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chapter 5. 엘레나 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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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그래, 키퍼가 됐다고? 그런데 왜 말이 없었어?”
“자리를 좀 잡고 말씀 드리려고 했었죠.”
“벌서 2달이라면서? 너무한 거 아니냐.”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물음에 어물쩍 넘어가려고 애를 썼다.
사실은 케이라 때문이었다.
키퍼가 됐다고 하면 내가 집을 가든, 부모님이 서울에 올라오시든 할 텐데, 그럼 케이라의 존재가 조금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케이라가 이세계인이라는 건 문제가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도 다 말했는데, 가족을 못 믿겠는가.
문제는 케이라의 성별이다.
케이라는 여자니까.
부모님께 여자와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바쁘기도 했다.
지난 두 달, 기억나는 거라곤 게이트, 룬어 습득, 섹...스 밖에 없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불효자를 용서하소서.
여자에 빠져 가족을 멀리 했습니다.
“가람씨 말로는 테러범이 너를 쫓는다던데, 괜찮은 거냐?”
“괜찮습니다. 금방 해결될 거예요.”
“그래, 이 정도 규모의 크루라면 금방 잡겠지.”
“맞습니다. 잠깐만 여기서 지내시면 돼요. 이참에 좀 길게 쉰다고 생각하세요.”
아버지는 택시운전사시다.
가람의 연락을 받고 쉽게 올라올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다.
오히려 문제는...
“지민이도 걱정할 거 없다. 오히려 여기가 공부하기엔 좋은 환경이야.”
지민이는 현재 고3이다.
작년까지는 운동을 했지만, 결국은 공부를 선택했다.
그럼에도 인 서울을 노리는 수재다.
절대적인 공부량이 부족해서 간당간당했는데, 아버지 말대로 이번이 좋은 기회일 수도 있겠다.
당연히 동생의 표정은 안 좋았다.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지도 못한 채, 공부만 해야 했으니까.
아버지만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따질 기세다.
실제로 아까 맞기도 했고.
“그럼 다행이네요. 엄마도 괜찮지?”
“응. 여기 시설도 깨끗하고 괜찮네.”
엄마는 휴가라도 나온 것 같은 느낌이다.
내 앞이라서 내색 안 하는 거일 것 같지만, 척을 할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 괜찮다는 이야기이도 하다.
“쉬고 계세요. 불편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시고요.”
“너는?”
“저는 테러범 잡아야죠.”
“키퍼가 된 지 2달 밖에 안 됐다며, 어디 가서 짐이나 되지 마라.”
“네, 짐 말고 바퀴가 되겠습니다.”
짐 보다는 바퀴.
아버지가 주로 하시는 말이다.
어디에서 들으신 건지, 스스로 만들어 내신 건지는 모르겠다.
뜻이야 뭐, 보이는 그대로다.
짐 보다는 바퀴가 낫다.
대신 짐 보다는 바퀴가 편한 건 아니다.
바퀴는 쉬지 말고 굴러야 하니까.
나는 인사하고 부모님 방을 나왔다.
동생도 자기 방이 아니기 때문에 같이 나왔다.
“오빠가 위험하다니까 지금은 넘어가겠어. 하지만 이 빚은 나중에 다 받아낼 거야.”
“알았어. 꼭 갚을게.”
“그럼 됐어.”
쿨한 지민.
아니다, 전혀 쿨하지 않다.
이미 주먹으로 날 때린 거잖아?
내가 속으로 욕하는 걸 들었는지, 앞서 가던 지민이 뒤돌아선다.
“왜?”
“...셋 중에 누구야?”
“응? 뭐가?”
지민이 앞을 가리켰다.
10층 중간에 거실 같은 공간이 있는데, 거기에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케이라, 엘레나, 김나연.
“에이, 무슨 소리야. 그런 거 아니야. 동료 키퍼들이다.”
“아니지? 그렇지? 오빠가 저렇게 인기가 많을 리 없는데...”
