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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48화 (48/137)

〈 48화 〉 chapter 7­1. 서큐버스 김나리

* * *

48.

“된 거야? 성공이야?”

“아직이요. 조금 더 기다려 봐야 해요.”

나리는 두 개의 목소리를 들었다.

“기다리라는 말만 벌써 10분 째야. 5분 안에 결론이 나올 거라며.”

“제 예측이 항상 맞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도 두 사람 다 아직 살아 있으니까, 경과를 지켜보는 게 맞아요.”

둘 다 아는 목소리 같았다.

아직 나리의 정신이 몽롱해서 누군지는 몰랐다.

“...그럼 두 사람을 떼어놓기라도 하면 안 돼? 저... 보기가 힘든데?”

‘떼어놔? 누굴? 아, 이건 나연이 목소리다.’

이어서 약간 놀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도요?”

나리는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았다.

케이라였다.

나리는 케이라를 좋게 보고 있었다.

마법사도 마법사지만, 지금처럼 나연이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으니까.

“그, 그러면 안 돼? 두 사람도 부끄러울 거라고! 케이라야 그렇다 치지만, 나나 엘레나는 어쩔 건데?”

“아직 떼어놓을 수 없어요. 두 사람이 연결되려면 육체가 연결되어 있어야 해요.”

‘그런데 아까부터 누구를 떼어놔야 한다는 거지? 부끄럽다고?’

나리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 무언가가 있었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처음에는 뭔지 몰랐지만, 차츰 사람 얼굴인 걸 깨달았다.

‘...정민씨?’

정민이 자기 위에 누워 있었다.

나리는 나연의 부끄럽다는 말을 이해했다.

“그, 그...”

“보기가 힘드시면 고개를 돌리고 계셔도 돼요, 언니.”

“...몰라.”

그래도 나연이 저렇게 부끄러워할 일인가는 의문이었다.

‘그냥 누워 있는 것...’

이 아니었다.

나리는 무언가가 자기 하복부를 찌르고 있는 걸 그제야 느꼈다.

뜨겁고, 단단한 무언가였다.

‘아파...’

어디에선가 느껴본 아픔이었다.

나리는 방금 전 꿈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또 꿈이야?’

나리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이런 종류의 꿈을 꾼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요즘은 계속 비슷한 꿈만 꿨다.

이건 상대에게도 실례가 되는 일이다.

그의 동의여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꿈속에서 유린당하고 있는 거니까.

더 큰 실례는 상대에 대한 아무런 감정도 없이 꿈에 불러내고 있다는 거다.

그녀는 정민을 한 번도 남자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정민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사람도 남자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녀도 자신이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쩌란 말인가?

‘이제 진짜로 깨자.’

나리가 다시 두 손을 목으로 가져갔다.

늘 하듯이 스스로 목을 조르기 위해서였다.

“(잠깐만요! 저기!)”

나리는 평소보다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고 있는 힘을 다했다.

그래야 깨어날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녀를 막았다.

“언니! 뭐하는 거야! 미쳤어?”

나연이었다.

“...꿈 치고는 사실적이네. 괜찮아, 나연아. 이건 꿈이잖아?”

나리는 나연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나연의 힘은 나리보다 세서,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어느새 엘레나도 다가와서 다른 손을 잡고 있었다.

“...이거 꿈 아니야. 그러니까 정신 좀 차려.”

“...그럼 이 사람은 뭔데?”

아직도 나리의 하복부에는 아픔이 느껴졌다.

“응? 그게... 케이라, 일단 빨리 좀 떼어내 봐.”

“아직이에요. 정민이가 깨어나야 떼어낼 수 있어요. 안 그러면 정민이가 수장의 정신 세계에 갇히고 말아요.”

“그럼 빨리 좀 깨우라고!”

나리는 돌아가는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얼굴이 빨개진 나연과 약간 미소를 띠고 있는 듯한 케이라, 안도의 표정을 짓는 엘레나가 보였다.

그리고 어느새 눈을 뜨고 있는 정민까지.

정민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수장님, 괜찮으세요?”

그 목소리에, 나리는 이 모든 게 현실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기절했다.

“...언니? 언니!”

+++

“그래서, 이렇게 된 것입니까?”

“네, 수장님의 동의 없이 일을 진행한 건 너무나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도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나리는 자기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나연이, 정민, 케이라, 엘레나.

네 사람 다 무릎을 꿇고 있었다.

“크흠...”

나리가 헛기침을 하자, 네 사람 다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조금 귀여웠다.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닌데 말이다.

좀, 아니 많이 부끄러운 일이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따지고 보면 부끄러울 일도 아니었다.

의사에게 몸을 보여준다고 부끄러운 사람이 있던가?

“다들 그만 일어나시겠어요?”

“네? 아니, 그게...”

