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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36화 (36/137)

〈 36화 〉 chapter 6. 테러범

* * *

36.

사금리의 붉은 점에는 1층짜리 집이 하나 있었다.

사금리 사람들은 집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원래는 빈집이었는데, 누가 몇 달 전에 사서 수리 했어요. 별장으로 쓴다든가? 이 시골구석에 뭔 별장인지.”

“거기에서 나오는 사람을 못 봤어. 들어가는 사람도 본 적도 없고.”

아무도 없는 건가 했지만, 읍내 유일의 치킨집에서 제보가 들어왔다.

“아, 거기요? 거기 요즘 시간마다 배달 시켜 먹어요.”

“맨날 문 앞에 두고 가라고 해서 누가 있는지는 몰라요.”

정황상 그 집에 범인이 숨어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시켜 먹는 치킨의 양으로 볼 때, 인원은 2명으로 예측됐다.

스나이퍼가 말한 범인의 숫자와 동일했다.

보스와 부하라고 했다.

“진입하는 건 저와 김나연, 이정민, 그리고 이정민의 지인 2명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정해진 위치에서 개미 한 마리 지나가지 않게 주의해주세요.”

케이라와 엘레나는 인식 방해 로브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듬직한 남자로 인식되는 중이었다.

크루원들에게까지 두 사람이 이세계인이라는 걸 밝히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진입 팀을 제외한 나머지 크루원은 모두 21명.

수장 김나리를 포함한 크루원이 온 거였다.

물론 김나리는 작전에서 빠져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다.

혹시라도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C급 키퍼가 위험하면, 스탯 상으로는 D급 키퍼인 나는 왜 작전에 참가하냐고?

그야 케이라와 엘레나 때문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녀들 곁에 있어야 건전지 역할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긴장 되세요?)”

“조금요.”

나와 케이라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놈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저격을 시도하고, 폭발을 일으킬 정도로 미친놈이기도 하고.

이번에도 어떤 미친 짓을 벌일지 알 수 없었다.

“(후후, 걱정 마세요. 제가 꼭 지켜드릴 테니까요.)”

엘레나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지구 기준으로 하면, 그녀는 자그마치 S급 키퍼였다.

한국에는 열 명 남짓 밖에 없는 실력자 중에 실력자.

그런 그녀가 있기 때문에 D급 키퍼인 내가 이 작전에 들어가도 다들 걱정이 없다.

우리가 대놓고 정면으로 진입하는 것도 다 엘레나의 존재 덕이다.

S급 성기사가 있는데, 뭐가 걱정인가?

“(그럼, 제가 앞장설게요.)”

엘레나를 필두로, 우리 다섯 사람은 그 1층 집을 향했다.

집에는 마당이 있었고, 낮은 담이 마당을 둘러싸고 있었다.

대문은 따로 없었다.

대신 CCTV가 우리를 반겼다.

“(저기와 저기에서 시선이 느껴져요.)”

엘레나가 담과 집의 지붕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CCTV가 있었다.

“적이 우리를 발견했다. 공격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니까 조심해.”

나는 가람의 말에 잔뜩 긴장하며 사방을 살폈다.

겉으로 볼 때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리고 집의 현관에 도달할 때까지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설마... 신탁이 틀렸나?

“안에는 내가 먼저 들어갈게. 엘레나는 일행들을 지키는 걸 최우선으로 해줘.”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패를 살짝 들어 보였다.

다른 일행들도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다.”

쾅!

가람이 발로 현관을 차고 안으로 구르며 들어갔다.

문 앞은 바로 거실이었고, 거실에는 가구 외엔 사람이 없었다.

대신 현관의 맞은편 문이 열리며, 큰 총구가 나왔다.

“기관총이다! 모두 피해!”

두두두둑.

우리가 현관을 열길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총알이 딜레이 없이 바로 날아왔다.

구르던 가람은 계속 굴러서 피할 수 있었지만, 현관에 일자로 서 있는 우리는 피할 장소도, 피할 틈도 없었다.

믿을 것은 오로지 엘레나 뿐.

“(루의 사랑은 모든 것을 덮으리!)”

엘레나가 방패를 양손으로 들고 앞으로 내밀었다.

