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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22화 (22/137)

〈 22화 〉 chapter 4. GGC

* * *

22.

“어서오세요.”

집무실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김나리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미인의 환한 미소를 보니 내 얼굴에도 절로 미소가 피어난다.

“동생 분 소식은 들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정민씨께서 수고해준 덕분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김나리가 내게 허리를 숙였다.

저 인사만 벌써 세 번째인가?

좋은 사람이다.

이 정도 규모의 크루 수장이면 거들먹거릴 만도 한데, 배려가 몸에 배여 있는 듯했다.

“저희 크루에 들어오고 싶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일로 정민씨에게 가산점을 드릴 순 있지만, 이번 일로 크루에 들어오기엔... 정민씨는 조금 부족합니다. 최소한 C급 키퍼가 되고 난 후 들어오시는 걸 추천합니다.”

약간의 대화가 오간 뒤, 김나리가 정중하게 말했다.

아직 가람이 ‘마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상태인 것 같았다.

조금 놀랐다.

나는 집무실로 올라오라기에 마법사인걸 알고 부르는 줄 알았다.

그런데 김나리는 나를 여전히 귀가 좋은 F급 키퍼인 줄 알고 있고, 그럼에도 내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주고 있다.

진짜 이 모든 게 컨셉이라면, 그냥 쿨하게 속아줘야 할 정도다.

가람을 슬쩍 보니, 꽤나 자랑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인정한다.

이정도 인품의 수장이면, 저런 미소도 인정이지.

“제가 그저 그런 F급 키퍼라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제가 ‘마법사’라면 어떻습니까?”

“...네?”

동생 일 제외하고는 계속 흐트러지지 않던 그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여드리는 게 빠르겠죠.”

화르륵.

샤아아.

파앗.

나는 차례로 미니 파이어볼, 아이스 애로우, 라이트를 만들어 보였다.

새로운 마법을 만들 때마다, 김나리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마지막엔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리씨?”

“아... 죄송합니다. 이런 추태를...”

김나리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저렇게 바로 아무렇지 않은 듯 제정비가 가능하다니, 저 사람의 각성 능력은 저게 아닐까?

“어떤가요? 저를 크루에 받으실 의향이 있나요?”

“물론입니다.”

그녀의 대답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녀라면 누구보다 내 가치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게이트 빨이지만, 아무나 크루를 이 정도로 키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정체불명의 키퍼와 함께 크루에 들어가도요?”

“음... 저한테도 비밀인가요?”

“아직은요.”

“그러면 괜찮아요. 언젠가 알려주신다고 한다면, 그 부분을 제가 더 빠르게 당길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내가 알려주지 않았지만, 내가 뭘 원하는지 다 아는 눈치다.

저 정도 머리면, 범인을 찾는 방법도 알지 않을까?

아래 커피숍에서 나와 케이라, 가람이 머리를 써 봤지만,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수장님.”

“저야말로요. 정민씨.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사양말고 말씀해 주세요. 수장된 자로서 성심성의껏 돕겠습니다.”

딱 좋은 타이밍이다.

“첫날부터 죄송하지만, 하나 부탁드려도 될까요?”

“...뭐죠?”

아무리 그래도 첫날부터 이러는 사람은 없었을 테지.

김나리가 살짝 당황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내 일이 아니라, 당신 일이라고.

“동생 분의 일, 범인이 따로 있습니다.”

“...뭐라고요?”

그날, 나는 악귀의 얼굴을 보았다.

내 마법에 멍했던 거나, 동생 걱정에 슬픈 표정을 지었던 건 김나리의 진심이 아니었다.

이게 ‘진짜’였다.

+++

[선배님, 제게 너무 소홀하신 거 아니에요?]

소연이다.

“아니, 뭐가. 어제도 봤잖아.”

소연은 내 비밀을 다 꿰고 있는 사람이다.

소홀히 할래야 할 수가 없다.

소연이 갑이고, 내가 을이니까.

[그건 선배를 본 게 아니라 케이라 언니를 본 거잖아요!]

케이라와 소연이 만난 지도 벌써 3주가 흘렀다.

그 사이 두 사람은 굉장히 친해졌다.

있을 수 없는 전개라고 생각했는데, 언니 동생 사이가 됐다.

