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chapter 4. G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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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들어가겠습니다.”
김나리의 게이트에 들어간 인원은 총 11명.
게이트 주인 김나리, 가람을 포함한 전투 인원 5명, 그리고 나와 케이라를 포함한 탐색 인원 5명이다.
그러니까, 나 말고도 3명의 탐색 전문 키퍼가 같이 들어갔다.
3명은 전부 외부 초청인원으로, 원래 유명했던 사람들이었다.
면면을 보면, 김나리가 얼마나 고심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무명의 나를 데리고 들어온 건지도.
먼저 B급 키퍼, 황진영.
이 사람의 능력은 광맥 탐지다.
다른 능력 하나도 없지만, 이것만으로 B급 키퍼에 오른 사람이다.
이번에 할 게 광맥은 아니지만, 그는 땅 속에 있는 것을 찾는데 도가 튼 사람이다.
독 ‘두더지’를 찾아야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
다음은 B급 키퍼, 윤미선.
윤미선의 능력은 코와 관련이 있다.
기본적으로 냄새를 잘 맡는 건 물론이고, 향이 없는 것들의 냄새를 맡기도 했다.
이를 테면 적의 약점을 맡는다든가, 사건 사고의 냄새를 맡는다든가 하는 식이다.
탐지뿐만 아니라 전투에도 요긴하게 쓰이는 능력이다.
정확도나 발동 빈도가 조금만 높았다면 무조건 S급 키퍼가 됐을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평하는 키퍼였다.
김나리는 윤미선이 ‘독’ 두더지의 독 냄새를 맡길 바라는 것 같다.
들어오기 전, 그녀는 김나리의 동생에게서 독 냄새를 맡고 오기도 했다고.
마지막으로 A급 키퍼, 추적자 리아.
뛰어난 외모와 그 이상의 실력, 초거대기업 크루원이라는 후광.
한국에서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TV를 돌리다 보면, 하루에 한 채널쯤은 그녀의 얼굴이 나오게 마련이니까.
그녀는 그 별명처럼 추적에 특화되어 있다.
몬스터는 기본이고, 동물과 식물을 찾는 데도 일가견이 있으며, 현실에서만이 아니라 넷상에서도 추적을 하는 게 그녀의 스킬이다.
윤미선 키퍼의 경우도 그렇지만, 뛰어난 스킬은 단순한 현상을 넘어 개념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물론 모든 건 리아의 스탯이 감각에 몰빵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녀의 스킬이 최대 효율을 발휘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리아의 스탯이 골고루 분포되었으면 어땠을까로 자주 논쟁했다.
그러면 평범한 B급 키퍼가 됐을 거라는 사람과, 육각형의 S급 키퍼가 됐을 거라는 사람들이 싸우는 게 일상이었다.
마지막은 늘 리아가 나서서 싸움을 중재했고.
김나리가 리아에게 바라는 건 명백했다.
독 두꺼비 그 자체를 추적해 달라는 이야기겠지.
A급 키퍼를 급하게 데려오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김나리의 영향력이 보이는 부분이었다.
김나리는 고작해야 C급 키퍼인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나.
이렇게 3사람을 보니, 김나리가 나에게 원하는 게 뭔지 보였다.
그녀는 진짜로 내 ‘귀’에 걸고 있는 것이다.
15m 땅 밑에 있던 사람의 신음소리를 들은 내 귀.
온갖 기구가 돌아가는 10층 빌딩에서 1시간 만에 20마리의 쥐를 잡아낸 내 귀.
내 ‘귀’는 스킬이 아니라 믿음직스럽지는 못하겠지만, 다른 종류의 탐색 소스라는 게 중요했다.
그녀는 나를 팀에 포함시킴으로써 4개의 다른 능력으로 ‘독 두더지’를 쫓을 수 있게 됐다.
괜히 ‘나와 케이라’라는 리스크를 감수한 게 아니었다.
그녀는 동생을 치료할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고 싶었던 것이다.
이건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새삼 아무나 크루 수장을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이 선택이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나도 도울 거다. 내 ‘귀’가 아니라 ‘마법’으로.
“우선 두더지의 서식지로 갈 겁니다.”
가람이 일행의 브리핑을 맡았다.
