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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39화 (39/137)

〈 39화 〉 chapter 7. 서큐버스 킴리나

* * *

39.

소연이 품에서 바늘 세 개를 꺼냈다.

바늘은 하나하나가 팔뚝 정도 길이였고, 굉장히 뾰족했다.

바늘은 소연의 손 위에서 둥둥 떠올랐다.

염력 덕이었다.

“설마, 미스릴로 만든 거야?”

“맞아요. 가람 삼촌. 거금을 들였죠.”

가람의 표정이 굳었다.

‘씨’는 너무 정감 없다고 소연이 선택한 단어가 ‘삼촌’이다.

나이 차가 자그마치 15살이니까, 어색한 단어는 아니다.

듣는 입장에서야 빡치겠지만.

“...아니, 삼촌은 그만 두라니까. 차라리 선배라고 해죠. 그게 낫겠다.”

“치, 알겠어요. 삼촌이 좋았는데... 그럼 다르게 부를게요. 가.람.오.빠.”

가람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그래, 그거라고.”

나도 ‘오빠’라고 불러주지...

속으로 그렇게 투정을 부려봤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욕만 먹겠지.

“그럼 거금을 들인 미스릴 바늘의 위력을 한 번 보세요.”

소연이 손을 앞으로 내밀자, 바늘이 앞으로 쏘아졌다.

슈우욱.

목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고블린 세 마리.

활 하나, 단검 둘.

내가 아까 잡은 것과 같은 구성이다.

고블린의 반응은 내 ‘미니 파이어볼’ 때보다 더 늦었다.

“키잉?”

고블린이 무언가 날아오는 걸 알고 고개를 돌렸을 때, 바늘은 이미 고블린의 목을 뚫고 있었다.

픽, 픽, 픽.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 번 목을 관통한 바늘은 복부도 관통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눈.

“키에엑!”

고블린은 비명을 지르며 발광하다가 결국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하아... 후후후, 어때요!”

소연이 다시 돌아온 바늘을 갈무리하며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짝짝짝.

가람이 박수로 소연을 칭찬했다.

평가도 후했다.

“훌륭해. F급 키퍼가 이 정도 하는 건 처음 보는 건 같아.”

“그렇죠? 제가 진짜 연습 많이 했다니까요.”

확실히 그런 티가 났다.

바늘 세 개를 저 정도 속도로 움직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안 본 지가 두 달 조금 안 되는데, 그 사이 소연의 실력은 몰라볼 정도로 급성장했다.

나도 시간 쪼개가면서 룬어를 외웠는데, 소연이의 열정도 대단했다.

가람이 계속 소연이의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미스릴로 바늘을 만든 건 염력이 더 잘 통해서겠지?”

“네! 더 게이트에서 봤는데 그게 좋다더라고요. 그래서 큰 맘 먹고 질렀죠.”

“잘했어. 그런데 바늘 하나만 쓰는 게 더 빠르고 강하지 않을까?”

“아, 그게 생각처럼 빨라지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개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훈련했어요.”

대화 속에서 소연이가 많이 고민한 게 느껴진다.

하지만 제대로 된 스승 없이 한 노력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그 방법도 나쁘지는 않아. 하지만 고블린 두개골을 못 깰 것 같아 목을 빗겨치고, 복부를 관통하는 방식으로는 상위 몬스터를 이길 수 없어.”

“...다 알고 계시는 구나.”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가람과 소연을 동시에 부른 거다.

소연이가 더 빠르고, 좋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러니 며칠간은 바늘 하나를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훈련해보자. 적어도 고블린 두개골은 깨 버릴 수 있도록. 고블린 샤먼이면 더 좋고.”

“네, 오빠!”

소연이가 즐거워하는 게 느껴진다.

B급 키퍼가 성장 방향을 잡아주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인 줄 아는 거다.

저 정도면 금방금방 C급 키퍼가 되지 않을까.

