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chapter 8.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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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지난 한 달.
나는 절반 이상을 게이트에서 살았다.
대부분 오크 게이트였고, 두어 번 오거 게이트에 들어갔다.
신약 개발을 위해서였다.
서큐버스가 없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손쉽게 오거의 뇌를 구할 수 있었고, 치매 예방 및 치료약 개발에 한 발작 더 다가갔다.
한 달 내내 오크를 잡은 성과도 있었다.
성욕이 검술과 맞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게 성과였다.
상식적으로, 검을 맞대면서 발기를 유지하는 게 말이 안 된다.
날아오는 검을 피하는 데 집중해야지,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면 죽을 뿐이다.
전투 자체에서 희열을 느낀다면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난 그런 전투광은 아니다.
성욕을 가미한 제국 근위대 검술, 일명 성(?)검기는 필살기 느낌으로 써야만 했다.
성욕을 끌어올리는 데 2초, 검기를 쏘아내는 데 2초해서 총 4초나 걸리는 기술이었으니까.
이 정도면 실전성은 없다고 봐야 했다.
대신 성욕과 마법의 궁합은 일품이라는 걸 확실히 알았다.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 훈련 할 때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실전에서는 더 좋았다.
성욕을 끌어올리고 마법을 사용하면, 마나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이 모인다.
마나가 내 말을 더 잘 들어주는 느낌?
앞에서 시간을 끌어주는 전사들이 있다면, 확실한 딜링을 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소연도 앞에 서는 걸 가끔 훈련했다.
염력으로 오크들을 멈추게 하는 방식이었다.
그녀의 탱킹은 나쁘지 않았다.
한 번에 3마리의 오크를 멈출 수 있었다.
그 정도면 어설픈 C급 키퍼보다도 나은 수준이라고 한다.
정말 염력은 대단했다.
너무 사기 아닐까?
나도 마법에 검술에 성욕까지 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염력하나에 밀리는 느낌이다.
그리고 오늘, 정확하게는 방금.
훈련의 진짜 성과가 나왔다.
“케이라 봤어? 방금 봤지?”
“어, 봤어. 이제 끝났네.”
“와! 됐어! 됐다고!”
나는 방금 엘레나가 막고 있는 오크를 향해 최하급 백마법 중 하나인 파이어 애로우를 날렸다.
성욕을 끌어올리는 데 1초, 마법을 완성하는 데 1초가 걸렸다.
시간을 절반으로 줄인 것만이 다가 아니다.
파이어 애로우는 정확하게 오크의 머리를 관통했다.
정확도와 위력도 일반적인 파이어 애로우보다 훨씬 뛰어났다.
“축하드려요, 정민님. 진짜 고생 많았어요.”
“엘레나가 더 고생이었죠. 맨날 오크 입냄새를 맡아야 하고.”
훈련 중간부터는 저번처럼 사람을 나눠서 훈련했다.
나와 소연 둘이서 호흡을 맞추는 건 충분히 했으니, 오크를 살아 있는 마루타로 삼아 여러 가지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가람이나 엘레나가 오크를 잡아 두면, 나와 소연이 신기술을 시전하거나 원래 기술의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괜찮아요. 정민님이 더 고생이 많았죠. 마력에, 마나에, 그리고 거기까지...”
엘레나의 시선이 내 분신을 향했다.
그녀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나와 사랑을 나눈 게 얼마인데, 그녀는 아직도 부끄러움이 많다.
정작 할 때는 그런 게 없는데, 하기 전이나 하고 난 후에는 나와 눈도 잘 안 마주치려고 한다.
“걱정 안 해도 돼요, 엘레나. 정민의 자지는 쓰면 쓸수록 더 단단해질 테니까요. 그냥 나가서 즐길 생각만 해요.”
“대낮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뭐 어때? 사실이잖아.”
“아니야, 나도 힘들다고.”
성욕을 쓰느라 발기와 꼬무룩을 반복했더니, 요 근래 분신이 자주 아프다.
사실 이런 훈련이 아니라도 아플 때는 훨씬 지났다.
하루에 네다섯 번씩 사정을 거의 일주일 내내 하고 있으니까.
“역시, ....또 치료가 필요하신 건간요?”
“그거야 물론이죠! 엘레나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내 분신이 이런 혹사를 견딜 수 있는 건, 다 엘레나 덕이다.
성기사, 그것도 사랑과 자애의 성기사의 신성마법엔 부수적인 효과가 있었다.
성기에 관해 탁월한 치료 및 강화 효과를 보인다는 거였다.
내가 볼 때 정력 강화 효과도 있는 것 같았다.
엘레나가 없었다면 이런 하렘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절대 무리다.
여자들의 성욕을 못 따라가서 내가 나가떨어지거나, 그들이 성욕을 못 채워서 서로 싸우고 말았겠지.