“당연하지. 너도 들어가서 쉬어.”
“흐으음. 뭐, 알아서 잘 해 봐. 참고로 나는 한국인이 좋아.”
지민이는 그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갔다.
왜 하필 제일 가능성이 적은 사람을 고른 건지...
역시 한국인은 한국인인가.
동생도 저런데 케이라에 대해서 부모님이 어떻게 반응하실지 걱정이다.
“다들 왜 모여 있어요?”
“(케이라 씨가 불렀어요.)”
엘레나는 갑옷을 벗고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갑옷에 숨겨져 있던 몸매가 드러나자, 안 그래도 뛰어난 얼굴이 더 부각됐다.
저 공격적인 가슴에도지지 않는 예쁨이라니, 저건 귀한 거다.
“저도 케이라가 불러서... 그 전에, 정민씨 몇 살이죠?”
“네? 저 26이요.”
“그럼 나 말 놓는다. 나 27. 너도 말 편하게 하든지 말든지 해. 대신 ‘누나’는 꼭 붙이고.”
시원시원해서 좋네.
“네, 아... 응. 나연 누나.”
“윽... 누나는 너무 오랜만이다. 닭살이야.”
“...뭐야 부르라고 할 때는 언제고. 빼 줘?”
“노노. 빼면 죽는다.”
나연 누나...가 주먹을 들어 보였다.
저 주먹에 맞으면, 진짜 사망이다.
“말로 합시다. 말로. 호칭은 절대로 안 빼먹을 거니까요.”
“좋아. 이제 케이라 말을 듣자. 너 온다고 이때까지 참았으니까.”
사람들이 눈이 케이라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헛기침 같은 것도 없이 바로 포문을 열었다.
“정민이 훈련을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훈련? 무슨 훈련? 얘는 마법사잖아? 왜 나한테?”
내가 할 질문을 나연이 대신 해줬다.
“기초 체력이 부실해서요. 마법사라고 해도, 이 정도 수준이면 안 돼요.”
...부실?
내가 부실한 게 아니라, 너가 너무 센 거겠지.
너의 끝없는 성욕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굴려줄 수 있지. 잠재력은 남아 있어?”
“...5 정도는 남아 있어요.”
“5, 오! 그 정도면 하루에 하나씩 올릴 수 있지.”
“...네?”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하루에 스탯 하나를 올린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그걸 되게 만들려면 수강생은 얼마나 고생해야 하는 걸까.
“걱정 마. 키퍼라면 다 할 수 있는 거니까.”
나는 케이라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지만, 나를 부실하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돌이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는 뭘 하면 되죠?)”
“검술을 가르쳐 주세요. 루의 검이 아니라도 괜찮아요. 기본만 잡으면 됩니다.”
“(입문자용 루의 검도 있습니다. 그걸 가르치죠.)”
검? 검술도 배워야 해?
언젠가는 배우려고 했었다.
키퍼하면 검, 검하면 키퍼 아니겠는가.
수많은 키퍼가 검을 주무기로 삼는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 않나?
지금 검을 배워서 언제 성과를 내려고?
“잠깐만, 체력은 몰라도 검술은 오버인 거 아니야? 테러범을 잡으려면 마법을 더 갈고 닦아야지.”
“갈고 닦아도 지금은 그 테러범에게 안 돼.”
“...팩폭은 자제 해주면 안 될까.”
나도 안다.
아직 견습 딱지도 못 땐 F급 키퍼가 뭘 할 수 있겠냐고.
“그리고 검술을 배우는 게 체력 관련 스탯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될 거야. 내 세계의 시스템은 다양한 경험을 하는 걸 추천하는 편이거든. 지금까지의 데이터로 보면, 이 세계의 시스템도 비슷한 경향성을 보일 거야.”
“...그런 게 있었어?”
몰랐던 사실이다.
그건 A급 키퍼인 나연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이세계 지식이었다.