소연이 말로는 자기 잠재력이 B급 이상이라니, C급 까지는 금방 클 것 같다.

나도 더 분발해야지.

“그럼 이쯤에서 떨어질까요?”

“네? 벌써요?”

내 말에 소연이 약간 울상이 됐다.

“오늘 하루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뭔가 성과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열심히 하고 있다가 베이스 캠프에서 보자고.”

“피이... 알겠어요, 선배.”

나와 소연.

훈련은 두 팀으로 나눠서 하기로 했다.

당연히 소연은 가람과 하고, 나는 나의 사랑스러운 두 이세계인과 한다.

소연은 끝까지 내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아, 이것도 다 내가 잘난 탓이다.

콱.

“아악!”

케이라가 내 발을 밟았다.

“...왜 그래?”

“이상한 생각했지?”

“아, 아닌데?”

뭐야, 어떻게 안 거야?

무섭다, 여자의 직감이란.

와락.

이번엔 엘레나다.

그녀가 내 품 속으로 들어왔다.

“잠깐만 이러고 있어도 돼요?”

“네? 아아, 그래요.”

소연이랑 있는 동안 티 안 낸다고 고생했으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런데 이거... 훈련은 잘 할 수 있으려나?

+++

훈련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케이라가 무섭도록 날 몰아붙였으니까.

“더 빨리. 그렇게 느려서는 전투 중에 못 써.”

“0.5초 안에 룬어를 모두 완성해야 해. 그것도 많이 봐 준 거야.”

“다음 마법도 준비해야지. 적이 한 명 뿐이야? 정신 안 차릴래?”

호랑이 선생님이 따로 없었다.

계속된 마력 사용으로 또 머리가 지끈지끈 거렸다.

엘레나의 극진한 간호가 없었다면, 이번에도 탈주할 뻔했다.

여기서 엘레나의 극진한 간호란, 가슴에 얼굴을 묻게 해주는 거다.

당연히 갑옷은 없는 채로.

“(...좋아요?)”

“네, 엘레나. 정말, 천국에 온 것 같아요.”

엘레나의 가슴은 현재 내 주변 여자들 중에 제일 크다.

모양도 제일 예쁘다.

그 가슴에 얼굴을 묻고 향긋한 살내음을 흐읍하고 들이마시면...

영혼이 치유되는 느낌이다.

수많은 기사에서 여자 가슴을 보면 수명이 늘어난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진된 마력을 회복하는 건 시간밖에 없다는데, 내가 보기에 이렇게 있으면 훨씬 회복이 빠르다.

기분 탓이 아니라, 진짜다.

띠링.

그러나 평화를 방해하는 알람이 울리고, 호랑이 선생님의 호통이 떨어졌다.

“자, 이제 휴식 끝. 다시 갈 거야. 이번엔 매직 미사일이야.”

“...넵!”

가슴, 가슴, 가슴...

가슴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나는 벌떡 일어났다.

엘레나의 극진한 간호를 받을 땐 케이라에게 거스르지 않는다.

그러지 않으면 성욕 몬스터인 그녀가 성욕을 폭발시켜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훈련이고 뭐고 없다.

펑, 펑, 펑.

내가 쏘아낸 매직 미사일 3개가 나무 세 개를 정확하게 맞췄다.

“잘 했어.”

내가 생각해도 잘했다.

3일 전과 비교하면, 마법 완성 속도부터 매직 미사일의 빠르기, 정확성, 위력까지 전부 다 늘었다.

이게 집중 훈련의 효과인가.

서울에서도 엘레나가 바로 옆에 붙어서 집중 훈련을 했지만, 실전을 곁들이니 실력이 쭉쭉 느는 느낌이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지?”

“응, 오늘 돌아갈 거야.”

“(아쉽네요. 게이트 안은 자연이 풍성해서 좋은데.)”

“정말 아쉬워요? 게이트 밖으로 나가야 할 수 있는데?”

“(네? 뭐가? 아... 놀리지 마세요.)”