좋아하는 사람의 여자 친구 비슷한 사람이랑 친해질 수 있나?

마음을 안 밝혔으면 모를까, 이미 서로 다 까발린 상태인데?

요즘 애들의 사고방식이란...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다.

물론 그 모든 걸 뛰어넘게 만드는 케이라의 매력 때문이겠지만.

“나도 겸사겸사 봤으니까 됐잖아.”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저도 게이트 들어가고 싶다고요. 게이트 말이에요. 게이트!]

“아... 그거...”

요즘은 소연이와 게이트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크루에 들어가고 난 뒤부터다.

난 크루에 들어가고부터 크루 사람들의 게이트에 들어갔다.

그럼 자연스럽게 세 명의 인원이 함께 움직인다.

나, 케이라, 그리고 소개역인 가람까지.

거기에 크루원도 아닌 소연을 낄 순 없었다.

나중에, 크루원들 사이에 내가 좀 알려지면 어떻게든 같이 할 수 있겠지만.

“그건 네가 실력이 없어서 그런 거잖아. 그럼 빨리 C급이라도 달아 봐. 그러면 내가 어떻게든 크루에 넣어줄게.”

[선배도 실력이 없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운 좋게 마법, 아니 그것도 다 언니빨이면서.]

“그럼 네가 케이라 남친하면 되잖아.”

[...할 수 있었으면 벌써 했을 거예요!]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 안타깝구나, 소연아.”

[흥, 빨리 C급 달아서 저도 같이 게이트에 들어갈 거니까요. 그때는 제가 언니 옆에 있을 거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그래, 기대할게.”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끝나고 나니 이게 무슨 통화인가 싶긴 했다.

생각나는 대로 내뱉었는데, 상처를 주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기도 했다.

그래봐야 옆에서 태블릿을 보느라 여념이 없는 케이라를 보면 뭐든 무슨 상관인가 싶다.

“케이라, 게이트에 들어갈 준비는 끝났어?”

“응. 너는?”

“나도 아까 끝났지.”

오늘도 게이트에 들어간다.

바로 김나리의 게이트다.

그리고 김나리의 쌍둥이 동생, 김나연의 복귀 날이기도 하다.

“케이라, 범인을 잡을 준비는 됐어?”

케이라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김나연을 중독시킨 범인을 잡는 날이기도 했다.

+++

‘범인은 다시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크루에 들어가기로 한 날, 김나리가 한 말이다.

맞는 말이다.

김나연은 결국 살아났으니까.

범인은 실패한 셈이다.

그러니 다시 도전하겠지.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할 거였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선택지는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범인은 이미 호랑이 등에 탄 거나 마찬가지다.

발을 내딛었으니, 도망갈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김나연이 회복하고 다시 케이트에 나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 외에는 따로 방법이 없었다.

의심 가는 사람은 몇 명 있었지만, 증거가 없었다.

현행범으로 잡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이 안에 있습니까?”

가람이 물었다.

그은 우리의 계획을 다 알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가람은 지난 3주 동안 개인적으로 저번 고블린 변이 사건의 범인을 찾았다.

하지만 조금의 단서도 건지지 못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사건의 피해자였던 박재혁 키퍼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다.

가람이 그에게 당분간은 게이트에 들어가지 말라고 조언 했다는데, 그는 조언을 받아들였을까?

“이 안에는 없어요.”

크루 하우스의 강당에는 크루원과 스텝들 수십 명이 들어와 있었다.

내 옆에 서 있던 케이라는 지금 강당 전체를 감시 중이었는데, 그녀에겐 아직 어떤 신호도 없었다.

이 안에는 몬스터의 변이를 일으킬만한 마나중첩체나 그에 준하는 어떤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 이제 몇 명 안 남았는데, 그 안에 있다면...”

“그 안에 없을 수도 있죠. 그런데 있다면요?”

“...파장이 클 것 같습니다.”

가람의 표정이 어두웠다.

안 들어봐도 라디오다.

나중에 온다는 건 크루의 중책이거나 오랜 지인 급일 텐데, 그 중에 한 명이 범인이라면 충격이겠지.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이쯤에서 나오는 게 모두를 위해서 좋을 것 같아요.”

“동의합니다.”