이세계 지식은 가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튀어나와, 생각지도 못한 걸 가르쳐 준다.
“진짜? 그럼 나도 검술 배울래. 잘 하면 벽을 깰 수 도 있다는 거 아니야?”
“충분히 가능할 거예요. 언니. 언니도 엘레나에게 배울래요?”
“배우면 좋지. 저 사람은 강하니까.”
“제가 물어봐 드릴게요.”
케이라는 통역 마법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엘레나와 소통이 가능했지만, 나연과 엘레나는 서로 말을 못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언제부터 ‘언니’지?
케이라도 보면 은근히 친화력이 좋다.
소연이랑도 잘 지내고.
나연이랑도 금방 친해지네.
사람들이 케이라를 좋아하는 걸까?
그럴지도.
케이라는 인형 같이 예쁘니까.
하지만 승리자는 나라구, 이 여자들아.
“언니도 배워도 된대요. 그럼 바로 가볼까요? 훈련실이 어디라고 했죠?”
“이 층에 있어. 저 쪽이야.”
우리는 나연을 따라 훈련실로 이동했다.
안무 연습실처럼 벽면에 거울이 달린 방이 있었다.
천장이 4m 정도는 돼 보였는데, 검을 휘두르기에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주변에는 헬스용 기구도 다 준비돼 있었다.
아래층에도 비슷한 운동시설이 있었는데, 10층에도 있는 줄은 몰랐다.
“좋지?”
“진짜 좋네. 건물에 돈을 얼마나 쓴 거야?”
“우리 언니가 좀 완벽주의라서. 아낌없이 투자했지.”
나연의 목소리에 나리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확실히 그럴 만한 퀄리티였다.
“바로 시작할까? 가볍게 팔굽혀펴기부터... 아, 그 전에 옷부터 갈아입고 와. 저기 탈의실에 운동복 있으니까, 적당히 입으면 돼.”
운동복이 구비되어 있다고?
진짜 뭐지?
대충 입고 나오니, 케이라는 없었다.
“케이라는 나한테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갔어. 자기도 준비할 게 있다는데?”
“알겠어.”
“너도 준비 됐어?”
나연의 목소리가 활기차다 못해 장난끼가 가득하다고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이겠지?
“응.”
반면 내 목소리는 맹수 앞에 초식 동물 같이 조금 쫄아 있다.
그렇게 엘레나가 보는 와중에 지옥의 훈련이 시작됐다.
+++
체력 훈련 종목은 간단했다.
러닝, 팔굽혀펴기, 스쿼트, 플랭크.
하지만 실상은 간단하지 않았다.
한 번 한 번이 지옥 같았다.
나연이 계속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면서 나를 자극시켰기 때문이다.
나연은 내 입에서 욕이 나올 때까지 운동을 시키고는 다음 종목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한 사이클을 돌리고 나니, 온 몸이 비명을 질렀다.
체력 훈련을 하고 나면, 엘레나의 짧은 검술 시범을 봤다.
나와 나연이 그걸 보고 따라하는 방식이었다.
훈련실에는 연습용 검도 준비 되어 있었다.
나연은 곧잘 따라했다.
괜히 A급 키퍼가 아닌 모양이다.
재능 차제가 나랑 달랐다.
나야 뭐, 하나하나 엘레나가 교정해 줘야만 했다.
이것 역시 온몸이 비명을 지르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
검술 훈련은 30분간 했는데, 나는 30분 동안 한 동작도 제대로 마스터하지 못했다.
휘두르기 하나도 그렇게 복잡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다시 체력 훈련, 검술, 체력 훈련, 검술.
듣기만 해도 인간은 소화할 수 없는 스케줄이었다.
자그마치 6시간이나 쉬지 않고 운동을 했다.
아직 F급 키퍼인 내가 그걸 소화할 수 있었던 건, 케이라가 가져온 포션 덕분이었다.
“트롤의 피로 만든 스태미나 포션이야. 급하게 만들어서 효과는 떨어지겠지만, 이 정도는 괜찮겠지.”
