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chapter 4. GGC
* * *
19.
“...”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케이라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다 본 것들 아니야?”
“달라. 저 빌딩도, 저 차도, 지하를 지나가는 지하철의 울림도! 내가 생각했던 거 이상이야.”
그간 집 밖이래 봐야 골목 편의점이 전부였던 케이라.
이렇게 놀라는 게 이해가 가면서도, 새삼 신기하다.
평소에는 늘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조금만 자제해 줬으면 좋겠어.”
나는 케이라에게 가까이 다가가 귓속말로 말했다.
“왜?”
케이라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눈빛이 어느 때답지 않게 초롱초롱하다.
어린아이 같은 이 모습을 막는 게 안타깝긴 한데, 어쩔 수 없다.
“저기 봐.”
나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바들바들 떠는 택시기사님의 어깨가 있었다.
“...어디 아프시대?”
“너 때문이야.”
“내가 왜?”
케이라는 지금 로브를 입고 있었다.
이세계에서 넘어올 때 입고 온 그 로브 맞다.
로브에는 인식 방해 마법이 걸려 있어서, 그녀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완전히 반대의 사람으로 인식된다고 한다.
케이라의 반대면 덩치 큰 남자 정도?
거기에 그녀는 지금 목소리 변조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상황인 줄 아는 내가 듣기에도 불쾌할 정도의 쇳소리가 났다.
기사님이 무서워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덩치 큰 남자가 쇳소리로 짜증을 내고 있으니까.
물론 내용은 감탄사지만, 목소리 톤만 보면 솔직히 싸우자는 것만 같다.
“마법의 효과가 큰 가 봐. 그러니까 조금만 조용히 있어 줘. 서울 구경은 나중에 또 시켜줄게.”
“약속이야.”
케이라가 내게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을 걸다가 깜짝 놀랐다.
“뭐야, 이런 건 언제 배웠대?”
“적응 하려면 문화를 배워야지. 이 정도는 기본이야.”
대단하다.
나는 아직 룬어도 다 못 떼서 힘들어 하고 있는데.
진짜 마법사란 이런 건가.
새끼손가락 걸고 도장까지 찍고 나니 케이라가 조용해졌다.
기사님은 어떤가 하고 앞을 보는데, 백미러로 우리는 보는 기사님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이제 안심하라는 뜻에서 씨익 웃었다.
그런데 기사님이 고개를 획 돌려 버린다.
어깨의 떨림은 더 심해진 듯하다.
뭐야... 왜? 내가 뭐했다고.
“쿡.”
케이라의 나지막한 비웃음이 내 귀에 닿았다.
뭔가 열 받는다.
케이라, 나중에 혼내 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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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C의 크루 하우스는 서울 외곽의 10층 빌딩으로, 10층 전체를 GGC가 쓰고 있었다.
아직 대기업도 아닌데 규모가 상당했다.
“잘 오셨습니다.”
가람이 나와 케이라를 맞아주었다.
“이 분이 말씀하신 그 분인가요?”
“네.”
“정체를 밝히실 수는 없고요?”
“네. 그게 조건입니다.”
가람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이세계인입니다’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가람에게 정체를 밝힐 수 없는 키퍼와 동행하는 조건으로 게이트 원정에 동참하겠다고 했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게이트 내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거기에 정체불명의 키퍼를 끼워 넣는다고?
그 키퍼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같이 간단 말인가.
빡 돌아서 게이트 주인을 죽이기라도 한다면 다 같이 죽는 거다.
이런 문제 때문에 사람들은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신원확인을 중요시 했다.
협회에서 게이트 출입을 관리하는 것도, 크루가 만들어져 크루원들과만 게이트에 들어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연 이게 받아들여질까?
GGC의 수장이 진짜로 급하다면 같이 들어가자고 할 것이다.
안 되면?
뭐, 별 수 있나. 그냥 집에 가는 거지.
이게 좋은 기회이긴 하지만, 다른 길도 분명히 존재 한다.
나와 케이라가 함께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알겠습니다. 결정은 수장님이 하실 거니까요. 자, 들어가시죠.”
수장의 집무실은 수장답게 꼭대기 층에 있었다.
넓은 방안에는 세 사람이 회의 중이었다.
그 중에 누가 수장인지는 바로 알았다.
중간에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에겐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외모가 뛰어난 건 물론이고, 그를 뛰어넘는 아우라, 아니 카리스마가 있다고나 할까.
