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chapter 4. GGC
* * *
18.
“그럼 들어가죠.”
아직 부은 눈을 하고 있는 소연이 말했다.
처음 들었을 때보단 편해진 얼굴이다.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내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무기 같은 거 준비는 안 해도 되는 거야?”
여태 무기와 슈트는 대여로 사용했다.
협회에서 싼 값에 대여 해주니까, 신입 키퍼는 다 그렇게 했다.
장비야 살 수 있지만, 아무래도 개인이 관리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네. 들어갔다가 나오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응. 그거면 돼.”
“그럼 괜찮아요. 게이트 출구에는 별 거 없으니까요.”
게이트 주인이 그렇다면야 그런 거겠지.
나는 아무생각 없이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케이라가 제동을 걸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합니다. 게이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옳은 말이다.
나는 짧은 키퍼 생활 중에 벌써 두 번이나 게이트 내에서 이변을 겪었다.
그런데 그런 나보다 키퍼도 아닌 케이라가 더 조심스러운 거 실화냐.
반성해야겠다.
“...맞아요. 저번에 괜찮았다고 이번에 괜찮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그럼 어쩌죠? 협회에서 빌려올까요, 선배?”
“음... 그러면 날을 새로 잡아야 하나.”
“그럴 필요는 없어. 내가 도와줄게.”
“응? 어떻게?”
“마법으로.”
케이라가 두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마나가 그녀의 손 주변으로 모이는 게 느껴졌다.
이게 마나, 마력, 친화 스탯의 위력인가?
케이라의 두 손에는 어느새 푸른빛이 맺혔다.
그녀가 내 손을 잡자, 푸른빛이 내게 넘어와 나를 감싼 후, 내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게 뭐야?”
“강화 마법. 체력, 근력, 민첩, 감각 스탯을 1시간 동안 어느 정도 올려줄 거야. 이거면 무슨 일이 생겨도 잠깐은 버티겠지.”
꽈악.
주먹을 쥐니 느껴지는 힘이 달랐다.
보지 않아도 소연이 케이라를 보며 놀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감각이 예민해졌다.
역시 마법은 대박이다.
이걸 이렇게 간단하게 할 수 있다니.
“대단해요. 이게 진짜 마법사군요.”
소연이 감탄하면서 나를 슬쩍 봤다.
무슨 눈빛인지 바로 알았다.
그래, 마법이 대단한 게 아니라 케이라가 대단한 거다.
“케이라 대단하지. 내가 복이 많다니까.”
“아니... 그걸... 와...”
소연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을 잇지 못했다.
저건 그거다.
‘이 와중에 여자 친구 칭찬을 하다니 제정신이세요? 저 멘탈 나갔어요. 못 도와줌, 아니 안 도와줌.’
...내가 말이 좀 심했을지도 모르겠다.
“소연이도 대단해. 우리 중에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잖아. 지금은 네가 제일 중요해.”
“...됐어요.”
필요 없다는 듯이 말하지만, 소연은 자신의 빨개지는 귀를 숨기진 못했다.
“...”
그런데, 케이라는 왜 또 나를 저렇게 노려보는 것 같을까?
아, 이래서 하렘이 힘든 거구나.
“그럼 두 분 다 제 어깨에 손을 올리세요.”
나는 왼쪽 어깨에, 케이라는 오른쪽 어깨에 각각 손을 올렸다.
“갈게요.”
파앗.
푸른빛이 번쩍하고 우리를 감쌌다.
빛이 사라지고 나타난 건 다른 종류의 푸른 빛, 하늘색이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초원으로 사방이 탁 트여 있었다.
왼쪽 멀리에 흐릿하게 보이는 돌산이 조금 생뚱맞은 느낌이다.
그런데, 왜 보여야 할 사람이 안 보이는 거지?
“선배...”
“실패인가.”
케이라는 넘어오지 못했다.
역시 키퍼가 아니면 안 되는 걸까?
“힘은 이렇게 넘어왔는데.”
케이라가 걸어준 마법은 아직 유지되고 있다.
이거야 뭐, 이상한 일은 아니다.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 넘어오니까.
케이라도 유지되는 걸 알고 걸어줬을 것이다.
이터널 게이트 같은 곳에서 써봤겠지.
“역시 키퍼가 아니면 안 되는 걸까요?”
