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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41화 (41/137)

〈 41화 〉 chapter 7. 서큐버스 킴리나

* * *

41.

“집무실 청소를 할 때는 항상 보안에 유의해 주세요.”

“네.”

GGC 크루 하우스 관리직원, 상현이 대답했다.

관리직원들의 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재훈은 매일 아침 같은 말을 반복했다.

다음 말도 상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거주 구역은 숨소리 하나도 내지 않도록 주의 하세요. 방에는 함부로 들어가지 마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상현도 매일 아침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물론 건성으로 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청소 용역으로 시작했다가 정직원이 됐다.

GGC가 직원들을 얼마나 잘 대우해주는 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런 만큼 최선을 다해 청소를 할 생각이었다.

보안을 지키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서 뼈를 묻자. 재훈 형님처럼 돼야지.’

하지만 그런 상현도 자기 정신 안에 서큐버스가 숨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젯밤 꿈에 악마가 나와서 나이에도 맞지 않은 몽정을 하긴 했지만, 누가 그걸 악마와 연결시키겠는가.

‘부하들 교육을 제법 잘 해 놨네.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킴리나는 상현의 눈과 귀로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마나로 살짝 살짝 주변을 찔러봤다.

우웅.

마나를 일으키자마자 곳곳에서 반응이 일어났다.

그녀는 급히 마나를 다시 회수했다.

‘여기도 알람 마법 투성이군.’

엘리베이터라고 했나?

수송수단 안도 각종 알람마법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이쯤 되면 건물 안에서 마법을 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인간 밖으로 나가면 바로 걸리겠어.’

알람 마법은 일정 이상의 마나에 반응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럼 일반인보다 보유 마나가 많은 킴리나의 육체는 존재만으로 알람 마법에 걸릴 것이다.

지금은 일종의 이차원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신 속에 숨어 있어서 걸리지 않은 것일 뿐.

‘왜 이렇게 빡빡하게 굴지? 마법 말고도 감시 장치가 이렇게나 많은데.’

킴리나는 곳곳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상현의 기억에 따르면, CCTV라고 했다.

이 세계의 기술력은 기이할 정도로 높았다.

그녀가 거쳐 온 십수 개의 세계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 덕에 정보 전달 속도가 미치도록 빨랐다.

그래서 그녀가 힘을 회복하는 게 매우 더뎠다.

보통 같으면 죽을 때까지 정기를 흡수했겠지만, 이곳에서는 적당한 수준의 정기만 흡수할 수밖에 없었다.

무작정 사람을 죽이고 다니면, 금방 자신의 존재가 널리 알려질 위험이 있었으니까.

힘을 완전히 회복하기 전에 그런 일이 발생하면, 십수 개의 세계를 지나고도 살아남은 악마라고 하더라도 살아남기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베스트는 힘을 다 회복할 때까지 숨을 죽이며 가만히 있는 것이다.

힘만 다 회복되면, 기술력에 비해 개인의 무력과 정신력이 떨어지는 이 세계에서 그녀를 막을 자는 없다.

그러나 그러려면 두 달은 더 아무것도 안하고 찔끔찔끔 정기를 흡수해야만 했다.

서큐버스가 정기를 앞에 두고 참는다?

고양이 앞에 생선을 던져 주고 참으라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킴리나는 한 달 동안 겨우겨우 참았지만, 이젠 더 참을 생각이 없었다.

이정민의 일행을 죽일 정도의 힘은 생겼으니까.

거기에 그들을 죽이면서 크게 한 탕 한다면, 자신의 힘을 어느 수준까지는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변수는 내 예상보다 놈들의 힘이 셀 경우인데...’

킴리나가 소환된 장소에서 땅의 기억을 통해 본 힘 정도라면 충분히 상대할 만했다.

“제가 거실 청소를 하겠습니다. 상현씨는 빈 방을 청소해 주시고 나오세요. 빈 방 어딘지는 알죠?”

“물론이죠.”

재훈과 상현이 거주 구역 청소를 시작했다.

거주 구역의 방은 총 10개.

이 중에 빈 방은 5개였다.

먼지만 터는 수준의 간단한 청소지만,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에 마치려면 빠르게 움직여야만 했다.

상현이 나란히 붙어 있는 정민과 케이라, 엘레나의 방을 지나쳐 빈방으로 향했다.

킴리나는 상현이 그 라인에 들어서자마자 느꼈다.

‘오호, 매력적인 곳이야.’

주변에 성욕과 정기가 가득했다.

이 성욕을 흡수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단 번에 힘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지? 대체 누구야?’

킴리나는 방문 너머에서 폭발하고 있는 성욕을 통해 그 정보를 알아냈다.