엘레나의 얼굴이 빨개졌다.

저러니 어찌 안 놀릴 수 있겠는가.

나도 모르게 웃고 있는데, 서늘한 목소리가 내 귀에 닿는다.

“...집중 좀 하지?”

“...넵!”

실수다.

이 하렘을 유지하려면 내가 진짜 잘 해야 하는데 말이다.

케이라가 저러니까 엘레나도 굳어 버린다.

“가람이 아침에 마지막으로 샤먼을 잡자고 하더라고.”

“그래? 그것도 괜찮겠네. 너무 같은 것만 하면 질리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이제 돌아가자. 오늘 훈련은 이걸로 끝이야.”

케이라의 목소리는 여전히 날이 서 있다.

이건 어떻게든 풀어줘야 한다.

“벌써?”

“응. 좋아?”

“아니, 아쉬워서. 케이라가 정말 잘 가르쳐 줘서 엄청 잘 배웠는데.”

“...티 나니까 그만 둬.”

그렇지.

티가 나겠지.

그런데 케이라도 티가 난다.

목소리가 조금 풀렸다.

“응!”

엘레나처럼 반응이 크진 않지만, 케이라도 귀엽다.

아아, 이래서 내가 둘 다 좋아하는 거라니까.

+++

우리는 고블린 부락으로 향했다.

가면서 만나는 고블린들은 대부분 나와 소연이 처리했다.

슉슉슉.

소연의 바늘이 바람을 갈랐다.

이제 눈에 잘 안 보일 정도로 빨라졌다.

고블린 두개골 정도는 가볍게 깨는 건 물론이다.

고작 3일이었지만, 성과가 있었다.

푹, 푹, 푹.

나도 매직 미사일을 자유자재로 날릴 수 있게 됐다.

침착하고, 정확하게.

부락에 도착한 후에는 케이라가 제일 먼저 나서서 마법을 썼다.

“고블린은 102마리. 주변에 별다른 건 없어요. 하지만 방금 마법으로 샤먼이 저희 위치를 알았을 거예요.”

케이라의 마법은 항상 빨랐다.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마법에 조금 익숙해지고 난 후에는 느낌이 왔다.

저게 친화 스탯 ‘9’의 위력이다.

친화 스탯은 마나를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도와준다.

“(제가 앞에 설게요.)”

엘레나가 뒷산 마실 나가는 듯이 걸어 나갔다.

고블린이 세워놓은 진지 정면으로.

“키익!”

“키익키익!”

고블린들이 금방 엘레나를 발견하고는 방책 위로 모여 들었다.

조잡한 활과 화살이 그녀를 노렸다.

그녀는 멈추지 않았고, 고블린도 지체하지 않았다.

슈슈슈슈웅.

수십 발의 화살이 날아왔다.

조잡한 화살이래도 맞으면 아픈 건 같았다.

하지만 맞지 않는다면 어떨까.

우웅.

엘레나의 방패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와 그녀를 감쌌다.

투두두둑.

화살은 방패와 푸른 빛에 막혀서 땅으로 떨어졌다.

당연히 엘레나는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그녀는 이전처럼 뚜벅뚜벅 걸어갔다.

“키킥!”

고블린은 화살을 쏘고 또 쐈지만, 결과는 같았다.

엘레나는 아무런 피해도 없이 방책 앞에 도달했다.

스르릉.

드디어 엘레나가 검을 꺼냈다.

트라우 팔가.

루의 열세 번째 검.

그녀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화살을 방패로 막으며, 검을 약간 눕혀서 가로로 그었다.

그르르렁.

어설픈 방책이지만, 통나무를 통째로 박아 만든 거였다.

정면으로 공격한다면, 표면만 헤집다가 끝날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엘레나의 검은 단 한 통나무들을 베어내고는 방책 자체를 안쪽으로 미끄러지게 만들었다.

쿵.

미끄러지던 방책은 그대로 안쪽으로 넘어졌다.