“그럴지도 몰라. 근데 왠지 될 것 같았는데.”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요?”
“그녀는 내 거니까. 내 옷이나 짐처럼 같이 넘어올 것 같았는데.”
“에?”
소연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머스탱 씨가 무슨 물건이에요? 그건 완전 이상하잖아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누가 물건이래? 온전히 내 소속이란 이야기라고.”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을 하셔야죠. 옷이나 짐이라고 말하고 난 뒤에 그러시면 진정성이 전혀 없잖아요.”
옷이나 짐이 나온 건 좀 심한 것 같긴 하다.
그건 너무 물건 취급이잖...아?
“잠깐만, 진짜 그런 거 아닐까?”
“...뭐가요?”
“옷이나 짐처럼 나한테 붙어 있어야 하는 거지. 방금 전에는 네 어깨를 잡았잖아?”
“...그렇긴 하죠.”
“그러니까 안 된 거야. 그녀는 내 거니까. 나한테 붙어 있어야 넘어갈 수 있는 걸 거야.”
세기의 발견이다.
분명히 이거야.
“한 번 더 해보자. 이번에야말로 될 것 같아.”
“...그럴지도 모르지만, 성공해도 물건이란 말은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마세요. 듣는 사람 상처 받을 거예요.”
“그러게. 그건 내가 좀 심했다. 고마워, 소연아. 고칠게.”
소연이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귀가 살짝 붉어진 거 같은 건 기분 탓인가?
근데 왜? 방금 내가 또 뭘 잘못했어?
“...말 이쁘게 잘 하시면서...”
소연이 작은 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평소라면 안 들릴 소리였지만, 감각이 강화된 지금은 잘 들렸다.
‘다행히 잘못한 건 아니네.’
“흠흠, 그럼 얼마나 기다려야 해?”
“...10분? 그 정도면 나갈 수 있을 거예요.”
게이트에 들어왔다가 바로 나갈 수는 없다.
보통은 10분 정도의 쿨타임이 있다고 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예외인 사람도 있지만, 소연은 보통 범주 안에 들어서 다행이다.
“나가서는? 기본 쿨타임이 얼마 정도인데?”
“1시간 정도였어요. 거기에 10분 있었으니까...”
“길게 기다리진 않아도 되겠다. 다행이네.”
게이트에 들어가는 것도 쿨타임이 있다.
기본적으로 게이트에 들어간 시간만큼은 다시 못 들어간다고 알려져 있다.
거기에 추가로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이 더 붙는다.
추가로 붙는 걸 기본 쿨타임이라고 한다.
1시간이면 굉장히 짧은 편이다.
“게이트 안에 몇 명이나 데리고 들어올 수 있어?”
“안 해봐서 잘 모르지만, 기본 쿨타임이 1시간이면 최대 10명 아닐까요?”
보통 짧을수록 게이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사람 수가 적고, 물건의 부피도 적다.
“그렇겠다. 게이트 내부는 어때? 특별한 거 좀 있었어?”
“아직 제대로 조사해 보진 못했어요. 저도 이번이 두 번째 들어오는 거고요.”
조사에는 돈이 든다. 아주 많이 들어서,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먹고 사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갓 키퍼가 된 사람들의 게이트는 대부분 이런 식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 게이트에 들어가 돈을 모은 다음, 자신의 게이트를 개발한다.
“전에는 이 주변 초원만 정찰했어요. 같이 온 B급 헌터의 말로는 주변에 몬스터가 없대요.”
“저 돌산에 뭐가 있을 것 같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빨리 돈 모아서 조사해 봐야죠.”
“나도 도와줄게. 케이라도 도와줄 거야. 조사에는 마법이 딱 이잖아?”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든 생각이다.
마법으로 미스릴 광맥만 찾을 수 있어도, 떼돈을 벌 수 있다.
“그때는 잘 부탁드릴게요, 선배님.”
“뭘요. 보수만 알아서 주시면 됩니다.”
“...아니, 그걸 돈을 받아요?”
“당연하지. 그럼 안 받겠냐?”
실제로는 받을 생각이 없다.
그런데 소연이 놀리는 게 재밌어서 계속 놀렸다.
소연은 표정 변화가 커서, 케이라와는 다른 맛이 있다.
그렇게 10분이 후딱 지나갔다.