나리의 말이 있었지만, 다들 안절부절못할 뿐 일어나지 못했다.

가장 크게 떨고 있는 건 정민이었다.

“두 번 말하게 만들지 말고 빨리 일어나주시죠?”

“아, 네!”

나리는 네 사람이 자신에게 쩔쩔 매는 걸 보는 게 꽤 즐거웠다.

하지만 이쯤하기로 했다.

오히려 이쪽에서 감사할 일이니까.

나리가 허리를 숙였다.

“위험을 무릎쓰고 저를 구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생명력을 준 나연이도, 마법을 쓰느라 고생한 케이라도, 든든하게 옆을 지켜 준 엘레나도, 그리고 목숨을 걸고 정신세계로 들어간 정민씨까지 모두 감사합니다. 목숨을 빚졌습니다.”

정중한 사과에 다들 제각기 반응했다.

“아니, 언니, 언니가 이럴 필요는...”

나연은 나리를 일으키려고 했다.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저는 한 일이 없는 걸요.)”

케이라와 엘레나는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

“저희가 오히려 목숨을 빚졌습니다. 수장님이 없었으면 서큐버스에게 다 죽었을 거예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정민은 마주 허리를 숙였다.

‘다들 좋은 사람이야.’

나리는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서로를 이용하려고 하기보다 서로를 배려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니, 요즘 시대에 흔하지 않았다.

“그럼 서로 목숨을 구해준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내죠. 던전 뒤처리는 어떻게 됐습니까?”

“아, 그건 가람 오빠가 처리하고 있어.”

가람이 처리하고 있다면 더 볼 것도 업었다.

“알겠어. 그럼 다음 문제를 상의해 봅시다.”

“다음 문제? 언니, 어디 아파?”

눈을 동그랗게 뜨는 나연에게 나리는 안심하라는 뜻이 미소를 보여 줬다.

“아니, 그건 아니야. 대신 변화가 생겼어. 케이라나 엘레나가 도움을 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거죠?”

“잠재력이 대폭 올랐습니다.”

“큰일을 겪으셨으니 잠재력이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2 정도 오르는 것도 저희 세계에서는 간혹 있는 일입니다.”

케이라가 나리의 질문에 답했다.

잠재력은 1이 오르기도 힘들다.

2가 오르는 건 대폭이라고 할 만했다.

하지만 그 정도라면, 나리도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확하게 26이 올랐습니다. 2배가 됐어요.”

“...뭐?”

나연의 두 눈이 조금 전보다 두 배는 커졌다.

잠재력이 올랐다는 말에 놀라고, 잠재력을 정확하게 밝힌 것에 한 번 더 놀란 것이다.

상태창의 숫자는 그 어느 것이라도 비밀을 지켜야할 개인 정보니까.

“그, 그 이야기를 저희에게 하셔도...”

정민도 일단은 그 부분에 당황했다.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을 믿습니다.”

정작 나리는 상관없었다.

이 사람들을 믿지 못하면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배신이 난무하는 세상에 날카로운 검과 같은 자세로 크루의 수장을 하고 있지만, 그녀에게도 편히 있을 수 있는 ‘홈’은 필요했다.

나연은 이전에도 그 범주 안에 있었고, 이번에 정민과 케이라, 엘레나가 들어온 것이다.

“알겠습니다. 신뢰에 꼭 보답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미 충분한 걸요.”

나리는 자신의 입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걸로 새삼 놀라진 않았다.

정민은 그럴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정신세계에 들어간다는 건 죽음을 각오한 일이라고 하니까.

이길 가능성이 높았다지만, 지면 다 같이 죽는 일이었다고 했다.

게다가 원하지도 않는데, 그녀와 섹스를 해야만 했다.

정민은 강제로 한 것 같아 미안해했지만, 나리는 오히려 강제로 하게 만든 것 같아서 미안했다.

마지막으로 정민은 이미 기대 이상으로 보답을 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정민에게 지분 10%를 줬을 때 이 정도로 돌아올지는 몰랐다.

그래서 조금 기대가 되기도 했다.

이번에는 얼마로 돌아올지.

“....그 정도로 오르셨으면...”

상황이 약간 진정된 후, 생각에 잠겨 있던 케이라가 입을 열었다.

“서큐버스와 융합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괜찮은 거야?”

나리보다 나연이 먼저 놀라서 답했다.

나리도 상당히 놀랐다.

이상 현상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서큐버스와 융합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상황을 지켜봐야 알겠지만, 제 생각에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혹시 잠재력 말고 다른 건 바뀐 게 없나요? 떠오르는 마법이나 기술 같은 것은요?”

“다른 건 없습니다. 마법이나 기술 같은 것도 모르겠습니다.”

나리의 상태창에 다른 변화는 없었다.

잠재력만으로 끝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변화긴 했지만.