방패는 그녀의 갑옷과 같은 디자인이었다.

흰색 바탕에 금색의 포인트를 가진 아름다운 방패.

방패의 가장자리에서, 푸른빛이 뻗어 나와 더 큰 방패의 형상을 취했다.

원래 방패는 엘레나의 상체 만했는데, 지금은 길이만 2m가 됐다.

콰가가강!

폭발이 연달아 터지는 것 같은 굉음이 사방을 채웠다.

기관총에 부서진 가구 조각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나무로 된 바닥이 패이며, 콘크리트가 드러났고, 콘크리트도 기관총의 위력 앞에서 무사하지 못했다.

콘크리트 조각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튀어 올랐다.

하지만 엘레나는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두 발로 굳건히 서서, 모든 총탄의 운동량을 다 받아내고 있었다.

“와...”

절로 감탄이 흘러 나왔다.

S급, S급 말만 들었지, 실제로 접하는 S급의 위용은 급이 달랐다.

저 사람과 내가 몸을 섞었다니.

저 사람이 가는 표정을 나만 봤다니.

이거 실환가?

다음에 무서워서 발기 가능할까?

아니지, 무서워서 더 발기 할 것 같기도 했다.

콰가가강!

총알 세례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엘레나 뒤는 너무나 편안했다.

괜히 앞으로 튀어나간 가람만 고생하면 이리저리 피하다가 겨우 엘레나 뒤로 복귀했다.

두둑, 둑, 툭.

시이이이.

약 2분.

기관총이 불을 뿜은 시간이다.

맞은편 문 앞에는 탄피가 수북했고, 엘레나의 방패 앞에는 납탄이 수북했다.

“(이제 끝난 건가요?)”

“응, 기관총이 과열 돼서 또 쏠 수는 없어.”

가람의 말에 엘레나가 방패를 내렸다.

방패는 바로 원래 크기로 돌아왔다.

“(제가 앞장설게요.)”

엘레나가 납탄을 밀어내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등은 든든하기 그지 없었다.

나보다 작은 키에 작은 등이지만,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당장이라도 저 등에 잘했다고 뽀뽀해주고 싶다.

나중에 해야지.

우리가 천천히 걸어가자, 맞은편 문이 완전히 열리고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한 사람은 내가 기억 속에서 본 날카로운 눈빛의 남자고, 다른 한 사람은 약간 억울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였다.

“한국에 그런 능력을 가진 키퍼는 없는데... 아니, 전 세계에서도 없어. 너는 대체 누구지?”

“그건 알아서 뭐하게? 네 이름이나 밝히지 그래?”

“가람... 당신도 평범한 키퍼는 아니지, 과거 행적을 찾을 수가 없어. 마치 삭제된 것처럼.”

“나한테 물어보면 가르쳐 줬을 텐데,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

가람의 말에 남자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그래, 그럴걸 그랬어. 하지만 그보다 더 이상한 건 이정민이야. 너는 대체 무슨 능력을 각성한 거지? 마법사인가?”

남자가 정확하게 나를 봤다.

그의 정확한 지적에 나는 표정을 굳히고 말았다.

“마법사가 맞나 보네.”

쳇... 역시 아직 멀었다.

가람처럼 표정을 숨길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하늘은 왜 하필이면 이때 마법사를... 아니지, 하늘은 늘 그래. 나를 도와주지 않잖아?”

“이제 도와주러 왔으니까 걱정 마. 깜빵에서 몇 년 살면 착실한 삶을 살게 될 거야.”

가람이 튀어나갔다.

가람은 작전 중에 테러범이랑 대화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우리는 잡는 데만 집중하면 된다고, 심문은 그 다음일이라면서.

남자의 옆에 서 있던 부하가 가람을 막으러 나왔다.

둘 다 육체 강화계인지, 서로 검을 꺼내 공격하기 시작했다.

캉, 캉.

이어서 나연이 남자를 향해 튀어나갔다.

“쳇, 낭만이 없기는...”

남자가 품속에서 종이를 꺼내 자기 앞에 뿌렸다.

모두 마법 수식이 그려진 종이, 스크롤이었다.