“...흠흠, 그럼...”
툭, 툭.
엘레나가 갑자기 갑옷을 벗었다.
두꺼운 솜옷으로도 숨길 수 없는 가슴이 툭툭하고 튀어나왔다.
그녀가 솜옷까지 벗으려고 하는 걸 내가 막았다.
“잠깐만요. 지금 하자는 말이 아니잖아요. 이제 나가니까, 나가서 해요!”
“아... 제가 또...”
엘레나가 황급히 갑옷을 다시 착용했다.
부끄러워하면서도 저런 급발진이 자주 있다.
원래는 안 저랬던 것 같았는데, 케이라가 의심되는 이유는 뭘까?
“괜찮아요. 엘레나, 저도 언제나 엘레나와 하고 싶은 마음이니까요. 그래도 공과 사는 조금 더 지키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케이라도 있고.”
“난 괜찮은데? 저번에도 했잖아?”
“그땐 위기 상황이었고!”
저번에 케이트 안에서 엘레나의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진짜 분신이 쓰라린 듯이 아파서 어쩔 수가 없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엘레나의 치료행위인데, 그냥 마법만 쓰는 게 아니다.
성기를 치료할 때는, 치료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파이즈리와 펠라를 함께 한다.
나는 너무나 좋지만,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때는 위기 상황이라 케이라가 옆에 있는데도 했었지만, 보통은 둘 다 꺼리는 상황...
어라? 이제 아닌가?
“...앞으론 주의할게요. 그럼 이제 게이트를 나가는 건가요?”
“그래야죠.”
성욕 강화 파이어 애로우 시전 시간을 2초 안으로 줄였으니, 훈련의 목표는 달성했다.
지난 한 달간 쉬지 않고 달렸으니, 이제 조금 쉴 타이밍이었다.
“드디어 나가는 구나.”
“케이라도 고생했어. 케이라의 지도가 없었다면 마법 숙련도를 그렇게 빨리 올리지 못했을 거야.”
“넌 아직 멀었어.”
“나도 알아. 앞으로 더 도움 받아야지. 그러니까 이번에 네가 원하는 대로 놀아줄게. 데이트를 하자.”
케이라의 신비한 두 눈동자가 나를 쳐다 본다.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았지만, 저게 의문의 눈동자라는 걸 지금은 안다.
“데이트...? 난 침대면 되는데?”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신용산으로 가자.”
“신용산?!”
케이라의 말 그대로 두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가 이 정도의 반응을 하는 건, 섹스할 때를 제외하고는 없다.
그만큼 기쁘다는 이야기다.
“...잘 다녀오세요.”
그리고 그녀가 기쁜만큼 약간은 시무룩해진 엘레나가 있었다.
“엘레나도 다음에 기대해요. 좋은 곳으로 데이트가요!”
“...네!”
엘레나는 그제야 조금 밝게 미소 지었다.
저거 보다 밝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러려면 반대로 케이라가 시무룩해지고 말 것이다.
아쉽지만, 저 미소로 넘어가야 한다.
엘레나도 이해는 할 거다.
이럴 때는 순서가 중요하다는 걸.
그저 머리는 이해해도 마음은 조금 아파서 그런 걸 테지.
하아... 하렘은 힘들구나.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다.
내 몸이 세 개로 나눠질 정도로 힘들어 진다 해도 말이다.
이건 로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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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는 한국 최대의 전자 상가가 있다.
인터넷의 발달, 전자 상거래의 활성화, 상인들의 과도한 호객 행위 및 바가지 씌우기로 망할 뻔한 상가였다.
실제로 반 정도는 망했다.
상가의 전체 매출은 잘 나갈 때에 비해서 현격히 떨어진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반이나 살아남은 건, 신용산에 모인 새로운 사람들 때문이었다.
신용산 장인 거리.
한국 키퍼 중에 제작 기술을 가진 키퍼들은 다 이곳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작 키퍼들이 모이니 그들과 협업하길 원하는 키퍼 장비 회사들도 너도나도 들어왔고, 장비에 쓰이는 재료를 대는 유통업체들도 들어왔다.
사람들이 모이니 각종 요식업 프랜차이즈들이 전부 매장을 연 것도 당연했다.
그렇게 신용산은 키퍼 장비의 메카가 됐다.
그 여파가 죽어가는 용산 전자 상가를 살릴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장비를 구하려고, 또는 관광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딴딴이’를 구경하기 위해.
제작 키퍼들이 이곳에 모이기 시작한 건, 신용산에 있는 크루, 그 이름도 심플한 ‘신용산 크루’ 때문이었다.
이 크루의 주인이 그 유명한 김무진.
지구 최고의 금속 ‘딴딴이’가 나오는 게이트를 가진 자였다.
