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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38화 (38/137)

〈 38화 〉 chapter 7. 서큐버스 킴리나

* * *

38.

“흠흠, 아까 한 말은 잊지 않았죠?”

“네.”

내 물음에 엘레나가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긴장할 필요까진 없는데, 저러다가 역효과 날 것 같아 걱정이다.

오늘은 케이라, 엘레나, 가람, 그리고 소연과 함께 게이트에 들어가는 날이다.

일행에게는 나와 엘레나의 관계를 소연에게 숨겨달라고 했다.

나와 엘레나는 그저 소환사와 이계인일 뿐으로, 사무실 동료로 보이게 행동하는 게 목표였다.

왜냐고?

알며 소연이가 또 들이댈 것 같으니까.

기껏 마음을 접은 소연이가 고민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너도 참 피곤하게 사는 구나.”

“형도 꼭 도와주셔야 해요.”

가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람도 우리 세 사람의 관계를 눈치 챘고, 들어서 알았다.

그는 부러워할 뿐, 별 말 하진 않았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나는 괜찮은데? 엘레나도 괜찮지 않아요?”

“(...저도 괜찮아요, 정민님.)”

“와... 너, 이자식, 넌 죽어야 해.”

조금 전 고개를 끄덕인 사람은 어디 갔는지, 가람의 눈이 화르륵 하고 타올랐다.

“아니, 제가 왜요?”

“지나가는 모든 남자들에게 물어봐라, 네가 지금 잘못을 했는지, 안 했는지.”

그래, 솔직히 다 내가 잘못이라고 할 거다.

케이라에, 엘레나에, 그리고 여기에 소연이를 추가해도 된다고 두 사람이 말하는 거니까.

지나가는 남자들은 백이면 백 다 나를 죽이려고 들 거다.

“...이게 다 제가 잘난 죄죠.”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바로 반응이 돌아왔다.

“...아니, 케이라, 엘레나 대체 이런 자식이 뭐가...”

“죄송합니다. 가람이 이해해 주세요. 요즘 머리를 많이 썼더니 이상해졌나 봐요.”

“맞아, 요즘 그렇게 머리를 많이 쓰긴 했지. 진짜, 한 번만 봐 준다.”

형은 약간 진심인 것 같았다.

케이라가 아니었으면 진짜로 맞았을 지도?

흠흠, 내가 좀 심했나?

최근 마력 훈련에 신성을 사용하느라 뇌를 극한까지 짜내긴 했다.

그래서 아주 조금 이상해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원래 이런 나르시스트가 아니었는데.

“두 사람이 괜찮아도 소연이가 안 괜찮아요. 이제 겨우 20살이잖아요?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라고요.”

엘레나는 내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케이라는 반론을 제기했다.

“...나도 겨우 21살인데?”

“아니, 너는 불가항력적인 그런...”

“아, 그렇구나. 불가항력적이었구나. 그럼 엘레나도 불가항력적이었겠네? 안 그래?”

“...아니, 그런 말이...”

케이라에게 무언가 변명을 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엘레나다.

“(...그런... 거 였... 어요?)”

...조졌다.

케이라야 가끔 저런 식으로 삐진 척 할 때가 있다.

자기에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하는 건 같아서, 맞춰주고 있다.

그러니까, 이건 우리 둘이 주고받는 상황극 같은 거다.

하지만 엘레나는, 얼굴 보니까 진심이다.

케이라도 순간 당황한 듯 표정이 굳었다.

나는 바로 엘레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니에요, 엘레나. 그런 거 아니에요. 저는 엘레나를 좋아, 아니, 사랑해요. 루께 맹세 했잖아요.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힘을 다해 당신을 지키겠다고. 그거, 진심이라니까요?”

“(하지만...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면서요.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먹은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엘레나. 절대로 아니에요. 불가항력적일 리가 없잖아요? 엘레나는 지금도 돌아갈 수 있는데요? 그런데 제가 보내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요. 엘레나랑 같이 있고 싶어서, 엘레나를 사랑하니까. 진짜 불가항력적인 건 케이라였죠. 그때는 제가... 합.”

급히 입을 막았지만, 이미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뒤통수에서 강한 살기가 느껴졌다.

돌아보기가 무서웠다. 돌아볼 수 있는 타이밍도 아니었지만.

[이정민, 너, 나중에 죽었어.]

꿀꺽.

메시지 마법에서도 살기가 느껴질 수 있구나.

그래도 넘어가줘서 다행이다.

케이라는 침대 위에서 일로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

그보다 문제는 엘레나다.

“...제가 진짜 엘레나를 사랑한다는 거, 이걸 들으시면 알 거예요.”

나는 천천히 일어나 엘레나를 안았다.

다행히 그녀가 거부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제 심장소리 들리죠?”