케이라는 포션도 만들 줄 알았던 것이다.
대체 못하는 게 뭘까?
효과가 떨어진다던 포션은 단번에 나를 새사람으로 만들었다.
포션만 있다면 하루종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케이라는 포션을 두 번 이상 먹게 하지 않았다.
“더 먹으면 역효과야. 여기까지가 적당해.”
약은 약사에게.
포션은 케이라에게.
“그리고 이거.”
케이라가 주먹만 한 크기의 푸른 보석을 건넸다.
“이건?”
“B급 마정석. 창고에서 꺼내왔지.”
B급 마정석.
저번에 고한결이 말한 그 마정석이다.
그의 말대로 영롱함이 F급 마정석과는 차원이 달랐다.
진짜 마정석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들고 있으면 몸 안의 마나가 서서히 회복될 거야. 이제 슬슬 없을 테니까.”
족집게다!
안 그래도 마나 부족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운동하는데 왜 마나 부족이냐고?
나는 1시간 마다 엘레나에게 마나와 마력을 전달해야만 했다.
안 그래도 마나가 쥐꼬리만한 나인데, 이걸 넘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거기에 몸을 혹사시키는 운동까지.
진짜로 쉬고 싶다.
그런데...
“저희는 가볼게요. 엘레나님은 시간 될 때마다 제 방으로 충전하러 오세요.”
“(...네.)”
케이라는 나를 재울 생각이 없나 보다.
또 잠재력 키우기를 해야겠지.
이러다 고개 숙인 남자가 되는 건 아닐까?
잠시 뒤, 걱정은 기우로 밝혀졌다.
케이라는 나를 침대에 눕힌 뒤, 자기도 옆에 착하고 달라 붙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바로 할 것 같더니?”
“내 물건의 한계에 대해서는 내가 더 잘 알아. 지금은 쉬어야 해. 대신 이렇게 할 거야.”
그녀의 손에서부터 따뜻한 기운이 내게로 전달 됐다.
그녀의 마나다.
그녀의 마나는 내 심장 주변을 돌며, 내 마나와 이리저리 얽혔다.
후웅.
신기한 느낌이다.
간지럽고, 따뜻하고, 한 편으로 차갑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만 해도 작게나마 오르긴 할 거야. 이 경우에는 나는 안 오르고, 너만 오르겠지만.”
“흐읍, 그런데, 이게... 아흑... 안 하는 거 맞아?”
케이라의 마나는 날 흥분시켰다.
다른 사람의 마나라는 게, 이렇게나 자극적인 줄은 몰랐다.
내 분신이 금방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하긴 할 거야.”
“그럼 지금...”
자세를 바꿔 케이라 위에 올라갔다.
하지만 케이라가 내 입을 막았다.
“기다려. 엘레나는 얼마나 참았겠어?”
“응?”
“엘레나도 비슷하게 느낄 거야. 그걸 1시간 마다 반복했지.”
뭐? 뭐라고?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 번씩 신음을 들어서 기분이 이상한가보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흥분되는 거였을 줄이야.
이걸 대체 어떻게 참은 거지?
“그러니까 너도 좀 참아 봐. 네 마음 가는 대로 하다간, 금방 체력, 아니 영혼이 박살날 거니까. 이건 훈련이야. 사랑을 나누는 게 아니라.”
‘이건 훈련이야.’
케이라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그러고 보면, 케이라의 계곡도 어느새 젖어 있다.
그녀도 참고 있는 것이다.
평소라면 분명 먼저 달려들어 나를 쓰러트렸을 성욕 몬스터가.
“...알겠어.”
나는 다시 천장을 보고 누웠다.
내 심장 주변을 오가는 케이라의 마나는 그 어떤 전희나 애무보다 자극적이었고, 그 어떤 전희나 애무가 그렇듯 나를 시원하게 해주지 못했다.
...힘든 시간이 될 것 같다.
꼭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