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chapter 5. 엘레나 루
* * *
25.
한바탕 열락이 지나간 후, 나와 케이라는 침대 위에서 몸을 포개고 있었다.
스륵스륵.
케이라의 손가락이 내 젖꼭지 주위를 빙글빙글 돈다.
간지럽다.
이건 또 해달라는 이야기다.
방금 그렇게 당해놓고, 체력도 좋지.
체력 스탯은 분명 같은데, 왜 이런 차이가 날까?
역시 남자가 기를 빨리는 건가.
스윽스윽.
가슴을 간지럽히다 못해, 허벅지가 엉켜 온다.
아, 진짜, 이래서 인기 많은 남자는 안 된다니까.
고개를 살짝 돌리니, 케이라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촉촉한 입술을 맛보려 고개를 천천히 내렸다.
그에따라 그녀의 몸도 약간 올라왔다.
그렇게 서로의 입술이 마주치려고 할 때, 그 사이를 가로막듯 메시지가 떴다.
“어? 잠깐만.”
내가 그녀를 살짝 밀어내자,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뜬다.
반투명한 메시지창 너머에 있는 그녀의 화난 표정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귀엽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이 있다.
[이세계체류계약의 숙련도가 ‘입문’에서 ‘숙련’으로 상향됩니다.]
[이제 능력을 빌려올 때, 조금 더 원본에 가까운 능력을 빌려올 수 있습니다.]
[이제 계약을 통해 이세계의 기운과 접촉할 때마다 신체 잠재력이 미약하게 상승합니다.]
[그동안 축적된 차원 아르케니아의 기운을 흡수합니다. 잠재력이 올라갑니다.]
[11/15 > 11/16]
이게 머선일이고.
“너, 지금 이게 무슨 짓이... 읍.”
일단 화난 케이라의 입을 입으로 막았다.
그러니 그녀가 언제 화났냐는 듯 내 혀를 맞아준다.
그렇게 약간 그녀를 진정시킨 다음에, 다시 그녀를 떼어냈다.
“또... 이제 내가...”
“아니, 멈춰. 그런 거 아니니까 그만. 지금 내게 새로운 변화가 생겼거든? 알아보겠어?”
“...응?”
케이라의 시선이 내 얼굴과 목, 가슴과 거시기까지 훑는다.
“그런 거 없는데?”
“확신해?”
“응, 확신해. 너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또 반할 뻔했다.
저 말은 진심일 것이다.
그녀는 거짓으로 저런 확신을 얘기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리고 저 말은 말 그대로, 나를 관찰, 연구한 후 데이터가 쌓여서 나온 것일 게 틀림없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연구자니까.
음... 이건 좀 깰지도? 내가 실험 대상인 거잖아?
“방금 이세계체류계약의 숙련도가 올랐어.”
“...지금? 왜?”
“이거 때문인 거 같아.”
난 숙련도가 오르고 개방된 새로운 기능에 대해 말해줬다.
“숙련도가 올랐으니, 더 좋은 마법을 쓰는 건 당연한 거야. 그리고 잠재력이 오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야.”
“그래?”
“다른 차원의 기운과 접촉하면서 너는 늘 새로운 자극을 받고 있는 거니까. 너의 그릇이 확장되는 게 당연해.”
“그럼 이런 계약이 없어도 잠재력이 상승하는 수도 있어?”
“아마도. 아르케니아에서 그런 연구 결과를 본 것 같기도 하고...”
케이라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녀의 눈동자가 좌에서 우로 신속하게 움직이는 걸 보니, 뭘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그녀도 메시지가 뜬 모양이다.
“...나도 올랐어.”
“뭐? 진짜?”
대박. 진짜 대박.
내 잠재력이 오르면서, 그녀도 혹시 오르지 않을까 기대는 했다.
무협지에 이런 거 많이 나오니까.
양기와 음기의 조화로 어쩌구 저쩌구.
그런데 진짜 그렇게 될 줄이야.
그리고 그녀의 잠재력 상승은 내 잠재력 상승과는 의미가 다르다.
“잠재력이 50이 됐어. 이제 마스터급 마법사가 될 수도 있어.”
“와! 잠재력 50이면, S급 키퍼라는 거잖아!”
레벨 50.
S급 키퍼의 최저 조건이다.
아르케니아 기준으로는 마스터급의 최저 조건이고.
케이라는 방금 그곳으로 갈 수 있는 티켓을 끊었다.
도착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또다른 이야기지만.
“축하해, 케이라. 잘 됐다.”
“다 너 덕분이야. 고마워, 정민아.”