“수장님, 제가 말씀 드린 사람들입니다.”
“아, 오셨군요.”
수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쪽으로 나와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또각또각.
175cm가 넘는, 나와 거의 비슷한 키.
똑바로 세운 허리.
거기에 하이힐까지.
잘 벼린 한 자루 검이 걸어오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GGC의 수장 김나리입니다.”
예쁜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시원시원한 미소였다.
쌍둥이 동생이 사경을 해매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는 미소.
그래서 더 위압감이 느껴졌다.
‘크루 수장,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
“이정민입니다.”
“이쪽은 그 정체를 밝힐 수 없는 키퍼이신가요?”
“네.”
“목소리도?”
이 질문에는 케이라가 직접 대답했다.
“네, 사정이 있습니다.”
목소리 변조 마법 때문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집무실을 채웠다.
가람과 김나리 뒤의 두 사람이 절로 얼굴을 찌푸렸다.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저게 정상적인 반응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목소리도 안 되는 군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김나리는 표정변화가 없었다.
와우.
“저희를 도와드리러 온 분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죄송하지만, 혹시 테스트를 봐도 되겠습니까?”
정중한 어투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사실 사정은 사전에 전화로 가람에게 전해 들었다.
테스트를 받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김나리가 게이트 내에 데리고 갈 수 있는 사람은 10명 남짓.
그녀로서는 최대한 뛰어난 사람을 데리고 가고 싶을 것이다.
여동생이 사경을 헤맨 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고 하니, 이게 거의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으니까.
검증도 안 된 F급 키퍼를 데려가느라고 소중한 기회를 잃을 사람은 없다.
게다가 나는 10명 중에 한 자리를 더 차지하게 만드는 존재다.
나는 2인분 이상의 역할을 해야만 한다.
즉, 나는 웬만한 탐색 전문 키퍼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음... 이거 생각할수록 허들이 높은데?
진짜 그냥 돌아가야 하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준비는 해놨습니다. 이 건물에 쥐를 몇 마리 풀어 놨으니, 전부 잡아 주시면 되겠습니다.”
쥐라...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
몬스터, 생명체를 찾아야 하는 게 내 일이고, 쥐만큼 잘 도망가는 생물도 없으니까.
“가능하신가요?”
“가능합니다. 총 몇 마리인가요?”
“죄송하지만, 그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몇 마리인지도 모르는 쥐를 전부 잡는다라... 그것도 10층짜리 빌딩에서?
테스트 난이도가 매우 높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면 데려가는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듣기로는 바로 전 원정에 B급 탐색 키퍼 셋을 데리고 가서 실패했다고 하니까.
“알겠습니다. 바로 시작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좋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는 김나리와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집무실을 나왔다.
가람도 같이 따라 나왔다.
“제가 같이 동행하겠습니다. 제가 있으면 이 건물 내에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 앞에서는 마법을 쓰셔도 됩니다.”
아직 내가 마법사라는 건 비밀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귀가 미친 듯이 좋은 일반인으로 이곳에 와 있다.
김나리가 기대하는 건 쥐 발소리를 듣고 몇 마리인지도 모를 쥐를 잡아오는 거다.
“좋네요. 그럼, 잠시만요.”
일단 케이라를 데리고 가람에게서 살짝 멀어졌다.
서치를 쓰려면 흑마법을 빌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다른 마법을 쓸 줄 알고 백마법을 빌린 상태였다.
내가 케이라의 왼손에 입맞춤 하려 하자, 그녀가 나를 쳐다봤다.
“왜?”
“서치 쓰려고.”
“내가 쓸게.”
“아...”
생각해보니 그랬다.
뛰어난 마법사를 두고 왜 내가 하려고 했을까.
케이라는 순식간에 서치를 썼다.
마력과 마나가 휙휙 지나가는데, 보는 내가 더 정신이 없었다.
“어디야?”
“바로 위에 한 마리 있어.”
우리 위에는 천장이었다.
천장을 뜯어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하자... 가능하지?”
“응. 가능.”
나는 케이라와 약간의 상의를 거친 뒤, 가람에게 물었다.
건물 주인의 대변인에게 신고는 해야하니까.
“가람씨, 천장을 뜯어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사다리가 필요하시면...”
사다리?
필요없다.
나의 연기와 케이라의 마력이 있다면.
나는 천장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러나 이음새를 연결하고 있던 나사들이 풀어져 나왔다.
케이라가 한 일이다.
그리고 천장의 한 부분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왔다.