“사전에 알려드린 것처럼 두더지는 땅에서 갑자기 나타납니다. 항상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주의를 기울여도 막거나 피하는 게 쉽진 않았다.
수장의 동생도 갑자기 튀어나온 두더지에게 발목을 긁혀서 중독됐다.
그래서 이번 일정에서 키퍼들은 발목과 발을 방검복으로 두세 겹으로 감쌌다.
그 전까지는 이런 방어구가 필요가 없었다.
그냥 두더지라면 한두 번 긁히는 것으로 죽음에 이르지 않으니까.
문제가 되는 건 오로지 독 두더지뿐이었는데, 독 두더지는 이제까지 딱 한 번만 나타났다.
바로 수장의 동생이 중독됐을 때.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독 두더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앞서 독 두더지를 찾아 떠났던 2번의 일정은 독 두더지의 꽁무니도 보지 못하고 끝났었다.
“두더지는 B급 몬스터, 독 두더지는 A급 몬스터로 추정됩니다. 탐색 키퍼들은 싸우지 마시고, 전투 인원들에게 맡기길 권장합니다.”
두더지는 강력했다.
이게 앞서 2번의 일정이 성과를 못 거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서식지 주변으로 갈수록 두더지가 많이 나왔는데, 급하게 꾸린 팀으로는 두더지를 다 버티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팀은 강한 사람들로만 구성됐다.
가람을 포함한 전투 인원은 A급 2명에 B급 3명이었다.
이 정도면 웬만한 드레이크도 정면에서 때려잡을 수 있는 전력이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팀은 서서히 서쪽으로 걸었다.
김나리의 게이트는 산악지형이었다.
처음 도착한 곳도 산이고, 갈 곳도 산이고, 탐색이 끝난 곳은 전부 산이었다.
참고로 이 게이트의 크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대충 한반도 이상의 크기를 가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무튼, 그 모든 지형에서 두더지가 나타난다.
그래서 항상 주의해야만 했다.
지금처럼.
“다들 멈추세요! 아래에서 와요!”
가장 먼저 눈치 챈 건 역시나 추적자 리아였다.
그녀가 세 사람을 가리켰다.
“모두 세 마리. 저기, 저기, 저기! 다 조심하세요! 지금 올라올 거예요!”
리아는 정확했다.
리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세 사람이 서 있던 곳에서 사람 머리만한 두더지가 튀어 올라왔다.
“키응?”
동그랗고, 복슬복슬한 것이 겉보기에는 귀여웠다.
“키앙!”
하지만 날카로운 발톱을 보니, 그런 마음이 쏙하고 사라졌다.
“공격!”
게다가 두더지는 빨랐다.
전투 인원의 공격은 세 마리 중 하나만 맞았고, 나머지 둘은 다시 땅으로 사라졌다.
“다시 올라올 겁니다. 전부 대비하세요!”
가람이 상황을 지휘했다.
이전이었다면 그의 말처럼 모두가 긴장해야 했을 것이다.
땅 속의 두더지는 빨랐고,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랐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파티에는 리아가 있다.
감각에 스탯이 몰빵된 자.
그녀는 이번에도 두더지가 튀어나올 곳을 정확하게 짚었다.
“저기, 그리고 저기예요!”
A급 전투 키퍼 두 사람이 각각 한 곳을 맡았다.
어디서 나올지 알고 있는 두더지는 B급이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A급 키퍼들은 한 번에 두더지 둘을 죽였다.
“잠시 정비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정비할 때도 주의해 주세요.”
상황이 일단락되고, 일행은 잠깐 멈췄다.
두더지 시체를 얻었으니 할 일이 있었다.
먼저 리아가 두더지 시체를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어떤가요? 찾을 수 있을 것 같나요?”
김나리의 간절한 목소리에 리아가 웃으면서 답했다.
“물론이죠. 저쪽입니다. 이 친구들은 저쪽에서 온 것 같은데요.”
“저쪽은... 서식지의 반대편이네요.”
“그래요? 하지만 저 쪽에서 온 거 맞는데요.”
“그렇다면 방향을 트는 게 맞을 것 같네요. 저희가 부르는 서식지라고 해봐야 두더지가 많이 나오는 곳에 불과하니까요. 리아씨의 능력이라면, 저쪽이 진짜 서식지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김나리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앞선 2번의 원정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지는 게 반가운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역시 A급 키퍼는 다르군요.”
