.

소환사의 존재는 한 때 도시전설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협회가 게이트 폭주를 처리하지 못해 이상한 빌런을 내세우는 는 거라고 했기 의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년 전을 마지막으로 소환사가 자취를 감췄을 때, 사람들은 그제야 급감한 게이트 폭주를 보며 소환사의 존재를 인정했다.

소환사가 활동할 때 한 달에 2번꼴로 일어나던 폭주 사건이, 1년에 1번 정도로 줄어든 것이다.

그래서 그의 트레이드마트라고 할 수 있는 자주색 스파크를 보고도 아무도 소환사를 떠올리지 못했다.

자그마치 10년 전이 마지막 활동이었으니까.

“술식을 이렇게 짰다고? 이게 가능한 거야?”

케이라가 놀라고 있었다.

그녀가 다른 이의 기술을 보면서 놀라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럴 만도 했다.

사람들이 추정하기에 소환사의 기술 등급은 SS라고 했으니까.

내 소환 게이트랑 같은 수준의 기술이다.

따지고 보면 비슷한 느낌의 기술이기도 하다.

“흐음...”

당시, 그 누구도 소환사의 기술을 해제하지 못했다.

이번에 케이라가 해제하게 된다면, 나름 업적을 세우게 된다.

대중에 알리지는 못하겠지만.

“...좋아.”

“된 거야?”

“아니.”

케이라가 고개를 저었다.

...케이라도 안 되는 건가?

모든 걸 당연한 듯이 해내던 만능 케이라가?

“대신 부숴 버리겠어.”

역시.

마법은 만능이다.

케이라는 신이고.

“주변에 사람, CCTV 없지?”

“CCTV는 모르겠는데? 아, 저기 있다.”

“그럼 사각을 좀 만들어 줘.”

“뭘 하려고?”

나는 오른쪽 천장에 붙어 있는 CCTV를 가리며 케이라 앞에 섰다.

그녀는 대답 없이 두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모았다.

화르륵.

언젠가 본 반투명한 푸른 불꽃이 그녀의 두 손 사이에 피어났다.

어디서 봤더라?

그녀가 눈을 뜨자마자 어디서 봤는지 떠올랐다.

신비로운 푸른 눈이 훨씬 더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푸른 마력이다.

내가 그녀에게서 처음 받았던 기술.

내가 쓰려고 하자마자 정색하며 막았던 기술이다.

스르르르.

그녀가 손을 모아 위로 올리자, 푸른 불꽃이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위에는 자주색 스파크가 있었다.

지지지직.

스파크가 불꽃 주변으로 일어났지만, 불꽃은 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며 계속 올라갔다.

불꽃과 스파크가 닿자, 스파크가 더욱 강하게 튀었다.

거의 번개가 되어, 우리에게까지 내려왔다.

“케이라!”

케이라는 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신비로운 두 눈엔 초점이 없다.

내가 케이라 위를 손으로 가리며 번개를 막았다.

“크으윽.”

눈앞이 하얘지고,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케이라를 다치게 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겨우 버텼다.

파지지지직.

버티는 와중에도 번개는 더욱 강해졌다.

위의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푸른 불꽃이 자주색 스파크를 지우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마지막 발악이다.

“크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뻗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케이라 쪽으로 넘어지지 않기 위해 감각이 사라지고 있는 무릎에 힘을 넣었다.

제 3자가 보면 내가 번개를 잡고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누가 찍어줬으면 좋겠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버티는 데 도움이 됐다.

지직, 지직.

결국 번개는 끝이 났고, 나는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봤지? 어때? 어, 정민아? 정민아!”

케이라의 깜짝 놀란 얼굴 뒤로, 자주색 스파크 만큼이나 커진 푸른 불꽃이 보인다.

역시 케이라는 신이다.

+++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머리에 부드러운 게 느껴졌고, 바로 위에 케이라의 아름다운 얼굴이 있었다.

이렇게 아래에서 봐도 전혀 굴욕적이지 않은, 신기한 얼굴이다.

“깼어?”

“아니, 좀 더 잘래.”

나는 몸을 뒤집었다.

머리를 돌리는 사이에 치마가 말려 올라가며, 얼굴이 허벅지 사이로 들어갔다.