두근두근두근.

“엘레나 앞에만 서면 이렇게나 뛰어요. 엘레나가 너무 사랑스러워서요.”

100% 거짓말은 아니다.

아닌데, 지금은 엘레나에게 맞을까 봐 뛰는 게 80% 정도 된다.

엘레나 주먹은 정말 무지하게 아프다.

그리고 10%는 케이라에게 마법을 맞을까 봐.

“(...정말이죠?)”

“네, 사랑해요.”

나는 그녀를 꼭 껴안았다.

가람이나 케이라가 없었다면 키스라도 했을 텐데.

그렇게 5초 쯤 지났을까?

엘레나가 내 가슴을 밀어냈다.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빨개져 있었다.

눈빛이 향하는 위치를 보니, 그제야 가람과 케이라가 있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흠흠, 제가 추태를 보였네요. 죄송합니다. 잠시, 숨 좀 고르고 올게요.)”

엘레나는 그 말을 남기고 휙하고 사라져 버렸다.

느낌상 화장실로 들어간 듯하다.

돌아오면 아마 거룩한 성기사로 변신해 있겠지.

툭툭.

가람이 내 어깨를 쳤다.

“미안하다.”

“뭐가요?”

“적어도 나는 네가 잘못이 없음을 증언해줄게.”

“고마워요, 형.”

가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러났다.

케이라의 표정은 언제나 그렇듯 무표정에 가까웠지만, 평소보다 눈빛이 날카로운 게 느껴졌다.

오늘은 좀 조심해야겠네.

그래도 그 눈빛은 금방 풀렸다.

“언니!”

드디어 소연이 크루 하우스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소연이 아기다람쥐처럼 쪼르르 달려오더니 케이라의 품에 안겼다.

그러자 케이라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잘 있었니?”

“네, 잘 있었어요. 언니는요? 고생하셨다고 들었는데, 다치지는 않았죠?”

“건강해. 다 소연이 덕이야.”

“헤헤.”

나이 차이는 고작 한 살인데, 왜 10 살은 나는 거 같을까?

키 차이는 고작해야 10cm 정도인데, 왜 배는 더 커 보이는 걸까?

“소연아, 오랜만이야.”

“선배님도 오랜만이에요. 소식 들었어요. 진짜 고생하셨어요.”

테러를 당한 이야기나 테러범을 잡은 이야기를 다 알고 있었다.

모르는 건 딱 하나 뿐.

“고생은 뭐. 이 분이 있어서 괜찮았어. 그때 소개해 달랬지? 새로 오신 이세계인이셔.”

나는 어느새 다시 온 엘레나를 소연이에게 소개했다.

새로운 이세계인이 있다는 건 소연이도 모르는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엘레나 루. 자애와 사랑의 루를 섬기는 열세 번째 검입니다.)”

방패와 검을 세워 들고 하는 정식 인사.

세련된 갑옷과 검에 뛰어난 외모, 볼 때마다 영화 같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어, 어... 제가 아는 말이 아닌데요? 어떻게 대답을...”

“그냥 편하게 하면 돼. 소연아. 내가 마법을 쓴 거니까.”

“아, 그럼... 흠흠, 저는 박소연이라고 해요. 이제 막 견습 딱지를 뗀 F급 키퍼고, GGC 크루 인턴이고... 아! 이정민 선배님의 학교 후배예요...”

소연의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조금 부끄러운 모양이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

검 하나만으로도 당당한 엘레나와는 달리, 내세울 게 그리 없으니까.

견습, F급, 인턴... 그나마 꺼낼 수 있는 말이란 게 내 후배라니.

힘내라, 소연아.

언젠가는 너도 큰 사람이 될 거야.

“(학교 후배요? 소환사님의 학교 생활이라니 굉장히 궁금하네요. 이곳의 학교는 어떤가요? 딱딱한 선생님이 있겠죠?)”

그런데 엘레나가 그 억지로 꺼낸 말을 받았다.

그녀는 ‘내 학교’가 궁금했던 모양이지만, 다행히도 소연이는 그런 분위기를 눈치 채지 못했다.

“네! 맞아요. 학교는 어딜 가나 마찬가지인가 보네요. 선생님은 고지식하고, 학생들은 놀고 싶고.”

“(저도 학생 때는 그랬는데, 그립네요.)”

“학생이요? 지금 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데요.”

“(네? 아니에요.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데...)”

“실례가 안 된다면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봐도 되나요?”

“(아, 저... 30...)”

“네?! 진짜요? 말도 안 돼요. 어떻게 30살이...”

소연의 입이 풀렸는지, 여자어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물론 실제로 엘레나는 매우 어려 보인다.

하지만 학생이라고 하는 건 너무 나갔다.

“비결이 뭐예요? 저도 배우고 싶어요.”