“뭘요. 여기 계신 분들도 다들 아실 건데요.”
리아가 그렇게 말하자, 다른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독의 냄새는 아직이지만, 이 두더지의 냄새는 저쪽에서 느껴지네요.”
“두더지의 땅굴은 확실히 그쪽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 마리 모두요.”
와... 다른 두 사람도 확실히 전문성이 느껴진다.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어, 그...”
뭐라고 하지?
두더지의 발소리를 익혔다고 할까?
아니면 심장소리?
아니, 그게 말이야? 방구야?
...아니야, 뻔뻔해야 해. 어차피 컨셉이잖아.
하지만 생각할수록 머리가 하얘졌다.
이대로 대충 넘어가도 되는 게 아닐까?
그때, 머릿속에 울림이 전해졌다.
[두더지 땅굴에 한 마리 남아 있다고 해. 지금 저 사람들이 말하는 방향 쪽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어.]
케이라였다.
나는 그녀가 한 말 그대로 내뱉었다.
“...지금 두더지 한 마리가 그 땅굴에서 움직이고 있어요. 그 놈을 따라가면 될 것 같은데요.”
“네?”
주변 사람들이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나는 고작해야 F급 키퍼니까. 내 능력도 탐색과는 관련이 없고.
“그래요?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해야 하나요?”
그래도 김나리는 내 말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미 테스트 완료했으니 확실히 믿는다는 거겠지.
“아니요. 천천히 움직이고 있으니까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어차피 굴이 있으니까 뒤따라가는 건 문제 없어요.”
그리고 의외의 인물이 내 말에 힘을 더했다.
“진짜네요. 한 마리 더 있어요. 한 20m는 떨어져 있는 거 같은데... 어떻게 발견한 거예요?”
리아였다.
잠깐 사이에 확인한 모양이다.
“귀가 얼마나 좋은 거예요? 키퍼가 되기 전에도 그렇게 좋았어요? 감각 스탯이 얼마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갑자기 그녀가 질문을 마구 던진다.
탐색 전문 키퍼로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녀로서도 내 능력이 신기한 모양이다.
나는 순식간에 20m 땅 속 두더지를 발견한 리아의 능력이 더 신기하다.
마법도 아니고 말이다.
“여기서는 좀... 나중에 알려드릴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아... 죄송요. 제가 잠시 흥분했네요.”
어쨌든 리아가 내 말이 맞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의 보는 눈이 또 달라졌다.
이번엔 신기하다, 대단하다 정도의 눈빛인 것 같다.
이것도 부답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내가 발견한 게 아니라, 케이라가 한 일이니까.
나도 빨리 강해지고 싶다.
그런데 잠재력이 8/15 아니, 이제 11/15라 강해질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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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땅 속에서 움직이는 두더지를 쫓아 계속 이동했다.
땅 속의 빈 공간, 그러니까 땅굴을 감지할 수 있는 황진영이 있어서 길을 잃을 걱정은 없었다.
중간 중간 두더지들이 나타나 일행을 방해했지만, 리아의 감각과 A급 키퍼의 강함이 더해지니 방해가 방해 같지 않았다.
그렇게 3시간.
일행은 어느 깊은 산속에 도착했다.
“냄새는 여기가 제일 진해요. 독 냄새는 아직이고요.”
“여기에 흔적이 제일 많이 남아 있네요.”
“땅 속 깊숙이 땅굴이 수십 개 파져 있습니다. 여기가 서식지인 모양이에요.”
키퍼들의 이야기만 들으면 제대로 찾아온 게 맞았다.
하지만 더 진행할 수가 없었다.
두더지의 서식지는 여기에서 100m 아래에 있었으니까.
“...혹시 다른 길은 없나요?”
김나리가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세 키퍼가 고개를 저었다.
그들로서는 방법이 없는 모양이다.
김나리의 고개가 내 쪽으로 향했다.
내게도 딱히 방법은 없었다.
내 마법, ‘트레이스’로는 두더지가 있는 위치만 알 뿐이지, 길을 찾아주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건 저도 잘...”
“그렇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먼저 이 근처를 수색해 보기로 하죠.”
김나리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씁쓸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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