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chapter 4. GGC
* * *
21.
하루 종일 수색을 했지만 진척은 없었다.
두더지만 수십 마리 잡았을 뿐이었다.
두더지가 지나다니는 통로를 이용할 수 있을까도 싶었지만, 두더지는 서식지에서 바로 올라오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올라와서 소용이 없었다.
“오늘은 이만 쉬겠습니다.”
일행은 어느 정도 안전하다고 알려진 곳으로 이동해 텐트를 폈다.
들어올 땐, 두더지 찾는 게 뭐가 어려울까 싶었다.
나에겐 마법이 있으니까.
하지만 독 두더지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카운트 다운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하루 이틀이면 게이트 밖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김나리의 여동생은 죽음을 맞이한다.
“뭔가 이상해.”
“응? 뭐가?”
케이라는 남자로 여겨지고 있어서 내 텐트에 함께 들어와 있다.
그렇다고 텐트에서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든다.
“이 환경에서는 독 두더지가 나올 수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음성 변조 마법을 끈 케이라의 목소리가 텐트를 채웠다.
약간 허스키하고 이성적인 느낌이 드는 목소리.
하루 못 들었다고 굉장히 그리웠다.
“이 두더지는 내가 아는 종이야. 내 세계에서는 ‘모이키’라고 불러.”
“모이키?”
신기한 발음이다.
어떻게 붙여진 이름일까?
“아르케니아 공용어로 두더지란 뜻이야.”
갑자기 김이 팍 샌다. 이세계도 별 거 없네.
“거기도 여기랑 비슷하구나?”
“같은 사람이니까.”
“하긴. 아무튼, 그래서?”
“모이키는 마나중첩체와 접촉하면 변이해. 독 두더지, 내 세계 언어로 네로 모이키는 그 중 제일 흔한 변이체야.”
변이? 아니 진화인가?
무슨 포켓몬스터야?
“마나중첩체는 뭔데?”
“대량의 마나가 중첩되어 있는 것. 높은 등급의 마정석, 10년 이상 살아 있는 마나 식물, 혹은 마나가 고여 흐르지 못하게 된 지역 같은 걸 마나중첩체라고 불러.
“그러니까 네 말은, 이 게이트 내에 마나중첩체? 그게 없다는 거지?”
“오늘 내가 본 바로는 그래.”
“마정석은 몬스터 몸 안에 있으니까 안 될 거고. 마나 식물은 뭐야? 이 게이트는 그래도 식물로 유명한 곳인데.”
“산삼 같은 게 마나 식물이야. 주변에는 내가 아는 마나 식물이 없어. 이 게이트에서 유명하다는 식물은 약초로 쓰기에 좋은 거지. 마나를 모으는 식물은 아니야.”
“그럼 어떡해? 우리는 독 두더지를 찾아야 하는데. 아니, 애초에 독 두더지가 나올 수 없는 환경에서 왜 나왔데?”
“그게 이상하다는 거야. 누군가 손을 쓰지 않는 이상...”
그때, 내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게 있었다.
그녀도 나와 같은 걸 생각했나 보다.
우리는 동시에 말했다.
“공간 이동 마법!”
“빌어먹을 고블린!”
참고로 ‘빌어먹을’이라고 한 건 케이라다.
내가 빤히 쳐다보자, 그녀가 살짝 당황한 듯 얼굴을 붉힌다.
“큼... 아마 그 고블린도 마나중첩체로 인해 변이 한 걸 거야. 공간 마법을 쓸 수 있는 고블린은 애초에 격이 다르니까.”
“그럼 누가 마정석 같은 걸로 몬스터를 강화 시키고 있다는 건가?”
“그건 모르는 일이야. 제일 쉬운 건 마정석이겠지만, 사람이 개입하고 있는 이상 수는 많아. 몬스터를 강제 변이 시키는 건 아주 흔한 암살 방법이야.”
암살.
일반인일 때도, 키퍼가 된 지금까지도 별로 생각해보지 않은 단어다.
내가 누구를 죽일 일도, 죽임을 당할 일도 없었으니까.
순간 오싹해졌다.
이 게이트 내에 다른 사람의 목숨을 노리는 암살자가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
이래서 게이트에 들어오기 전에 신분 확인을 철저히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신뢰가 있는 사람들, 크루원들이랑만 들어오는 거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가 벌어진다.