성욕은 그녀가 권능으로 삼고 있는 에너지로, 그녀는 성욕을 가지고 많은 걸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마나와는 조금 궤를 달리하기에, 일반적인 마법으로는 밝혀낼 수 없었다.

이 층에는 일반적인 알람 마법 외에 다른 걸 감지하는 마법도 느껴졌지만, 이런 성욕의 폭풍 속에서 킴리나의 움직임을 간파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응, 항, 하아앗.]

[엘레나, 엘레나, 엘레나!]

성욕은 방 안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땅의 기억에서 본 두 사람이 맨몸으로 뒹굴며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이미 몇 시간이나 진행된 관계였지만, 둘의 성욕은 식을 줄을 몰랐다.

남자도, 여자도 억지로 하는 게 아니었다.

킴리나가 보기엔 일반적인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이 크루 소속인 줄은 알았는데, 여기 살고 있었나?’

킴리나는 그녀의 타깃이 이곳에 살고 있는 줄은 몰랐다.

계획을 수정해야만 했다.

원래는 이곳에서 타깃의 집을 찾아낸 후에 타겟을 먼저 처리하려고 했는데, 이 건물에 살고 있다면 무작정 처리할 수가 없었다.

건물을 도배하고 있는 마법도 마법이지만, 같이 몸을 섞고 있는 존재 때문이었다.

[항, 저 이상해져요! 더 하며 이상해질... 하으읏!]

성욕만큼이나 금발 여자의 힘은 컸다.

킴리나가 본래의 힘을 회복한다고 해도 정면으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정면으로 힘들다는 것뿐이다.

킴리나는 정면 힘싸움보다는 정신에 파고들어 다른 싸움을 즐겨하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신성의 흔적은 있는데, 신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자도 신성이 없어... 그때는 있었는데?’

이정민이라고 했던가.

남자에게서도 신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여자와 마찬가지로 신성의 흔적은 느껴졌지만, 중요한 신성은 없었다.

땅의 기억에서 본 바와는 달랐다.

‘흐음...’

킴리나는 일단 조심하기로 하고, 정보수집을 이어 나갔다.

이정민과 금발 여자가 사랑을 나누고 있는 옆방에서도 푸른 머리 여자가 혼자서 위로를 하고 있었다.

[정민아, 거기, 거기... 흐으읏.]

이 여자의 성욕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금발 여자만큼 힘이 강하진 않았다.

뛰어난 마법사였지만 그것 뿐.

푸른 머리 혼자였다면, 킴리나는 지금이라도 이 건물을 뒤엎었을 것이다.

‘이 년이 모든 마법을 건 건가?’

혼자 위로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방에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마법을 걸고 유지하고 있는 정신력을 칭찬해줄 만했다.

그래봐야 성욕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는 건 무리였지만.

이정민과 금발 여자가 사랑을 나누고 있는 방도 금발 여자가 힘으로 소리를 막고 있었다.

그래서 상현은 10층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는 빈 방 두 개의 정리를 마치고 반대편 라인으로 넘어갔다.

이 라인에는 빈 방이 3 개 있었다.

킴리나는 또 꿈틀 거리는 성욕을 느꼈다.

[아아... 또 하고 있겠지? 케이라는 또 내가 모르는 소리를 내고 있겠지?]

이건 말이 아니라 성욕에 깃들어 있는 생각이었다.

단발머리의 여자가 잠에 못 들고 있었다.

스윽스윽.

여자는 가랑이가 간지러운지 허벅지를 계속 비볐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데 허전함이 채워질 리 없다.

[...나만 뒤처지고 있어...]

“젠장! 빌어먹을!”

이번엔 실제 소리였다.

문 앞을 지나던 상현이 깜짝 놀라 멈췄다.

잠시 뒤, 위이잉하는 소리와 함께 게임 소리가 문 밖으로 들려왔다.

상현은 그제야 조심스레 다음 방으로 넘어가며 청소를 시작했다.

상현이 크루 내에 떠도는 소문을 떠올렸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사실인 듯했다.

그래서 그는 그가 들은 소리, 새벽 4시에 욕을 하다 잠에서 깬 나연의 이야기를 숨기기로 했다.

그게 사생활 공간을 청소하는 사람의 예의니까.

‘그런 충격인가?’

상현의 생각을 읽은 킴리나는 의아했다.

그녀가 느끼기에는 성욕을 해결하지 못해 일어난 거로만 보였다.

독수공방하는 여자의 성욕은 때론 심각한 문제이기에 저런 장면을 그녀는 흔히 보았다.

그래서 아쉬웠다.

누군가 자고 있었으면 꿈을 통해 그의 정신으로 빠르게 옮겨갈 수 있었을 테니까.