이것도 케이라의 마력이 한 일이다.
나는 내려오는 거에 맞춰서 손을 천천히 내렸다.
천장에 구멍이 났고, 찍하는 소리가 들렸다.
팟.
이미 마력으로 몸을 강화한 케이라가 점프했다.
그녀는 구멍 안으로 한 번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손에 쥐를 잡고 내려왔다.
“...대단하시네요. 정민씨도, 그쪽 분도.”
정체는 못 밝혔지만, 케이라가 자기 자신은 지킬 수 있는 키퍼라는 건 알렸다.
그 정도는 기본이니까.
가람의 반응으로 보면, 방금 케이라의 운동 능력은 B급 키퍼에 준하는 것 같다.
딱 적당한 듯?
나는 다시 손을 올렸고, 케이라가 거기에 맞춰 천장을 재조립했다.
천장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까 전과 다름없이 복구됐다.
“후우...”
힘들었다는 듯이 숨을 길게 내뱉는 것으로 난 연기를 마무리했다.
이제 진짜 내가 능력을 쓸 차례다.
이것도 케이라에게 맡길 수도 있지만, 기왕 백마법을 빌려왔으니까 쓰고 싶었다.
나는 케이라에게서 쥐를 받아들고 두 눈을 감았다.
흑마법의 시작이 주변 마나를 밀어내는 거라면, 백마법의 시작은 주변의 마나를 모으는 것으로 시작한다.
결과적으로는 비슷하지만, 시작 개념이 다르다.
아무튼, 난 쥐 주변에 모인 마나와 마력으로 룬어를 완성했다.
우웅.
마나가 룬어를 따라 움직이다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퍼져나간 마나는 최상층의 곳곳에서 신호를 보내다 주었다.
신호가 있는 곳에 아마도 쥐가 있을 거다.
이번에 쓴 마법은 ‘트레이스.’
쉽게 말해 추적 마법이다.
비슷한 물건이나 생명체를 찾아낼 수 있다.
지금 내 마력으로 찾아낼 수 있는 범위는 사방 30m 정도.
한 층 정도는 커버 가능하다.
즉, 이 짓을 10번은 더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자, 다음으로 갈까요?”
나는 신호를 쫓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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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건물을 돌아다니며 쥐를 잡았다.
귀찮을 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마법은 정말로 위대했다.
덕분에 건물을 돌아다니며 크루 하우스 구경을 잔뜩 했다.
각종 최신 장비가 가득한 훈련실이라든가, 무기와 수트가 늘 최고의 상태로 준비되어 있는 장비실도 들어가 봤다.
최고급 레스토랑을 방불케 하는 식당과 사내 커피숍도 구경했다.
커피맛이 아주 좋았다.
물론 쥐는 레스토랑과 커피숍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이쪽은 따로 신경을 쓴 모양이다.
그 외에도 건물 내에 크루원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최고 수준으로 준비 돼 있었다.
일하는 직원들도 다들 좋아 보였다.
수장의 동생이 사경을 해매서 마냥 좋을 수는 없었지만.
꽤 마음에 드는 크루 하우스였다.
가람의 경우를 보면 크루원들도 괜찮을 것 같고.
기회가 된다면 이 크루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총 20마리를 잡고 다시 김나리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여전히 회의 중이었다.
“다 찾았습니다.”
“벌써요?”
김나리의 눈이 내가 본 후 처음으로 다른 빛으로 물들었다.
아주 잠깐이었을 뿐이지만.
그녀는 바로 원래의 눈빛,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돌아왔다.
“20마리 전부 여기 다 있습니다.”
나는 20마리 쥐가 담긴 포대를 내밀었다.
“20마리, 맞습니다. 이렇게 빨리 찾으실 줄은 몰랐네요.”
1시간 정도 걸렸나?
비교군이 없어서 확신할 순 없지만, 이 정도면 웬만한 탐색 전문 키퍼 못지않을 것이다.
“그럼 테스트는 합격일까요?”
“네, 합격입니다. 이틀 뒤에 원정이니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내게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는 김나리의 모습에서 어떤 간절함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일개 F급 키퍼에게 잘 나가는 크루 수장이 고개를 숙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제야 나는 김나리의 자신감에 차 있는 얼굴 뒤, 동생을 걱정하는 언니의 얼굴을 얼핏 보았다.
집중해야겠다.
케이라와 게이트, 크루에 들어가니 마니를 다 떠나서, 이건 생명이 달린 문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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