스크롤은 바로 주변 마나를 끌어들이더니, 그대로 폭발했다.

퍼버버벙.

나연은 폭발을 피하느라 물러나야만 했다.

그리고 또다시 날아오는 스크롤에 앞으로 돌진하는 대신에 옆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펑!

남자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쉬운 상대는 아닌 듯했다.

“케이라, 탐지 방해 마법은 찾았어?”

이 집에는 강력한 탐지 방해 마법이 걸려 있었다.

그래서 이 집에 뭐가 있는지, 서치 같은 마법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신탁으로도 불가능했다.

탐지가 불가능한 게 아니라, 특정이 불가능했다.

신성 2의 신탁으로는, ‘집안에 소파가 있다’란 답이 나와도 아무런 불만을 가질 수가 없다.

현관문을 연 순간부터 케이라는 그 방해 마법의 핵을 찾고 있었다.

남자는 스크롤로 마법을 사용하니까, 이번에도 스크롤일 터였다.

“저기와 저기야. 내가 공격할게.”

케이라가 거실 양쪽 모서리에 서 있는 옷걸이를 가리켰다.

그녀는 푸른 화살을 바로 생성해내더니, 두 곳을 향해 던졌다.

팡, 팡!

옷걸이가 파괴되며, 옷걸이 바닥의 종이도 찢어졌다.

동시에 남자의 부하가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남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나연의 주먹이 남자를 벽으로 날려 버렸다.

“컥!”

남자가 피를 토했다.

부하는 이미 기절한 듯, 미동도 없었다.

“A급 키퍼가, 큭, 다르긴 달라... 하지만... 이건 어떠냐.”

남자가 오른손을 들었다.

그때, 케이라가 외쳤다.

“엘레나 주변으로 모여요! 빨리! 이집은 사방이 스크롤이에요!”

“이미 늦었어! 다 같이 죽자고!”

딱.

남자가 손을 튕김과 동시에 주변 마나가 요동쳤다.

요동치며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려 했다.

이대로 필요한 마나가 전부 충족돼서 스크롤이 발동되면, 무언가 일어날 거다.

아마도 폭발.

쿵.

엘레나가 푸른빛으로 거대화한 방패를 찍었다.

방패의 푸른빛이 조금 더 늘어나더니, 일행 전부를 감싸는 반구를 만들었다.

작전 시작 전엔 엘레나가 보여준 것과는 형태가 달랐다.

그때는 구였는데, 지금은 반구다.

대신 그 크기가 배는 커졌지만.

[정민아, 그걸 해야 해. 저걸로는 바닥은 못 막아!]

케이라의 생각이 머릿속에 울렸다.

그것.

이 장소에서 나만 할 수 있는 일.

S급 능력자인 엘레나도, A급 키퍼인 나연도, B급 키퍼인 가람이나 B급 능력자인 케이라도 못하지만, D급 키퍼인 나만 할 수 있는 일.

파아앗.

내 앞에 게이트가 열렸다.

루의 힘을 일으키자, 게이트에서 따뜻한 기운이 넘어와 내게 힘을 주었다.

[자애와 사랑의 신, 루가 당신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신성이 1 상승합니다.]

신성이 상승하자, 마나가 움직이려는 게 눈에 직접 보였다.

움직이려는 마나 위에 안 움직이고 있는 마나가 겹쳐져 있는 것도 보였다.

나는 그 마나들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움직이려는 마나도 그 자리에 멈춰 버렸다.

신성의 높은 권한을 이용해서 주변의 마나를 내 통제아래에 두는 방법.

다른 사람의 마력이 닿은 마나라면 신성 2로는 통제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스크롤에 쓰이는 마나는 통제할 수 있다.

혹시 모를 스크롤 함정에 대비해 우리가 준비한 한 수였다.

물론 엘레나와 케이라가 있는데 내 차례가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퍼버버버벙.

수십, 아니 수백 개의 스크롤이 터진 듯했다.

대체 얼마나 준비를 해둔 건지.

“(폭발이 끝나면 바로 나갈게요!)”

폭발 하나하나의 위력이 약했기 때문에, 엘레나의 방어막은 굳건했다.