장인 거리 중간에 딴딴이로 만든 조각이 있는데, 그게 일반인들이 거의 유일하게 딴딴이를 실물로 볼 수 있는 자리였다.
팔뚝만한 크기의 1kg 통짜 딴딴이 조각으로, 추정 가격은 대략 100억 정도.
미스릴의 약 10배 가격이다.
하지만 솔직히 가격은 의미가 없었다.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까.
“저게 딴딴이구나.”
케이라가 쌍안경으로 거리를 살펴보며 말했다.
나도 쌍안경으로 딴딴이로 만든 토르의 망치, 묠니르 조각을 보았다.
멀리서 봐도 멋있네.
거리는 딴딴이를 보러 온 사람들로 미어 터졌기 때문에, 거리에서 본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나는 옛날에 가까이에서 보겠다고 저 인파 속을 뚫는 미련한 짓을 했지만, 케이라와 함께는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다.
케이라가 인식 방해 로브를 입고 왔다면 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 그녀는 로브를 벗고 있었다.
대신 어깨가 보이는 흰색 오프숄더 블라우스에 남색 치마를 입었다.
신비한 푸른 머리가 잘 어울리는 코디다.
거기에 힐을 신고, 평소에 잘 안하던 화장까지 했다.
말 안 해도 알 거다.
오늘 케이라는 너무 예뻤다.
평소에 꾸안꾸 모드였다가, 작정하고 꾸미니까 눈을 땔 수가 없었다.
저런 케이라를 데리고 인파를 뚫는다고?
절대 무리.
솔직히, 나 빼고는 옆에 사람도 두고 싶지 않다.
지금도 카페 내 대부분의 시선이 자꾸 이쪽을 흘끔거리는 데, 저 인파 속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수십 명을 성추행으로 고소해도 모자랄 것 같다.
“딴딴해 보이지? 이름이 촌스럽긴 하지만.”
키퍼 김무진은 50대 아재다.
아재다운 작명이라고 생각한다.
“예상대로 아타만티움이야.”
“아타만티움?”
“인간이 다룰 수 있는 것 중에는 최고의 재료야. 단단하고 가볍고, 마나 효율도 미스릴 보다 낫지. 악마의 금속으로 유명해.”
“딴딴이 보다 훨씬 괜찮은데?”
당장 이름을 바꾸고 싶었다.
바꿀 수 있는 권리만 있다면.
그러나 그런 권리는 나에게 없다.
최초 발견자가 이름을 정하는 게 국룰이니까.
“그런데 왜 악마의 금속이야?”
“신의 금속이라는 오리하르콘에 비견될만한 유일한 금속이라서 그래.”
오! 오리하르콘.
이것도 멋있는 이름이다.
영어나 외국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건 사대주의라고 볼 수도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딴딴이는 좀.
차라리 ‘악마의 금속’이라고 하지.
“조금 이상해. 제작 기술을 가지고 있는 키퍼들은 아타만티움을 알 텐데. 왜 아직 딴딴이지?”
“그건... 아마도 어른의 사정이겠지.”
“어른의 사정?”
“김무진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은 거야. 독점 공급하고 있으니까.”
케이라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 빨아 당겨서 다 마시고는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제 다른 곳으로 가자. 아타만티움은 다 봤으니까.”
“그래.”
내가 보기에, 케이라는 지금 약간 지루한 상태다.
그녀라면 딴딴이를 보고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타만티움’이라는 걸 이미 봤을 줄이야.
하지만 다음 장소는 괜찮을 거다.
그녀가 싫어할 수 없는 장소니까.
“오늘 조금 더운데, 머리 묶을까?”
“어? 편한대로 해.”
날은 초여름.
에어컨을 틀기 직전인 날씨다.
긴 푸른 머리의 그녀는 더울 만도 했다.
“이런 거, 남자들이 좋아한다던데. 정민아 넌 어때?”
“응?”
케이라가 입에 머리끈을 살짝 물고는,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목 뒤로 들어 올렸다.
순간 드러나는 목선에, 나도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헉...”
그리고 나 말고, 남녀 할 것 없이 카페의 사람들 전부가 그렇게 숨을 들이켰다.
“어때?”
케이라가 머리를 묶고 살짝 흔든다.
휙휙.
묶은 머리가 좌우로 움직이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멈춰! 너, 앞으로 밖에서 절대로 머리 묶지 마.”
“...왜?”
“묶지 말라면 묶지 마. 그리고 빨리 선글라스, 마스크!”
“...?”
케이라는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도 머리를 풀고, 선글라스를 쓰고, 마스크를 했다.
카페의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이해한다.
나를 죽이고 싶겠지.
하지만 더 이상은 나도 못 참아.
케이라는 내 거야!
나만 볼 거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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