눈앞에 케이라의 팬티가 보였다.

“흐읍.”

“흐응.”

숨을 들이키자, 케이라가 옅은 신음을 흘렸다.

좀 더 해볼까 하는데, 경고 방송이 들렸다.

[빌런 코드 네임 소환사가 나타났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중앙 거리에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빌런 코드 네임 소환사가 나타났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중앙 거리에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바로 일어났다.

“...얼마나 지났어?”

“1분 쯤?”

생각보다 안 지났다.

“우리도 가자.”

“괜찮겠어?”

“응, 덕분에.”

몸이 찌뿌둥하긴 하지만, 문제는 없었다.

빌런이 나타났을 때, 주변 키퍼가 나서는 것도 역시 키퍼의 의무 중 하나였다.

협회의 모토 중 하나는 ‘키퍼의 일은 키퍼가 해결한다’ 였다.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

키퍼를 상대할 때는 키퍼가 나서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진짜야? 아깐 번개를 생각하지 못했어. 미안해”

케이라가 미안해하다니, 이건 정말로 흔하지 않는 경우다.

걱정하는 눈빛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당장 키스를 퍼붓고 싶지만, 번개를 참듯이 참았다.

“괜찮아. 어차피 가도 뒤처리를 하는 게 다 일거야. 소환사는 용의주도한 데다가 신출귀몰 하거든.”

“그 정도야?”

“응.”

안 그러면 그가 활동한 10년 동안 협회가 못 잡았을 리도 없고, 행방이 묘연해진 후 10년 동안 추적하지 못했을 리 없다.

이번 테러도 신용사 크루의 핵심이 게이트 원정 같은 걸 간 시기에 한 게 틀림없다.

협회에서 소식을 듣고 전문 인력을 파견할 때쯤엔 이미 유유히 도망갔겠지.

그래도 케이라 덕분에 몇 명 보냈으니까, 딴딴이는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알겠어.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응응. 괜찮아.”

이 친구.

오늘 따라 더 사랑스럽다.

데이트 복장 차림이라서 그런 건가?

“그럼 내가 앞장 설게.”

케이라가 먼저 뛰었고, 내가 그녀의 뒤를 쫓았다.

그녀는 여전히 머리를 풀어 헤친 채였다.

이 정도면 움직이기 편하게 머리를 묶을 법도 한데.

귀엽다.

말 참 잘 듣네.

+++

[빌런 코드 네임 소환사가...]

C단지에서 중앙 거리까지는 거리가 꽤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에도 경고 방송은 계속 됐다.

소환사와 키퍼의 싸움이 길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취이익!”

“왼쪽! 왼쪽, 막아!”

“피해!”

나와 케이라가 중앙 거리에 도착했을 때, 거기는 수십 명의 키퍼와 오크가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그래도 이곳엔 키퍼가 많았다.

모두 다 도망치지는 않은 모양이다.

“우리도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키퍼의 수가 더 많아 유리해 보였지만, 오크 투사 몇 마리가 변수였다.

빨리 오크를 처리하고 투사를 함께 처리하는 게 베스트 같았다.

“잠깐만, 적의 목적은 따로 있잖아?”

“딴딴이?”

딴딴이는 거리 중앙에 그대로 있었다.

키퍼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저걸 뚫고 들어가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 혹시 소환사가 어떻게 도망 다니는 줄 알아? 마법? 몬스터? 아티팩트?”

“...아티팩트!”

케이라의 말이 키워드가 되어 10년 전 기억들이 떠올랐다.

대도.

소환사의 또 다른 별명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시선을 돌리고 수많은 것들을 훔쳤다.

그 중에 여러 아티팩트가 들어가는 건 당연하다.

아티팩트 중에서도 10년 전에 그가 애용하던 건, 투명 망토와 순간 이동 장화였다.

두 아티팩트가 있으면, 키퍼들 사이에 있는 딴딴이를 훔치는 건 일도 아니다.

...함정을 파야 한다.

“...일단 숨자. 잠시 상황을 지켜봐야겠어. 그리고 혹시 투명 망토를 입은 자를 찾을 수 있을까?”

“해볼게. 가능할 수도 있어.”

우리는 건물 사이 골목에 숨었다.