“...이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아, 그럼 가보자.”
나는 소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런데 선배, 선배는 게이트 쿨타임이 어떻게 돼요?”
“나? 일주일.”
“그건 머스탱 씨를 돌려보내는 게이트잖아요.”
케이라에 대해 설명하면서 소연에게 관련된 얘기를 했었다.
케이라를 돌려보내는 방법에 대해서.
“그렇지.”
“그거 말고, 다른 소환 게이트요. 선배 말대로라면, 다른 사람도 소환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어?
그 쪽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케이라의 존재가 너무 강렬했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만으로도 내 인생이 너무 많이 바뀌어서, 그 다음까지 생각이 닿지 못했다.
하지만 한 명만 소환하란 법은 없다.
그보다는 여러 명을 소환할 수 있는 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아.
소연을 통해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그녀가 던진 키워드에 내 지식이 반응했고, 알맞은 답을 내놓았다.
미정.
언젠가 쓸 수 있음.
“쿨 타임은 모르겠어. 하지만 언젠가 쓸 수 있다는데?”
“그때가 되면 저도 꼭 불러 주세요. 이세계인도 소개해주시고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
이미 비밀을 공유한 사이다.
한 명이 두 명이 된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다.
그보다 또 다른 이세계인이라.
그게 가능한 일이라니, 정신이 혼미해진다.
...일단은 케이라와 게이트 문제부터 해결하자.
그러나 뭔가 또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직 내 기술 ‘소환게이트(SS, 입문)’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쿨타임 속에 있긴 하지만.
+++
1시간 후.
우리는 다시 게이트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이번에는 나만 소연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케이라는 내 품에 안겼다.
혹시 모르니까, 완전히 밀착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케이라는 늘 그렇듯 무표정에 가까웠다.
하지만 케이라 전문가인 내가 볼 때는, 살짝 체념한 눈치였다.
이미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괜찮아. 잘 될 거야.”
나는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케이라가 움찔 거리는 게 몸으로 느껴졌다.
이번에는 되겠지?
제발 돼야 해.
이렇게 붙어 있는데, 나만 쏙 게이트 안으로 가버리면 케이라가 얼마나 허탈하겠어.
그러니까 반드시.
“다시 갑니다.”
화아악.
푸른빛이 우리를 감쌌다.
그리고 내가 게이트를 넘어왔을 때, 내 품에는 여전히 온기가 느껴졌다.
케이라의 온기다.
“됐다! 됐어, 케이라!”
나는 케이라를 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케이라도 기쁨을 감출 수 없는 듯, 눈이 웃는다.
그녀도 키퍼가 되고 싶어 했으니까.
이제 그녀와 함께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다.
그녀 혼자 작은 원룸에 두고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뻤다.
“흠흠. 이제 적당히 하시죠.”
둘 만의 세계에서 돌고 있던 우리는 소연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도는 걸 멈추고 나는 약간 뻘쭘해져서 서 있는데, 케이라가 먼저 나서줬다.
“감사합니다, 소연씨. 덕분에 저도 게이트에 들어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케이라가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나도 재빨리 그녀를 따라 허리를 숙였다.
“됐어요. 제가 한 게 뭐라고요. 어서 일어나세요.”
“한 게 없다니, 존재만으로도 이미 90%는 했다고.”
이건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나온 말이다.
한 게 없다는 사람에게 그 존재를 칭찬하는 게 효과적이란 걸 어느 책에서 읽은 뒤에 자주 써먹는 중이었다.
“말만 번지르르... 아까 물건 드... 읍.”
나는 급히 일어나 소연의 입을 막았다.
“소연아, 정말 수고했어. 이 은혜는 꼭 갚을게. 반드시.”
“...기대할게요.”
케이라가 약간 의문의 눈빛을 보냈지만, 깊게 생각하진 않은 것 같았다.
다행이다.
아무리 그래도 물건 드립은 선을 넘은 거니까.
케이라 귀에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렇게 우리는 GGC에 연락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지 않아, 가람에게 연락이 왔다.
[모레 게이트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네. 다만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 정도면... 일단 크루 하우스로 와서 상의해 보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케이라와 함께 GGC의 크루 하우스로 향했다.
이건 케이라가 내가 살던 행정구역을 처음으로 벗어나는 외출이기도 했다.
* * *