“아직 융합 과정일 수 있으니까, 혹시 다른 게 떠오른다면 바로 제게 알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건, 좋은 일인가요?”

“네, 좋은 일입니다.”

케이라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저런 전문가가 있으니까, 나리가 느끼던 조금의 불안감도 다 날아갔다.

그래서 그녀는 이제 기쁨만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럼 언니는 이제... S급이야?”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잠재력을 채우는데 시간은 걸릴 거고, 다 채울 수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희망 자체가 없던 예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와! 대박! 축하해, 언니!”

“축하드립니다, 수장님.”

나리는 축하에 미소로 답했다.

‘드디어 나도 크루에 도움이 될 수 있어!’

겨우 C급에 턱걸이 했던 나리가 S급 잠재력을 지닌 키퍼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제 나리가 항상 원하던, 앞에 서는 수장이 될 수 있었다.

+++

그날 밤.

나리는 여러 가지 일로 피곤해 일찍 잠에 들었다.

3일 동안 잠들어 있었지만, 그건 잠이라고 부르기 힘들었으니까.

나리는 꿈을 꾸었다.

이상했다.

평소에는 꿈을 잘 안 꾸니까.

그리고 또 꿈에 정민이 나왔으니까.

“하, 또...”

“...수장님!?”

이번에도 정민은 알몸이었다.

나리도 마찬가지였고.

“이번에는 꿈 맞죠?”

“네? 그, 꿈... 이겠죠?”

정민은 가랑이를 가리고 이야기했다.

목소리가 느끼하지 않은 것이, 동굴 속에서 꿨던 꿈이랑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도 꿈이야. 내가 정민씨랑 이러고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데 왜 자꾸 정민씨지? 내가 설마...’

나리는 정민과 달리 가슴과 가랑이를 가리지 않았다.

이미 네 번째 같은 일의 반복이다.

이제 정민에게 알몸을 보여주는 건 부끄럽지도 않았다.

그녀는 당당하게 정민을 위아래로 훑었다.

‘얼굴 멀쩡하고, 어깨 넓고, 가슴도 탄탄해. 복근도 잘 단련돼 있고, 허벅지도 굵네...’

정민은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몸을 하고 있었다.

나리도 거기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성욕이 없는 그녀는 그다음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도 없고, 키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역시... 나는 뭔가 좀 달라.’

일명 무성욕자.

나리도 자신이 어떤 상태인진 알고 있었다.

불만은 없었다.

불만이 있었으면 애초에 무성욕자일리 없다.

그녀는 현재 자신에 만족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지금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계곡에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어?’

나리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빨개졌다.

“...수장님?”

“오... 오지 마.”

“수장님? 괜찮으세요?”

달콤한 목소리에 갑자기 그녀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분명 아무런 생각도 없는데, 그녀의 몸이 제멋대로 반응했다.

“멈추라고!”

“네, 네!”

다가오던 정민이 나리의 말대로 멈췄다.

그러자 오히려 나리가 정민이에게 다가갔다.

이것도 그녀의 의지는 아니었다.

“잠깐, 잠깐...”

나리는 정민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바로 앞에 정민이 가랑이를 가리고 있는 손이 보였다.

그녀가 정민의 손을 옆으로 치웠다.

“...수장님?”

크고 우람한 정민의 분신이 보였다.

“눈 감아! 눈 감으라고!”

꿈인데도 그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마음대로 되는 건 목소리 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 목소리도 못 쓸 예정인 듯했다.

스윽.

마침내 그녀의 손이 정민의 분신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가 입을 분신으로 가져갔다.

“하아, 안 돼, 하아, 안 된다고!”

분신이 거의 입에 닿을락 말락 할 때쯤, 나리는 꿈에서 깼다.

“안 돼!”

“뭐가 안 되죠?”

“...네?”

나리의 눈앞에는 케이라와 엘레나가 있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있는 정민도.

“...여긴?”

“엘레나 방이에요.”

“제가 왜 여기에 있죠? 그리고 왜 정민씨는 여기에서 자고 있는 거죠?”

그녀는 본능적으로 엘레나 방에 있는 정민이 이상함을 깨달았다.

케이라와 사귀고 있으니까 케이라 방에 있는 건 당연하지만, 엘레나 방은 의아했다.

성욕이 없어도 여자의 감은 잘 발동했다.

“지금 그게 중요해요? 서큐버스 김나리양?”

“...네?”

나리가 영문을 몰라 되묻자, 케이라가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체념이 느껴지는 한숨이었다.

“수장은 지금 정민의 꿈속에 들어갔다 나왔어요. 아시겠어요?”

“...뭐라고요?”

나리는 입을 벌린 채로 얼어 버렸다.

갑자기 얻은 힘에는 부작용이 따르는 법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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