이제 엘레나 앞에 있는 건 그녀의 무릎 정도밖에 남지 않은 방책뿐이었다.

“키이익!”

화난 고블린 수십 마리가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방패와 검으로 공격을 막고, 튕겨냈다.

따로 공격을 하진 않았지만, 그것만으로 고블린은 하나씩 죽어갔다.

놀라운 건, 그녀가 처음 그 자리에서 단 한 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전혀 도움이 필요 없네.”

“그러게요. 역시 S급.”

“그래도 나는 좀 나갔다 올게. 좀이 쑤셔서.”

가람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의 검도 엘레나 못지 않게 빠르고 정확하며 아름다웠다.

그가 지나가는 길 위에는 살아 있는 고블린은 없었다.

100마리의 고블린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지막엔 케이라의 마법이 알려준 것처럼 고블린 샤먼이 등장했다.

“키르륵, 키륵!”

이 샤먼은 쇠약 주문을 주는 놈이었다.

근력과 집중력을 떨어트리는데, 내가 걸리면 마법 지속 시간동안 아예 못 움직일 정도가 된다.

그러나 루의 열세 번째 검에게 허접한 마법이 통할 리가 없다.

엘레나는 늘 그렇듯, 굳건하게 서 있었다.

“키륵키륵!”

샤먼이 엘레나를 가리키며 놀라는 사이에, 샤먼의 관자놀이를 향해 미스릴 바늘이 빠르게 날아갔다.

바늘은 날아가던 속도 그대로 관자놀이를 뚫고, 반대쪽 관자놀이로 튀어 나왔다.

피시시시시.

샤먼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소연이 그 모습에 환호성을 질렀다.

“성공했어요! 고블린 샤먼의 두개골을 관통했다고요!”

이건 그녀의 목표였다.

이번 게이트 원정 동안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

아직 D급도 못된 키퍼의 작은 발걸음이지만, 저런 작은 목표 달성들이 모여 그녀를 크고 강한 키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축하해. 이제 실적만 더 쌓으면 금방 D급이 될 거야.”

가람이 말했다.

소연이 D급 능력치를 가지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전에도 얼마든지 D급 키퍼가 될 수 있다.

능력치는 어디까지나 기준점이다.

D급 키퍼는 D급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고, D급으로 분류된 게이트에서 적절히 생존할 수 있으면 될 수 있다.

가람은 이제 소연이 D급 키퍼의 실력이라고 평가해준 것이다.

“그럼, 그 실적을 위해서 마정석을 찾아보자고.”

100마리의 고블린을 뒤져야 하다니, 저로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가격을 무시하기 뭐하니까 찾으려고 나서는데, 케이라가 나를 제지했다.

“마법.”

“어? 이게 마법으로 된다고?”

그녀가 대답대신 마법을 썼다.

눈에 보이는 이펙트는 없었지만, 그녀는 몇몇 고블린을 가리켰다.

그 고블린들에게선 따끈따끈한 마정석이 나왔다.

“이건 혁명이네.”

가람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케이라 말로는 살아 있는 몬스터에게도 쓸 수 있단다.

그럼 정말 혁명이었다.

이번에 발견한 마정석이 총 7개.

100마리를 죽이는 것 대신 7마리만 죽일 수 있다면 그건 확실히 노동 혁명이었다.

돈 버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케이라만 게이트에 데리고 가면 된다.

케이라 뿐만 아니다.

엘레나도 대충은 알 수 있다고 했으니, 엘레나만 게이트에 데려가면 알아서 마정석을 파밍해 올 거다.

이게 바로 손 안대고 돈을 버는 방법이랄까.

“(이것도 발견했어요.)”

엘레나가 반지를 가져왔다.

고블린 샤먼이 끼고 있던 반지라고 한다.

“(아티팩트입니다.)”

엘레나가 반지를 끼자, 반지가 엘레나 손에 맞게 줄어들었다.

“와...”

내가 처음 발견하는 아티팩트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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