케이라가 마법으로 소환사를 찾는 것보다 소환사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게 빨랐다.

쨍그랑!

딴딴이를 보관하고 있던 유리관이 깨어짐과 동시에 딴딴이가 사라졌다.

“...투명망토! 젠장! 소환사를 잡아!”

“어떻게 하죠? 리더!”

10년 만에 등장한 소환사다.

10년 전, 만만의 준비를 하고서도 못 잡았는데, 이런 식으로 기습을 당하면 뒤꽁무늬도 쫓을 수가 없다.

“취이익!”

“젠장! 일단 오크를 막아!”

키퍼들은 딴딴이만 신경 쓸 수도 없었다.

오크만으로도 이미 버거웠기 때문이다.

“...찾았어. 저기, 창 든 오크 주변. 이쪽으로 움직이는데?”

“나이스!”

찾을 수 있는 건 다행이었고, 이쪽으로 오는 건 대박이었다.

거리는 두 개의 입구가 있었는데, 우리가 온 쪽과 반대쪽이었다.

소환사가 반대쪽으로 갔다면, 아마도 잡을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이쪽으로 올 것 같은 느낌은 있었다.

우리가 있는 쪽에 몬스터 소환을 했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 선결과제가 더 남았다.

“내 마법으로도 찾을 수 있을까?”

“될 것 같아. 그리 높은 등급의 아티팩트는 아니야.”

나는 케이라의 말을 듣고 그쪽 방향으로 서치를 사용했다.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나도 보여. 내가 먼저 공격할게. 케이라는 바로 이어서.”

“알겠어.”

“소환사는 순간 이동 장화를 쓸 거야. 이동 거리는 20m 정도였던 것 같아.”

“이해했어.”

조금 기다리자, 소환사가 우리가 있는 곳 거의 근처까지 왔다.

나는 그때 골목을 나서며 말했다.

“오크! 어디부터 가야하지?”

어설픈 연기였다.

아는 사람이 봤으면 바로 놀렸을 것이다.

그러나 소환사는 날 처음 보는 거고, 갑자기 튀어나온 나에게 대응하느라 연기인지 아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

소환사가 내 이동경로에서 슬쩍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쪽을 보면서 외쳤다.

“어! 거기 오크야! 조심해!”

그리고 소환사의 정면으로 달렸다.

부딪힐 건 알았지만, 어깨를 먼저 들이민다든지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냥 우연히 부딪히는 상황을 만들 생각이었다.

파밧.

그 순간, 소환사가 내 앞에서 사라졌다.

순간이동 장화를 사용한 것이다.

어디로 갔지?

내 서치 범위는 반경 20m에서 조금 모자란다.

한 쪽 방향으로 늘이면 50m 정도까지는 가능하지만.

그래서 소환사의 위치는 얼음 소리를 듣고 알았다.

콰직.

오늘만 벌써 세 번째로 보는 얼음 기둥이 땅바닥에서 솟아났다.

“크악!”

소환사가 비명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동시에 그의 오른팔이 몸통에서 떨어져 하늘을 날았다.

딴딴이를 쥐고 있는 손이었다.

나는 일단 딴딴이 쪽으로 향해 뛰었다.

공격은 케이라가 알아서 할 테니까.

쩌저정.

다시 얼음 기둥이 솟아나는 소리가 들렸다.

딴딴이 묠니르를 확보하고 보니, 얼음 기둥만 있었다.

소환사는?

아직 망토가 제대로 작동하는 건가?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멀리 못 갔을 텐데?

답을 구하기 위해 케이라는 보니, 케이라가 내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위!”

나는 그제야 내 머리 위에 마나가 요동치고 있는 걸 느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자주색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고 있었다.

조금 전 케이라가 없앴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사이즈였다.

“크윽... 다 죽어라!”

소환사의 목소리와 함께, 자주색 스파크에서 무언가가 튀어 나왔다.

나는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나며 옆으로 굴렀다.

쿵.

내가 있던 자리에 떨어진 건 커다란 발이었다.

거의 내 몸통 만한 크기다.

발의 주인의 머리는 하늘 저 꼭대기에 있는 것만 같았다.

꼭대기에서 천둥 같은 콧소리가 터졌다.

“취에에엑!”

A급 몬스터, 오크 치프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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