지난 3주 동안 게이트 내 이상 현상은 여러 번 일어났다.

그게 인재인지 아니면 자연현상인지는 알 수 없다.

인재라고 해도 그 범인이 이 사건과 동일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무언가 연관은 있을 것이다.

아니, 있기를 바랐다.

안 그러면 게이트 안정성에 대해서 말이 나올 정도로 사고가 많으니까.

“아, 오시네요.”

가람의 말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강당 입구에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쌍둥이 자매였다.

먼저 들어온 건 GGC의 수장 김나리.

허리까지 내려오는 포니테일을 흔들며 걸어오는 그녀의 포스는 역시 남달랐다.

이어서 들어오는 건 김나리와 똑같이 생긴 김나연.

머리가 단발이 아니었다면 누군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이 생겼다.

얼굴, 키, 몸매에 화장법까지도.

다만 기세가 약간 달랐다.

김나리가 한 자루 검 같다면, 김나연은 대포의 포스가 났다.

김나리가 수장의 카리스마로 선전하고 있지만, 김나연의 재능에서 흘러나오는 후광을 막진 못했다.

김나연은 현 A급 헌터이자, 벌써 S급을 논하는 미친 재능의 여자니까.

“(저기 있어.)”

내가 김나연에게 눈을 돌린 사이에 케이라는 침착하고 빠르게 스캔을 마쳤나 보다.

케리아는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게 아르케니아어로 조용히 이야기했다.

그 언어는 나만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

“(제일 앞에 선 남자의 왼쪽 가슴에서 마법 수식이 느껴져.)”

마법?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낼 뻔했지만, 겨우 참았다.

지금은 적이 쓰는 힘 보다, 적을 빠르게 제압하는 게 중요하니까.

“제일 앞에서 들어오는 사람이... 박창식 키퍼였나요?”

“네, 맞습니다. 설마...”

“네, 그예요. 왼쪽 가슴에 무얼 숨기고 있어요.”

“그런...”

가람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런 일을 할 거라고는 믿기지 않는 인물인 모양이었다.

“...선택은 수장의 몫입니다. 알고 계시죠?”

“알고 있습니다.”

가람이 김나리에게 다가갔다.

박창식이라는 크루원은 아무것도 모른 채 단상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가람과 김나리, 김나연은 단상 아래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잠시 뒤, 김나연의 사자후가 강당을 때렸다.

“야! 박창식!”

나에게 향한 것이 아님에도 귀가 찢어질 듯 아팠다.

나는 급히 귀를 막았다.

나 뿐 아니라, 강당의 모두가 귀를 막았다.

“크윽.”

모두가 이지경이니, 박창식이 무사할 리 없었다.

그의 귀에서는 피가 흘렀다.

자연히 그의 자세도 무너졌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대체 어떻게!”

김나연이 단상 위로 올라가 박창식을 두들겨 팼다.

그는 일방적으로 당했다.

내가 알기로 그는 B급 중에서도 강한 축에 속했지만, 선빵을 당하니 방법이 없었다.

이게 김나연의 키퍼 등급이 쑥쑥 오른 이유였다.

그녀는 소리를 다룰 줄 알았다.

찌지직.

김나연이 박창식의 왼쪽 가슴팍 수트를 뜯어냈다.

그녀는 거기에서 검은색 바탕에 빨간색으로 기하학적인 모양이 그려져 있는 종이를 꺼냈다.

딱 봐도 불길한 느낌이 드는 종이였다.

“와... 진짜네. 야 이 개새야. 이거 설명해 봐! 설명해 보라고!”

강당은 아까부터 고요했다.

배신감에 가득찬 목소리의 힘이었다.

모두 숨죽인 채, 박창식의 대답을 기다렸다.

“큭, 미...안...”

“개새끼.”

쾅.

김나연의 주먹이 박창식의 얼굴 옆을 때렸다.

그런데도 박창식은 기절했다.

“(생각보다 쉽게 잡혔네.)”

케이라의 말대로다.

범인이 좀 더 발뺌할 줄 알았는데. 바로 시인해 버렸다.

하지만 김나리, 김나연, 가람에 크루원들 대부분 표정이 썩은 걸 보면, ‘쉽다’고만은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씁쓸한 결말인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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