하지만 내부 폭발을 막는 내 상태가 안 좋았다.

지금도 솔직히 한계다.

마력과 게이트를 유지하는 정신력이 벌써 바닥을 보고 있다.

펑...

폭발이 끝나자, 엘레나가 방패를 해제하고 앞으로 달렸다.

벽에 박혀 있던 남자는 그 자리에 없었다.

죽은 건 아니었다.

폭발에 찢긴 부하의 시체는 그 근처에 너부러져 있었으니까.

다 같이 죽자고 해놓고, 혼자서 도망친 거였다.

“그 아래야!”

케이라가 바닥을 가리켰다.

엘레나는 케이라가 가리킨 곳을 방패로 찍어 버렸다.

콰가강.

바닥이 무너졌고, 엘레나가 아래로 떨어졌다.

스겅.

칼 소리와 함께 남자의 오른손이 거실로 올라왔다가 다시 바닥 아래로 사라졌다.

남자의 오른손은 ‘딱’ 거리는 모션이었다.

“(지금이에요! 신성을 해제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요!)”

들려오는 엘레나의 목소리대로 행동했다.

약 1초 뒤, 마나가 다시 움직이며 우리가 있던 자리가 수십 번 폭발했다.

퍼버버벙.

조금만 늦었으면, 저 폭발에 휘말렸을 거다.

나는 한계였고, 내 게이트는 내가 해제하기도 전에 사라졌으니까.

“으아악!”

엘레나가 남자를 데리고 거실로 올라와 바닥에 던졌다.

남자는 잘린 손목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면 바닥을 굴렀다.

“으악, 큭, 젠장! 이 여자는 또 뭐야!”

엘레나의 후드가 벗겨진 관계로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나 있었다.

흰 갑옷을 입고 검으로 남자의 목을 겨누고 있는 엘레나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왜 또 공간 이동은 안 되는 건데! 빌어먹을, 큭. 너희들! 무슨 짓을 한 거냐!”

공간이동이 안 되는 것도 우리의 준비였다.

케이라는 주변 300m 범위 내에 공간 이동 좌표를 제대로 설정할 수 없도록 하는 방해 마법진을 그렸다.

그걸 그리기 위해 다섯 시간 동안 고생했다.

남자가 집에서 치킨 먹을 동안, 우리는 밖에서 다섯 시간동안 돌아다녔다고.

“네가 알 건 없어. 너한테 죽은 사람들도 다 무슨 짓을 당한 건지 모르고 죽었잖아?”

가람이 남자를 포박하며 말했다.

속이 시원한 말이었다.

처음엔 박재혁이 어떻게 실종 당했는지도 몰랐으니까.

“으윽, 그건 내가 한 일이 아니야. 몬스터가 한 일이이라고.”

“그거야 조사하면 다 나오니까 걱정하지 마. 물론 그 조사가 공적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

조곤조곤 무서운 말을 남발하는 가람.

GGC 크루 하우스의 지하 감옥이 떠오르니 절로 섬뜩해졌다.

“닥쳐... 조사 따위! 내가 키퍼들에게 협조할 것 같아?”

남자가 악을 쓰더니, 입을 크게 벌렸다.

눈에서 광기가 느껴졌다.

“이제 그만 닥쳐.”

가람이 남자를 기절시키려는 듯 손날을 세웠다.

그 순간, 남자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뭔가 또 있나?

문을 열자마자 기관총을 쏘고, 다 같이 죽자면서 혼자 도망치려 하는 놈이다.

마지막까지 뭔가를 준비했을 확률이 높다.

나는 재빨리 다가가 남자의 입에 손을 집어넣었다.

“우그억?”

남자의 눈빛이 흔들리는 게 보인다.

나는 씨익 하고 웃어 줬다.

안녕, 너 못 죽음.

가람의 손날이 남자의 목을 쳤고, 남자가 기절했다.

가람이 입 안을 뒤져보니, 눈빛이 흔들린 이유가 밝혀졌다.

“청산가리 주머니야. 자살할 생각이었나 본데? 잘 했어, 정민아.”

“뭘요.”

다행이다.

저 놈은 편히 죽으면 안 되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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