게이트 내에서는 게이트 주인 말고는 모두 안전할 수 없다.
심지어는 게이트 주인도 위험할 수 있다.
무차별 살인, 자살폭탄테러 같은 것도 있으니까.
“누구지? 그 고블린 게이트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사람은... 가람? 가람밖에 없는데?”
“그는 아닐 거야. 그 전에 두 사건의 범인이 같은 사람이라는 보장도 없어. 방금은 같은 사람이 범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우연의 일치일 확률이 더 높아. 이건 흔한 방법이야.”
그럴지도 모른다.
적어도 케이라의 세계에서는.
하지만 지구에서는 아니다.
“나는 같은 사람 범인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 이곳에서는 흔한 방법이 아니니까.”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가람은 아닐 거야.”
“그건 그렇겠지. 날짜를 확실히 따져봐야겠지만, 김나리의 여동생이 중독된 시점은 나와 가람이 고블린 게이트에 들어가 있을 때인 거 같으니까.”
애초에 김나리의 동생을 중독시킨 범인이 지금 이 게이트에 들어와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범인은 이미 목표를 달성했으니까.
지금은 성공을 마음껏 즐기고 있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재수 없지만, 어쨌든 범인은 나중이다.
지금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접근 방법이 틀렸다는 결론이 나왔으니, 다른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했다.
“그럼 이제 진짜 어떡해? 그 독 두더지는 이미 죽였다던데. 이곳에 다른 독 두더지는 없다는 이야기잖아?”
독 두더지는 그때가 처음 나온 거고, 그때 바로 죽었다.
어떻게 보면 그게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다.
독 두더지의 시체는 게이트 밖으로 가지고 나왔지만, 시체의 독은 효능을 잃었고, 그 탓에 제대로 된 해독제를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게이트로 들어와 독 두더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살아 있는 독 두더지에게서 독을 추출해내기 위해서.
“만들면 돼.”
“응? 어떻게?”
“마법이 있으니까.”
진짜 마법사는 저런 건가.
정말로 믿음직스럽다.
역시 두더지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나에겐 마법만이 있는 게 아니라, 케이라도 있으니까.
+++
다음날.
“다른 서식지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가능한가요?”
김나리가 키퍼들에게 물었다.
“가능할 거예요. 이 정도로 큰 게이트니까 다른 곳에도 서식지가 있겠죠. 다만 좀 멀리 떨어져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근처의 두더지들은 전부 어제 간 그 서식지 출신인 거 같아요.”
리아가 대표로 답했고, 다른 두 키퍼도 거기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서식지를 찾아보도록 하죠. 하루를 머물러도 독 두더지를 못 봤으니, 이곳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김나리의 결정은 빨랐다.
초조함이 보였다.
이곳에 독 두더지가 없다고 판단하는 건 아직 이른 감이 있고, 다른 곳에 서식지가 있을 거라는 것도 확신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이동하는 결정을 내린 건, 이제 진짜 시간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내로 독 두더지를 찾지 못하면, 독 두더지를 찾아 게이트를 나선다 해도 동생의 생명을 장담할 수 없다.
“서쪽으로 가겠습니다. 서쪽이 그나마 탐색이 덜 된 지역이니까요.”
일행은 서쪽으로 향했다.
어제도 그랬지만, 두더지는 움직이기 시작하자마자 바로 나타났다.
“두더지입니다!”
“왼쪽에서 두더지가 와요!”
“두더지! 조심하세요!”
이미 수십 번을 들어 익숙해진 리아의 경고에 따라, 키퍼들은 기계적으로 두더지를 처리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거기에 독 두더지는 없었다.
그렇게 네 번쯤 두더지 무리를 만났다.
그리고 다섯 번째 무리를 만났을 때, 드디어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거기! 조심해요!”
리아가 케이라를 가리켰다.
두더지가 케이라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말이었다.
어제였으면, 케이라는 자리를 비켜주었을 것이다.
그러면 A급 키퍼가 와서 두더지를 단숨에 잡는다.
“앜!”
하지만 케이라는 자리를 비켜주는 대신에 그 자리에 넘어졌다.
사전에 계획을 몰랐다면, 나도 깜짝 놀랄만한 절묘한 연기였다.