소연이는 케이라랑 처음 만났을 때도 대충 저랬다.

처음에는 약간 머뭇거리다가, 그 후로는 쉴 새 없이 질문했다.

그리고 바로.

“엘레나 언니! 역시 언니라고 부를게요.”

저렇게 언니라고 불렀다.

엘레나가 살짝 당황하는 것 같기도 한데, 싫은 건 아닌 듯하다.

“(그, 그래요. 저도 예쁜 동생이 생겨서 좋네요.)”

“헤헤, 칭찬 받으니 기쁘네요. 그래도 저보다 언니가 더 예뻐요. 언니가 입고 있는 갑옷이나 검도... 아, 이 검에 대해서 설명 좀 해주세요. 이름이 뭐예요?”

갑자기 검이라고?

흐름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질문자가 소연이라는 점에서는 이해가 갔다.

그녀는 저번에도 같은 일을 했다.

케이라가 입고 온 로브, 들고 온 지팡이에 대해서 질문 했었다.

“(이 검이요? 이 검의 이름은...)”

스르릉.

엘레나가 검을 검집에서 꺼냈다.

검집 채로도 아름다웠지만, 검신은 더 아름다웠다.

“(트라우 팔가. 이쪽 말로는 13이라는 뜻이에요. 루가 만든 열세 번째 검이라는 뜻이죠. 13 자루밖에 없는 검이랍니다.)”

“와... 명품!”

그것도 보통 명품이 아니다, 신의 손길이 닿은 명품이라고.

“그럼 갑옷은요? 이 갑옷이며 분명 이름이 있겠죠?”

“(이건 리베나 루. 루의 사랑이라는 뜻이에요. 이건 루께서 직접 만들진 않았지만, 백년 전 최고의 드워프 장인이었던 살바도르가 만든 거예요.)”

“드, 드워프...!”

소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저번에 나연이 거치대를 만들려고 할 때 들었다.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계속 된 마력 사용으로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들으니까, 욕구가 마구 올라왔다.

나도 제대로 된 장비를 가지고 싶다.

크루에서 지원해주는 수트 같은 거 말고, 개인 장비 말이다.

“자자, 이제 게이트에 들어가자고요. 형, 소연이에게 맞는 전투용 슈트가 있을까요?”

“있지. 소연씨도 이제 우리 크루원인데.”

“예!”

크루원이라는 말에 소연이 환호했다.

조금 골려주고 싶은 마음에 팩트를 나열했다.

“너, 아직 정식 아닌 거 알지? 그냥 인턴이야.”

“네! 알고 있어요! 꼭 정식이 될 거니까요!”

하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밝아서 좋네.

+++

“자, 저기 있네. 먼저 해볼 사람?”

가람이 수풀 너머에 있는 고블린 세 마리를 가리켰다.

활을 든 고블린 한 마리와 단검을 든 고블린 두 마리.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이다.

가람이라면 단숨에 해결하겠지만, 나나 소연이에게는.

“제가 먼저 할게요.”

나는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지금 가람의 게이트에 들어와 있다.

이번 게이트 원정의 목적은 훈련이다.

꽤 성장했다고 주장하는 소연이와, 겨우 D급 능력치를 가지게 된 나의 전투력을 기르기 위한 원정이었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룬어를 떠올렸다.

‘거리 두기’로 마나를 밀어내고, ‘모으기’로 마나를 더 모으고, ‘타오르다’로 마나를 태우고.

화르륵.

금방 주먹만 한 불덩이가 내 가슴 앞에 형성됐다.

나는 그걸 앞으로 쏘아냈다.

쏘아내는 건 ‘거리 두기’ 룬을 네 개 겹치면 된다.

전에는 할 수 없었지만, 마력과 마나 스탯이 올라간 덕분에 가능해졌다.

후우웅.

불덩이가 공기를 태우며 날아가자, 고블린들이 발견하고는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불덩이는 벌써 고블린 한 마리에 부딪혔다.

그리고 바로 폭발했다.

퍼엉!

그 폭발로 고블린 두 마리가 삭제 됐다.

그리고 남은 고블린 한 마리의 몸에도 불이 붙었다.

고블린은 불을 끄려고 몸부림쳤지만, 결국 불에 타 죽고 말았다.

화르륵.

불길이 세서 숲도 타고 있었지만, 그건 케이라가 마법으로 꺼줬다.

쉬이익.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때?”

“합격이야.”

“예쓰!”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했다.

이건 케이라의 힘을 빌려서 쓴 마법이 아니었다.

내가 직접 쓴, 내 마법이었다.

그리고 그걸 축하하듯, 메시지가 떴다.

[차원 공통 흑마법­최하급(D)를 습득합니다.]

이제 진짜 마법사가 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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