그녀가 싱그러운 미소를 짓는다.
저렇게 웃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관계를 가질 때나 새로운 물건에 관심 가질 때 외에는 표정변화도 잘 없는 그녀니까.
미소가 정말로 보기 좋다.
보는 나도 같이 싱그러워지는 미소다.
“그러니까 또 하자.”
“어?”
그녀가 내 위로 올라탔다.
언제 봐도 예쁜 얼굴에 다른 종류의 미소가 걸렸다.
누구 하나 잡아먹어도 이상하지 않을 고혹적인 미소.
“계약에서 말하는 접촉이 뭔지 알아?”
“설마...”
“그게 맞아. 섹스야말로 마력이 탄생하는 곳이지. 서로 다른 차원의 기운이 섞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야.”
뭐,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다.
음과 양의 조화를 논하려면 이거 말고 또 다른 방법이 없잖아?
하지만 살짝 긴장 된다.
명분까지 생긴 케이라의 성욕은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 같으니까.
“아니, 그래도 오늘은... 어?”
“왜? 또야?”
오늘 몇 번이고 반복되는 같은 반응에 케이라도 뭔지 단숨에 눈치 챘다.
이번에도 메시지가 떴다.
“응, 또야.”
“이번에 또 뭔데?”
[새로운 소환게이트가 준비되었습니다.]
드디어라고 할까.
첫 번째 쿨타임이 끝났다.
“소환게이트를 열 수 있대.”
“...”
케이라의 표정이 굳었다.
소환게이트란 말에 어디까지 상상했는지 짐작은 간다.
게이트 오픈, 새로운 이세계인, 계약을 위한 섹스, 버려지는 케이라.
버려지는 케이라는 좀 너무 간 상상이지만, 그녀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하곤 하니까.
은근히 자존감이 약한 타입이다.
“걱정 마. 안 그럴 거니까.”
“...괜찮아. 난 아르케니아 인이니까. 널 독점하지 않아도 돼.”
“그러면서 소연이는 왜 그렇게 견제했는데?”
“독점할 수 있는데 독점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잖아?”
맞는 말이다.
아르케니아에 일부다처제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사는 건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일부의 권력자가 그렇게 살 뿐이다.
케이라도 날 독점하고 싶을 거다.
그리고 나는...
“내 마력과 마나가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는 소환하지 않을 거야.”
그 마음에 답해주고 싶다.
“...말만?”
“아니지!”
나는 케이라를 끌어당겨 키스를 시작했다.
한계일 것 같았던 분신이 다시 한 번 부풀어 오른다.
오늘 진짜 칭찬한다.
자, 가보자.
이러다 죽는 한이 있어도 복상사면 행복... 어?
촤아악!
피가 내 얼굴로 쏟아졌다.
케이라의 가슴에서 나오는 피였다.
뭐야, 뭐야, 대체 뭔데!
기억나는 건 그녀가 내 몸을 밀친 것 뿐이다.
“피, 쿨럭.”
그녀가 입에서 피를 토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를 안고 침대 아래로 내려갔다.
핑, 푹.
무언가가 창문을 관통하고, 침대에 박혔다.
그 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뭔지 알 것 같았다.
총이다.
그것도 저격이야.
어디지? 대체 어디서?
하지만 안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도 없잖아.
일단 피해야...
그녀를 데리고 벽으로 붙었다.
핑, 핑.
벽을 때리는 총알을 소리가 들렸다.
다행이다. 일단 한숨 돌렸나.
“쿨럭.”
돌리기는 개뿔.
케이라는 입과 가슴에서 동시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양손으로 가슴을 막아 봐도, 피는 멈출 생각을 안 한다.
“케이라! 정신차려! 케이라!”
“쿨럭, 조, 우욱.”
그녀가 손을 벌벌 떨면서 내 등 뒤, 벽 쪽을 가리켰다.
왜?
빠르게 날아오는 마나 덩어리였다.
피할 속도와 거리는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내 몸으로 덮었다.
펑!
폭발을 크지 않았다.
타격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벽이 뚫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그녀는 아마도 저격수의 시야에 노출되었을 것이다.
“안 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그녀를 끌어안고, 총알이 두 사람을 다 관통하지 않기를 바랄 뿐.
우웅.
무력한 나 대신에 그녀가 움직였다.
푸른 마력이 반구형태로 나와 그녀를 감쌌다.
팅!
총알은 푸른 마력에 맞고 튕겨 나갔다.
팅! 팅!
두 발이 더 날아왔지만, 이번에도 팅겨나갔다.
푸른 마력은 흔들리지 않았다.
“쿨럭, 쿨럭...”