“안 돼!”
그래서 나는 0.5초 정도 반응이 늦고 말았다.
저게 연기인 걸 알고 있으니, 느긋해지고 말았던 것이다.
아무튼, 내 연기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두더지가 땅을 뚫고 나왔다.
휙.
케이라는 이번에도 절묘하게 두더지의 공격을 피했다.
두더지가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웅.
동시에 그녀는 주변 마나를 움직여 두더지를 감쌌다.
이대로 그냥 두면 마나가 서서히 두더지 안으로 스며들며 변이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그래서 케이라는 마력을 대량으로 쓴다고 했다.
그녀는 마력을 이용, 마나를 두더지의 몸 안으로 우겨 넣었다.
키응.
쿵.
두더지가 공중에서 경직되더니, 자신이 나온 굴로 다시 떨어졌다.
약간 부자연스러워 보였지만, 이걸로 태클 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 나온 두더지는 4마리로 시선도 분산돼 있고.
무엇보다 이 과정을 전부 아는 존재는 나 밖에 없었다.
마나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리아도 어느 정도는 눈치 챘을 수 있겠지만...
‘친화’, ‘마나’ 스탯 없이는 마나를 제대로 느낄 수 없다.
키앙!
두더지는 거의 바로 다시 올라왔다.
외형이 약간 변했다.
복슬복슬한 갈색 턱 사이에 녹색 브릿지가 나 있었다.
“저기 다른 놈...”
“독 냄새예요!”
내가 제일 먼저 외치려고 했는데, 윤미선의 코가 빨랐다.
그녀는 정확히 변이한 두더지를 가리켰다.
그리고 김나리가 그걸 바로 캐치했다.
“생포해야 합니다! 반드시요!”
김나리의 목소리가 들 떠 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니다.
그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
독 두더지는 바로 생포했고, 우리는 두더지에게서 독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바로 게이트 밖으로 나왔고, 독은 병원에 전달 됐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2시간 쯤 걸린다고 했다.
2시간은 금방 갔다.
GGC 크루 하우스에서 샤워하고 잠깐 티타임을 가지고 있으니까, 가람이 와서 소식을 전해줬다.
“해독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다행이네요. 동생분 건강은요?”
“1달은 요양을 해야겠지만,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키퍼 일도 무리가 없고요.”
“진짜 잘 됐네요.”
“다 정민씨 덕분입니다. 마스터께서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뭘 했다고...”
그런데 진짜 한 게 없다.
원래는 내가 마법으로 독 두더지를 찾는 걸 보여주는 거였는데, 일이 이상하게 됐다.
이러면 내 능력을 보여주고 크루에 들어간다는 계획이 틀어진다.
“다른 분들은 다 가셨습니까?”
“네. 다들 일이 있다고 먼저 가시더라고요.”
리아는 대기업 크루 소속이었고, 다른 두 사람도 역시 크루에 소속 되어 있었다.
아직 크루가 없는 나만이 뭔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여... 는 아니고, 김나리의 동생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남아 있었다.
“보시기에 저희 크루는 어떻습니까?”
“좋은 곳이네요.”
하나만 빼면 말이다.
암살 시도한 사람이 이 안에 있다.
사실 이걸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아까부터 고민하고 있었다.
이야기하려면 내가 마법사인 걸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래도 될까?
적어도 크루에 들어가야 이야기 할 만 한 것 같은데.
“원하신다면 함께 하시겠습니까?”
“크루 수장의 뜻인가요?”
“아니요. 제 의견입니다. 정민씨의 능력을 생각하면, 크루에 들어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저희 크루 정도면 딱 적당할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곳은 적당히 규모가 있고, 적당한 자유가 있는 크루다.
“능력을 밝히는 조건이겠죠?”
“물론이죠. 그래야 제가 강하게 추천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식으로 역제의를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게 다 내가 마법사인 걸 알고 하는 소리긴 하지만.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나는 가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민을 길게 하진 않았다.
어차피 크루에 들어가려 온 거니까.
가람이 내 손을 잡았다.
“환영합니다. 다들 좋아하겠어요.”
마법사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아마 몇 명만 빼고.
누군지는 모르지만 범인은 이제 날 싫어하게 될 테니까.
크루에 들어가게 됐으니, 범인을 찾아야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