상현의 몸에서 나오는 순간 들키겠지만, 지금 10층의 상황을 보니 들켜도 헤프닝으로 무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들 자기 성욕에 정신이 없으니.

‘뭐, 괜찮아. 오늘은 정찰이 목적이니까. 다음 기회가 있겠지.’

그런데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쌔근쌔근.

집무실에서 한 사람이 의자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아직도 오피스 룩을 입고 있는 나리였다.

“재훈씨, 저기...”

상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재훈이 불을 키려던 손을 멈췄다.

“오늘은 제가 깨울 차례인가요?”

“아쉽지만요.”

상현과 재훈은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나리를 깨우라는 지시를 받았다.

두 사람은 처음엔 긴장 때문에 깨우는 걸 로테이션으로 했다.

나리에게서 어떤 불호령을 들을지 몰라서.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깨우는 건 포상이 됐다.

자는 와중에도 망가지지 않는 미모를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포상.

아기 같은 숨소리를 가까운 곳에서 들을 수 있는 포상.

혹시 업무량에 눌려 잠꼬대라도 하는 걸 듣는 날에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지는 포상.

아직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소리로 깨지 않을 때는 어깨를 터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포상.

재훈이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나리에게 다가갔다.

‘어떡하지?’

킴리나가 원한다면 지금 밖으로 나와서 나리의 몸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면 상현이 바로 잠에 빠지고 몽정을 하겠지만, 그거야 그녀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문제는 나리의 성욕이 극히 작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거의 없는 수준에 가까웠다.

가끔 이런 사람이 있다.

일명 무성욕자.

일상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고, 몸에 이상이 없는 한 자손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관계에서 기쁨을 얻지는 못한다.

성욕이 없으니까.

무성욕자는 정기를 흡수하고 성욕을 가지고 노는 서큐버스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무성욕자의 정신 속에서 정기를 흡수하기가 힘들다.

서큐버스는 성욕을 지렛대 삼아서 정기를 끌어내는데, 성욕이 없으니 일단 그게 안 된다.

정기를 흡수하지 못하니 그 사람의 정신에서 나오는 것도 쉽지 않다.

들어갈 때는 서큐버스의 성욕을 사용해서 들어갈 수 있지만, 나올 때는 들어가 있는 사람의 성욕을 이용해서 나와야만 했다.

킴리나 정도 되는 서큐버스라면 저 정도 무성욕자의 성욕으로도 나올 수 있지만, 보통 사람의 정신에서 빠져 나오는 것처럼 순식간에 나올 수는 없었다.

그러니 나리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면, 정기 흡수는 매우 더디며, 원할 때 나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리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면 정민의 바로 옆에서 기회를 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원할 때 나오지 못해서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 다음 기회를 노리자고.’

킴리나가 그렇게 고민을 마무리지을 때쯤, 재훈은 나리를 깨우고 있었다.

“저, 수장님? 5시입니다.”

“으응? 좀 더 잘래...”

몸을 살짝 비틀대며 칭얼대는 나리를 본 재훈은 급히 입을 막았다.

귀여워서 절로 소리가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호흡을 겨우 진정시키고는 한 번 더 말했다.

“저, 수장님? 새벽 5시입니다.”

“...”

아쉽게도 이번엔 나리가 눈을 떴다.

그녀의 눈은 방금 뜬 사람답지 않게 매우 날카로웠다.

그녀는 그 날카로운 눈으로 재훈을 뚫을 기세로 쳐다봤다.

재훈은 그 눈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늘 수고하십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할 일인걸요.”

“모레부터는 게이트에 들어갈 테니, 당분간 쉬실 수 있을 거예요.”

“네? 아, 알겠습니다.”

나리는 쉰다는 이야기에도 되려 어두운 느낌이 드는 재훈의 목소리가 신기했지만, 깊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럼.”

나리가 집무실을 나가자, 재훈과 상현이 한숨을 푹 쉬었다.

“...하루의 즐거움이 사라졌네요.”

“그래도 재훈씨는 오늘... 아아, 제가 깨워드렸어야 했는데요.”

“다음에 기회가 또 올 거예요. 그럼 청소합시다.”

“네.”

두 사람이 집무실을 치우는 동안, 킴리나는 어쩌면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게이트? 이정민이라는 인간이 함께 들어가기만 한다면 크게 한탕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게이트 내에서는 각종 감시 장치와 마법으로 도배된 이 건물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 안에서 이정민의 정기만 제대로 흡수한다면, 금발 여자를 처리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일단 게이트에 들어가는 다른 키퍼를 찾아야겠어.’

상현의 일과는 아직도 많이 남았다.

그 일과 중에 다른 키퍼들과 마주치는 일도 잦았다.

그녀는 그때를 노리기로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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