하지만 케이라의 상태는 더 악화되어 갔다.
“케이라... 이런...”
생각하자, 생각해야 해.
뭐라도 해야, 뭐라도...
팅!
총알이 한 발 더 날아왔다.
그리고 그녀가 피를 한웅큼 토해내며 쓰러졌다.
동시에 푸른 마력도 스르르 사라졌다.
나는 그녀를 끌고 멀쩡한 벽 뒤로 다시 숨었다.
제발, 제발, 제발.
내 바람이 통했는지, 더 이상 공격은 없었다.
다행...이라고 할 수 없었다.
공격이 언제 이어질 지도 몰랐고, 케이라는 정신을 잃고 피를 토하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가슴 상처를 막아 봐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일단 119랑 가람에게 연락을 했다.
핸드폰이 근처에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가람은 10분, 119는 3분 뒤에 온다고 했다.
3분 뒤라면 굉장히 빠른 거다.
하지만 케이라는 그 전에 죽을 것 같았다.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방법이, 방법이 있을 거야.
마법은 도움이 안 됐다.
그녀는 회복 마법을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
[새로운 소환게이트가 준비되었습니다.]
이것 밖에 없다.
소환게이트에서 누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이건 그나마 도박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간다.
결정했으니 지체하지 않는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나으니까.
“게이트 오픈.”
파아앗.
허공에 푸른 선이 나타났다.
선은 좌우로 벌려지며, 푸른 물결이 됐다.
나는 푸른 물결 속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무언가 만져졌고, 바로 끄집어 냈다.
쿵.
철과 원룸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게이트 밖으로 나온 건 하얀색 갑옷을 입은 금발의 여자였다.
커다란 방패에 검을 보니, 자연스레 성기사가 연상됐다.
성기사라면!
“치료해 주세요! 급해요! 제발요!”
아직 상황파악도 안 된 성기사에게 소리치며,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케이라를 가리켰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
젠장할.
아직 계약 체결 전이기 때문에 말이 안 통했다.
하지만 계약을 체결할 시간은 없었다.
통역 마법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럴 시간도 모자랐다.
이러는 와중에도 케이라는 생사를 오가고 있었으니까.
나는 손짓발짓 해가면서 케이라를 살려달라고 뜻을 전했다.
성기사잖아?
보면 알 거 아니야.
내가 뭘 원하는지.
내 간절함을 보이기 위해
무릎 꿇고 성기사에게 머리를 박은 후, 108배를 하듯 손바닥을 위로 들어 보였다.
“****!”
내 간절함이 통한 걸까.
성기사가 케이라에게 다가왔다.
케이라 앞에 앉은 성기사가 케이라의 가슴에 손을 댔다.
붉은 피가 성기사의 갑옷을 물들였다.
“****.”
성기사는 다른 한 손으로 가슴의 별 모양 목걸이를 쥐고는 무언가 말했다.
우우웅.
흰 빛이 목걸이에서부터 뻗어 나와, 성기사의 팔을 지나 케이라의 가슴에 도달했다.
빛은 차츰 케이라의 전신을 감쌌다.
“****!”
성기사가 뭐라고 외치자, 빛이 강해졌다.
파아앗.
눈이 부실 정도로 강한 빛은 이내 사라졌다.
그리고 거기엔 피가 멎은 케이라가 누워 있었다.
“케이라!”
나는 케이라를 살폈다.
숨은 안정적이었고, 상처는 봉합된 상태였다.
완전히 나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고비는 넘긴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나는 성기사의 피 묻은 손을 잡고 허리를 숙였다.
“****.”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성기사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성기사의 얼굴에는 비 오듯 땀이 흐르고 있었다.
거의 죽어가는 사람을 살렸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나는 침대를 가리켰고, 성기사가 엉거주춤 침대에 앉았다.
“통역 마법을 쓸 거예요.”
성기사가 알아들을 수는 없겠지만, 나는 두 손을 들고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마력으로 마나를 모아 마법을 시전 했다.
잘 된 걸까?
“...들리나요?”
“(들립니다.)”
가쁜 숨을 내쉬는 와중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단단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성기사 답달까.
“케이라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않고 꼭 갚겠습니다.”
“(신을 따르는 자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보다 이곳은 어디죠?)”
오, 신을 따르는 자.
진짜 성기사다.
무슨 신을 모시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오늘부터 그 신을 모셔야겠다.
이렇게 정확한 타이밍에 구세주를 보내 주시다니.
“이곳은 지구. 당신의 입장에서는 이세계입니다.”
“(...이세계?)”
두 번째 이세계인과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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